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22)
Chapter 22
그러나 바른의 속도는 이전에 나를 확인하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그가 뻗은 써클이 채 몇 발자국 떼지 못한 이리나를 순식간에 감쌌다.
쿵-!
혼비백산한 이리나를 보며 마음을 졸이는 찰나, 눈부신 허공의 빛이 산란하며 사라졌다.
설마 이리나가 마력을 튕겨 낸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바른도 마찬가지였다.
이리나는 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안색이 돌아오더니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앉았다.
“전하…….”
움직이지 않는 입술에 간신히 힘을 실은 바른이 킬리언을 보며 말했다.
“전에 보셨던 현상과 같습니다. 저주를 확인하는 마법을 튕겨 낸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 하녀는…….”
“저, 전하! 저는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정말 전하의 침실을 청소하러 간 것일 뿐입니다! 믿어 주시옵소서!”
힘이 풀린 다리로 더듬더듬 뒤로 물러나던 이리나가 재빨리 킬리언을 향해 엎드려 소리쳤다.
그녀를 서재에 부른 이유가 지난날 황태자의 침실에 마음대로 출입한 탓으로 아는 것 같았다.
“하문하신다면 한 치의 거짓 없이 고하겠습니다! 제발 저를 마법으로 벌하지 말아 주세요, 전하.”
“벌을 주려는 게 아니다. 일어나.”
킬리언이 명료하게 대꾸하며 그녀의 호소를 저지하자, 흠칫한 이리나가 고개를 들어 킬리언과 바른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확인할 게 있다고 했지. 방금 백작의 마력을 네가 자의로 거부한 건가.”
“아, 아닙니다! 저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전하.”
“마력은 신의 보호를 받거나 성스러운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보통 사람이 쉽게 튕겨 낼 수 있는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방금 벌어진 일에 대해 짐작되는 이유가 전혀 없나.”
“……송구하게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전하.”
“그렇군……. 내가 묻는 건 네가, 제국민들과 다른 존재인가를 물은 것인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리나가 동상처럼 얼어붙었다.
“그 또한 아는 바가 없는 건가.”
킬리언이 덧붙인 질문에 아까 주저앉으며 헝클어진 이리나의 은빛 머리칼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두 손을 꼭 맞잡고 선 이리나가 두려움에 질식할 것 같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자색의 눈동자가 질겁한 듯 긴장감이 가득했고, 꽉 깨문 입술이 가여울 만큼 아파 보였다.
덜덜 떨리는 턱 끝이 울음으로 바뀔 즈음 이리나가 입을 달싹였다.
“저, 전하.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살아 있어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제가 가, 감히 이곳에 남아…….”
“죽이려면 진작 했을 것이다. 진정해. 질문을 하는 것뿐이니.”
진정하란 말이 맞아?
나조차 황당해 킬리언을 확 올려다봤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여상하게 말하는 저 얼굴이 때때로 웃음을 짓는 그 킬리언이 맞나 싶었다.
그는 철저하게 여유롭고 무서울 만큼 서늘한 눈빛을 띤 채 이리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밝히라는 것이다. 너는 누구지.”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은 이리나가 파리한 안색으로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싶은데, 킬리언은 꿈쩍도 하지 않을 기색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고양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서는 날 절대 내보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리나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마력을 튕겨 낸 것과, 살아 있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그 말은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저토록 겁을 먹고 있는 것도 들켜선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킬리언이야 보통 인간이 가질 두려움이나 공포에 대한 감정에 대해 무디겠지만, 나로서는 저 여인이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가뜩이나 내가 불러 달라 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이리나가 고양이가 아니라면. 해리드를 불러 기억을 지워 달라 부탁하면 될 것이다.
계속 저렇게 뒀다간 저 자리에서 쓰러지겠어.
나는 다급히 킬리언의 손등을 두드렸다.
킬리언이 내게 시선을 내리자 나는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가겠다는 뜻으로 바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시늉을 했다.
킬리언이 나를 떼어 내며 이리나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나는 계속해서 올려 달라고 그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후.”
계속된 두드림에 낮은 한숨을 내쉰 킬리언이 하는 수 없이 나를 들어 무릎 위에 올려뒀다.
“미야아.”
그의 무릎에 올라가자마자 소리 내자, 바른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반응한 건 이리나였다.
킬리언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 채 맹수의 우리에 던져진 약한 동물처럼 덜덜 떨던 그녀가 퍼뜩 고개를 든 것이다.
이리나는 삽시간에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발견하더니 곧바로 허둥지둥 달려오기 시작했다.
“비비안!”
* * *
킬리언은 이리나 스콧이 레네트를 안고 오랜 시간 동안 우는 것을 지켜봤다.
회한과 설움, 참았던 울분이 한 데 터진 그녀의 오열은 그가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어미의 모습이란 건 저런 것일까.
레네트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며 연신 뺨을 비비는 이리나가 그녀에게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를 속삭이는 것을 보며 킬리언은 점차 입을 다문 채 고요해져 갔다.
결론적으로 바른의 확인을 마친 이리나 스콧은 정말 레네트의 어머니가 맞았다.
그녀 역시 레네트와 같은 고양이라는 것이다.
“저희를 살려 주시다니…….”
이리나가 말문이 막히는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레네트를 내려다봤다.
킬리언은 이리나가 레네트를 비비안이라 부른 것을 상기했다.
