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0)
마검
* * *
“고작 머리를 꿰뚫은 정도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물론 데일도 그렇게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애초에 발튼이 건네준 기계가 얼마만큼의 위력을 발휘할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치명타는 몰라도 유의미한 피해는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아니었다.
하시나의 몸 안에 흐르는 악마의 힘과 별의 주문은 상처를 곧장 재생해냈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아. 게다가 튼튼함에 과도할 정도로 투자한 녀석이고.’
좀 더 어려운 싸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자기 말에 대답해주지 않자, 하시나는 흥이 식은 얼굴로 말했다.
“슬슬 귀찮네.”
그녀가 입을 오므렸다. 데일은 무언가 낌새를 느꼈다.
멍하니 서 있던 하켄의 뒷덜미를 잡고 힘껏 뛰었다.
그다음 순간. 하시나의 입에서 보라색 불꽃이 분사되었다.
화아아아!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간 불꽃이 물러나는 데일과 하켄을 노렸다.
그 속도가 빠르다.
금방이라도 둘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은한 빛을 뿜는 장막이 불꽃의 접근을 차단했다.
하시나는 자기 이마에 박힌 손도끼를 뽑아내며 중얼거렸다.
“보호 기적인가. 하찮은 수준이네.”
하지만 그 하찮은 기적이 데일과 하켄의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켄은 죽다 살아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슨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거야. 지가 뭐 드래곤이라도 돼?”
“악마의 주문이다. 그보다 에스델. 괜찮나?”
악마의 불꽃은 예상보다 거셌고, 그걸 막아내기 위해 에스델은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린 에스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요.”
“기적을 얼마나 쓸 수 있겠나.”
“치유 기적이랑 축복 정도는 조금 쓸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상은 힘들고요.”
“그런가.”
하켄과 에스델이 불안하게 데일을 쳐다보았다.
상황은 명백히 좋지 않았다.
계속 싸운다고 이기 수 있을까?
문제는 이대로 도망친다고 해봤자 저 악마의 하수인이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툭 내뱉었다.
“나 혼자 싸우겠다. 너희는 도망쳐라.”
“예에?”
“그, 그게 무슨!”
당황하는 둘에게 데일은 담담히 말했다.
“의뢰 전에 내가 말했지 않나. 적어도 죽지는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지키는 거다.”
“그, 그렇지만.”
“그리고 너희는 저 하수인을 상대로 싸우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오히려 너희가 얼쩡거리면 방해가 될 뿐이다.”
지금껏 에스델과 하켄의 위치를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하시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 자기가 지닌 모든 역량을 끌어내고 싶었다.
에스델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데일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하켄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에스델의 팔을 붙잡고 뒤로 잡아끌었다.
“가자.”
“하지만!”
“우리는 방해밖에 안 돼. 너도 알잖아.”
“…….”
갈등하던 에스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말없이 데일에게 고개만 숙였다.
데일도 무심하게 손만 흔들어주었다.
둘이 사라지자, 흥미롭게 지켜보던 하시나가 물었다.
“동료를 위해 희생한다라. 너. 정말로 언데드가 맞아? 내가 아는 언데드랑 느낌이 많이 다른데.”
“방해꾼들을 치웠을 뿐이다.”
워해머를 든 데일이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에 하시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셋이서도 못 이기는 걸 혼자서 이기겠다고? 언데드 주제에 제법 웃기는 걸 잘하네?”
하시나는 좀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이미 이기기라도 한 듯한 태도다.
데일은 조금 짜증이 났다.
다른 것보다, 자꾸 언데드라고 부르는 게 신경을 거슬렀다.
그래서 데일은 땅을 박차 워해머를 휘둘렀다.
“어딜!”
하시나의 촉수가 세 방향에서 데일에게 쇄도했다.
데일은 그 궤적을 읽었다. 좀처럼 빈틈이 없다. 그래서 빈틈을 만들기로 했다.
