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8)
#8. 얼굴로 공헌?
통화를 마친 재인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작가가 한 사진집 촬영 제안만 들어 보면 자신이 어제 촬영을 무척 잘 해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촬영 시간이 길어지게 만들다 못해 도중에 잘리고 말았다. 조수한테서는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이 사람도 길드 사람들처럼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어제 했던 것과 비슷한 사진 촬영이라면 한 번 정도는 도와줄 의사가 있었지만, 사진집 한 권에 통째로 혼자서 나오는 건 아니었다.
대체 자신의 무얼 보고 사진집의 모델을 해 달라는 것인지. 개인전도 여러 번 열고, 여러 유명인과 함께 작업한다는 사람이.
‘빛과 소년이라니. 설마 나보고 소년이라는 건 아니겠지?’
게다가 사진집의 주제 역시 고개를 젓게 하기 충분했다. 지난밤 복용한 쥬쥬베 물약 덕에 앳돼 보이긴 해도 소년이라고 불릴 정돈 아니었다. 아니, 사진작가와는 어제 만났으니 지금 얼굴은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소년 타령이라니. 직업과 별개로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았다.
“거절했으니 그 일은 됐고. 나머지를 확인해야지.”
각성 능력을 전부 확인해야 신고를 하든 말든 할 수 있었다. 만약 도저히 밝히기 힘든 능력만 가득하다면 신고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혼자서 잘 노는 편인 재인은 조용히 입 닦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생활할 자신이 있었다.
‘드러내도 좋을 만한 스킬이 있으면 등록하고 아니면…….’
각성자는 강제력은 없지만, 의무 신고 대상이다. 신고하지 않아도 과태료가 나오거나 취업, 해외여행 등이 제한되진 않았다. 다만 그로 인한 피해는 본인이 전부 배상해야 했다. 그런 경우에는 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서, 웬만해선 다들 신고를 했다.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마찬가지. 가해자가 미신고 각성자일 경우에는 정상 참작 없이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 가능하면 신고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숟가락 구부리는 초능력처럼 사소한 능력이라면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원래 세계에선 TV 쇼에나 나올 법한 초능력이 각성 능력 대부분을 차지했다. 숟가락 구부리기, 맥주 캔 식히기, 쓰레기 압축하기 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은 고민 없이 가볍게 신고했다.
그만큼 초능력은 이름과 다르게 이쪽 세계에선 보편적인 힘이었다. 인류 누구나 잠재적 초능력자로 봐도 좋을 만큼, 언젠가는 인류 전원이 초능력을 각성한 각성자가 될 거라는 이론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흔했다.
‘치료 능력 정도면 공개해도 될 것 같아. 액션도 손가락 하트니까. 십자가라고 하면 그럴듯하고.’
-띠링!
-띠링!
-띠링!
재인은 쉴새 없이 알람이 울리는 스마트폰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뗐다. 각성자 등록 여부를 고민하는 내내 사진작가한테서 문자가 날아왔다. 제대로 거절했는데도 미련이 남은 모양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성화였다.
“사진집 촬영 안 해도 되니까, 언제든지 스튜디오에 한 번만 들러 주세요? 이게 무슨 소리야?”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려던 재인이 멈칫했다. 스마트폰의 화면에 뜬 문자 내용이 이상해서였다.
모델 제안도 거절한 마당에 남의 작업장에 용건도 없이 들를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럴 시간에 차라리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지, 뻘쭘할 게 뻔한 장소를 뭐 하러 찾아가서 시간을 버릴까. 정말이지 이 사진작가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 * *
재인이 진드기의 풍모가 비치는 사진작가의 제안과 각성자 신고 여부로 고민하는 동안 재현도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의 고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물건을 가져가야 형이 부담 없이 받을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놔! 이 미친 것들아!”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내놔.”
“박연화! 네 미친 팀원 좀 말려.”
“나은아. 저쪽에 하나 더 간다.”
“오케이! 숀 오빠 막아.”
그와 다르게 팀원들은 꽤 고생하고 있었다. 어제 길드에 들른 재인의 사진을 찍은 길드원을 잡아서 스마트폰을 빼앗느라.
“내놔!”
“왜 이래, 진짜! 미쳤어?”
“일반인 사진을 허락 없이 찍는 게 불법인 거 모르세요?”
