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07)
결전
* * *
모든 괴물이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건 아니다.
황혼도 그랬다.
아직 황혼이 황혼이라는 명칭 대신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그녀는 장래가 촉망받는 마탑의 마법사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천재.
차후에 마탑을 이끌어나갈 위대한 재능.
어쩌면 악마에 맞서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희망의 씨앗.
미래의 대마법사.
그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수련을 단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마탑의 드넓은 도서관을 뒤지며 끝없이 지식을 탐했다.
마탑의 마스터들은 그런 그녀에게 우려를 표했다.
“열심인 것도 좋지만, 너무 과하면 좋지 않다. 마법은 마음으로 다루는 힘이니, 올바른 마음을 가지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법. 뛰어난 마법사가 잘못된 마음을 먹고 역사에 남을 악인이 되어버린 사례는 너무나 많단다. 그러니 휴식을 취하고, 네 또래의 마법사들과 교류를 가지는 게 어떻겠느냐?”
그녀는 새초롬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 또래 마법사들은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고요. 자기가 마법사라고 어깨에 힘만 들어가서는 엄청 으스대기나 하고. 겨우 그 수준에 뭐가 그리들 잘나셨는지.”
“……하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법이란다. 아무리 잘나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지. 게다가 올바른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친우와 동료는 필요하단다.”
황혼이 미소 지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뭐?”
“이미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으니까요. 그럼 이만.”
멍하니 서 있는 마스터를 뒤로하고, 황혼은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다.
‘오늘도 잘 지내셨나요.’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는 이따금 그녀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거부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마음속 목소리는 하나같이 그녀의 의견과 꼭 맞았으니까.
‘이건 대체 누구일까?’
명석한 그녀다.
그녀는 이 내면에 들어서 있는 존재의 정체를 추리해나갔다.
처음에는 그녀가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이중인격자. 혹은 가끔 환청이 들린다고 외쳐대는 미치광이야 흔하지 않던가?
‘아니. 내 정신은 멀쩡해.’
여러 번 검증한 결과 그녀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찬 존재는 신일까?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신의 목소리를 듣고 사제가 되는 경우도 적게나마 있었으니.
‘이것도 아니야.’
교단도 찾아가 봤고, 밤의 신전도 찾아가 봤다.
하지만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그 안대 쓴 엘프는 엄청 꺼림칙했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가능성은 하나.
‘내가 악마에게 홀린 걸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부정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누구보다 마력의 흐름에 민감하다.
현혹 마법이든 정신 계열 공격이든 그녀 몰래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이곳은 이레네의 상위구역.
악마는커녕 그 하수인도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제국 최후의 안전지대였다.
‘내가 미친 것도 아니야.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야. 하하. 악마라니. 말도 안 되지.’
그녀는 마음속 존재가 그간 보내온 의지를 곱씹었다.
그는 사람을 돕는다.
그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으면 사람을 해코지하지 않는다.
특히 어린 아이와 노인들에게 약하다.
그는 놀랄 정도로 선하고, 인간적이다.
가끔 고아나 빈민들에게 적선을 할 때는 그녀조차 과하다 생각했다.
왜 저리 오지랖을 부린단 말인가?
어쨌건.
이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는 그 정체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머릿속에 안개가 뿌옇게 낀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시련은 오히려 그녀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알고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알아낸다.
가지고 싶으면 가진다.
그러한 신조를 가슴속에 품고, 오늘도 그녀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은 흉흉한 소문을 주절거렸다.
“바이만이 무너졌다는 얘기는 들었소?”
“……역사 깊은 왕국이 그렇게 끝이 나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근데, 내가 듣기로는 폐하께서는 일부러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소.”
“갑작스럽게 군단에 보급을 끊은 것도 그렇고. 대체 폐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지.”
온 도시가 시끄럽다.
그만큼 마법으로 이름 높은 바이만 왕국이 멸망한 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늘 바이만의 마법은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보다 지금 이 궁금증을 푸는 게 우선이다.
그녀는 도서관 사서를 지나쳐, 기록관인지 뭔지 하는 키 작고 성격 더러운 마법사의 눈을 피해 도서관의 으슥한 곳으로 들어갔다.
금지된 지식들이 담겨 있는 공간.
마법으로 보안 조치가 되어 있지만 이미 그녀가 전부 해제하고 난 후였다.
그녀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악마의 기원. 마법과 신의 관계. 마법을 통한 기적 구현 실험. 악마의 마법 체계. 하나같이 흉흉하구나.’
물론, 흉흉하다고 해서 안 읽어볼 그녀가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책을 빠르게 독파하던 그녀의 눈에 한 낡은 책이 눈에 띄었다.
“세계의 구조와 다른 세계의 증명. 그리고 공간을 다루는 방법.”
왜인지 시선이 끌린다. 그녀는 책을 집어 들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이거. 사실 우리 세계 말고도 수많은 세계가 있다고? 수평을 이르는 평행세계와 우리보다 더 위에 있는 상위 세계?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야.”
증거도 근거도 없다.
광인의 망상을 끄적여놓은 듯한 내용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책이 이곳에 진열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 읽어나갔다.
“세계는 독립적이지만 또한 이어져 있다. 다른 세계의 존재가 타 세계에 간섭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두 여신이 좋은 예다. 저들은 우리보다 한 단계 높은 존재이며,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제약에 묶여 함부로 우리에게 간섭할 수 없다. 대장장이 왕국을 멸망시킨 빛의 여신이 얼마만큼의 힘을 잃었는지는 역사서에 잘 나와 있다.”
