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02
102
먹구름 속에 숨어있던 인영이 지면에 유유히 내려앉는다. 낙뢰가 떨어진 지점을 살피던 마법사는 코를 움켜쥐었다.
‘지독하도다.’
특유의 역한 단백질 탄 내가 진동했다. 사령술사의 육신은 그가 일으킨 살점의 벽과 더불어 통째로 용해되었다.
경계했던 것치곤 다소 맥 빠지는 최후.
그럼에도 루데신트는 섣불리 손대지 않고 마력을 뿌려 반응을 확인했다.
눌어붙은 찌꺼기들은 고기 죽처럼 엉겨 붙은 채 끓어오를 뿐, 별다른 전조는 없었다.
‘···경계했던 것치곤 다소 맥 빠지는 최후이나.’
어떠한 인간이라도 저기서 살아남을 순 없을 것이다. 여태껏 루데신트가 지워버린 자들과 마찬가지로.
【우워어――!!】
육중한 거체가 고함을 쳤다. 살점 거인은 단숨에 마법사를 짓이길 기세로 달려들었다.
빛이 반짝이고, 루데신트의 신형이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나타난다.
콰앙!!
비록 주먹은 허공을 강타했으나, 일대의 땅이 울렸다. 살점 거인을 응시한 루데신트는 미간을 좁혔다.
“저주받은 피조물···.”
휙 고개를 돌린 살점 거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안면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 으깬다!!】
저만한 크기의 거구가 쏟아내는 흉흉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루데신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창을 치켜든 채 읊조렸다.
“꿰뚫으리라.”
마법사의 머리털이 곤두서고, 하늘에서 쏟아진 벼락 줄기가 창끝에 모여들었다가, 응집되어 직선상의 거인을 향해 나아간다.
일련의 과정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쩌정!!
광선이 몸통을 강타했다. 피격당한 거인이 휘청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어 주먹을 내지른다.
“제법 튼튼하구나.”
잽싸게 빠져나간 루데신트가 재차 창을 휘둘렀다. 전격이 후려친 등판의 살점이 떨어진다.
【따가워!! 뜨겁고, 짜증 난다!】
마법사는 침착하게 거인의 반응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리 지능적이진 않군.”
오로지 몸집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녀석이다. 분명 위협적이지만, 움직임이 둔하다.
마력을 가늠한 루데신트는 최소한의 간격으로 점멸을 사용해 거리를 벌리며 거인을 몰아붙였다.
자꾸만 코앞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마법사의 모습에 거인이 격분했다.
【으아아!! 이 날파리 놈!!】
쩌정!!
담담히 창을 세운 루데신트는 씩씩거리는 거인을 향해 말했다.
“혐오스러운 생김새만큼이나 맷집이 상당하도다.”
표정을 찡그린 살점 거인이 주먹을 쥐었다.
【뭐! 나보고 못생겼다고!】
“네 생김새를 돌아보거라. 흉물이여. 너는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그릇된 존재다.”
있으면 안 되는 몸이라고? 거인은 이를 박박 갈았다. 다시금 벼락이 가슴팍을 두들긴다. 또 살덩어리가 뭉텅이로 떨어졌다.
전격 마법사는 망자와 상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망자는 열기에 취약한데, 살점 거인은 몸집마저 비대한 탓에 자체적인 체열도 상당했다.
이는 급속도로 부패를 촉발하고, 마력으로 유지하는 망자의 육신을 분해한다. 살점 거인은 시시각각 자신의 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인지했다.
살점 거인이 신음했다.
【우워어.】
여태껏 자신이 했던 것처럼 몸집으로 밀어붙여 깔아뭉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문득 거인은 자신의 주인에 대해 떠올렸다.
주인은 몸집도 작고, 힘도 약하지만, 똑똑했다. 그가 보기에 몸부터 치고 나가는 자신과 달리, 주인은 항상 생각하고 움직였다.
【이대로 무작정 몸을 들이받아 봤자 못 이긴다.】
그는 탄생한 이후, 처음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저 반짝대는 놈을 잡을 수 있을까.
발치에서 솟구친 뇌광이 거인을 휘감는다.
살점과 혈관을 태우는 벼락에 거인이 무릎을 꿇었다.
창을 다잡은 루데신트는 혀를 찼다.
‘황색 마탑에서 만드는 인형 못지않게 질기군. 기껏해야 피육으로 조악하게 빚은 형상이라 금방 나가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사령술사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죽어서, 내심 그의 하수인을 낮잡아보고 마력을 아끼려 했다. 그런데 거인의 내구성은 루데신트의 예상을 벗어났다.
주문을 몇 발이나 맞고도 거인은 꿋꿋하게 몸을 일으켰다.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창을 높이 치켜든 루데신트가 고했다.
“주인 잃은 허수아비여. 그대는 본디 예정된 모습으로 돌아가라. 한 줌의 재로···”
후웅―
돌연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루데신트는 황급히 낭송을 끊고 손을 휘둘렀다.
콰앙!!
