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71
175화. 슬기로운 임시밴드 (3)
“잉베이… 말름스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엥?”
“잉베이가 여기서 왜 나와?”
일본에 가기 전, 나는 에이트라와 같이 생방송 라이브에서 커버 곡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이벤트의 ‘1등’ 수상자에게 주어졌던 게 바로 빨간 피크다.
그리고 그 1등 수상자는 …
“잉베이 왕팬 ….”
“잉베이 왕팬?”
잉베이와 잉베이의 곡을 나무나 사랑한 나머지 잉베이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잉베이의 팬.
하지정맥류와 미래 자손의 안정성을 담보로 잡은, 대체 어디서 파는 건지 모르겠을 매끈한 레자바지.
도저히 잊기가 힘든 강렬한 차림새였다.
“내 피크 있잖아 빨간 거.”
“레어템이잖아.”
“그거 가져간 사람이 잉베이 왕팬임.”
“아 진짜?”
“난 기억남.”
빨간 피크를 가져갔다는 것은 즉, 다른 피크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
다른 피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즉, 내 앨범을 다량 구매했다는 것.
“…”
날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앨범 구매해주고, 피크 모아주는 거 너무 고마운데.
“근데 왜… 지가 잉베이라냐.”
“그러게….”
잉베이의 모습을 흉내 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체건강이 걱정되는 바지도, 패션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진짜 사칭하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사실 진짜 잉베이인 거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응 죄송.”
나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메고 있었던 기타를 바닥에 늘어놓았다.
“기타빵이라 ….”
설하의 말을 제대로 들었긴 들었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들었기 때문에, 내용 또한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해가 제대로 안 됐다.
그 정도로 터무니없는 소식이었다.
“뭐 그런 거임? 호응 많이 받는 쪽이 승자고, 진 쪽이 기타 하나 뱉어내고.”
“그럴 듯?”
“그냥 거절하면 되지 않음?”
“아니 그게 ….”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겠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곧장 최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수재씨! 전달해 드릴 소식이 있었어요! 지금 마침 정리가 끝난 참입니다!
“기타빵이죠?”
– 네? 기타빵… 맞아요!
“그리고 ‘빨간 피크’가 사용됐죠?”
– 호, 혹시 다른 직원분께 먼저 들으셨나요?
“….”
좆됐다.
어쩐지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더라니만.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원래 ‘뭔가 잘 되는 것 같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긴장을 풀고 마니까 말이다.
나는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맞이했다.
뇌가 상황파악을 마치는 데까지는, 정말 한참이 걸렸다.
– 방금 빨간 피크 회수 완료했습니다. 회수된 빨간 피크는 수재씨한테 다시 돌려 드릴 예정입니다!
“아, 넵.”
– 수재씨 그 …
나는 묵묵히 최주임의 전달 사항을 들었다.
그리고서,
“해야죠.”
– 네! 알겠습니다!
즉답했다.
“뭘… 뭘 한다는 거임?!”
“기타빵.”
“거절은 못 하는 거야?”
“빨간피크까지 써서 배틀 걸어오는데, 피할 수는 없지.”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잉베이 왕팬.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도전을 받은 이를 피할 생각은 없다.
빨간피크를 뭐 어디서 훔친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얻은 걸 정당하게 사용하겠다는데.
괜히 내빼봤자 이미지에 타격만 입을 뿐이다!
– 수재씨, 정리한 내용 지금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확인해주세요!
“넵.”
나는 카톡을 켜서 최주임이 정리한 내용을 쭉 훑었다.
“락 페스티벌에 잉베이 왕팬 나오는 거 확정이란다.”
“…!”
“어떻게?”
“락 페스티벌이 그냥 나오고 싶으면 나올 수 있는 데임?”
나도 잘은 모른다.
근데 이 ‘기타빵’ 요청을 회사에 전달해준 장본인이 마크 메이어란 걸 생각해 보면,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는 최주임이 보낸 카톡 맨 마지막에 있는 링크를 터치했다.
“회사에 접점이 있었나 봐.”
“아….”
나를 띄워 주기 위해서,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회사에서 ‘빨간피크 수여자’ 잉베이 왕팬의 무리한 부탁을 수락한 걸 수도 있다.
자세한 속사정은 들어봐야 알겠지만, 지금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이게 저쪽에서 요구하는 배틀 곡이야.”
잉베이 왕팬은 당연히 잉베이의 곡을 선정했다.
“라이징 포스 …?”
명곡 중의 명곡이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라냐.”
