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8)
00068 나는 탱커다 =========================================================================
침대에서 정효주와 즐겁게 놀고 난 뒤 유지웅은 나른한 몸을 쉬고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토닥이듯이 계속해서 어깨를 만져 주고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참으로 기분 좋아 그는 잠이 쏟아졌다.
이곳은 아직 오후 3시였다. 하지만 한국 시각으로는 오후 10시였다. 잠이 쏟아지는 시각인 것이다. 레이드는 이곳 시각으로 내일 아침 일찍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 시차로는 점심 직후에 시작하는 셈이 된다. 그럼 시차 적응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쉬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뜻밖의 방문객 두 명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
“프라임 공격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건네는 백인 남자를 유지웅은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생긴 건 틀림없는 백인인데 놀라우리만치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아마 눈을 감았으면 백인이라는 것을 몰랐을 정도였다.
‘스탠더드 크리스탈 컴퍼니?’
스탠더드 크리스탈 컴퍼니, 통칭 SC컴퍼니는 북미 최대 결정체 유통 업체로서, 거대 정유업체였던 엑슨모빌의 화신이었다. 총자산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굴지의 다국적 기업으로, 전 세계 결정체 시장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정체 취급에 있어서는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인 셈이다. 유지웅도 잘은 몰랐지만 스탠더드 크리스탈 회사의 이름만큼은 자주 들어봤다.
“SC에서 제게 무슨 일로?”
“블루 결정체를 사고 싶습니다.”
제리스라고 이름을 밝힌 백인 남자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이번 독일 레이드가 성공하면 블루 결정체를 얻겠죠? 그것을 저희 회사가 구매하고 싶습니다.”
“아, 그건 이미 독일에 팔기로 했는데요.”
“강제 의무가 있는 건 아니죠. IACP를 통해서 독일에 매각시 10억 유로의 프리미엄을 받는다는 조건이 아니었습니까?”
퍼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독일 정부가 자신에게 은밀히 제안한 조건이었다. 공격대원들이 발설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몰라야 했다. 그런데 이 자들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의 표정이 굳어진 걸 알아차렸는지 제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명함 한 장을 다시 내밀었다.
“SC컴퍼니는 대외적인 신분입니다. 제 또 다른 신분은 CIA 독일지부 소속 요원입니다.”
“CIA요?”
유지웅은 다시 흠칫 했다. CIA 요원이라는 것은 중요한 비밀일 텐데, 왜 그렇게 쉽게 밝히는 걸까?
“저는 첩보계에 어느 정도 신분이 노출된 요원입니다. 첩보 활동보다는 주로 로비를 맡고 있죠. SC컴퍼니 직원 신분은 대외적인 것으로, 위장 신분은 아닙니다. 이른바 겸직이죠.”
“블루 결정체 때문에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 SC컴퍼니가, 정확히는 우리 미국이 블루 결정체를 사고 싶습니다. 독일이 제시한 프리미엄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15억 유로라고 공표하겠습니다.”
제리스의 말대로라면, 5억 유로는 혼자 집어 삼켜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일종의 리베이트였다.
유지웅이 입을 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블루 결정체 원가는 5,000억 원일 뿐인데.”
5,000억짜리 블루 결정체를 매입하기 위해서 독일은 1조 4,000억의 프리미엄을 제시했다. 미국은 2조 8,000억 원의 프리미엄을 제시했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블루 결정체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달에 겨우 딱 한 개만 생산되고 있으니까요. 그마저도 프라임 공격대가 쉰다면 생산 계획이 불투명해지죠.”
한 달에 겨우 하나. 하지만 원하는 나라는 많고, 원하는 기업은 널렸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무한대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정말 부르는 게 값인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하시죠. 블루 결정체 하나로 몇 십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낼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값을 주고 구매하려는 거라고요.”
제리스는 유지웅에 관해서 이미 조사를 마쳤다. 본래 딜러였다가 드물게 보호막 능력자로 재각성한 인물. 때문에 힐러와 힐러가 아닌 자들간의 불균형에 관심이 많고, 대원간의 공정한 분배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
나이는 불과 스물. 돈의 힘을 실감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며, 안슐이라는 아랍의 왕자가 우정을 맺고 도움을 받고 있지만, 레이드 그 자체에 더 충실한 능력자. 그것이 CIA의 판단이었다.
