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41)
41화 – 꽃 피는 봄이 오고 있으니
회사에 활기가 넘친다.
수주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이미 2009년 인도분 슬롯까지 꽉 찼고, 이제 2010년 인도분 영업에 들어갔다. 금융위기가 백번 찾아와도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2009년까지는 태평성대가 이어지는 것이다.
배값도 이전보다 꽤나 높아졌다.
배짱부리는 것 아니냐는 핀잔도, 이런 식이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협박도 다 무용지물이었다. 야이 그래서 발주 안 할 거야? 이 한 마디면 결국 계약서 쓰자고 고개를 수그렸다.
계약서상으로 을이지만, 갑이나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너네 아니어도 발주하겠다는 선주들 많으니까 질척거리지 말아줄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이에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야?”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2년 전에 배 한 번 발주한 것 가지고 거참 유세 떠네.”
“그러지 말고 50만 달러만 깎아줘.”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갔을 것이다.
내가 김진수 차장에게 수주 안 해도 상관없으니 꿀리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라고 주문했으니 그리 했겠지. 배 짓는 음유시인 김태우 본부장도 선박 영업은 배때기에 칼이 들어와도 갑빠로 버티는 것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격려하고 다녔다.
단순히 호황이 지속되기 때문에 우리가 배짱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생에서 운빨이 윤회를 삼천갑자 한 것처럼 한 번에 터지는지,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져가고 있다.
우리가 인도한 배가 바다를 누비면서 운항 성능이 공개된 것이 첫 번째 운빨이었다.
“실장님! 레스티스한테서 메일이 왔습니다!”
“메일이요? 혹시 영국에서 시작된 편지입니까?”
“하하. 실장개그인가요? 레스티스가 인센티브 5만 달러 제공한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인도 일주일 당겨줬다고 5만 달러 주더니, 이번엔 또 뭘로 돈을 주겠답니까?”
“우리 첫 호선 운항성능이 스펙보다 더 뛰어나답니다. 우수한 성능의 배를 건조한 것에 감사를 전하겠다네요. 향후 신조선 발주 때 유일조선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면서요.”
“오호라. 꽁돈이 생겼네요? 이런 건 보도자료 마구 뿌리면서 적극 알려야죠. 레스티스도 그걸 바랄 겁니다.”
김진수 차장이 행복한 표정으로 내 방을 사뿐히 걸어 나갔다. 내후년에 새 사무동 지으면 흔들림 걱정 없이 마음껏 쿵쿵거리게 해 드리리라.
선박의 성능이 뛰어나면 그만큼 임대료를 높게 받을 수 있다. 이미 선박브로커 커뮤니티에는 유일조선이 성능 좋은 배를 건조해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6만톤짜리 파나막스 벌크선의 하루 용선료가 4.8만 달러 정도인데, 연비 좀 잘 나온다 싶으면 5만 달러 이상도 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 첫 발주 선물을 준 선주는 이를 적극 알리며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우리 역시 선주한테서 5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널리 알리며 광고주를 어부바해줬다. 서로 핥고 빨아주는 아름다운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실장님! 우리가 인도한 선박들의 운항 성능 데이터가 속속 공개되고 있습니다!”
“또 인센티브 준다는 곳은 없나요?”
“네……. 그래도 입찰 참여해 달라는 레터가 꽤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기본설계팀에서 죽겠다고 난리네요. 하하.”
“어휴, 또 인력 대거 충원해야겠네요. 살아만 있어달라고 전해주세요.”
우리한테 선박 맡기면 돈 더 벌 수 있다는데, 주문이 안 늘어나면 이상할 일이지. 우리 캐파는 한정돼 있고, 주문은 늘어나니, 당연히 배값은 높아지는 법.
여기에 대흥중공업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회사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
-어쩐지 유일조선이 신생치고는 배 짱짱하게 잘 만든다 했더니, 대흥중공업이 돌봐주고 있었구만?
-합작사까지 차릴 정도면 사실상 같은 회사 아닌가? 비싸게 대흥에다 발주할 바엔 유일에다 주는 것이 낫겠네.
소문 빠른 이 바닥에서 별의별 얘기가 나돌았다. 그 얘기가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땡큐였다.
빅3 중에서 우진조선과 순양중공업이 드릴십과 LNG선으로 잘 나간다 해도 상선 3형제, 즉 벌크선, 탱커, 컨테이너선은 대흥중공업을 최고로 친다. 그 대흥중공업이 우리 회사를 목마 태웠다고 하니 선주들이 돈 싸들고 우리 회사로 찾아오는 것이 당연지사.
우리가 목 뻣뻣하게 세워도 주문이 밀려드니, 생산을 총괄하는 정한호 상무를 들들 볶을 차례다.
“상무님! 발주가 쏟아지는데, 납기 단축 좀 안 됩니까? 며칠씩만 줄여도 슬롯 하나 나올 것 같은데요.”
