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16)
00416 보이지 않는 적 =========================================================================
「우리가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이 도왔기 때문입니다.」
화면에서는 CERC 백신 개발 연구원이 백신의 개발 경위, 효능 및 임상 실험 과정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폭발의 원인은 결정 에너지를 품은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났다. 발표 직후만 해도 커다란 혼란이 일었으나, 그 뒤를 이은 백신 개발 발표는 혼란을 누그러뜨리는데 일조했다.
지난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밤 바이러스’로 인한 희생자 수는 무려 10만 명이 넘어섰다. 사람들은 희생자처럼 자신도 폭발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터지지 않을까 겁을 냈다.
그리고, 감염되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신이 돕긴 개뿔, 아무리 프로토타입이고 우연이 겹쳤다 해도 그런 백신을 열흘 만에 뚝딱 만들어냈다는 게 말이 돼? 거짓말도 하려면 그럴 듯하게 할 것이지.”
방송을 보며 유지웅이 혀를 찼다. 화면에는 구름처럼 몰려든 임상 실험 지원자들에게 백신을 투여하는 CERC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저택을 방문한 남기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고 지역이 전 세계로 널리 퍼져 있다 보니 너도 나도 백신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임상 실험 지원자가 1,0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저거 위험한 거 같은데, 막아야 하지 않나요? 재들을 어떻게 믿어요?”
“우리 정부에서는 일단 효능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막았습니다.”
“사망자 수가 얼마나 되죠?”
“82명입니다.”
그 정도면 양호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케일 호텔 이후로도 몇 차례씩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바이러스 괴수로부터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CERC에서는 ‘바이러스형 괴수’라고 발표하지 않고 ‘결정력을 품은 바이러스’라고 설명했다. 전자와 후자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와, 바이러스의 형태를 한 괴수가 자신의 몸 속에 있는 것. 어느 쪽이 사람의 공포를 더 크게 키울지는 뻔하다.
“국제 여론은요?”
“백신 개발이 지나치게 빠른 것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다양한 음모론도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긴, 언론 플레이를 할 힘은 충분하겠죠.”
지금 세상은 CERC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CERC는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무서운 바이러스를 퇴치할 무기를 만들어낸 훌륭한 과학 집단이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그런 긍정적인 평가이며, CERC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은 수면 아래만 맴돌 뿐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짐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이 없고 황당한 일일 뿐이었다.
“보호막이 바이러스 괴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실히 알면 일이 더 쉬워질 텐데.”
현재 결정체 연구단지 및 자문단이 합동으로 연구 중이었지만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얼마 전에야 간신히 ‘밤 바이러스’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한대요?”
생각났다는 듯이 묻자 남기철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유지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러시죠?”
“CERC에 대한 국제 여론이 호의적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CERC와 척을 져봐야 이득을 볼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감염자가 꽤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요.”
“그래서요?”
“우리 정부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역시 유럽에 대한 제재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백신 때문에요?”
“반드시 백신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미국도 어느 정도 CERC에 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 정부가 어떡한다는 건데요?”
“물밑 협상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 괴수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넌지시 압박해서 쉽게 백신을 얻어내는 거죠. 적어도 우리나라가 CERC를 상대로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실리를 챙기자는 거죠.”
유지웅은 어이가 없어서 대꾸했다.
“그런 놈들과 손을 잡겠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더 이상의 자국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막아야겠다는 게 대통령님의 생각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거군요.”
남기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입을 굳게 다문 유지웅의 표정은 건드리면 베일 듯 매서웠다.
그는 이 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다. 바이러스 괴수 때문에 절친을 잃을 뻔했고,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눈 앞에서 보았다. 영웅을 흉내낼 마음은 없지만,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CERC에 화를 내고 경멸하는 마음을 품은 것이다.
“저는 CERC를 압박해서 사죄하고 백신을 무료로 내놓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배상은 물론이고요.”
“CERC는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닙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 뒤에서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유럽 전체와 싸워야 합니다.”
“…….”
“CIA가 테러했을 때와는 경우가 다릅니다. 밤 바이러스를 CERC가 개발하고 유포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그들을 적으로 삼는다면 우리만 불리해집니다.”
“그게 정부의 생각이란 거죠?”
“……네.”
유지웅은 미국도 한 수 접어주는 ‘개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개인’이다. 하지만 아무런 물증이 없이, 유럽 연합국 전체를 상대로 강짜를 부리는 짓은 무모하다. 그런 건 미국도 할 수 없다.
억지로 하려면 할 순 있을 것이다. 결정체, 안전지대, 뭐든 물고늘어지며 협박을 하면 된다. 그럴 영향력은 된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고,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회장님과 이 나라, 이 나라 국민에게 좋을 게 뭐가 있느냐는 게 대통령님의 진심이셨습니다.”
“…….”
“저들에게 돈 한 푼 쥐어주지 않고 백신을 뜯어내 국민들을 위험에서 구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물밑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섣불리 그들을 몰아세워서는 안 됩니다. 백신 이외에도 회장님과 우리나라를 위해 몇 가지 더 뜯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CERC, 아니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유럽 연합은 세계의 패권 축 중 하나다. 그들이 세계를 상대로 나쁜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왜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까? 물론 그럴 힘은 충분하다. 한국은 유일한 블루 결정체, 안전지대 수출 국가니까. 그러나 세계의 정의를 위해 CERC와 피터지게 싸워봤자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겉으로는 침묵하고, 뒤에서는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압박을 하면 된다. 그것이 더 많은 것을 뜯어낼 수 있다. CERC의 명치에 비수를 갖다대고 협박을 가하는 것이다.