“일반인이든 아니든 몰래 사진을 찍으면 안 되지. 상식이야, 상식.”
“나은이 말이 맞다.”
“너네들이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이 난리야! 이 몰상식한 것들아!”
오늘부터였다. 정확히는 형의 사진을 보면서 히죽거리는 길드원을 발견한 재현이 포상을 건 순간부터였다.
길드원들의 핸드폰에서 형 사진을 지우는 대가로 형과의 식사에 초대해 주겠다는 제안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비도덕적이던 사람도 준법정신 투철한 모범 시민으로 변할 만한.
“팀장 이제 몇 명 남았어요?”
“CCTV 화면으로 확인한 게 전부라면 이제 다섯 명.”
“오케이. 잽싸게 해치우자고요.”
“좋아. 다른 팀원 오기 전에 해치우자고.”
은근슬쩍 길드원 검거에 동참한 숀까지 셋이었다. 다른 팀원들이 눈치채고 끼어들기 전에 해치워야 했다. 초대받는 인원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재현은 팀장과 두 명이 활약하는 동안 후보군을 추렸다.
일정량의 물리 대미지를 막아 주는 팔찌, 정신 간섭을 막아 주는 목걸이. 그가 가진 길드 포인트로 교환할 수 있는 물품은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다른 것들은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부피가 커서 평상시 쓸 수 없었다.
‘형이 각성만 하면 딱 좋은데.’
물약이든 아이템이든 각성자용보다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게 더 귀했다. 수요는 훨씬 많은데 공급은 드물어서 그런지 길드 창고에도 별로 없었다. 교환하려면 같은 성능이라도 각성자용보다 포인트가 두 배는 필요했다.
몇 년 동안 길드 소속 스트라이커 팀에서 활동하면서 모은 길드 포인트가 상당했지만, 일반인용으로 양껏 구하기엔 부족했다. 그렇다고 일반인용 보상이 포함된 임무가 뜰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급했다. 형의 외모가 충격적이라서 보호 물품이 시급했다.
“이재현. 다 지웠다. 약속 지켜.”
“팀장. 사진 다 지웠어요?”
“응. 당시 로비에 있던 사람들 핸드폰은 다 확인했어.”
“그럼 형한테 연락할게요. 오늘 저녁 같이 먹자고요.”
“호호호. 그래. 시간 정해지면 알려 주고. 나은아, 미용실 가자.”
“네.”
사진 삭제에 도움을 받았으니 당연히 저녁 약속을 잡을 생각이었다. 새삼 반드시 저녁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소록소록 솟아났다. 미용실까지 들르며 준비했는데 약속을 못 잡을 경우, 두 사람의 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눈빛 한번 살벌하네.’
재인이 잘생기긴 잘생긴 것 같았다. 길드원 중에는 눈이 높은 축에 속하는 김나은까지 팀장을 따라서 미용실로 가는 걸 보면.
재현은 다시금 제 형의 외모에 감탄했다.
일반인인 형을 겨우 몇 분 만나 인사만 나눈 두 사람이 저만큼 노력하는데,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만나려는 팬은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 건지. 그런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연예인? 어라? 우리 형이 연예인만 못한 게 뭐지?’
얼굴 잘생겼지, 목소리 좋지, 인성 바르지. 혼자서도 잘 놀아, 밖에서 사고도 안 쳐. 군대까지 다녀왔다. 제 형은 따지고 보면 연예인 하기 딱 좋은 성격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나이도 스물셋,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일 때와 다르게 연예계 활동을 해도 주변의 영향을 덜 받을 나이였다.
‘연예인……. 진짜 괜찮은데. 형이 성형이라도 해서 얼굴을 갈아엎지 않는 한은 앞으로 편하게 살긴 그른 것 같고.’
물론 성형 따위를 하게 둘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치유 한 방이면 원래 얼굴로 돌아와 버리는 데 형이 그런 바보짓을 할 리도 없었다.
재현은 제 생각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모로 봐도 형은 연예인이 제격이었다. 제 형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형은 이미 평범하게 살긴 그른 사람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살길 바라도 주변에서 가만둘 리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꽃향기에 홀린 곤충처럼 꼬여서 흔들어 댈 것이다.
‘얼굴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고 했었지?’
