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7)
#17. 하찬의 검사
재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튜디오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보기 드문 미모의 소유자를 보고 흥분해 떠들던 참관인들의 입이 한순간에 닫혔다.
“충분히 확인한 것 같은데, 아닙니까?”
재현은 이 자리를 만든 주인공 김대주 실장을 보면서 물었다. 말투가 곱게 나가지 않았다. 계약도 하기 전부터 의사를 묻지 않고 진행하는 데 계약한 뒤에는 어떨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하하. 화면에 너무 잘 나와서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몰랐네요.”
“네. 그럼 이만 자리를 옮기시죠.”
“그러실까요?”
“네.”
분위기를 감지한 재인이 화이트 스크린 앞에서 재빠르게 벗어났다. 이어서 사람들을 향한 동생의 시선을 가리고 섰다. 결과를 들어야 했지만, 그 전에 뭐에 뿔이 났는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흉포한 동생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게 급했다.
“재현아.”
“가자, 형.”
재현은 자리를 옮기자고 먼저 말했으면서 바로 움직이지 않고 스튜디오 한 곳만 노려봤다. 젊은 여성 몇 명이 포함된 그룹이었다.
재인은 그런 동생의 팔을 가볍게 두드려 가자고 재촉했다. 먼저 움직여 시야를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오라버님 어서 타세요.”
“먀아아앙!”
골이 난 아이처럼 뾰로통한 얼굴의 재현과 주차장으로 내려온 재인을 반긴 건 김나은과 하찬이었다. 재인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동안 하찬을 맡아 주겠다고 따라온 그녀는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라버님이 세레나데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신다니.”
“그게 출연 계약은 아직…….”
“네? 왜요?”
“하루만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왔어요.”
카메라 테스트가 끝나고 옮긴 회의실에서 출연 계약서에 사인할 생각이었지만, 그냥 확인만 하고 돌아와야 했다.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있는 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티를 낸 재현 때문이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기 전에 재빠르게 출연 계약서만 훑어보고 나왔다.
“이야! 클로버 엔터 대단하네. 오라버님을 보고도 여유를 부리게.”
“그게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처음이고 자시고 오라버님을 봤으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려야죠. 이건 직업 정신이 부족한 거예요.”
“바짓, 그건 좀.”
재현은 하찬이 들어간 캐리어를 열어 주는 김나은에 호의적인 눈빛을 보냈다. 죽어도 따라오겠다고 버텨서 하찬의 보모라도 하라고 데려왔는데, 잘한 것 같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직설적으로 형한테 말하는 게 제법 쓸모 있었다.
“형은 너무 무르다니까. 사전에 얘기도 없이 참관인을 그렇게 부르는데, 그걸 괜찮다고 받아 주면 어떡해.”
“참관인?”
“스튜디오에 갔더니 족히 오십 명은 들어와 있더라.”
“오십 명? 간단한 카메라 테스트라더니,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아!”
“형을 우습게 본 건지 그러고 있었다니까.”
하찬의 투정을 받아 주던 재인의 눈이 똥그래졌다. 동생이 갑자기 뿔이 난 이유를 몰랐는데, 그게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였다니.
‘무시했다기보다는 나한테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는데?’
오늘 카메라 테스트를 치르던 스튜디오에 온 사람들 모두 연예 기획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카메라 테스트라면 아마 질리도록 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온 건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는 뜻이었는데, 동생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오라버님은 오라버님의 가치를 모르시는 것 같아.”
“내 말이 그 말이야. 형은 자기 가치를 몰라. 솔직히 형이 간다고 하면 거절할 회사가 있겠어?”
“없지. 오라버님이 오신다면 엎드려서 감사의 절을 올려야지.”
“그게 당연하지.”
연예인이 아니라 길드에서 스트라이커로 활동한다고 해도 두 팔 벌려 환영할 곳이 부지기수였다. 던전 공략을 하지 않고 길드 의무실에서 치유만 한다고 해도 그러라고 하면서 모셔 갈 것이다. 치유 능력 각성자란 그 정도로 귀한 인재였다.
“형. 클로버에서 전속 계약하자고 하면 바로 하지 말고 다른 곳도 알아봐.”
“으음.”
“거기가 마음에 들어?”
“적극적이라서 괜찮아 보이긴 했어.”
“그럴수록 더 따져 봐야지.”
재현은 세상 물정 모르는 형이 걱정이었다. 형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호의를 보이면 뭐든 다 받아 줄 것 같았다. 경계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다닐 것 같았다.
