Hunter Club RAW - chapter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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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레이오프(Play off)
“…급성장!”
데모나는 웅얼웅얼 주문을 외우며 바닥에 씨앗 하나를 내던졌다. 이윽고 숲의 주문이 완성되자, 호두알만한 씨앗 속에서 싹을 틔운 거대한 줄기가 경이로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
지면 깊숙이 뿌리를 내린 나무줄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무럭무럭 자라나자, 대기하고 있던 멤버들은 다급히 작전을 개시했다.
“두식아!”
“예엡! 그워어어어–!”
두꺼운 로프를 통나무 같은 허리에 칭칭 감은 이두식은 외마디 포효와 함께 검은 빛깔의 야수로 돌변했다. 웨어베어로 변한 그는 나무줄기 위로 훌쩍 뛰어올라 기다란 손톱을 껍질 속에 박아 넣어 몸을 고정시켰다.
그와 함께, 이두식의 로프와 연결되어 있는 김진솔과 장상기의 몸도 허공으로 같이 딸려 올라갔다.
“으… 으아아아악!”
“꽥꽥대지 좀 마라.”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김진솔과, 그런 그를 엄하게 타이르는 장상기의 뒤를 이어 나머지 멤버들도 속속들이 나무줄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소율아, 가자.”
“네, 언니.”
임유진과 신소율이 나비와 같은 몸놀림으로 줄기에 올라타고,
“우리도 갑시다.”
“그러죠.”
권도현과 장정민도 매미처럼 나무줄기에 매달렸다.
데모나가 소환한 거대 나무, 일명 ‘하늘나무’는 일곱이나 되는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도 끝을 모른 채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밑동에 가만히 서서, 그 이름답게 충천하여 뻗어나가는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던 노구덕은 상층부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김진솔의 비명소리에 입꼬리를 피식 말아 올렸다.
“문수 형님. 꼭 잭과 콩나무 같지 않습니까?”
“허허. 리더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군.”
이제 아래에 남은 사람은 노구덕과 허문수, 데모나가 전부였다. 데모나는 하늘나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력을 불어넣어야 했고, 허문수는 저런 거친 방법으로 나무를 타기에는 너무 늙었다. 노구덕의 역할은 이 두 사람을 고지까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내가 살던 곳에서 전해지는 동화 같은 거야. 그런데 이거 어디까지 자라는 거지?”
“거의 끝났어.”
“좋아. 지금 쓰러트리면 딱 언덕 정상부근에까지 닿겠군.”
그렇다. 하늘나무를 쓰러트려 진영에서 언덕 위까지 일직선의 구름다리를 놓는 것. 이것이 바로 플랜 C의 실체였다. 물론, 나무에 매달린 멤버들은 나무와 언덕이 충돌하기 전, 일찌감치 뛰어내려 정상에 착지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육체능력이 부족한 멤버들게는 따로 권도현이 만든 간이 낙하산까지 구비되어 있는 상태.
하지만 백 미터가 훨씬 높은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상당한 대담성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 아이리스 멤버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그럴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한 명은 작전 개시 이후 줄곧 푸르죽죽한 낯짝을 하고 있던 김진솔이었다.
‘뭐, 두식이나 도현이가 알아서 잘 착지시켜 주겠지.’
가볍게 김진솔에 대한 걱정을 지워버린 노구덕은 마운틴즈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운틴즈 리더가 보면 기가 차겠군.’
어찌 보면 편법이었다. 숲의 주문에 통달한 데모나가 있는 아이리스만이 가능한 편법.
고지전의 언덕 높이는 별로 높지 않지만, 경사가 많이 가파르고 길이 제대로 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올라가는 데만도 상당한 체력이 소모된다. 지금쯤 엉금엉금 언덕을 오르고 있을 마운틴즈 헌터들이 저 하늘나무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하지만 이 또한 실력이지.’
쿠구구궁!
까마득할 정도로 높게 자라난 하늘나무가 서서히 언덕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땅속 깊게 틀어박혔던 뿌리는 어느새 한쪽이 발을 뺀 것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나무 스스로가 뿌리 한쪽을 땅속에서 들어낸 것이었다. 과거 데모나가 티라녹의 마굴에서 선보였던 ‘나무 쓰러뜨리기’였다.
구름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요란한 굉음을 흩뿌리며 쓰러지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장관이었다. 그러나 정작 밑동에 있던 노구덕과 허문수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때문에 구경은 고사하고, 정신없이 콜록대며 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참다못한 허문수가 배리어를 치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디 다친 덴 없으시죠?”
“으음. 난 괜찮네.”
“데모나, 너는?”
“…후우.”