마치 야구선수가 방망이를 휘두르듯. 허리를 돌려 워해머를 힘껏 휘둘렀다.
퉁!
워해머와 촉수 두 개가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촉수에 달라붙은 비늘 두어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충격을 받은 촉수가 경직되었다. 데일은 그 빈틈을 이용해 워해머를 찔러넣었다.
창처럼 뾰족한 워해머의 머리 부분이 하시나의 가슴에 박혔다.
“꺄악! 이게!”
비명을 내지른 하시나가 곧장 반격에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데일이 저 멀리 물러나 있었다.
분노한 하시나가 데일에게 달려들었다.
여섯 촉수를 흐느적거리며 이동하는 하시나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데일은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로.
데일은 정사각형 방 안을 크게 돌기 시작했다.
하시나가 촉수의 빨판을 이용해 벽과 천장에 달라붙으며 데일을 추격했다.
둘 간의 거리가 아슬아슬하게 좁아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어김없이 데일의 워해머가 날아들었다.
쇳덩이로 연달아 얻어맞은 하시나가 외쳤다.
“이 개 같은 새끼! 너는 기사잖아! 조금이라도 명예가 있다면 도망치지 말고, 정정당당히 맞서!”
“그런 거 없어.”
달려가던 데일은 그대로 벽을 박찬 뒤, 몸을 휙 틀어 하시나의 가슴을 힘껏 걷어찼다.
온 힘과 무게를 실은 쇠장화에 얻어맞은 하시나가 치를 떨었다.
반격을 해보려 해도 이미 데일이 다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거듭된 공방에 이제 둘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하시나는 데일이 혼자 남은 게 단순히 희생이 아니란 걸 인정하게 되었다.
‘아까랑 움직임이 전혀 다르잖아.’
하켄과 에스델을 신경 쓸 때 와는 다르다.
지금의 데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오로지 승리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오로지 싸움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와 같았다.
반대로 데일은 점점 하시나의 싸움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읽히기 시작했다.
‘몸은 좋은데, 센스가 영 별로군. 거리 감각도 약해. 결국에는 마법사라 이건가.’
데일은 워해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시나는 분명 괴물 같은 튼튼함에 재생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게 하시나가 무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때리면, 죽겠지.’
분명 길고 짜증 나는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데일에게는 무한한 체력이 있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대로라면, 말이다.
하시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정말이지. 귀찮게 하네. 인정할게. 나는 몸 쓰는 일은 영 젬병이라서 말이야.”
“마법사가 다 그렇지.”
“그것도 인정해. 그러니까, 조금 무식하게 갈게.”
말을 마친 하시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시나의 흉측한 몸이 순식간에 불어나며 방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노림수는 간단했다.
방 전체를 몸으로 덮어 데일을 그대로 뭉개버릴 셈이다.
단순하지만 대처가 어려운 공격.
‘아직 여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수를 내야 한다.
이미 출구는 막혔다. 어서 저 풍선 같은 몸에 구멍이라도 내야 한다.
데일은 워해머를 휘둘렀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오히려 빨판에 달라붙은 워해머를 놓치고 말았다.
하시나의 촉수가 워해머를 휘감자, 쇳덩어리는 쉽게도 구부러졌다.
‘이런.’
롱소드와 워해머는 부러지고, 손도끼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맨몸으로 저 괴물을 상대하라고? 어림없는 소리다.
‘무언가 날카로운 게 필요해.’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찾아냈다.
제단의 정중앙에 꽂힌 새까만 롱소드 하나.
분명, 처음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 하시나가 만지작거리고 있던 물건이었다.
고민은 짧았다.
데일은 검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데일의 의도를 알아차린 하시나가 비웃었다.
“하하! 그 물건의 어떤 물건인지 알고 손대는 거야?”
“뭔데.”
“불신자 드워프 왕국에서 만든, 모든 신성과 이적을 거부하는 보검에 대해서는 너도 들어봤겠지?”
데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불신자 드워프 왕국 얘기는 얼마 전에 들었던 것도 같은데…….