“겉으로 나대지 않는 게 저한테 더 좋다고요? 하…….”
오히려 이 일을 기회로 삼아 CERC를 휘두를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바이러스 괴수가 유포되기 이전보다 한국도 유지웅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정치다.
“남 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기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별 생각없이 자신의 견해를 묻는 것일까? 아마도 아니리라. 여기서 하는 대답이 자신의 일생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
“한쪽 눈을 감으면 회장님에게는 이익이 됩니다. 감지 않으면 피곤해지시겠지요.”
“…….”
“회장님이 생각하셔서 올바른 쪽으로 행하시면 됩니다. 정의는 꼭 하나만이 아닙니다.”
유지웅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간식거리를 갖고 들어온 정효주는 유지웅의 뒷모습을 보았다. 신랑은 창밖에 깔린 저녁놀을 내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부터 안았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그 사람이 자꾸 생각 나.”
“어떤 사람?”
“케일 호텔에서 죽은 사람.”
정효주는 입을 다물었다. 보호막을 걸어주었지만 결국 바이러스 때문에 몸이 터져 버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일은 그녀에게도 개운치 않은 씁쓸함으로 남아 있었다.
생판 관련 없는 사람이라 해도 눈앞에서 그렇게 죽어나갔는데 어떻게 측은지심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정부는 실리 없는 명분보다 철저한 실익을 위해 한쪽 눈을 감기로 했다. 강도가 사람을 해친다면 벌을 줘야 한다. 그러나 군벌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면, 손을 잡는 게 낫다. 그 군벌보다 자신의 힘이 더 우세한다 해도. 왜냐하면 그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비정하지만 그것이 국제사회다.
그래서 청와대는 유지웅에게 부탁을 했다. 이번 일에 눈을 감자고.
‘물밑 협박을 통해 우리는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전화까지 걸어 한 말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어디 가?”
“그냥. 바람 좀 쐬러.”
유지웅은 간편한 옷만 입고 저택을 나섰다. 밤이슬이 깔린 거리는 제법 추웠다. 이제 겨울이 멀지 않은 것이다.
“브라우니는 잘 지내려나?”
미국은 수확기를 무사히 마쳤지만, 아직 알이 부화하지 않은 관계로 브라우니와 제이라, 트리스티나는 그곳에 남아 있었다. 알이 부화하고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그때 데려올 생각이었다.
유지웅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독서실을 향하는 수험생, 일을 마치고 이제 막 귀가하는 청년, 거리를 청소하는 늙수그레한 청소부…….
바이러스 괴수 때문에 세상이 흉흉한 가운데에도 저들의 삶은 톱니바퀴처럼 변함없이 맞물려 돌아간다.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회장님.”
귀에 익은 목소리에 유지웅은 흠칫 놀랐다. 급히 돌아보니 나미의 모습이 보였다.
“나미 씨? 여긴 어떻게?”
“회장님을 만나려고 왔어요.”
“저를요?”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서요. 회장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대요.”
그제야 유지웅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모습이 반듯하고 인상적인 젊은 백인 여성이었다.
“나미 박사와 예전에 같은 연구 테마를 주제로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로…….”
“밤 바이러스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니, 바이러스형 괴수라고 해야 옳겠죠?”
유지웅은 흠칫 했다. 바이러스형 괴수라는 표현은 일반 대중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여자, 뭔가를 아는 건가?
“바이러스 괴수가 유출된 것은 사고입니다. 하지만 CERC는 그것을 이용해서 백신을 판매하려 하고 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을 상대로 목숨 장사를 하겠다는 거지요. 거기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사고요?”
유지웅은 의아했다. 안슐과 자신, 그리고 한국 정부는 CERC가 백신 판매를 위해 고의적으로 바이러스 괴수를 개발해 유포했다고 추정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사고라고 한다.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거든요. 아시겠지만 밤 바이러스도 괴수의 일종이다 보니 안전지대와 보호막에 취약해요. 안전지대 안에서 숙주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멸해버리죠.”
“…….”
“그리고 하나 더 약점이 있어요. 이건 CERC도 모르는 사실입니다.”
“그게 뭐죠?”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어요. 한국 정부는 CERC가 한 짓에 눈을 감을 계획이라던데요. 회장님도 그렇게 하실 건가요?”
가슴이 답답해졌다.
머리는 그게 옳다고 한다. 아니, 그게 손해를 안 보는 짓이라 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터져나간 청년의 겁에 질린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찜찜함이었다.
“모르겠어요. 다만…….”
“다만?”
“그 녀석들, 전부 다 세상 살기 힘들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근데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여자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표정에 유지웅은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여자가 눈을 떴다. 그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시뮬레이션대로라면 불완전한 밤 바이러스라 해도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와야 정상이에요. 특히 중국과 일본은 거의 괴멸이 되어야 하죠.”
유지웅은 놀랐다. 그 정도로 위험하단 말인가? 아니, 가만? 그럼 왜 예상 수치보다 피해가 적은 거지?
“바이러스 희생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건 CERC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예요.”
“그게 뭐죠?”
“호남산 곡물을 섭취하지 않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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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동양의 민간요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