데모나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 얼굴로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하늘 꼭대기에 닿을 엄청난 크기의 나무를 한순간에 키워내고, 뜻대로 쓰러지도록 조작까지 했다. 대규모 공성전이었다면 이 한 수로 전황을 뒤집을만한 대단위 주문. 그녀로서는 지쳐 쓰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플레이오프가 끝나면 데모나는 아이리스 멤버들 중 가장 주가가 오르는 헌터가 될 터였다. 숲의 주문이라는 게 꽤 희귀한데다 미들리그, 빅리그를 통틀어도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는 헌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
“수고했어. 넌 이제 가만히 구경만 해도 돼. 아니면 그냥 여기 진영에서 쉬고 있을래?”
“…이 텅텅 빈 공간에서 6시간 동안 혼자 있으라고?”
“음. 미안하다. 팝콘은 없지만 위에서 관람하는 게 그나마 덜 심심하겠지. 같이 가자.”
쿠우우웅!
마침내, 하늘나무의 일부가 언덕 등선에 부딪치며 굉장한 소음을 자아냈다. 멤버들은 그 이전에 일찌감치 탈출하여 정상을 향하고 있을 터. 이제부터 진짜 플레이오프의 시작이었다.
“형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데모나? 너도…….”
“이상한 데 손을 대면 죽여 버리겠어.”
“걱정도 팔자다.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라.”
양 팔에 허문수와 데모나의 허리를 안아 들고 단단하게 고정시킨 노구덕은 탑승자(?)들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당히 도약력을 조절해가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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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즈 헌터들보다 훨씬 앞서 정상에 도착한 아이리스 헌터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진지구축작업을 개시했다. 현장의 총감독은 역시 이쪽 분야의 전문가인 권도현이었다. 그는 텁석부리 수염을 흔들며 바쁘게 명령을 하달했다.
“장정민 씨, 저기에 발리스타 머신을 설치하쇼! 아, 말뚝 박기 전에 평탄화 작업 하는 것 잊지 말고! 잘못하면 기계가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두식아, 네가 좀 도와줘라!”
“예! 형님!”
“어디 보자, 상기 형님! 여기 보면 저쪽에서 올 수 있는 통로가 딱 두 군뎁니다. 이쪽과 저쪽… 골렘으로 길을 막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면 권도현의 기관과 장상기의 골렘이었다. 윤희지의 이적으로, 땅의 마법사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장상기의 스톤 골렘이 진지외벽의 기능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단순한 바위벽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그의 스톤 골렘이었다.
“소율아, 저쪽 통로가 좀 넓어 보인다. 스톤 골렘만으로는 커버가 어려울 것 같아. 네가 보완을 해줘야겠다.”
“알았어요.”
“진솔이 너는 발리스타 머신으로 가라. 연습한대로만 하면 돼. 전장에서 떨어져 있으니 다칠 일도 없을 거다. 오케이?”
“넷!”
바쁘게 돌아가는 전장의 분위기를 실감한 것인지, 군기가 바짝 들어 대답한 김진솔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장정민과 이두식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때, 권도현의 옆으로 갈색 생머리를 늘어뜨린 육감적인 몸매의 미녀가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그녀는 이미 한참 전에 정상에 도달하여 여유롭게 정찰임무까지 수행하고 온 임유진이었다.
바람과 함께 나타난 임유진은 신소율과 두 기의 스톤 골렘이 버티고 서 있는 넓은 길을 가리켰다.
“대략 이십 분 정도면 적의 선두가 정상에 도달할 것 같아요. 저쪽 길로요.”
“감사합니다. 형수님.”
“더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괜찮습니다. 형수님이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니까요. 물론 나서실 일은 없을 테지만요. 프흐흐흣!”
권도현은 산도적 같은 얼굴에 징그러운 미소를 띠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이번 플레이오프를 기해 자신의 능력을, 그간 천시 받았던 ‘함정 기술자’란 클래스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떨쳐 보일 생각이었다.
노구덕이 진지방어전을 택한 이유에는 권도현의 간절한 바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권도현은 그의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구덕 형님.’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기관, 함정, 덫 등 각종 장치로 이루어진 사냥 방식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아무리 위력적인 장치라도 순수한 기계의 힘만으로 빅리그의 카름들을 해치우기엔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았다.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무기들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어떻게 카름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지. 이 경우에는 카름이 아니라 헌터였지만……. 마운틴즈를 상대로 증명하여 그냥 예산만 잡아먹는 고철덩어리가 아님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철옹성이 뭔지 보여주마.’
권도현이 굳은 결의를 다지는 사이, 육중한 땅울림과 함께 사나운 함성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왔어요.”
임유진의 가냘픈 음성은, 뒤이어 들려온 세찬 고함소리에 흔적도 없이 파묻히고 말았다.
“마운틴즈의 헌터들이여! 고지가 눈앞이다! 저 아이리스의 성벽을 쳐부숴버려라! 전사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후오오오오오—!”
성난 들소 떼처럼 몰려오는 마운틴즈의 선두에는, 두터운 중갑으로 무장한 세 명의 거한이 V자 형의 쐐기진을 이룬 채 돌진해오는 중이었다.