그의 신형이 멀찍이서 나타났는데, 루데신트가 서 있던 자리에 뭉개진 살점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법사의 구겨진 얼굴을 보곤 살점 거인은 자신의 머리를 두들겼다.
【난 대작이다! 대작은 못생겼을지 몰라도···】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살점을 주워들곤, 손아귀에 힘을 주어 경단으로 뭉친다. 그 크기만 해도 사람의 몸집만 했다.
【멍청하진 않아! 주인은 나더러 위대하다고 했다! 고로 나도 주인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움직임은 둔할지 몰라도, 체격에서 비롯된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토드가 ‘재현’의 은혜를 고르면서 섬세해진 망자의 동작이 빛을 발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간 살 뭉치가 마법사가 있던 자리를 연이어 덮쳤다.
펑, 펑!!
【깔려 죽어라!!】
어리숙한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모방한다.
마찬가지로 피조물 역시 고스란히 제 주인의 행동을 따라 했다.
그가 짜낸 꾀는 대단하진 않았으나,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던 상황을 반전시켰다.
거인은 쉴 새 없이 살점을 뭉쳐 던져댔다. 바닥에 녹은 살점이 떨어지자, 급기야 그는 자신의 몸을 떼어내 투척했다.
거인의 반격이 루데신트도 당혹스러웠는지, 비교적 먼 거리로 그의 신형이 이동했다.
‘어차피 제 살을 떼어낸다면 알아서 붕괴하겠지.’
도중에 낭송이 끊긴 여파를 수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살점 거인의 행동이 마지막 발악에 그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들판에 널려있던 망자들이 살점 거인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목도한 루데신트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아가 뚜렷한 개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주인을 잃은 하수인들이 움직이는 거지?’
분명 사령술사는 잔해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분해되었다. 보통 주인을 잃은 사역마들이 붕괴하거나 마구잡이로 날뛰는 것과 달리, 망자들은 마치 모종의 의식이 개입한 것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살점 거인은 기꺼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서 반은 먹고, 반은 던진다!! 역시 대작은 똑똑하다! 위대한 발상!!】
얼핏 거인이 마구잡이로 살점을 빚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가 손아귀에서 뭉친 쪼가리들은 생각 외로 정교했다. 피막으로 구체처럼 엮어 만든 살점 공이 루데신트 앞에 떨어지고, 찢어진 구체에서 일부 망자들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마법사를 향해 접근했다.
“이··· 저능한 개체가!”
루데신트는 창을 휘두르는 와중에 망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르릉―!!
그의 손끝에서 갈라져 나온 벼락 줄기가 사슬처럼 망자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점점 이 불가해한 상황에 루데신트는 초조해졌다.
‘죽은 자들의 의식이 군체처럼 연결되어 기능하는 건가? 저 개체가 매개인가?’
사령술사를 묶어두기 위해 중앙에 던진 병력은 수가 많진 않아도, 적당해야 했다. 놈이 죽기 전에 미리 세워둔 망자가 상당했던 탓에, 살점 거인은 끊임없이 시체를 섭식하며 상처를 수복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놈의 회복력을 내 마력이 감당하지 못한다.’
제 주인과 마찬가지로 한 번에 끝장을 내야 한다. 한 번 더 점멸을 시전한 루데신트는 재차 뒤로 물러섰다.
살점 공이 닿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자, 거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 녀석들! 다 이리로 와라!】
한꺼번에 몰려든 망자를 움켜쥔 살점 거인은 얼마 남지 않은 창자까지 칭칭 감아 힘껏 내던졌다.
콰직!!
부서진 살점 공에서 대부분의 망자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짓이겨졌으나, 살아남은 개체들이 루데신트를 향해 다가섰다.
그러나 마법사는 미리 역장을 세워뒀다.
찌직!! 찌직!
전기 파리채로 때려잡는 것 마냥 경계를 넘는 족족 망자들은 전류에 휘감겼다. 감전된 망자들은 숯검정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다.
덕분에 방해받지 않은 루데신트는 낭송을 마무리 지었다.
“······폭풍이 인다. 진노가 이곳에 도래한다.”
새카맣게 몰려든 먹구름이 사방에 그늘을 드리웠다. 하늘에서 연신 큰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빛이 번쩍였다.
그걸 시작으로 낙뢰가 쉴 새 없이 망자로 가득한 들판을 휩쓸었다.
쩌정!! 쾅!! 쾅!! 쩡!
내리꽂힌 번개가 망자의 육신을 녹이고, 번져나간 전류는 주변에 널린 죽은 자들을 할퀴고 지나간다. 단숨에 전신의 혈액이 증발할 정도의 고열에 망자들은 세차게 떨다가 쓰러졌다.
낙뢰로 옮겨붙은 불길이 사방에 번지고, 허우적대던 망자들은 전소한다.
루데신트는 점멸을 사용하지 않고, 창을 짚으며 나아갔다. 그는 자신이 자아낸 파괴의 현장에서 새카맣게 그을린 덩어리를 찾아냈다.
“거기서 살아남았다고.”