본래 이름은 비비안 스콧.
그가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불린 레네트는 지금 자신의 곁이 아닌 이리나의 곁에 앉아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억을 잃었다 하더라도 저들은 서로를 되찾은 가족이니.
의문이 필요 없는 이 자연한 이치에 킬리언은 기묘한 낯섦을 느꼈다.
“믿기……지가 않아요. 발견되면 당연히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나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띄엄띄엄 말을 잇더니 아까 우느라 흐트러진 머리칼을 급히 정돈했다.
이리나의 은빛 머리와 자수정 같은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던 킬리언은 차츰 레네트에게 눈길을 떨어뜨렸다.
레네트는 황금과 초록이 뒤섞인 커다란 눈망울로 이리나를 올려다보며 앞발에 턱을 괴고 있었다.
이리나의 손이 부드럽게 레네트를 매만지는 것을 보던 킬리언의 적안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비비안을 잃어버리고 나선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제국엔 신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니까요. 황궁 전체를 다 찾아다니고 그래도 못 찾으면 따라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비안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절 찾지 못한 거였다니.”
“어쩌다 잃어버리게 됐나.”
소파에 앉아 있는 바른이 잠잠한 어투로 물었다.
“제가 일을 할 땐 정원에 있도록 했었습니다. 넓은 곳이니 비비안이 시간을 보내기 좋기 때문이었어요. 일을 마칠 시간이면 늘 만나던 장소에서 만났는데, 그곳에 있어야 할 아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자네 말고도 누군가 더 살아남았을 확률은 있나.”
바른이 다시 질문하자 이리나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와 자네의 딸이 유일하단 말인가.”
“아시다시피 신탁이 내려온 이후 고양이들을 모두 죽이란 명령이 내려왔고, 마법사들마저 동원돼 숨어 있는 전부를 찾아내 죽였다 들었습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궁금하여 묻는 것이네.”
“그건 저도 확실히 모릅니다. 그저 저희 어머니가 제게 가르쳐 준 건 잠들 때 고양이로 변하니 반드시 숨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걸 가르쳤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걸 가르쳤을 거예요.”
“고양이에서 인간이 됐다는 말인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제 조상이 고양이였는지, 혹은 인간이었으나 저주를 받아 이렇게 된 것인지. 그것까진 모르나,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저주받은 상태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이리나의 말을 듣던 킬리언은 레네트가 의아한 기색으로 귀를 쫑긋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레네트, 아니 비비안의 아버지는.”
“……아비는 없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킬리언은 물론이거니와 바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이리나가 잠시 갈등하는 기색을 보이다 머뭇거리자 그녀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지 레네트가 그녀의 손등에 머리를 기대는 게 보였다.
모녀를 지켜보던 킬리언이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댔다.
그의 검지가 슬쩍 소파를 두드리고 손등 혈관이 더욱 두드러졌다.
“저희가 저주받은 상태라 말씀 드렸지요.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또 한 가지의 저주는 붉은 달이 떠오르면 아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쨍그랑-!
차를 마시려던 바른이 놀라 찻잔을 떨어뜨렸다.
“송구합니다, 전하.”
바른이 급히 깨진 찻잔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킬리언은 저지하며 이리나에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했다.
“그래서 저희는 모두 여자입니다. 대를 이어야 하니 여자로 태어나 붉은 달이 떠오르면 저절로 배가 부르게 되고, 배 속의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그게 속죄라고 했어요.”
“속죄……?”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 킬리언의 입가에 실소가 배어 있었다.
이리나가 그의 반응에 흠칫해 금세 자신이 한 말이 잘못됐나 되짚으며 창백한 낯을 띠었다.
그러자 킬리언은 방금 내뱉은 헛웃음을 후회하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리나에게 이토록 날카롭게 되물을 일이 아니었다.
레네트의 어머니이자 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의 얼굴엔 숨죽여 살아온 데에 익숙해진 두려움과 무지하리만큼의 그것을 감내한 먹먹한 인내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레네트를 의식하듯 그녀에게 눈길을 내렸다.
레네트 역시 제 미래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긴 마찬가지였는지 눈이 휘둥그레진 채 털이 곤두서 있었다.
경직된 킬리언을 일별한 바른이 이리나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붉은 달은 70년에 한 번 뜨는 것이네. 마지막으로 발견된 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제국력 511년입니다. 열 달이 지난 그다음 해에 비비안이 태어났구요. 제 나이는, 여든아홉입니다. 제가 이렇게 제 나이를 말씀드리는 건…….”
여든아홉. 믿을 수 없는 나이에 바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 귀가 의심되는 건 킬리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킬리언은 스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리나의 외관을 보며 레네트 역시 영원히 늙지 않는 것인가를 의문했다.
이리나의 말대로라면 레네트는 512년에 태어나, 현재 529년, 열여덟 살을 맞이했다는 뜻이었다.
이리나가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무릎 위에 놓인 손수건을 꾹 쥐었다.
“앞으로 제 남은 생이 1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생은 아흔 해이고, 아이가 성인이 되면 죽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만으로 1년 정도 남은 삶을 당연히 비비안과 함께해야 했을 테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
킬리언은 불안해하는 레네트에게서 가까스로 눈길을 떼어 내 이리나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이리나는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앉아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비비안이 반대로 변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