중앙의 철사자 임규태와, 각기 그의 왼팔과 오른팔이라 불리는 험멜과 두르가였다. 이 세 명의 중전사로 이루어진 삼각대형은 흉폭한 오우거와도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문득 그 정보를 상기한 권도현은 살기등등하게 소리쳤다.
“어디 그게 진짜인지 한 번 보도록 할까? 투망 발사!”
“투망 발사!”
포대 담당인 장정민은 크게 복명복창을 하며 곧장 투망 발사대를 작동시켰다. 그 옆에서 김진솔이 허둥지둥 뭐라 웅얼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퉁! 퉁!
포대에서 발사된 수박만한 투망탄은 허공을 가르는 와중에 가오리처럼 날개를 활짝 펼치며 거대한 그물망으로 변신했다.
“그물이다!”
“우회! 우회한다! 사정권을 벗어나라!”
금방이라도 정면의 스톤 골렘들을 뭉개버릴 것만 같던 마운틴즈의 선두는 끝내 돌진을 포기하고 옆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전면전으로는 두려울 것이 없다던 마운틴즈의 트리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려앉는 투망은 충분히 경계대상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권도현이 노리던 것은 바로 그 우회로였다. 마운틴즈의 대열이 투망이 내려앉는 중앙로를 피해 양 옆으로 쫘악 갈라진 것을 확인한 권도현은 두 눈을 번쩍 빛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발리스타 발사!”
“발사!”
“인챈트 웨폰(Enchant weapon), 샤프니스(Sharpness)! 샤프니스! 샤프니스! 샤프니스! 헥, 헥헥…….”
장정민의 묵직한 외침과 김진솔의 김빠지는 헐떡임에 이어, 은백색으로 빛나는 기다란 창대 수십여 발이 연달아 발사되며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슈웅! 슝! 슈슈슈슝!
예민한 청각으로 미리 그 파공음을 접한 임규태는 어쩐지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섬뜩한 느낌에 황망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살…? 아냐, 고작 화살로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건 설마…… 이, 이런 미친! 공성무기를 사람에게 쏘다니! 모두 피해라!”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것은 조막만한 화살 나부랭이가 아니라 황소도 일격에 관통할 것 같은 거대한 쇠창이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대략 이십여 발에 가까운 숫자. 더군다나 적의 작전에 말려들어 피할 곳도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임규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믿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전원이 카름의 뼛가루를 덧씌운 중갑을 착용하고 있다. 발사체의 힘에 뒤로 밀려날 순 있어도 관통상을 입는 일은…….’
“끄하학!”
그런 그의 굳건한 믿음은, 뒤에서 달려오던 부하 하나가 복부로 날아온 창을 피하지 못하고 꼬치처럼 꿰뚫려 버림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복부에 일격을 당한 마운틴즈 헌터는 이후로 쏟아진 두 발, 세 발 째 역시 피하지 못하고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볼 것도 없는 즉사였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 코멘 부탁드립니다.
다음편으로 플레이오프 파트 끝날 것 같네요.
평일에 일하고 일요일에 쉬다보니 여러 볼일을 한꺼번에 일요일에 해결하게 되네요. 그래서 오히려 평일보다 더 글쓸 시간이 없는듯 합니다.
이번 파트가 끝나고 아이리스의 중간 결산을 한 편 형식으로 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리스 소속 모든 헌터들의 저널 정보와 특성 같은 걸 나열하고 기타 등등도 수록하는 식으로요. 작품설정으로 올릴지, 편으로 올릴지 고민했는데 분량도 한편 분량정도 될 것 같고 이거 정리하느라 들인 시간도 꽤 걸릴 것 같아서요.
CrossDie / 발릴 일은 없을듯… 합니다 ㅎㅎ
카론느 / 정령 재능이 없어서 습득은 안됩니다!
zarknafein / 데모나 파트가 시작되면 아마 풀리지 않을까요?
호야[虎夜] /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月夜之主 / 다음 편에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장마와방 / 통수라기 보단 플레이오프는 권도현을 조금 부각시키기 위한 무대인지라.
에보커 / 아마도 그렇겠지요?
AF_베스퍼 /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축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엄격한 신분제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 세상이니까요. 헌터들은 생존게임을 하러 스퀘어에 온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이전 세상에서 거머쥘 수 없었던 부와 명예를 위해 들어온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클럽에 들어가 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게 싫으면 독고다이식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과거 임유진처럼) 그것도 한계가 있죠. 개인의 힘이 아무리 강해봤자 클럽보다 위일 수는 없으니까요. 클럽 단위로 배째라 할 수도 없는게, 위원회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퀘어에서 국가의 성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클럽간 인원수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유력한 헌터나 관계자들은 연맹이란 이름으로 감투를 씌워주고 있고요. 이해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아토므스크 / 추천 감사합니다 ㅠㅠ
은신설야 / 감사합니다!
마스터칼솔럼 / 감사합니다~!
삼국전기 / 쿠폰 황송합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