“진짜 잉베이처럼 하려나 보네.”
“밴드맨 아냐?”
잉베이는 잉베이만의 팀이 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인 밴드라기보다는, 잉베이를 위한 보조자들의 모임에 가까운 형태지만 말이다.
매츠 라빈이 팀에 참여했을 적이 최전성기라 불릴만한데, 그의 샤우팅이랑 그로울링을 듣고 있으면 아주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잉베이는 자신의 연주에 보컬을 첨가하는 것이지, ‘보컬’을 중심에 두고 연주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솔로 기타리스트였다.
“너 이거 생방할 때 치지 않았음?”
“쳤지.”
잉베이 왕팬이 이 곡을 선택했다는 것은, ‘팀’으로서 나한테 승부를 건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아니 근데 잠깐만!”
혁오가 목소리를 높였다.
“보컬은 …?”
그리고, 아주 당연한 의문을 내뱉었다.
“그러게….”
큰 문제가 생겼다.
도전을 받았고, 수락도 했는데,
보컬이 없다.
“홀리 쉣….”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남자 중에는 없다.
도현이가 나랑 혁오보다는 낫긴 한데, 어차피 일반인 수준이다.
여자애들 또한 음색은 둘째치고 발성이 제대로 안 될 거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아예 타고나거나, 연습을 무지막지하게 하던가 해야 하는데.
우리는 전부 해당되지 않았다.
“라이징 포스….”
“민서 라이징 포스 들어 봤어?”
“아니….”
윤수빈이 멍하니 중얼거리던 하민서에게 물었다.
“락이나 메탈은 잘 안 들어 ….”
“그렇구나.”
락이랑은 연이 없는 애니까.
라이징 포스를 못 들어봤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어?”
“왜?”
“보컬.”
“…!”
그게 그렇게 상관이 있을까?
라이징 포스를 안 들어봤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보컬이 여기 있네?”
하민서.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나랑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실력은 좋은 녀석이다.
요즘에는 예전처럼 막 아무렇게나 적대감을 흩뿌리지도 않고.
뭔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번에 후식으로 나온 젤리까지 주더라.
개과천선한 건지 확신은 못 하겠다.
그래도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럼 이제부터 들으면 되지 않나?”
해결 방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판을 키울 방법도 떠올랐다.
결려온 도전은 피하지 않는다.
득이 될만한 건 무조건 한다.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사용한다!
“솔직히 앰프 100대 쓰나 120대 쓰나 거기서 거기인 거 같은데.”
“그건 맞지.”
“그렇지.”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나는 하민서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만나자마자 웬수 대접받았던 애한테 집요하게 부탁할 생각은 없다.
윤수빈 꼬실 때처럼 골드러시는 하지 않을 거다.
거절하면 그걸로 끝이다.
“같이 할래?”
“….”
“한다고 하면 내 지시에 따라줘야 돼. 이상한 거라도.”
“이상한 … 거라도?”
하민서는 푸욱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을 오물거리며 …
“난 ….”
대답을 내놓았다.
***
“곡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코드 구성을 잘 활용하려면 ….”
서울예대의 강의실.
디자인한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어지는 거지 같은 책상+의자에 몸을 낑겨 넣은 학생들은, 멍하니 맨 앞에 있던 중년남성을 주목했다.
신경질적인 왕눈이 같은 인상.
다부진 체격.
기타 전공 박덕철 교수였다.
“이 곡이 말이야, 복잡한 구조를 머리 좋게 잘 풀어낸 훌륭한 예야. 김수재 기타리스트가 퍼포먼스만으로 뜨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빔 프로젝터 화면에는, 기타를 부여잡고 한껏 소울을 발산하는 소년이 비치고 있었다.
‘실용 화성학 개론’ 과목을 듣는 1학년들보다도 세 살이나 어린 뮤지션.
사실 서울예대생으로서는 조금 자존심 상하는 수업내용일 수도 있었다.
이곳은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실음쟁이들이 모인 곳이며, 수많은 유명 뮤지션들을 배출해낸 곳이니까 말이다.
“빨기좌 ….”
“역시 빨기좌.”
물론 빨기좌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개강 첫날 수업’이라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초 집중 상태였다.
원래 일류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17살인데 실력 좋고 유명하네? 꼴받네? 가 아니라,
17살이 보여주는 저력에 감동하고, 영감을 받고, 분석한다.
질투심을 가질 바에, 곡 하나를 더 듣는 게 낫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의 태도를 보며 박덕철 교수는 …
“좋아. 여기서 질문타임. 기타 잘 몰라도 그냥 질문 팍팍 해.”
