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54
54. 공주는 백허그 미용으로 달래 준다
처음 폴라라스에서 함께 출발한 병사들은 아스카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
물론 출발하기 전, 철저히 교육하긴 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 아스카의 정체가 소문난 적은 없었다.
그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일단 지금까지 들렸던 곳이 마을 하나와 도시 하나뿐이다.
즉, 실수로 얘기해도 퍼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혹여나 술김에 말을 해도 헛소리로 치부했을 것이다.
용병들이랑 같은 옷을 입고, 10쿠퍼를 받으며 심부름하고, 용병대장을 오빠라고 부르는 소녀가 공주라고?
거기에 최근 훌륭한 대역까지도 얻었다.
그 누구도 아스카가 공주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런 방법들로 아스카의 안전은 탈주 사건 이후론 문제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쌓인 게 터진 것일 수도 있겠어.’
문제는 그러는 동안 아스카가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점점 스트레스가 되었겠지.
‘최소한 그릇이 제인이나 이노 수준만 됐어도 저렇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을 텐데.’
그날 이후로 아스카는 말이 없어졌다.
늘 베레모와 후드를 눌러썼고, 나를 향해 먼저 말도 걸지 않았다.
덕분에 브리기트는 불편해 죽으려 했다.
카인이야 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조용해졌다며 좋아하는 모양새다.
‘저러다가 또 사고 칠지 모르겠다.’
아스카의 목숨과 내 머리카락은 공동 운명체다.
저 꼴을 보자니 조만간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너무 불안했다.
“에휴~ 하다 하다 별짓을 다해 보네.”
샹타페를 떠나기 하루 전.
결국, 나는 도시에서 가위랑 빗, 가운을 샀다.
그리고 여자들이 있는 천막 앞에 도착했다.
“공주님, 용병대장 로니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나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
“……들어가겠습니다.”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아스카만 혼자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카인과 브리기트는 잠시 밖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두 사람은 금방 친해진 모양이다.
“공주님.”
나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스카에게 말을 건넸다.
내 말에 아스카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만 지키는 거야?”
한숨을 쉬고는 아스카에게 가까이 갔다.
훌쩍, 훌쩍,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아스카의 두 눈과 코가 퉁퉁 부어 있다.
그녀의 후드를 벗기고 베레모를 벗기려는데, 아스카가 내 손길을 피한다.
“계속 그 머리로 살 거 아니면 가만히 있어.”
그렇게 말한 뒤, 아공간 가방에서 거울을 꺼냈다. 거울을 천막 안에 있는 탁상에 고정해 뒀다.
그리고 아스카를 강제로 안아 그 앞에 앉혔다.
아스카가 몇 차례 반항했지만, 그래 봤자다.
나는 아스카의 뒤에 앉았다. 그리고 반항하지 못하게 반쯤 끌어안았다.
이어서 후드와 베레모를 벗기고 가운을 씌웠다.
베레모가 벗겨지자, 거울에 아스카의 엉망이 된 머리가 보였다.
거울을 본 아스카가 다시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 아스카를 두고 나는 가위와 빗을 들었다.
‘지구에서의 내 기억과 현생에서의 내 몸을 믿자.’
이발 같은 걸 해 봤냐고? 전혀.
그래도 각종 미디어에서 본 여자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은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어울릴 법한 단발을 구현할 예정이다.
싹뚝, 싹뚝.
아스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위질이 시작되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더 잘릴 때마다, 훌쩍이는 게 더 심해졌다.
“공주님.”
아스카의 머리를 자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일 거야.”
신기한 게, 이놈의 몸은 손재주도 좋은 거 같다.
머리 자르는 자세도 지금 굉장히 불편한 상태다.
그런데 전혀 어색함 없이, 내가 생각한 형상대로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었다.
“거친 옷을 입고, 회초리도 맞고, 죽을 고비도 넘기고, 땀 흘려 걷고, 돈의 소중함도 느끼고.”
젊어선 고생도 사서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는 절대적인 개소리라 여긴다.
아프니까 청춘, 같은 소리는 역겹고 혐오스럽다.
아스카만 봐도 그 고생을 시켰지만 성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한 번도 안 시켰을 때보단 낫다.
지금 당장은 나랑 카인이 있으니 얌전하지, 나중에 둘이 떠나고 없으면?
