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62
166화. 태풍을 부리는 남자 (10)
-와아아아아아!
왼쪽으로 가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에서 환호성이 밀려 들어왔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공연 시작 전부터 열심히 뛰어다닌 보람이 느껴진다.
나는 국내에선 인지도가 꽤 쌓였긴 했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아니다.
그냥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거다.
하지만 보라.
키이이이잉-!
-오오오오오오!
줄을 튕겨 나감에 따라, 관객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게 과연,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일까?
기타리스트로서,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가 있을까?
“[너무 잘생겼어 …!]”
기타가 가져다주는 순간적인 외모 버프도 아주 잘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지이잉-!
첫 번째 곡이 종반에 달했다.
흥이 넘치는 곡으로 흥을 띄웠으니, 이 텐션을 그대로 이어나가야 한다.
관객들의 시선을 한순간이라도 빼앗기면 안 된다.
나는 주저 없이 오픈 코드를 긁은 후, 기타에서 손을 놔버렸다.
그리고 기타 헤드에 달린 기계의 스위치를 켰다.
드르르륵-!
괴랄한 모터 음이 퍼포먼스의 첫 신호였다.
그리고,
파카아아아아아악-!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콜드 스파크가 뿜어져 나왔다.
“….”
이걸 위하여.
이것만을 위하여.
300만 원을 태웠다.
역시나 전혀 아깝지가 않다.
설령 이게 오늘 전부 박살이 나버린다 할지어도.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다!
회삿돈이니까!
“[저, 저게 대체 뭐야?!]”
“[파랗고 빨간 … 불꽃.]”
관객들이 신세계의 문물을 마주한 듯한 표정을 띤다.
퍼포먼스에 대한 고민.
머리 터질 듯 상상한 것에 대한 보상이 바로 저 표정들이다.
나는 무대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이어, 지미집 카메라가 머리 위에서 나를 찍기 시작했다.
협의해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모니터 스피커라는 게 관객들이 가장 신경을 안 쓰는 요소 아닌가.
그냥 기다란 상자같이 보이니까.
위에서 보면 검은 막대기 같다.
나는 그런 모니터 스피커를 …
‘건곤감리’로,
3456의 숫자에 맞춰서 배치하도록 요구했다.
“[….]”
아직까지는 얼떨떨한 표정을 띠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바닥에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깔리며 무대 뒤쪽 거대 스크린의 장면이 바뀌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어…?]”
나는 망설임 없이 스트랩을 잡았다.
평소에 즐겨 쓰는, 아주 매끈매끈한 스트랩이다.
쌍기타 돌리기와 불꽃 기타 돌리기,
그리고 얼마 전에 완성시킨 기타의 공전운동.
이젠 모든 것을 합칠 때가 됐다.
준비하기가 까다롭고, 잘못하면 모조리 박살 날 위험도 있지만,
나는 ‘멋짐’을 위하여 그런 악조건들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
촤아아아앇-!
평소보다 무거웠다.
기타 한 대에 최소 3킬로, 기계 한 대에 최소 2킬로.
도합 10킬로가 넘는 무게가 어깨에 걸려 있다.
내가 지금까지 운동을 했던 이유는, 아마 지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리라 예상을 했기 때문에, 시간을 쏟아부은 게 아닐까 싶다.
후우우우우욱-!
기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 번 선보인 적 있었던 ‘기타의 공전운동’이다.
아주 당연하게도 지금이 훨씬 어려웠다.
미치도록 어려웠다.
무거웠다.
하지만 더더욱,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다.
사방팔방으로, 불꽃이 흩뿌려진다.
붉은 불꽃과 파란 불꽃이 섞이며,
그것이 회전하며,
흡사 태극 문양을 만들어냈다.
바닥에 깔린 하얀 드라이아이스와, 무대의 가장자리에 비치된 모니터 스피커의 건곤감리.
그리고 가운데에 위치한,
태극.
