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3)
시험
* * *
이후로도 일행은 사흘 동안 두 번의 기습을 받았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티가 주위를 넓게 정찰하며 기습을 미리 알려주었고, 습격한 이들도 가레스 패거리 보다 전력이 약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데일의 활약이었다.
누구보다 앞장 서서 적진에 파고들어 상대를 죽인 뒤, 그 시체를 일으켜 싸우는 데일 덕에 일행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설령 다친다 해도 에스델이 말끔히 치료해주었으니 일행의 피해는 조금도 없는 셈.
덕분에 사병들의 사기가 바짝 올랐다.
상대를 죽인 뒤, 그 시체를 일으키며,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 시체에서 조금 남은 생기까지 마저 거둬들이는 데일의 모습에서는 역시 껄끄러움을 느꼈지만…….
‘아군이라서 다행이다.’
‘같은 편일 때는 든든한데, 적으로 마주치면 끔찍하겠군.’
‘실력이 대단해. 우리 도련님은 언제쯤 저 정도 실력에…….’
어쨌거나 자기한테 도움이 되므로, 사병들은 점점 데일을 호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어스름.
한 차례 싸움을 치른 뒤, 뒤처리를 하는 와중에 하켄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데일 경. 저 시체 일으키는 거, 대단한데요? 어쩌면 혼자서 군대도 상대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네크로맨서처럼요.”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마력이 너무 많이 든다. 연이어 전투를 치르면, 쓸 수 없는 기술이야.”
한번 소진한 마력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못해도 하루의 시간이 걸린다.
즉. 싸움이 길어질수록 데일은 다시 예전처럼 무기를 들고 무식하게 싸워야 했다.
옆에 함께 있던 에스델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건…….”
“왜 그러나?”
“아니. 아닙니다.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죽어서 그 속죄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야죠.”
교단의 신자들은 언데드를 되살리는 건 죽은 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긴다.
에스델도 이전이었으면 질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스델은 데일과 다니면서, ‘불경스러운’ 것들에 대해 관대해지고 있었다.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교단에서 그런 변화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싫어하지 않을까?
사제들이 다루는 기적은 결국 빛의 여신에 대한 믿음에 근간을 두는 힘이다.
이교도에게 물들수록 에스델이 따르는 빛의 여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것치고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지만.’
에스델이 다루는 기적은 점점 힘을 더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하급 사제를 확실히 뛰어넘은 느낌.
어쩌면 에스델이 이전에 함께 싸웠던 페일이나 탈로스를 뛰어넘는 것도, 먼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에스델을 교단에서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도 아마 그런 순조로운 성장 때문도 있을터.
생각을 정리하던 데일에게 하티가 다가왔다. 하티가 데일을 빤히 쳐다보았다.
“잘했다. 다음에도 적이 오면 알려라.”
데일은 그런 하티의 갈기를 쓸어주었다.
하티는 그게 아니라는 듯.
신경질을 부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턱짓했다.
먹어도 되냐는 의미였다.
“음.”
잠시 고민했지만, 데일은 허락했다. 이미 끔찍한 꼴을 많이 보였는데, 시체를 뜯어먹는 늑대를 본다고 사람들이 더 놀랄 것 같지는 않다.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시체를 태우려면 장작과 여러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티의 뱃속에 들어가면 그럴 걱정이 없었다.
오도독. 오도독.
전투가 끝나고 내려앉은 적막. 그 속에서 개껌 씹는듯한 소리만이 한동안 울려 퍼졌다.
휴식을 취하던 사병들은 애써 그 광경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절대 저 기사 말에 거역하지 말아야지.’
‘안 그러면 늑대한테 뜯어먹힐 거야.’
어쨌거나 이 무리에 있는 모두가 데일의 말을 따르고, 데일이 실질적인 리더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 * *
피로한 얼굴로 앉아 있던 시종은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전투를 치른 탓에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해야겠군요.”
“또, 또 야영이야?”
마찬가지로 피로에 젖어 있던 에른스트가 화들짝 놀랐다.
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그에게 야영과 노숙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시종이 은근슬쩍 물었다.
“정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
그러자 에른스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 서북부의 백성들을 구한다는 대의는 벌써 잊었어?”
“……아직도 그 얘기십니까?”
시종은 데일에게 슬쩍 시선을 주었다.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데일은 입을 열었다.
“에른스트. 실전을 겪어보니 어떻던가.”
“으음?”
“사람을 몇 명 죽였을 텐데.”
데일이 적의 기사들을 상대하는 동안.
에른스트와 일행은 적의 나머지 병력을 상대해야 했다.
에른스트는 짐작했던 대로 제법 괜찮은 검사였다. 실전이라고 과도하게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전장에서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곧.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에른스트에게 죽은 병사가 다섯이 넘었다.
첫 실전치고는 많은 숫자였다.
데일의 질문에 에른스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손이 조금씩 떨렸다.
“으음. 솔직히 말해,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익숙해질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가?”
데일은 자신의 첫 실전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이 세상에 처음 떨어지고 했던 전투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위태로운 싸움이었다.
그 당시에는 살인의 거부감이나 죄책감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는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할 정도로 만만한 적들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른 상황이었어도 데일은 크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데일은 누군가를 죽이고, 생기를 취하고, 이제는 되살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 죄책감이나 거부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멈춘 심장과 차가운 피를 가진 이 몸은 그런 미지근한 감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살인의 감각에 손을 파르르 떠는 이 에른스트의 인간적인 모습은, 데일에게는 부럽게까지 느껴졌다.