형상조차 알아보기 힘든, 짓뭉개진 잔해 속에서 눈동자만큼은 루데신트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끈질긴 생명력에 혐오를 넘어, 경이로움조차 느낄 지경이었다. 그런 루데신트를 향해 거인이 중얼거렸다.
【난, 대작이니까. 나더러 위대하다고 했다.】
거인에겐 망자들과 구분되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거인의 존재는 우연에 의해 탄생했어도, 토드는 피조물의 습성을 이해하고 각별히 다뤘다. 망자들에 대한 존중과 마찬가지로.
“네 위대하신 주인은 이미 죽었다. 흉물.”
빈정대는 루데신트를 향해 거인이 웃었다.
【오, 정말?】
미간을 좁힌 마법사를 향해 거인이 희미하게 속삭였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난 위대하다···.】
루데신트가 창을 들어 올린 순간, 새카만 쐐기가 그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츠각-!
베여나간 귓불을 부여잡은 루데신트는 황급히 옆으로 도약했다. 그는 들판에 홀연히 서 있는 자를 보곤 이를 갈았다.
“역시 다른 몸이 있었나···!”
망토를 걸친 이는 명백히 시체였다.
그를 비롯해 여타 흑마법사들도 목이 너덜거리거나, 온전치 않은 외형이었는데, 하나 같이 눈자위에 초록색 안광이 일렁였다.
과연 시체를 다루는 놈답게, 여분의 육신이 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루데신트는 재빨리 창을 휘둘러 벼락을 뿜어냈다.
쩌정!
직격당한 흑마법사의 몸이 녹아내린다. 다른 자들이 손을 뻗어 전격 마법사를 향해 일제히 주문을 쏟아냈다.
팟, 섬광이 번쩍이며 루데신트의 몸이 검붉은 창을 한 발치씩 비틀어 피했다. 쐐기는 방벽을 덧대어 막는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시체들이 입을 열어 조소했다.
【전격은 많은 마력을 필요로 하지.】
【네 마력이 떨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곧, 너도 우리처럼.】
그러자 창을 휘어잡은 루데신트는 거리를 바짝 좁혀 흑마법사의 앞에서 나타났다.
쩌억!!
창으로 머리통을 쪼갠 마법사는 번개처럼 사방을 누비며 망자들을 파괴했다.
가뜩이나 흑마법사들의 육체 기량은 저열했고, 망자로 영락한 이상 거리를 허용하면 속수무책이었다.
어느덧 주변에 있던 흑마법사들의 육신은 모조리 쓰러트렸고, 한 놈만 남았다.
숨을 헐떡인 루데신트가 그를 향해 창을 겨눴다.
“이게 마지막 남은 육신인가?”
마법사를 응시하던 망자가 입을 열었다.
【대단한데. 일신의 무력까지 갖췄다니. 어째 마법사가 쥐는 지팡이치곤 독특하다 했어.】
거리낌 없이 점멸로 파고든 루데신트는 흑마법사의 몸에 창을 찔러넣었다.
퍼걱.
창에 꿰인 채로 망자는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아아, 그래도 샤이퍼는 나름 쓸만한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소모될 줄이야.】
망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루데신트가 말했다.
“악독한 놈.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네 주문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제 끝이다.”
창자루를 비틀자, 흑마법사의 육신이 들썩인다. 입에서 썩은 피가 줄줄 흘러내림에도, 망자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도 괜찮아. 너 정도면 손익분기점은 넘었거든.】
“무슨 소릴···.”
창을 빼내려던 루데신트는 오한을 느꼈다.
딸랑――.
방울 소리.
마법사는 눈을 부릅 떴다. 황급히 창을 빼내려는데, 망자가 자신의 배에 꽂힌 창을 부여잡곤 놓아주질 않았다.
“이런, 제기랄!”
일찍이 자신이 벼락을 떨군 피 웅덩이가 기포를 일으키며 격렬하게 요동친다.
잿가루로부터 뼈마디가 일어나고, 흩어진 살점과 내장이 엉겨 붙는다.
루데신트는 악을 쓰며 어떻게든 망자는 떼어냈으나, 마력을 탕진한 여파로 인한 반동이 강렬했다. 휘청이는 그의 눈앞에 피막 속에서 인간의 형상이 걸어 나왔다.
핏물과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 앞에 루데신트는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곤 살점 거인이 의기양양한 소리로 외쳤다.
【역시 위대한 대작을 만들어낸 주인답다! 내 주인은 더 위대하다! 안 죽었을 거라 믿고 있었다구!! 우하하!!】
괜히 목청만 큰 거인의 조소가 루데신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는 눈앞의 존재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글쎄요.”
“천공의 벼락은 분명 적중했는데. 네, 네가 죽은 걸 분명히 확인했고.”
토드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피했습니다.”
사실 못 피했다.
그래도 영혼 목걸이를 여기서 소모한 게 괘씸해서, 열 받게 하고 싶었다.
효과는 확실했는지, 루데신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그래. 저 표정이지.
토드는 만족했다.
이제 충분히 만끽했으니 사망 당시에 받은 충격과 영혼 목걸이 스택을 소모한 괘씸죄, 정신적 위자료까지 청구하여 톡톡히 받아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