이것이 바로 …
‘대한민국’이다!
“[이건 설마…]”
“[펩시?]”
시발 펩시 누구야.
“[아니, 태극기야!]”
그래 그거야!
관객들은 멍하니 무대 뒤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정말 미쳐버린 퍼포먼스군.]”
마크 메이어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손으로 감쌌다.
“[태풍의 눈은 … 바로 여기 있었어.]”
그의 옆에 있던 외국인 아재 또한 같은 표정이었다.
– 우와아아아아아아!
“[기타로 태극기를 만들었어!]”
아마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국기를 못 만들었겠지.
일본인이었다면 너무 간단해서 실망스러웠겠지.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다.
절묘한 태극기의 복잡함.
그것을 표현했을 때의 화려함.
나는 기타를 돌리며 뒤를 돌았다.
일본 요코하마.
사실상 도쿄의 앞마당 같은 지역에,
아주 거대하기 그지없는, ‘태극기’가 그려졌다.
펄- 럭-!
“간다앗!”
나는 목청껏 모국어를 내지르며 스트랫을 앞으로 멨다.
두웅-!
엔지니어가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겠지만,
인스트루멘탈이 아주 타이밍 좋게 흘러나왔다.
블루 퍼플 바.
신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나의 첫 자작곡.
겨울 숲의 노래.
순식간에 분위기를 잡아 억누르면서도 막바지에 ‘밝음’을 느낄 수 있는 곡.
내 곡을 들어봤건, 안 들어봤건.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중간중간에 톤을 바꾸려 앰프로 돌아갈 때도, 미니 폭죽을 이용하여 시선을 끌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눈을 돌리게끔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이이잉-!
겨울 숲의 노래가 끝났다.
준비한 네 개의 곡 중, 세 곡이 끝났다.
한 개 남았다.
이제 한 개를 더 하면, 이곳에서 내려가야 한다.
아쉬운 기분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나는 무대에 대충 내려둔 마이크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1만 수천 명에 달하는 관객들에게 대고 물었다.
“Who am I?”
나는, 내 이름을 퍼뜨리고 싶다.
내가 이곳에 다녀갔다는 족적을 아주 확실하게 남기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내 바람은,
– 빨기좌아아아아아악!
이루어졌다.
관객들이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열창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이름이 아니긴 한데.
뭐 어쨌든 이름은 이름이다.
“This is the last song. It’s near Tokyo, Tokyo Trip.”
바쁜 도시, 도쿄.
그리고 그런 도쿄와 한데 묶여 있는 요코하마.
사실상 같다면 같다고도 할 수 있는 도시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이 곡을 치는 것도, 연관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Jack Thammarat의 Tokyo Trip.
강렬하게 시작된 무대는, 몽환적이면서도 차갑고 슬프고 또다시 밝게.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 감미롭게.
나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이 곡은,
내 바람에 걸맞은, 아주 적절한 곡이었다.
디리링-!
리어와 미들 하프톤 자리에 셀럭터를 걸쳐 놓는다.
그리고서 ts808의 게인을 끝까지 올린 후 코러스와 딜레이를 살짝씩 건다.
원작자인 잭 타마랏과는 다른 세팅이었다.
하지만 난 이게 좋다.
이 날것의 느낌이 좋다.
생생한 소리를 내주는 게 너무나 좋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일본 사람들은 너무 ‘예쁜’ 소리를 만드는 데 관심을 쏟는 것 같다.
물론 녹음 시에 예쁜 소리를 만들면 좋긴 하다.
예쁜 소리 안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문제는 라이브할 때도 그러고 있는 게 문제다.
일본에서 만든 부띠끄 이펙터들이 그 단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펙터에서 깔끔하고 예쁜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일본산 부띠끄 이펙터는, 특히 유튜브 시대가 열리고서 나온 놈들은,
유튜브에서 듣는 소리가 난다.