“아이고, 유 실장. 나도 죽겠어. 지금 하루라도 더 당겨보려고 머리 쥐어짜고 있으니까 기다려 보드라고.”
작년에 육상건조 사상 최단시간 진수기록을 세웠었다. 하루 종일 걸리는 진수를 단 5시간 만에 끝내버린 쾌거였다.
그러나 난 만족 못 해. 한 시간이라도 더 줄여야 해. 전생에서는 3시간 만에 바다로 내보냈다고!
“우리 GTS공법이랑 Push-Pull 시스템은 이미 검증 받았으니까, 이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차례죠. 유압 실린더 성능만 개선하면 더 빨리 로드아웃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죽겠다니까 더 빨리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거야? 근데 말이야, 진수 빨리한다고 안간힘 써봐야 고작 몇 시간이야. 한계가 있다고.”
“블록공장도 바로 확장할 들어갈 겁니다. 야드 확장이 시간 좀 걸리니까, 해상에서 조립할 수 있게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럼 블록 두어 개로 바로 선체 조립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블록을 지금보다 더 키운다고? 오호. 안 그래도 순양중공업이 테라공법인지 뭔지 하겠다고 준비하는 것 같던데, 우리도 그렇게만 하면 땡큐지 아주.”
죽겠다는 표정이 가득했던 정 상무 얼굴이 어린이동산의 햇님처럼 환해졌다.
선박을 빨리 뽑아내는 기술은 선체를 얼마나 빨리 바다에 띄우느냐에 달려있다.
선박 내부를 채우는 의장작업은 배가 어디에 있든 가능하니, 일단 빨리 조립해서 내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블록공장에서 보내온 블록들을 부지런히 용접해서!
블록을 조립하는 야드는 한정돼 있어서 선체 용접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빨리빨리의 민족인 우리나라는 블록을 키울 만큼 키워서 야드 작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다.
수백개의 블록으로 만들던 공법을 대여섯개의 메가블록으로 바꾸고, 그것도 성에 안 차서 메가블록을 서너개의 기가블록으로 바꿨다. 4년 쯤 뒤에는 이마저도 달랑 두 개로 바꾼 테라블록으로 끝낼 것이다.
4년 뒤에 상용화될 기술을 우리가 먼저 쓴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 뭐.
“제가 알기론 테라공법이 블록을 두 개로 끝내는 건데, 플로팅도크 10만톤짜리면 초대형선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물론, 해상크레인도 들여와야죠.”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근데 괜찮은 거지?”
어린이동산 햇님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눈동자에 돈이 아른거리는 걸 보니 돈 걱정이 한 가득이로구나.
“상무님은 돈 걱정하지 마시고, 생산에만 집중해 주세요. 제가 콩팥이 한 백개쯤 있으니까 이거 팔아서라도 마련하겠습니다.”
“허허. 그으래? 이거 신부전증 환자들 좋아할 소식일세. 근데 말이야. 설계가 빨리빨리 나와야지. 지금 설계부 애들 좀 봐봐. 다들 눈 퀭해져가지고 죽을라 그래.”
“내일 바로 대규모 채용공고 내겠습니다.”
“거참. 영업도 잘 되고 있고, 인원도 충원할 것이고, 돈도 걱정 말라. 그래서 나만 이렇게 들들 볶고 있는 거구만?”
“허허. 이거 무당들 실업자 되게 생겼습니다. 어찌 그리 용하십니까?”
“옛끼, 이 사람아. 왔으니 담배나 피우고 가.”
정 상무의 볶임 회피 작전. 난 휘둘리지 않았다. 담배 2대를 태우는 동안 계속 채찍을 휘둘렀다.
“상무님. 이제 곧 있으면 케이프사이즈 조립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것 봐라? 또 뭘로 들들 볶을라고 이리 운을 띄우실까?”
“이번엔 살살 볶을게요. 케이프가 블록 5개로 만들어지잖아요. 선수랑 선미를 먼저 놓고 사이에 블록을 요렇게 끼우는 식으로요. 이걸 요렇게 해서 중간 블록 3개를 하나로 합쳐서 집어넣으면 공기가 훨씬 단축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러니까 평블록을 하나로? 선행탑재하자는 소리구만?”
“네네. 제가 뭐 전문적인 기술까지는 모르겠고, 블록 탑재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이죠. 물론 크레인 인양 등 고려할 점이 많겠죠.”
“허허. 그러니까 나 보고 뒷처리해 달라는 소리로구만?”
나와 찰떡궁합인 우리 정 상무. 맨날 죽는 소리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결과물을 내놓는다.
전생에서도 저 사람 아니었으면 온갖 신통방통한 공법들은 태어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나중에야 생산보다 회사 살린다고 은행 들쑤시는 일이 더 많아서 문제였지만.
십장로 중에 최고봉인 우리 정 상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또 채찍을 휘두른다.
“상무님!”