소소한 일상의 만족감을 느꼈다.
“교수님!”
맨 뒤에 앉은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어. 그래.”
“빨기좌는 지금까지 자작곡을 딱 두 개만 발매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강의의 예로 선정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흠 ….”
박덕철 교수는 턱을 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저 질문이 질투심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좋은 질문이야. 근데 정확히 말하자면 빨기좌가 발표한 곡이 딱 2개는 아니야.”
“아 그런가요?”
“앨범에 포함된 즉석 잼까지 합치면 숫자가 그리 적지는 않아.”
“아하.”
반복되는 코드 진행 위에 기타 멜로디를 올려놓은 앨범판 잼.
구성이 알찼다.
본인 딴에는 잼 1이라며 대충 숫자 맞추기 용으로 넣어놓은 것일 터임에도,
솔직히 이름을 붙이고 조금 더 다듬어서 정식 수록곡으로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커뮤니티 같은 데서도 ‘좋은데 제목이 없어서 아쉽다’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잼뿐만 아니라, 김수재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커버곡을 들어보면 알아. 쓸데없이 억지로 욱여넣는 노트가 하나도 없어.”
“아….”
질문을 했던 여학생은 당황한 기색을 얼굴에 띠었다.
“보통 알차게 보이기 위해서, 있어 보이기 위해서 그런 짓을 많이들 하는데 … 아, 지금 니들 말하고 있는 거 맞고.”
“…!”
박덕철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학생들을 깠다.
원래 인정해주면서 까기도 해야 한다.
2학기가 됐으니 다들 적응했을 것이다.
1학년 1학기에는 매년 반발이 좀 있지만, 박덕철은 학생들과의 입씨름을 즐기는 편이었다.
“여튼, 화성학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니 저런 짓도 할 수 있는 거지. 너희도 조심해. 그 … 뭐냐. 너희가 듣는 거랑 대중이 듣는 거랑은 달라.”
“….”
“가장 좋은 건 자기도 즐겁고 대중이 듣기에도 즐거운 거지. 그 예로 빨기좌를 든 거고. 알겠지?”
“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이번에 인천 펜타포트 가보고. 이튿날 나온다네.”
“오 …!”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 실음을 하는 이상, ‘빨기좌’라는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인지한 순간, 아주 미약하게나마라도 홀릴 수밖에 없게 된다.
‘참 … 여기 오면 얼마나 사랑을 받을지.’
대학 타이틀을 따 놓는 게 멀리 보면 좋은 선택일 터.
아마 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은데.
박덕철은 벌써부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됐다.
“오!”
“우와!”
“와…!”
감상에 잠겨 있자, 점점 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허어어억!”
“헤엑!”
“오 ….”
아니 뭔.
뭔 락페 나온다는 소식 듣고 저렇게 놀라?
그 정도로 빨기좌 추종자들이 많은 건가?
“… 뭐 보니 너희?”
“아 … 교수님.”
“왜?”
강의 중인데.
다들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뭐길래.
대체 뭘 보고 있길래?
“빨리 보세요.”
“빨리 보라고?”
맨 앞에 앉아있던 조용한 남학생이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박덕철은 핸드폰을 집어넣으란 말 대신, 학생의 손짓에 순순히 이끌렸다.
그리고,
“이, 이게 대체!”
같이 목청를 내질러 버렸다.
“잘 친다….”
“잘 치는데 ….”
“너무 이상해…!”
핸드폰 화면에 비치는 요상하기 그지없는 광경.
핏빛 하늘 아래 어디 건물인지 모를 옥상에서,
검은 후드 망토를 두른 여섯 명을 배경 삼은 채로,
이상한 모양의 어쿠스틱 기타를 후리는…
이상한 광경.
그리고…
“바, 바지가!”
“저런 바지는 대체 어디서 사는 거야?!”
“몰라….”
여러 의미로 터질 것 같은 검은색 레자바지.
너무나, 충격적인 동영상이었다.
그리고 이 동영상은 ….
‘A-tra’의 채널에 업로드 되어 있었다.
“교수님.”
“왜.”
“요즘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 이런 바지가 유행하나요?”
“…!”
그, 그건 …
잘 모르겠는데.
박덕철 교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아주 곰곰이 생각한 끝에 가장 가능성 높은 대답을 내놓았다.
“맞아!”
“그렇구나!”
“이런 바지가 유행하는 거구나 ….”
그럴 거야.
빨기좌가 입은 거니까.
맞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