이미 승리를 확신한 하시나는 데일에게 좌절감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죽거리며 설명했다.
“신성 거부자는 그 마음속에 조금의 신심도 없는 불신자만이 다룰 수 있는 보검이다! 아니, 마검이라 불러야 할까? 밤의 여신을 섬기는 너 같은 언데드가 다룰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데일은 롱소드의 손잡이를 잡았다. 제단에 박혀 있는 검을 힘껏 뽑았다.
신성 거부자라 이름 지어진 이 마검은 검신부터 손잡이까지 모두 검다.
먹물을 뿌린듯한 검은색이 아니라, 흑요석을 잘라 만든 것처럼 차갑고 번뜩이는 검은색이었다.
알 수 없는 가죽을 감아놓은 손잡이 윗부분에 넉넉하게 솟아 나온 크로스 가드.
곧게 뻗어 나가다가 끝부분을 뾰족하게 마무리한 검신.
그리고 그 검신 위에 알 수 없는 문자로 새겨진 하얀 글씨.
데일은 검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게 마검인지 뭔지는 몰라도 한가지는 알 수 있다.
다시 없을 명검이라는 걸.
데일은 검을 굳게 쥐었다.
롱소드치고는 조금 길고, 무거운 검이었다. 하지만 데일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하시나가 눈알을 또르르 굴렸다.
“검을 만져도 아무렇지 않다고? 전승이 사실 가짜였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만졌을 때는 분명…….”
데일은 새로 얻은 이 검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마침 주위에 적당한 목표가 있었다.
데일은 하시나의 거대한 촉수를 향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서걱!
하시나의 촉수가 너무나 가볍게 잘려나갔다. 놀라우리만치 날카로운 검이었다.
“꺄아아악!”
하시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상처에서 피가 벌컥 쏟아져나왔다.
하시나는 바로 재생하려 했다.
몸속에 흐르는 악마의 힘과 별의 주문을 이용하면, 곧바로 아물 것이다.
하시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믿음은 깨졌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
하시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데일을 쳐다보았다.
“신성 거부자의 힘을 끌어냈다고? 그럴 리가. 그건 불신자만이 다룰 수 있는데…….”
데일이 무심하게 답했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 절반은 다룰 수 있겠군.”
“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음.”
데일은 뭐라 더 설명해주려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대신 데일은 검을 휘둘렀다.
하시나의 촉수가 썩둑 썩둑 잘려나갔다.
재생력을 잃은 하시나는 이제 쓸데없이 커다랗기만 한 사냥감에 불과했다.
“악! 아악!”
비명을 내지르던 하시나의 눈빛이 사납게 돌변했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던 하시나는 패배를 직감했다. 하지만 순순히 죽어주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 이렇게 된 거, 너라도 데려가겠다!”
하시나가 모든 여력을 입으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공멸을 각오했다.
오므린 입에서 불꽃의 파도가 쏟아져나왔다. 보랏빛 파도였다.
데일은 쇄도해오는 불꽃을 냉정히 바라보았다.
저런 것에 제대로 맞았다가는 갑옷을 포함해 온몸이 녹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멈춰 버린 심장은 뛰지 않는다.
두려움은 일절 없다.
데일은 롱소드를 들었다. 시선은 불꽃 너머에 있을 하시나에 고정했다. 땅을 박찼다. 육중한 몸이 날아올랐다.
불꽃이 가까워졌다. 열기가 갑옷을 덥혔다.
데일은 불꽃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검과 불꽃이 닿았다. 거센 폭풍처럼 몰아치던 불꽃이 한순간. 거짓말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불꽃이 걷히며 하시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에는 당황.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하였다.
시종일관 오만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훨씬 보기 좋군.’
데일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하시나가 뭐라 외칠 새도 없이. 들어 올렸던 롱소드를 벼락처럼 내리쳤다.
서걱!
하시나의 머리가 정확히 반으로 쪼개졌고. 통제를 잃은 불꽃이 방안에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