라이브인데.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유튜브로 듣는 것과, 실제로 듣는 것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생동감 있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는 건데,
그런 사람들에게 유튜브용 기타 소리를 들려준다니, 진짜 말짱 도루묵이다.
“[이게 기타지.]”
“[미사키 무대도 좋았었는데 … 이게 더 좋네.]”
고개를 슬쩍 돌려 간이 대기실이 있는 곳을 확인해 본다.
아쉽게도 안태식이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곡 세 개를 마친 지금 시점에서는,
안태식이도 내가 한 말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한쪽에 극렬히 치우치지 않는 것.
새로움을 추구하되, 본질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고민 끝에 내린 답이었다.
지이잉-!
머릿속에, 마천루가 그려졌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퇴근하면서 볼 수 있는.
사실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별로 안 나는.
가을밤의 도시.
아슬아슬하게 반팔이 어울리는 날씨였다.
그리고 곧 찾아올 풍경이기도 했다.
“[허어 …]”
기타 소리에 사람들이 내뱉은 숨소리가 섞인다.
마치 시원하면서도 건조한 가을밤의 바람을 머금은 듯이.
나 또한 바람 냄새를 맡았다.
“….”
원래 가을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올 때는 오는 줄 몰랐다가, 갈 때는 가는 것이 확 느껴지지 않는가.
여름을 보내며 가을을 기대하지만, 막상 가을은 마음껏 느끼기에 너무 짧다.
이 곡은, 그런 짧은 가을밤을 아쉬워하는 곡이었다.
지이잉-!
할 일을 모두 끝낸 후, 딱 건물을 나왔을 때의 그 기분.
유난히 가벼운 발걸음과, 누렇고 붉게 물들어가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바삐 움직일 때의 기분.
생각해보면 딱히 별거 아니다.
길 가다 5천만 원 주운 듯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막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샘솟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그냥, 간신히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소소한 행복이다.
나는 가을밤 도시의 거리를 헤맸다.
매일 가던 식당에 들르는 것도 좋고,
편의점에서 요깃거리를 사 가지고 돌아가는 것도 좋다.
어둡지만, 밝다.
선선하지만, 춥지는 않다.
몸은 지쳤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공기는 무겁지 않다.
그리고, 묘하게 기대된다.
집에 가도 별게 없을 걸 알면서도, 그냥 기대된다.
치이이잉-!
나는 피킹의 강약을 조절하며, 그런 사소한 감정들을 표현했다.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쉽다.
비극적이고, 슬프고, 어둡고, 신나는 감정을 표현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는 관객들의 얼굴을 살폈다.
오늘따라 다들 얼굴 근육이 열일을 하는 것 같다.
강렬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때로는 격정적이게,
그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고 싶었다.
퍼포먼스로 ‘아 이 사람 멋있지’라고 기억되고도 싶고, 일상에 스며들어 ‘역시 이 사람 연주가 최고지’라고 기억되고도 싶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렵지만,
뭐 어때?
우선은 도전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계속해서 기타를 튕겨 나갔다.
그리고 1만 수천 명의 머릿속에,
지금 이 라이브를 보고 있는 온라인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내 이름을.
아주 강렬히 남겼다.
“Who am I?”
-빨기좌아아아아아아!
제대로 기억하고 있구만!
파카아아아아악-!
감미로운 마지막 곡이 끝나자마자, 다시금 무대에 둘린 화염방사기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아악! 눈부셔!]”
“[기습이다아아아!]”
역시 시작과 끝은 같아야 되지 않나?
불꽃 길로 등장했다면, 불꽃 길로 퇴장해야 하는 법이다.
“Who am I ?”
– 빠, 빨기좌아아아!
“Who am I ?”
– 빨기좌아아아아아악!
“[잊어버리지 마요. 잊어버리면 여기에 던져버릴 겁니다.]”
나는 화염방사기를 가리키며 관객들을 협박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런 나를 보며.
“하이….”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