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61)
Chapter 61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제가요……?”
“불편한 곳이 있어?”
이 상황에, 네, 이유는 전혀 안 짚이는데 괜히 기분이 찝찝하고 안 좋아요, 라고 할 순 없었다.
당장은 해밀튼 자작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했다.
“없어요. 하나도.”
내가 고개를 저었지만 킬리언은 내 얼굴을 뜯어볼 것처럼 샅샅이 들여다본 후 이마를 짚었다. 그러곤 볼에 손등을 댔다.
“얼굴이 창백해졌어.”
그는 내가 체온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그대로 두기 내키지 않았는지 재킷을 벗어 어깨에 덮어 주었다.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렸나 싶어 더 조심해야겠다 마음먹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해밀튼 자작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맞닥뜨린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는 게 보였다.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
“아니에요. 저도 여기에서 다 들을 거예요.”
어쩐지 해밀튼 자작의 놀란 눈이 의식돼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킬리언의 옷을 붙잡았다.
그의 재킷이 크고 무거워서 자꾸만 어깨에서 흘러내리려 해 본의 아니게 꼭 붙잡게 됐다.
“제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입니다, 전하.”
그때 나와 킬리언을 지켜보던 해리드가 내 의견에 동조하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원래 평소에도 좀 창백한 편이세요. 아무래도 지금 앉아 계신 자리가 햇볕을 받는 자리라 유독 하얗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저렇게 보일 때가 있던데요?”
확실히 내가 깨어 있는 채로 사람이 된 모습은 해리드가 더 많이 봤던 터라, 그는 지금 내 얼굴이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고 익숙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오, 맞아요. 지금 자리가 그런 것 같아요!”
나는 해리드의 말이 백번 옳다는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킬리언과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왜인지 그의 눈빛이 언뜻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아. 그렇군.”
금세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여상한 어조로 대답한 킬리언이 고개를 비틀어 해리드에게 눈길을 던졌다.
“레네트에 대해 잘 알고 있나 보군, 해리드.”
그가 나긋하게 말하자 미소 짓자, 해리드가 주춤 입을 다물었다.
킬리언은 곧 내 어깨에 두른 재킷을 단단히 여며 주었다.
무겁고 차분해 보이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곰곰이 보며 생각에 잠긴 것도 같았다.
“지하창고엔 어떻게 하다 갇히게 된 거지?”
킬리언이 질문하자 자작이 냉큼 입에 묻은 물을 훔치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캐서린이…… 그땐 기젤라 부인이 된 후였죠. 기젤라 부인이 1년 정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면 황실 분위기가 좋아질 테니 그때 다시 황실의 한 자리에 앉혀 주겠다고 하여…….”
킬리언이 사늘히 헛웃음을 내뱉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그는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풀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자작을 관망했다.
자작 부부는 기젤라 부인이 명실상부 수석정부가 되었으니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미 관직에 대한 임명권은 황제를 조종하는 기젤라 부인에게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지에 돌아와 여행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가려는 찰나 기젤라 부인이 보낸 사람이 찾아왔다고 했다.
긴히 전할 말이 있다고 하여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정신을 잃는 것도 몰랐는데 깨어나 보니 컴컴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뒤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정신병에 걸린 사람처럼 지냈다고 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 방법이 없고, 이대로 굶어 죽자 싶으면 어느새 손이 선반에 진열된 음식들을 쥐고 있었단다.
그러다 선반의 음식마저도 거의 바닥이 났고, 이대로 죽겠다 싶었을 때 바른이 그들 부부를 발견했다고 했다.
쿵-
우리는 창문이 재정비된 오두막에 해밀튼 자작 부부를 둔 뒤, 바른의 제자들이 주변을 지키도록 했다.
앞으로 쓸 만한 일이 있을 거란 판단하에 그들을 이곳에서 지내게 한 것이다.
클라이버 맥클런에 대해서는 킬리언이 알아볼 것이라 했다.
클라이버 맥클런에게 바른의 제자들을 붙였다간 상이한 마력을 감지하고 금세 눈치챌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킬리언의 사관학교 동기들이 맡게 될 텐데,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원작에서 즉위실의 문을 닫고 귀족들을 포위해 즉시 살해한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가 동원한 군대가 사관학교 생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포치로 나와 오두막을 벗어나려 하자 킬리언이 나를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전하?”
의아하여 질문을 채 다 꺼내기도 전에 그가 나를 손쉽게 안아 들었다.
“아…….”
나는 그의 재킷으로 얼굴을 거의 가린 채 눈만 빼꼼 내밀고 다시 말을 걸었다.
“내려 달라 부탁드려도 그냥 가실 거죠?”
“응.”
킬리언이 태연하게 대답하며 나를 내려다보자,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들것에 실려 가듯 그의 품에 안겨 갔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르고,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아침이었다.
“이 드레스가 좋겠어. 네 생각은 어때?”
이리나가 내 몸에 물처럼 옅은 레몬빛 바탕에 하얀 레이스가 놓인 실크 오간자 드레스를 대며 말했다.
그녀는 이 드레스가 나의 은빛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할 거라 말했다.
온갖 마카롱 색이 다 표현된 것 같은 내 드레스들은 옷장을 거의 터뜨리기 일보 직전처럼 보여 옷장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킬리언이 나를 이곳에 잠시 머물게 하며 브륀힐트 가에 대해 익히게 함과 동시에 점심시간과 서재에서 공부하는 그 틈새 시간에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양장사들을 보내보냈다. 그들은 내 치수를 재고 옷감을 골라 드레스를 만들어 왔다.