혹은 질투심이 들거나.
데일은 잡스러운 감정들을 털어낸 뒤, 에른스트에게 물었다.
“마음이 안 좋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다. 혹여 돌아가는 게 창피하다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이렇게 실전을 치르고, 승리해 살아 돌아가는 걸로도 큰 성과다.”
게다가 기사나 귀족들에게서 챙겨 든 돈만 해도 적지 않다.
장비는 너무 무겁고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챙기지 않았지만, 상위 구역의 귀족들은 주머니에 돈을 넉넉히 가지고 다녔다.
에른스트의 가문에서 이번 원정으로 사용한 돈 정도는 이미 메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데일의 제안에 에른스트는 이번에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어.”
데일이 물었다.
“이제 알지 않나? 이번 시험은 단순히 백성을 돕기 위해 내려진 게 아니다. 가면 갈수록 다른 귀족들이랑 싸울 일도 많을 거다.”
에른스트는 한점 흔들림 없이 답했다.
“그러니 더더욱 돌아갈 수 없어. 다른 귀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에 집중한다면, 고통받는 백성은 누가 지키겠어? 귀족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야 하는 거야.”
이야기를 엿듣던 시종과 사병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켄은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데일은 웃지 않았다.
데일의 무표정한 얼굴이 미소를 짓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데일은 그를 비웃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당연하다라.’
어떻게 보면 데일과도 비슷한 동기.
어쩌면 단순히 치기 어린 신념일 수도 있다. 금세 닳아 없어지고, 꺾여버릴 의지일 수도 있고.
하지만 데일은 이 순진한 귀족 청년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과연 에른스트가 순수한 이상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끝을 지켜보고 싶어졌다.
* * *
일행은 그렇게 나흘을 더 이동했고, 드디어 서북부 지역의 끝자락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었다.
허름하고, 가난한 그런 마을.
마을 주민들은 겨울을 날 채비를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마차 3대가 다가오니 주민들의 시선이 몰렸다.
공교롭게도, 마차에서 가장 먼저 내린 건 데일이었다.
데일은 마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물어볼 게 있소.”
주민들은 데일을 보았다. 짧은 사이에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고, 이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검은 사신이 왔다!”
“모두 피해!”
마치 악마라도 본 듯. 격한 반응이다.
흑기사가 어딜 가서든 두려움을 사는 대상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신이라니.
‘이건 좀 심한데?’
마침 도망치던 사내 하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데일은 사내에게 다가갔다.
안색이 창백해진 사내가 손을 싹싹 빌었다.
“사, 사, 살려주세요. 저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안 잡아먹으니까 진정하고 내 얘기를 들어라.”
“자, 잡아먹는다니!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맛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안 잡아먹는다고.”
사내는 거의 기절할 기세였다.
에스델이 다가와 데일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 선량한 사람들을 겁주고 그러십니까.”
“내가 겁을 준 게 아니라, 자기가 겁을 집어먹은 거다.”
“비켜보세요.”
데일은 어쩔 수 없이 에스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누구를 상대하든, 시커먼 이교도 기사보다는 어여쁜 여사제가 호감을 주기 쉬운 건 당연한 일이다.
에스델이 앞으로 나서자 넘어진 사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에스델은 사제 특유의 부드럽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일행이 하루 마을에 묵고 싶다는 것과 데일이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것.
“데일 경은 이교도지만 좋은 분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진……짜입니까?”
선뜻 믿기지 않는 표정.
하지만 교단의 사제의 말이 지니는 권위는 크다.
사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납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에스델이 말하니 믿어보겠다는 눈치였다.
설득하는 데에 든 시간은 불과 5분.
에스델은 데일을 뒤돌아보며, 해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세상은 불공평한 법이다.
데일은 에스델에게 말했다.
“이참에 주위 소문도 좀 물어봐라. 마을 상황이나.”
그간 일행은 마을에도 들리지 않고 분주히도 달려왔다.
일행에게는 정보가 필요했다.
‘이미 서북부에 많이들 도착했겠지.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거고. 어쩌면 상황이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되었을 수도 있어.’
그럴 확률은 낮지만, 이미 귀족들이 서북부의 혼란을 해결했다면, 헛물켜지 말고 얌전히 돌아가는 게 현명했다.
고개를 끄덕인 에스델은 사내에게 주위 소문에 대해 물어봤다.
사내는 별도의 보상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에스델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어 기쁘다는 듯. 주위에 들려오는 소문에 대해 이것저것 말해주었다.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몬스터들. 더 많이 일어나는 언데드. 그것들을 막기 위해 모여드는 기사와 용병.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
에스델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뭐가 나타났다고요?”
“검은 사신. 검은 사신이 나타났다고요!”
사내는 마치 그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가 찾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 사신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고 있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잠깐. 그 검은 사신이라는 게 대체 뭘 말하는 거죠?”
“거, 검은 사신은. 새까만 갑옷을 입고 다니는데…….”
사내는 손짓발짓을 해가며 그 검은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에 대해 묘사했다.
머지않아 에스델과 데일은 그 검은 사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게 되었다.
주민들이 유독 데일을 보며 과민반응했던 이유.
‘흑기사.’
또 다른 흑기사가 서북부를 배회하며 공포를 흩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