“하지만 제약이 있을지언정, 우리가 타 세계에 영향을 받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여신들을 보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그들에게 좌우되는지를 보라. 중요한 건 여신들의 위에도 다른 세계가 있으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걸 참을 수 없다. 누군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게 싫다. 마치 어항에 사육당하는 물고기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관찰당하는 건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공간을 다루는 마법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이 마법이라면 세계와 세계 사이에 뚫려있는 구멍을 넓힐 수 있겠지. 비록 나는 이 마법의 끝을 보지 못했지만, 부디 재능있는 후학이 내 연구를 완성해주길 바란다.”
그녀는 홀린 듯이 책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곳에는 미완성에 엉망진창인 마법이 있었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직감했다.
‘이거다. 해답은 이거야.’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계속 의지를 흘려 넣는 누군가의 정체에 대해 완전히 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책을 덮었다.
“뭐. 지금은 이런 걸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까.”
당장 악마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세계를 지켜낼 의무가 있다.
강한 힘을 타고난 자의 책임이다.
그녀는 끝없이 마법을 수련했다.
때로는 악마에 맞서 용감하게 뛰어들었고,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를 여럿 뒤집었다.
그녀는 대륙의 영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동경과 존경을 담아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이대로라면 대륙을 구할 수 있다.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어, 어째서?”
악마는 강했다.
그녀 혼자서는 어떻게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적어도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가 4명은 모여야 겨우겨우 도모할만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 있는 동료라고 부를만한 이들은 수준 미달이었다.
그녀는 홀로 너무 강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녀를 동경했지만, 또한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녀는 개인이 지니기에는 너무 강대한 힘을 가졌다.
황제가 노골적으로 경계했고, 어느 샌가부터 감시의 눈길이 많아졌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아끼는 하녀가 실은 황제의 첩자라는 걸 알았을 때다.
“그래. 나는 널 믿었건만. 너는 나를 팔고 있었구나.”
“마, 마법사님! 그게 아닙니다!”
“죽어.”
“꺄아아!”
하녀를 직접 불태워버리면서 그녀는 다짐했다.
‘그래. 역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있는 게 못 돼.’
그녀가 믿을 건 그녀 자신과 그녀의 마음속 존재뿐.
‘어쩌면 이미 이 세상은 끝일지도.’
전선을 지키던 네 군단은 모두 무너졌다.
이곳 이레네가 함락하기까지도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악마와의 사투에서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리라.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그녀가 어떻게든 멸망을 막아낼 방법을 찾아내려던 어느 날…….
“아무것도 안 느껴져.”
늘 마음속에서 함께하던 존재가 사라졌다.
의지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버려졌다는 것을.
‘버려? 나를? 왜?’
왜인지는 안다.
이미 이 세상은 끝장이니까. 오로지 패배 외에는 어떤 길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자신을 다른 세상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는 흥미를 잃고 시선을 거둔 것이리라.
“…….”
그녀는 한동안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오래도록 묵혀놓은 책을 집어 들었다.
‘세계의 구조와 다른 세계의 증명. 그리고 공간을 다루는 방법.’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의 머릿속에 포기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독립적이지만 또한 이어져 있다. 우리와 수평인 평행 세계와 우리보다 더 위에 있는 세계. 그렇다면…….”
그렇게 그녀의 첫 번째 세계가 무너져내렸다.
* * *
온 대륙에 명성을 떨친 위대한 기사가 있다.
늘 투구를 머리에 써 아무도 그 얼굴을 본 자가 없는 기사의 별명은 ‘얼굴 없는 기사’.
아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기사는 실로 대단한 위업들을 이뤄냈다.
멸망하는 바이만 왕국에서 마지막 공주를 지켜냈으며, 황실 기사단을 모두 꺾고 그 단장에게 인정받았다.
괴물 같은 실력을 겸비했음에도 누구에게나 명예롭고 다정했으니,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렌은 늘 당당했다.
무엇이든 숨기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그는 이따금 자기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상당히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렌은 그가 좋았다.
이따금 힘들 때면 마음의 의지가 되었으니.
아렌은 바쁘게도 돌아다녔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강한 힘을 타고난 자의 책임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싸워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렌이 전설적인 위업을 이루어내도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강력한 악마의 마수에 대륙은 빠르게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악마들과의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이레네 공방전에서 아렌은 결사대를 모았다.
실력자를 모아 상위 서열 악마를 무찌르면, 역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다…… 라고 아렌은 생각했다.
“실패했다.”
아렌의 목소리가 투구 안을 웅웅 울렸다.
그는 패배했다.
동료는 모두 죽었고, 악마가 성벽을 무너트리고 있다.
이것으로 대륙은 끝이다.
악마와의 결전에서 진 순간부터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
늘 그와 함께해주었던 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버림받은 것인가.’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함께해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다만 아쉽긴 했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면, 더 잘해볼 수 있었을 텐데.
“기회는 무슨.”
아렌은 눈을 감으려 했다.
곁에서 지켜주는 이 하나 없지만, 기사이자 전사로서는 싸우다 죽을 수 있어 만족스럽기도 했다.
악마가 자신의 몸을 엄한 데 쓰기 전에 눈을 감는 게 더 깔끔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무리를 준비하던 그때.
공간이 마치 커튼 걷히듯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세 명의 남녀.
그중에서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늦지 않게 찾았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