“아이고, 이제 담배 다 폈으면 그만 나가지?”
엄살을 부리면서도 싫은 내색이 아니다. 내 주둥아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이 궁금할 테지.
외계에서 날아온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2~3년 안에 적용될 기술들만 얘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럴싸하게 들릴 것인가!
“우리도 이제 도크를 파니 한 번에 선박 4척 동시에 조립할 수 있잖습니까?”
“그렇지. 그래야 도크 회전율이 좋아지지.”
“근데 1척을 먼저 만들고 나면 진수한다고 나머지 3척 공정이 중단되죠.”
“그래서 대흥에서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야. 물 채우고 빼고 며칠씩 날아가니까. 4척 공기가 다 다르다고 치면 보름은 후딱 날아가는 거지.”
이 바닥의 변치 않는 룰. 도크 회전율이 곧 영업이익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크에 배 여러 척을 끼워놓고 동시에 작업을 돌린다. 작업일정이 같으면 상관없지만, 서로 일정이 다른 선박이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왜? 먼저 만든 배를 띄워서 바다로 내보내야 하니까. 물 들어오는데 작업을 계속할 수 없잖아. 물 들어오고 빠지는데 걸리는 그 며칠이 무척 아까울 수밖에 없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야 하는 법. 내후년에나 공개될 텐덤침수공법도 내가 좀 빼먹읍시다. 미안해요, 대흥중공업.
“선체조립이 끝난 배만 진수하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4척 중 1척이 먼저 작업이 끝나서 진수를 해야 하는데, 나머지 3척은 계속 가라앉히는 것이죠. 그 상태로 작업이 계속 이뤄질 수 있게 말이죠.”
“오호라. 아니, 유 실장. 날마다 기상천외한 방법은 없는지, 그것만 생각하는 거야? 허허. 그거 아주 좋은데? 뭐 어렵지도 않겠어. 공정이 멈추는 일만 없도록 하자는 건데, 되겠다 싶으면 무조건 시도해 봐야지. 이거 참 아쉽구만.”
“왜 또 그러십니까?”
“우리가 도크가 있었으면 바로 적용해 볼 텐데, 앞으로 한 2년은 기다려야 할 것 아닌가!”
정 상무는 M성향인 것이 분명하다. 채찍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저리 좋아할 수 있나! 내가 이번 생에는 은행 돌아다니면서 회사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일 없도록 할 테니까 공기 단축에만 집중해 주셔.
몸에 채찍 자국이 선명한 정 상무가 채찍질을 더 원하는 표정이다. 그으래? 그럼 더 휘둘러줘야지.
“상무님! 오늘 따라 담배가 아주 달달하지 맛있네요.”
“내 담배에는 누가 여주 내린 물이라도 발라놨나? 아주 써서 못 피우겠어. 이제 그만 피우고 가지? 허허.”
“말 나온 김에 좀 더 있을 게요. 이러다가 나중에 안 찾아온다고 삐지실 것 아닙니까?”
“허, 거 참. 아주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구만. 허허. 그래, 이번엔 또 뭔데 그래?”
할 얘기가 너무 많지. 솔직히 돈만 있으면 내가 기억하는 모든 걸 다 구현해 보고 싶다. 죽으나 사나 늘 돈이 걸림돌이구만. 리먼브라더스 이 새끼야, 빨리 좀 망해라.
“새 선종이랑 선형 개발을 잘 되고 있죠?”
“그럼그럼. 담달에 기술연구소 세워지면 아주 입구 잠가놓고 한 발자국도 못 나오게 할 참이야.”
“아이고, 이 동네 중국집 떼돈 벌겠습니다.”
“밥은 잘 먹여야지. 군만두만 먹이면 질리니까 짜장이랑 짬뽕도 먹게 해 줘야지. 허허.”
역시 정 상무. 한 번 나온 말은 절대 안 까먹는다. 연구인력들 쥐어짜겠다고 하니, 묵묵히 기다리면 되겠지.
“육상건조 진수시간 기록 세우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더 새끈한 걸로 기록을 세워 보죠. 이를테면 특허출원 업계 1위 이런 것 말이죠.”
“유 실장. 뭐가 됐건 나오는 족족 바로 출원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그럼요. 덕분에 하루 종일 결재서류 사인만 하고 삽니다.”
“그럼 잘 알고 있겠구만. 우리가 얼마나 빡세게 일하고 있는지. 알면 그만 갈구지? 허허.”
“아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담배 맛있게 잘 피우고 갑니다.”
이 정도면 금융위기 대응은 충분히 한 것 같다.
기존 계약도 잘 움켜잡았고, 신규 계약도 꿀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 새 시장에 대비할 대규모 투자도 곧 출산을 앞두고 있고, 기술개발도 정신없이 이뤄지고 있다.
돈만 마련하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이다.
꽃 피는 봄이 오고 있으니, 맡겨둔 돈 찾으러 움직여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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