“그거 입을게요.”
나는 딱히 드레스를 고르는 눈도 아직 기르지 못했고, 이리나의 저토록 신이 난 얼굴도 본 적이 없어 나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킬리언이 서재에서 모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뒤 한밤중에 마차를 타고 성으로 돌아간 후, 우리 역시 각자 맡은 바 일을 해내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벨리브 나무에 대해선 들어온 소식이 없지? 전하께서 군사들을 보내 주셨는데 아직까지 별 소득이 없어 걱정이구나.”
내 머리를 작은 나비 모양 장신구들로 장식해 주던 이리나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꺼낸 말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이리나는 내심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어깨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던데요. 조금 더 기다려 보면 소식이 올 거예요.”
킬리언이 사관학교 생도들 중 믿을 만한 동기들을 파견하여, 벨리브 나무에 대해 조사하러 나간 해리드와 사누아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사누아를 신전에 데려가 보았더니 신력을 감지하는 게 가능했고, 당장 믿을 만한 사제들을 따로 구할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사누아를 필두로 늪지대나 습지가 있는 곳을 차례로 돌도록 지시했다.
사누아 혼자 간다면 사관학교 학생들을 보고 적응을 못 하거나 낯설어 엇나갈 수도 있으니, 해리드가 마치 보호자처럼 그와 함께 가게 된 것이다.
고대 제타르 시대의 네라드리젠 지역에 해당되는 남부를 중심으로 차차 활로를 넓혀 갈 계획이라 전해왔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기젤라 부인이 가장 문제예요.”
그녀가 며칠 전 킬리언이 두통을 느낀다는 말에 자신이 외국에서 공수해 온 귀한 약이라며 킬리언에게 전해 줬다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약은 바른이 황실에 갔을 때 가지고 오게 됐는데, 바른이 분석한 바로는 원래 킬리언에게 주던 흑마법약에 비해 그 부작용이 세 배는 더 강한 흑마법약이라 했다.
나는 일주일 전 서재에서 킬리언에게 ‘혹시라도 기젤라 부인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의도치 않게 먹게 되면 어떡해요?’라고 물었다.
킬리언은 아돌프 황제와 있을 때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기젤라 부인에게 해독제도 있을지 모른다며 내 의도를 아주 잘 해석해 줬지만, 문제는 기젤라 부인이 이틀 전까지 아돌프 황제와 여행을 떠나 있어 그녀에게 뭘 먹일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조심해야 해, 레네트.”
“당연하죠. 보자마자 줄행랑을 칠까 봐요.”
내가 장난삼아 대답하자 이리나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래, 그것도 방법이야.’라고 대답하며 드레스의 리본들이 흐트러지진 않았나 꼼꼼히 살폈다.
킬리언은 지난 일주일 내게 세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물론 그의 세 통은 짤막한 것이었고, 내가 보낸 세 통은 구체적이고 길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령 사누아가 신력을 감지할 줄 안다거나, 해밀튼 자작 부부가 오두막에서 적응하는 중인 듯해 보인다거나, 해리드가 폴리아타나 족이 예전에 불의 신을 섬겼다는 사실들을 찾아냈다고 알렸다.
모두가 그가 알아도 될 법한 일이라 써 보냈는데, 킬리언은 황실 속 자신의 일상은 늘 같은 일의 반복이라 내 편지가 꽤 재미있다고 했다.
“으음, 알아보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라…….”
킬리언은 이틀 전 도착한 마지막 편지에 가면무도회이니 가면을 쓴 채 먼저 알아보는 쪽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어떻겠느냐 물었다.
나는 당연히 응하겠다고 답장했다.
왜냐, 나는 원작을 읽어 그가 쓸 가면을 알고 있으니까!
바야흐로 가면무도회의 날이 성큼 다가와 있는 날이었다.
“와아…….”
킬리언이 주문한 휘황찬란한 마차가 듀흐센 백작저 앞에서 나와 바른을 기다리고 있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상아색의 거대한 마차엔 유리창 테두리부터 가문의 문장, 장식 전부가 금으로 세공돼 있고, 유리창 안쪽은 스카이블루색 안감으로 마감된 쿠션으로 뒤덮여 곳곳에 은사가 수 놓여 있었다.
네 개의 바퀴가 성인 남자 키의 어깨만큼 올라올 만큼 커 그 위용에 입이 떡 벌어졌다.
“더이상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는 데인버그의 브륀힐트 가의 공녀라고 믿기지가 않겠는데요? 이 마차만 보면 말이에요.”
작지만 부유한 영지의 공녀로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은 분에 넘칠 만큼의 호사스러운 마차였다.
“전하께서 선물하신 이유가 있을 테지요.”
과연 황실에 모여든 귀족들에게 브륀힐트 가가 어떤 곳인지 한눈에 보여 줄 만한 것이었다.
바른이 마차의 문으로 다가가자 그의 제자가 깍듯이 인사하며 문을 열었다.
오늘 함께 가는 사용인들은 모두 바른의 마법사 제자들이었다.
황실에는 마력이 감돌고 있기에 오히려 사용인들을 마법사들로 데려가도 분간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기에 바른과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만 했다.
‘사누아가 없으니 조금 불안하지만……. 여태껏 별문제 없어 왔잖아?’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계단을 디디고 마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