형을 본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항상 했던 말이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형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다고. 형제인 자신은 이해하기 힘든 얘기지만.
재현은 저녁 먹으면서 슬쩍 운을 띄워 보겠다 다짐했다. 혹시 노래나 연기 같은 일에 흥미가 있는지, 만약 기회가 생기면 도전해 볼 마음이 있는지.
“형 오늘 저녁에…….”
* * *
재현은 도착했다고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약속 장소로 먼저 가라고 해도 부득불 집 앞까지 따라온 팀원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적당히 밥만 먹이고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끝까지 뭉개고 버틸 것 같았다.
‘귀찮은 인간들. 도움받은 것만 아니면…….’
팀장은 잔소리가 많아도 그거야 맡은 역할이 그러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나은은 아니었다. 허구한 날 스트레스 푼다고 얼린 몬스터를 망치로 부수는 인간이 형 앞에서 얌전한 척하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진심으로 김나은이 내숭 떠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재현이 집까지 따라온 일행을 향해 혀를 차고 있을 때 재인은 현관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모자를 써서 가리자니 식사 자리에 맞지 않는 데다 괜히 오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나가자니 자신이 봐도 외모가 많이 튀었다.
‘해질 때 다 됐는데 선글라스 쓰는 것도 이상하겠지? ’
누가 보면 별걸 다 신경 쓴다고 욕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재인은 거울을 보다가 스스로 놀랄 정도로 잘생겨져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에효. 그냥 가자. 모르는 사람 만나는 자리도 아닌데. 아이, 너 진짜. 왜 이렇게 따라다녀. 들어가, 들어가.”
안 그래도 심란한데 투구게 녀석도 귀찮게 굴었다. 제가 쓰레기도 아닌데, 아침부터 줄기차게 주변을 맴돌았다. 뱅글뱅글 발치를 돌면서 수시로 바닥을 닦아 댔다. 가만히 보면 그의 발이 닿을 위치에 광을 내는 것처럼도 보였는데, 설마 몬스터가 그럴까 싶었다.
스윽! 재인은 발치에서 버티는 투구게를 슬쩍 발로 밀어 거실로 밀어 넣고 중간 문을 닫았다. 그냥 두면 현관을 넘어 마당까지 전부 닦을 기세였다.
-딸랑!
도어 벨이 울리는 현관문 사이로 재인의 신형이 보였다.
재현은 벨 소리를 듣자마자 자신보다 빠르게 차에서 내리는 세 사람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자기들이 무슨 경호원이라도 되는 양 바로 형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아, 안녀, 허업.”
“오라버, 니힉!”
“…….”
“안녕하세요.”
재인은 최대한 담담한 척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튀어나온 세 명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굳어서 얼음이 되어도, 인사말을 더듬어도,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해도 평시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형?”
뒤늦게 다가온 동생이 눈을 비비고 그의 머리 위쪽으로 손을 휘휘 휘저어도 담담하게 서 있었다.
“뭐지? 여기 무슨 조명이 있는 거 같았는데…….”
“무슨 조명?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가자.”
“흐음. 형 먼저 타. 금방 갈게.”
“……응.”
재인은 등 뒤에서 동생이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걸 들으며 차에 탔다. 안전띠를 맨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앓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공헌도 1이 올랐습니다.]예상치 못한 시스템 메시지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져서였다. 그것도 도합 네 번이나.
공헌도. 어떻게 올리는지 감도 안 잡히던 게 올랐다는 메시지에 당황스러웠다. 상태창에서 읽은 설명에 공헌도는 지구 인류의 성장에 기여한 공적을 나타낸다고 했었다. 그런 공헌도가 갑자기 왜 오른다는 말인가.
‘4점? 이거 설마 한 명당 1점인가?’
그가 한 일이라고는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눈 것뿐이었다. 그건 정말 지구 인류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하기엔 너무 하찮았다. 아니,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그건 너무 민망한 일이었다.
동생을 제외한 세 명은 겨우 얼굴만 아는 상대였다.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도, 무슨 물건을 선물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의 얼굴을 보이고 인사말을 한 게 전부였다.
그 정도로 인류 성장에 공헌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설마 내 얼굴 보여 준 걸 공헌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재인은 부디 그의 의문이 거짓으로 밝혀지길 진심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