“형. 사람이 좋은 것과 알아서 을이 되는 건 다른 거야.”
“응?”
“이기적으로 굴라거나 제 잇속만 따지라는 말은 아니야. 그냥, 정도 이상으로 자신을 낮출 필요도, 상대에게 매달릴 필요도 없다는 말이야.”
“그건 네 말이 맞지.”
“기회가 균등하진 않아도 아예 없지도 않잖아.”
재현은 기회가 아예 없다면 만들어 줄 용의도 있었다. 유능한 매니저와 에이전시만 구하면 회사 없이 혼자서도 일할 수 있었다.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용병 스트라이커들이 그렇게 일하는데도 문제없는 걸 보면 연예인도 그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쓸데없는 말이기도 하지. 오라버님 얼굴을 봐 봐. 오라버님 얼굴에 을이 말이 되냐? 을이 아니라 갑 오브 갑, 아니 갓 오브 갓급이지.”
“그건 맞지.”
“그러니까 이재현 너는 걱정 좀 줄여. 세상에는 아름다운 걸 귀히 여길 줄 아는 상식인도 많아.”
“그 이상으로 몰상식한 인간도 많지.”
“적당히 하란 말이야, 적당히.”
진지한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이 언제 의견이 맞았냐는 듯이 티격태격하기 시작하자 원래 화제로 돌아올 기미가 안 보였다.
“먀아앙.”
“알았어. 계속 쓰다듬을게.”
‘갑은 얘 같은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느라 쓰다듬던 손이 멎었는지 하찬이 손가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적극적으로 쓰다듬길 요구하는 게 작은 체구와 다르게 무척 당당했다.
재인은 KH 길드에 도착할 때까지 하찬의 당당한 요구대로 부지런히 쓰다듬었다.
* * *
“형 이거 목에 걸어.”
“어.”
“하찬이 캐리어 내가 들을까?”
“아니야. 내가 들을게.”
하찬의 캐리어를 품에 안고 있던 재인은 동생이 건넨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연구소라서 그런지 지난번 길드 창고에 들렀을 때보다 절차가 복잡했다.
“애오오옹.”
“괜찮아. 오빠 여기 있어.”
몇 차례에 걸친 보안 수색과 경직된 연구소의 분위기에 놀랐는지 하찬이 계속 애처롭게 울었다. 어쩌면 테러당했다던 연구소와 비슷해서 겁이 났는지도 몰랐다.
재인은 안타깝고 불쌍한 모습에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외면했다.
고양이가 맞는지 혹은 재현이 얘기한 대로 무슨 몬스터의 유전자와 실험한 개체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검사 결과에 맞춰 양육 방식도 바꿔야 할 테니, 언제든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었다.
“아이고. 우유 먹었어요? 흰 양말도 신고?”
“네?”
“아! 고양이 처음 키우셔서 모르시나? 이렇게 발만 하얀 애들한테 흰 양말 신었다고 해요. 턱에 하얀색 털이 난 애한테는 우유 먹었냐, 갈색인 애한테는 초콜릿 먹었냐 하기도 하고요.”
“아아. 그 말이구나.”
연구소에서 만난 연구원은 화려한 재인의 얼굴보다 그의 품에 안긴 하찬에 관심이 더 많았다. 캬오옹, 캬오옹 사납게 우는데도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양이만 봤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만 놀고, 검사는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줘요.”
“까칠하긴. 알았어. 이쪽으로 오세요. 피 먼저 뽑고 설명해 드릴게요.”
“네.”
하찬이 휘두르는 솜방망이를 과장되게 피하면서 장난치던 연구원을 재현이 불퉁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얼핏 들으면 짜증 내는 것처럼 들렸는데도 연구원은 일상인 듯 신경 쓰지 않았다.
“따갑지? 아저씨도 아는데, 이걸 꼭 해야 해. 미안.”
“캬오오옹!”
연구실 한쪽의 처치실로 하찬을 데려간 연구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피를 뽑았다. 수석 연구원이라고 소개받았는데, 경력은 노름으로 딴 게 아닌 모양이었다. 소독솜을 대 주기 전까지 하찬은 제가 주사기에 찔린 것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다 됐다. 이제 아래층으로 가 볼까요?”
“아래층이요?”
“네. 아래에서 신체 능력 테스트 마칠 때쯤 혈액 분석 결과도 나올 겁니다.”
“신체 능력 테스트는 어떻게 진행하나요?”