‘그땐 돌팔매질과 단두대지, 뭐.’
그리고 내 머리카락도 빠이빠이고.
‘그렇다고 평생 얘 옆에서 감시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그래서 아스카의 인성을 최대한 갱생시켜 보려 했다. 물론 그 결과가 이거지만.
“힘들었고 자존심도 상했겠지. 내가 왜 이런 모욕과 고생을 해야 하는지 억울할 테고.”
싹뚝, 싹뚝.
그 와중에도 가위질은 계속됐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이해하고는 있잖아? 이게 최선이라는 거.”
여전히 눈은 질끈 감고 있지만, 아스카의 훌쩍임이 멎었다.
“아스카.”
호칭 대신 이름을 불렀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아스카가 흠칫한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이렇게 해서라도 너를 왕위에 앉힐 거야.”
내 머리카락을 위해!
미래의 단두대가 염려된다고?
‘정 안 되면 허수아비 여왕으로 세우고 이노에게 식민지로 주든가 하자.’
방법은 어떻게든 생기기 마련이다. 늘 그랬듯이.
어느덧 아스카의 머리는 마무리 단계에 들었다.
“다 됐다. 예쁘네.”
나는 가위를 내렸다.
동시에 질끈 감겨 있던 아스카의 눈이 떠졌다.
거울에 비친 아스카의 머리는 아까처럼 추하게 엉망이지 않았다.
단발머리는 보통 평민 여자들이 주로 한다.
하지만 지금 아스카가 한 단발은 뭔가 달랐다.
굉장히 세련되고 지적으로 보였다.
오히려 전에 했던 긴 머리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예쁘다.’
이 오빠는 도대체 못 하는 게 뭘까?
서러움이 한순간에 녹아내린다.
뒤이어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부끄러워졌다.
“고마워…… 오빠, 그리고 모두에게도…….”
아스카의 말에 로니아드는 피식 웃었다.
금방 토라지고 금방 풀어지는 게 어린아이 같다.
과연 저 마음가짐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카디나와 브리기트는 살짝 열려있는 천막 문을 통해 이 모든 광경을 훔쳐보았다.
브리기트는 카디나의 호위를 받으며 잠시 화장실에 갔다 왔다.
그사이에 로니아드가 천막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로니아드가 아스카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었다.
‘저게 진정한 남매의 모습인가?’
카디나에게도 폰테임에 이복 오빠들이 있다. 물론 남보다 못한 관계다.
그러다 보니, 저 두 사람의 모습이 굉장히 신기하게 다가왔다.
‘뭐라 얘기는 하는 거 같은데, 워낙 작게 말해서 들리지 않아.’
남매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도 궁금했는데, 못 들어서 아쉬웠다.
‘부럽다…….’
반면 브리기트는 아스카가 너무나 부러웠다.
얼마나 부러웠냐면, 자신도 뺨을 맞고 머리카락이 잘리고 싶을 정도다.
‘동생이니까 저렇게 해 주는 거겠지…….’
멀리서 얼핏 본 아스카의 머리는 자신이 봐도 정말 예뻤다.
이세계에서 여성의 머리는 짧을수록 신분이 낮음을 뜻했다.
머리가 길면 일하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아스카의 머리는 전혀 천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교계에 새로운 유행을 선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니아드에게 안겨 함께 대화를 나누는 아스카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 * *
아스카의 머리카락을 해결한 다음 날.
드디어 수도로 갈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그동안 샹타페에서 모든 휴식과 정비를 마쳤다.
충원된 인원이 레인저 용병대에 적응했을 무렵이었다.
“그럼, 수도로 간다!”
몬스터 전리품으로 참전한 용병 모두의 주머니가 두둑했다.
괜히 의심받지 않겠다고 의뢰받는 척할 필요도 없다.
이젠 수도까지 막힘 없이 스트레이트로 가면 됐다.
‘아스카를 여왕 자리에 앉히고 로지스트 찾을 때까지만 이 칭호를 이용하자.’
제르다의 화신이자, 테오스의 재림이며, 번개검 용병왕인 로니.
듣기만 해도 체할 것 같은 칭호지만 편하긴 했다.
샹타페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함께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들은 샹타페의 치안과 전후 복구를 맡아야 한다.