‘충분히 회유할 수 있다.’
이런 타입은 돈의 힘을, 돈의 맛을 알게 해주면 충분히 회유할 수 있다. 제리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유지웅이 덧붙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바보 아닌데요. 그 정도는 충분히 알죠. 10억 유로, 20억 유로 값을 하니까 그만한 돈을 주고 가지려는 거겠죠.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제대로 오해하셨네요.”
“미스터, 실례지만 무슨 의미이신지……?”
“미국에 안 판다구요. 독일에 팔 거예요.”
“……?”
“그러니까 아까 제가 한 말은 그렇게 대놓고 말하기 미안해서 돌려 말한 건데, 제가 정말 블루 결정체 값어치를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착각하셔서 그렇게 설명하신 거잖아요. 그런 거 전혀 아닌데.”
유지웅은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했다. 말뜻을 깨달은 제리스는 하마터면 얼굴을 구길 뻔했다.
이름만 간단히 소개한 뒤로는 한 마디도 없던, 제리스 옆의 백인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가렌이라고 했다.
“20억 유로의 큰돈을 거절하면서까지 독일에 팔려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별 이유 없어요. 그냥 그게 맞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저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군요.”
다소 고압적인 자세였다. 유지웅은 불쾌한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저는 그래야 할 이유를 못 느끼겠네요. 왜 제안을 거절하는지 그 자세한 내막까지 설명해야 되나요?”
두 말 않고 유지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즐거웠어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뭐라 붙잡을 틈도 없이 유지웅은 사라져 버렸다. 제리스는 어이없는 눈으로 그의 뒷모습만 쫓았다.
갑자기 가렌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한 방 제대로 먹었군. 감히 스탠더드 크리스탈 컴퍼니의 제안을 거절할 줄이야. 그것도 20억 유로짜리를.”
“회유 전에 한 번 떠보려고 한 게 보기 좋게 실패했군요. 아무래도 대상 파악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분석에 들어가는 것이…….”
“그럴 필요 없네. 대충 알았으니.”
가렌은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이 빨았다가 연기를 내뿜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우습게 봤는데 아주 영악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야. 돈만 밝혔다면 우리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겠지. 아니, 그 전에 자기 몫인 프리미엄을 대원들에게 분배하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겠지. 그에게 돈은 중요하지만, 1순위는 아닌 걸세.”
재를 천천히 털면서 가렌은 시가의 연기를 음미했다.
“독일에서 얻은 결정체를 더 많은 돈을 준다고 다른 나라에 팔면 아무래도 평판이 나빠지겠지. 아마 그것을 내다보고 거절한 게 틀림없어. 우리의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네.”
“레드 몹 레이드를 의뢰해야하는군요.”
“그렇지.”
“그럼 돈보다 더 중요한 1순위는 뭘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돈이 1순위가 아니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
“바빠지겠군요.”
실드에 대한 축적 정보를 보완하려면, CIA 동아시아 지부가 한층 더 바빠질 것 같았다. 제리스는 마음이 급해졌다.
유지웅은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로 파고들었다. 정효주는 아직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미팅은? 잘 됐어? 뭐라니?”
“블루 결정체를 자기들한테 팔래.”
“그래서? 내가 말한 대로 잘 대답했니?”
“응. 독일에 판다고 했어.”
“잘했어. 독일 거는 독일에 파는 게 좋아. 사람 인심이라는 게 원래 그래.”
“가끔 답답해. 그냥 값 잘 쳐주는데 팔면 됐지, 공격대장이 무슨 레이드도 아니고 그런 외적인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짜증나고 그래.”
“어쩔 수 없잖니. 그린 결정체도 아니고 블루 결정체인데. 너도 좀 그런데 관심을 갖고 그래 봐.”
“난 그냥 값 잘 쳐주는데 팔면 그만인데 뭐.”
유지웅은 블루 결정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국제역학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은 눈이 뒤집어져서 달려들지만, 그에게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전리품에 불과하다. 그가 제일 관심 있는 것은 보호막 능력과 강화 문제였다.
세상을 보는 눈이 모자라서 블루 결정체를 놓고 빚어지는 주변 갈등을 모른 체 하는 게 아니었다.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는 이상, 블루 결정체는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는 블루 결정체와 그가 보는 블루 결정체는 가치 기준이 확연히 달랐다.