연구소에서 하는 검사이니 키나 몸무게를 재고, 점프 높이나 얼마나 무거운 물건을 끌 수 있나를 보지는 않을 것 같았다. 평범한 검사와는 다를 것 같아서 살짝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빠르게 쏘는 공을 피하거나, 얼마나 압력을 버틸 수 있나 검사하는 정도예요.”
“네? 공이요? 겨우 주먹 두 개 합친 크기인데, 그런 실험을 한다고요?
“그, 그런데요? 그리고 실험이 아니라, 검사…….”
“레이저 포인터 같은 다른 방식은 없어요? 이렇게 작은데 공에 맞아서 다치면 어떡해요.”
“어? 네, 바꿔드릴게요.”
재인은 검사인지 실험인지의 진행 과정을 듣고 놀랐다.
일반 고양이는 아니지만, 하찬은 이름 그대로 하찮은 체구였다. 성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로, 얼마나 작은지 책상 뒤 좁은 틈새에도 쏙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아이한테 빠르게 공을 쏘고, 기압인지 중력인지를 높인 방에 넣는다니 검사가 너무 잔인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연구실 출신인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은데, 그런 검사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왼쪽은 격리실이에요. 우리가 갈 곳은 오른쪽.”
“격리실이요? 혹시 실험동물?”
“실험동물은 아니고요. 아니, 실험동물인가?”
“네?”
“길드원 반려동물이랑 다른 단체에서 의탁한 동물이야.”
격리실의 동물에 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연구원 대신 재현이 설명했다. KH 길드의 던전 생물 연구소는 몬스터의 전력화보다 던전에 휘말려 들어간 동물들의 변이를 해결하는 연구가 메인이라고.
“사람만 던전에 휘말려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
“아!”
“그래서 여기서 검사받으면 검역소에서 다시 검사 안 받아도 돼. 그대로 주민 센터에서 등록만 하면 돼. 간단하지.”
“그렇구나.”
동물 병원, 검역소, 각성자 등록 센터, 주민 센터를 돌면서 반려 몬스터를 등록해야 했다. 각성자 등록은 센터만 가도 바로 해 주더니, 반려 몬스터 등록은 그 몇 배나 복잡하고 어려웠다.
“반사 능력 테스트 먼저 할게요. 레이저 포인터로 바꿨어요. 안전하니까, 고양이 테스트 룸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네.”
재인, 재현 형제가 떠드는 사이 연구원은 분주하게 움직여 검사실을 준비했다.
재인의 요구대로 고양이가 다치지 않게 설정도 바꾸고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특수 검사 항목도 전부 체크한 뒤 기계를 작동시켰다. 어차피 검사 비용은 돈 잘 버는 스트라이커 재현이 낼 테니, 비싼 검사도 빠짐없이 넣었다.
“먀아앙.”
“하찬이 착하지. 잘하고 와. 오빠 밖에서 보고 있을게.”
재인은 실험실에 거부감을 보이는 하찬을 달래서 안으로 들여보냈다. 혹시라도 채혈한 앞발이 아플까, 그 전에 치유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하네?”
“놀이인 줄 아는 모양인데?”
“잘됐네요. 남은 검사도 수월하겠어요. 그런데 확실히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네요.”
“네?”
“보통 고양이는 가시거리가 사람의 1/5 정도인데, 쟤는 지금 사람 가시거리의 두 배 먼 거리의 빛도 잡아내잖아요.”
작은 체구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였다. 먼 거리에 생겨난 포인트를 순식간에 쫓아가서 터치했다. 게다가 움직일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평범한 고양이의 반응 속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찬이가 너무 씩씩거리는데요.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을까요?”
“계속해야죠. 등급 이상의 몬스터는 반려 몬스터로 등록할 수 없는 거 아시죠? 그 등급을 산정해야 하거든요. 아직은 괜찮아요. 반응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요? 아, 놓쳤다.”
“이대로 3분만 더 유지한 뒤에 종료할게요.”
검사가 진행될수록 하찬이 포인트를 놓치는 숫자가 늘고 있었다. 하찬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검사실 안에서 카옹, 캬옹 난리였다.
그렇게 포인터를 놓친 하찬이 분해하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단단히 성질이 난 듯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하찬의 몸에 변화가 나타났다.
“하찬아!”
“……역시 있었구나.”
“멈추세요.”
“잠시만요. 한 가지만 확인하고 멈출게요.”
“아니, 당장 멈추시, 헉!”
연구원이 멈추지 않으면 자신이 멈추겠다는 듯 컨트롤 데스크로 다가서던 재인은 검사실 안의 모습에 놀라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