대신, 아고르를 중심으로 한 교단의 팔라딘과 사제들이 함께하기로 했다.
몬스터 웨이브도 끝나서 몬스터의 습격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젠 반란군만 조심하면 된다.’
마치 순풍을 만난 배처럼,
로니아드와 그의 일행은 수도로 향했다.
* * *
보급도 충만했기에 최소한의 야영만 하면서 이동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왔다.
로니아드와 그의 무리는 수도 인근의 소도시 펜템에 들렀다.
“여기가 이 여정의 마지막 경유지군요.”
필립이 감회가 새롭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도록.”
여기까지 오면서 어떤 습격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뭔가 터지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이 도시, 사람이 살긴 하는 거야?”
펜템이라는 소도시는 마을 규모에서 좀 더 벗어난 규모의 소도시다.
어찌 되었든 물자가 모이는 도시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재보급을 하려 했다.
그런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몬스터 웨이브라도 일어났나?”
“그러기엔 도시가 너무 멀쩡한데?”
레인저 용병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도시를 서성였다.
“팔라딘 아고르, 혹시 교단으로부터 이 펜템이라는 도시에 대해 전해 들은 내용이 있는지요?”
로니아드는 교단에 물었다.
교단의 정보력은 대륙 북부에서 제일이다.
“그게…… 저희가 여기까지 오면서 도시나 마을을 들리지 않았다 보니…….”
팔라딘 아고르가 송구스럽다는 듯 답했다.
그러다가 아고르가 막 기억이 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앗! 그러고 보니 샹타페에서 출발하기 전날에, 수도 인근 도시에서 악마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악마요?”
“예, 물론 신성 시대 초기 이후로 지금까지 악마는 실제로 등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의 소문도 과장된 헛소문으로 치부했었죠.”
“그렇군요. 하지만 이 도시의 꼴을 보면 뭔가 찜찜합니다.”
이대로라면 도시에 머물기도 찜찜하다.
귀신 나온다는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가만, 제르다의 화신이라는 칭호 때문에 이거 무시하고 가면 교단에서 지랄하려나?’
괜히 교단이 신경 쓰이는 로니아드였다.
“과연 심상치 않습니다. 제르다의 화신이시여! 서둘러 이 도시에 이적을 이룩하소서!”
“…….”
아니나 다를까, 팔라딘과 사제들이 로니아드를 향해 무릎을 꿇는다.
‘카인 저 작자는 왜 같이 무릎을 꿇는데? 독실한 제르다 신도야?’
무릎 꿇은 사람 중에는 카디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도까지는 이제 3일 거리니,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아한-제르다.”
그 말에 교단은 성호를 그었다.
“우와아!!”
“그럼 우리 용병대도 깃발에 악마 사냥꾼 문양을 넣는 거야?!”
레인저 용병대원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자업자득이지, 자업자득.’
결국 로니아드는 졸지에 악마 사냥 의뢰를 받게 되었다.
의뢰를 받고서 다 같이 도시를 수색하는데, 한 용병이 어디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도시 외곽에 이 도시의 시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도시 전체의 인구가 그쪽으로 모인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악마가 나타난 것이오?”
제일 먼저 팔라딘 아고르가 말을 타고 달려가 물었다.
“오! 교단의 팔라딘이군요. 아한-제르다.”
“아한-제르다. 무슨 일이지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아고르는 가장 가까이 있던, 제일 입이 가벼워 보이는 시민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민은 관상에 따라 바로 입을 열었다.
“악마!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정말로 악마요?! 뭐,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만. 그래서 그 악마는 어디에 있소?”
“지금 도시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 걱정 마시오! 여기 제르다의 화신께서 오셨소. 그분께서 악을 멸할 것이오.”
아고르가 자신만만하게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덕분에 너무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후드를 쓰고 싶었다.
그런 아고르의 말에 시민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제르다의 화신? 저자도 제르다의 화신이란 말입니까?”
“저자라니! 방금 그거 신성 모…….”
시민의 말에 아고르가 한소리 하려던 찰나.
“샹타페에서 제르다의 화신을 사칭한 자들이 바로 그대들이었군.”
한 무리의 군대가 아고르와 로니아드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교단의 팔라딘과 사제 그리고 반란군으로 구성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