“그래도 효주 니가 시키는 대로 잘 하잖아?”
“고마워 해. 나라도 그런 거 신경 써주는 거.”
“내 일이 니 일이니까 당연히 신경 써야지. 니 일은 니 일이고 내 일도 니 일이야. 안 그래?”
어떻게 해석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효주에게는 참 기분 좋게 들렸다. 그만큼 둘 사이의 깊은 유대 관계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 시킨 대로 잘했으니까 빨리 상 줘.”
“한국 가서 해줄게. 여기는 재료가 없어.”
“그럴까 봐 내가 오일 가져 왔어. 자, 빨리 해 줘.”
“……우리 내일 아침 일찍 레이드야. 지금 빨리 자야 돼.”
“난 지금 상 받고 싶다고.”
상을 달라고 칭얼거리는 그를 겨우 달래서 재웠다. 남자는 영원한 아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긴 맞나 보다.
유지웅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정효주의 베갯머리송사다.
현지 시각으로 아침이 되었다. 시차 때문에 오후에 자서 새벽에 일어난 대원들은 부지런히 레이드 준비를 갖췄다. 이미 두 번의 레드 몹 레이드 경험이 있는 1팀은 제법 여유로웠지만, 2팀은 상당히 긴장한 채였다.
장태준 팀장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지원장비 세팅을 진두지휘했다. 이번에 자그마치 200억의 예산을 투입해서 갖춘 추가 지원장비였다. 그는 이번에 미국에서 개발된 최첨단 레이드 통합전술 시스템을 도입했다.
예전에는 대원들 개인에게 주어지는 장비는 측정기와 교신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대원들은 전원이 고글형 전술통합장치를 착용한 채 레이드에 투입하게 된다.
고글처럼 생긴 이 장치는 간단히 말해서 레이드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총망라된 단말기라 할 수 있다. 모든 단말기가 중앙 컴퓨터와 연동되어 실시간 링크 형태로 구동된다. 단말기에는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 대원들 개개인의 시점을 전부 녹화할 수 있다. 힐링 및 딜링 측정 센서가 장착되어 있으며, 중앙 컴퓨터가 위협 수치를 예측해서 해당 대원에게 단말기를 통해 직접 경보를 내리는 기능도 갖춰져 있다. 교신 기능은 물론이다.
“겨우 지원장비에 200억 씩이나 쓰다니. 역시 프라임 공격대야. 돈은 썩어난다니까.”
“공대 운영비가 아직도 수백억 넘게 남았다는 말도 있던데?”
“버는 게 얼만데 당연하지.”
대원들은 처음으로 지급받은 고글형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며 신기하게 여겼다.
프라임 공격대는 독일 군대의 안내를 받아 목표 레드 몹인 헥스톨이 있는 결정체 밀집연구단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안 돼요. 우리 공격대 사람이 아닌 외부인은 레이드 현장에 접근할 수 없어요.”
“후방 백업팀 진영에서 단순 참관을 하겠다는 것뿐입니다. 정말 안 되겠습니까?”
“위험해서 안 돼요.”
독일 정부측은 레이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지웅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위험하다는 것은 사실 억지였다. 후방 백업팀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보조지원을 한다. 그곳에서 참관하는 것쯤은 크게 위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지웅은 레이드 데이터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레이드를 통해 축적되는 온갖 종류의 전투 데이터는 공격대의 보이지 않는 무형 자산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레드 몹을 쓰러뜨리는데 소모된 총 딜량 수치만 해도 여러 나라들이 군침을 흘리는 귀중한 데이터였다.
그런 소중한 데이터를 외부에 고스란히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몇 번이나 독일 인물들이 간청했으나 결국 거부되었다. 프라임 공격대가 철저한 갑이었기에 독일 정부는 수긍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레드 몹…….’
이제 곧 시작될 레이드 때문에 다들 부산한 가운데, 쿤겐은 저 멀리 날개를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헥스톨을 주시했다. 한 번도 레이드에서 떨려본 적 없는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강할까? 자신의 힘은 얼마나 통할까? 이제 그것을 확인할 때가 된 것이다.
전투 지휘를 맡은 장태준 팀장의 오더가 떨어졌다.
「탱커진, 위치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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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같은 건 안 나옵니다. 그건 심히 언밸런스. 스토리 자체가 붕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