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
1화
악역에도 급이 있다.
최종의 최종의 최종까지 주인공을 고통받게 하며 처단해야 하는 대상이 있는가 하면, 주인공 발목 잡다가 사라지는 놈도 있다.
그중 나는 찌끄레기였다.
허접하고 짜증 나게 주인공 발목을 잡을 뿐 위협이라곤 전혀 전혀 되지 않는.
보석 옆에 쓰레기가 있으면 보석이 더 빛나듯, 오로지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영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그런 악역 조연.
내가 있는 곳이 소설 속 세상이란 걸 깨달은 건 아주 늦은 시기였다.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한 곳.
“저게 백리의강의 그 딸?”
“아, 쓰레기라던?”
“그 폐품!”
날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소리는 내 아버지 장례식장에도 따라왔다.
오열할 힘도 없는 내 멍한 눈에선 눈물만 흘러내렸다.
“생전 백리의강 골치를 그토록 썩이더니 그래도 아비라고 울기는 하는구먼.”
“그러게 말일세. 사이도 안 좋다던데.”
저들의 쑥덕대는 말처럼 평소 아버지와 내 사이는 데면데면했다.
좋고 나쁨을 따지자면 나쁜 쪽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날 한심하게 여겼으며 난 그런 아버지를 무시했으니까.
하지만 난 이틀 내내 울었다.
왜 우는지 정확한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는지, 앞으로 펼쳐질 비참한 나날을 예견한 것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설움에 울고 또 울다 사흘째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 전생의 삶을.
전생의 내 삶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 가능했다.
어린 시절 이혼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
술만 마시면 손을 휘두르는 아버지.
그 밑에서 그렇듯 얻어맞다가 식탁 모서리에 머리를 박은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난 다른 것도 기억해 냈다.
이 세계가 내가 읽었던 무협지와 똑같다는 걸!
‘소설 속이라니 ······. 이게 말이 돼?’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정말 나였다.
소설에서 다뤄 주지 않은 악역 조연의 과거를 난 모조리 기억했다.
아주 어릴 적 날 돌보던 사람이 죽었다. 난 그대로 길거리를 떠도는 부랑아가 됐다. 그러다 번드르르한 차림새의 친아버지가 날 찾아냈다.
길거릴 떠돌며 쓰레기나 주워 먹던 처지에 그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게 이끌려 간 곳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거대한 장원이었다.
허리춤에 검을 찬 무섭게 생긴 장정들이 지키는 궁궐같은 대문을 넘어설 때 생각했다.
내 인생도 이제 드디어 볕 들 날이 왔다고.
‘그런데 하필 그 무협지 속이었다니!’
난 손을 벌벌 떨며 찻주전자를 들었다.
하지만 찻주전자는 텅 비어있었고, 난 힘없이 찻잔을 내려놓다 그대로 놓쳤다.
쨍그랑.
돌바닥에 부딪힌 찻잔이 그대로 박살 났다.
내가 과도할 정도로 덜덜 떠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 소설은 향후 10여 년간 살육이 난무하고 등장인물이 우르르 죽어 나가는 소설이니까!
그 첫 신호탄이······ 내 아버지였다.
정파의 명문, 무림 10대 세가 중 하나인 백리 세가의 넷째 공자이자 이 소설 남주인공 남궁류청의 스승으로, 자기밖에 모르던 거만한 주인공을 정의의 수호자로 각성하게 만드는 거룩한 희생자 백리의강!
내 아버지에 대한 평가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유일한 딸 백리연.
멍청하고 욕심만 많아 사사건건 주인공과 아버지의 발목을 잡다가 목이 잘려 죽는 악역 조연.
그게······ 나였다.
‘망할.’
읽는 내내 악역 조연을 그렇게 욕했다. 나라면 저렇게 안 살 거라고.
‘그렇다고 되고 싶은 건 아니었어!’
심지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최악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이라니! 심지어 이 소설 완결도 안 났다고!
‘······어쩌지?’
남주인공 곁은 나 같은 무공도 못 쓰는 악역에겐 너무나 위험했다.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손 한 번 휘두르면 나는 소리도 못내고 죽을 것이다.
남주인공은 그래도 스승의 딸이라고 날 지켜 주려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민폐 짐 덩어리 신세는 못 벗어난다.
‘튀자.’
쥐 죽은 듯이 살면 나 같은 악역 조연 따위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런데······
‘쟤가 왜 여기 있는 건데!’
창백한 얼굴, 눈꼬리를 따라 움직이는 점.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홀리는 고혹적인 외모.
이런 묘사에 들어맞는 등장인물이 딱 한 명 있었다.
앞서 악역에도 급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조연 찌끄레기에 불과하다면 이 자는 주연이었다.
악역 주연. 이 소설의 흑막인 야울!
천마신교의 잔악한 살인을 도맡는 천살단의 단주로 훗날 팔마군의 자리까지 올라 남주인공을 지독하게 괴롭힐 자.
뚝뚝.
부서진 덧창 틈새로 쏟아지는 달빛이 소리나는 곳을 비추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몸통없는 머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흑막이 설핏 조소했다.
“실망스러운데. 백리의강의 딸이 이런 꼴이라니.”
“나, 날 죽이러 온 거야? 왜?”
“궁금해?”
당연하지!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난 모든 인연을 끊고 잠적했다.
살육이 난무하는 중심 스토리에서 멀어진 지 오래란 말이다!
그런데 나 같은 조연을 죽이기 위해 최종 악역이 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그야······.”
느리게 여는 흑막의 입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시야가 휙 돌며, 핏자국있는 마룻바닥이 슬로우 화면처럼 다가왔다.
쿵.
귀가 아닌 머리에 울려 퍼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
빙글빙글 돌던 시야가 멈추고 청년이 비스듬히 든 장검이 보였다.
검을 언제 뽑았는지 보지도 못했다.
장검을 타고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리며 흑막의 입꼬리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 * *
‘개새끼.’
목이 잘려 죽는 인생이라니. 그렇게 피하고 싶었는데!
‘뭐, 식탁에 머리 박고 죽나 목이 잘려 죽나. 개죽음인 건 다 똑같지만.’
그래도 이 소설 속에서 목이 잘려 죽는 거면 꽤 온건한 편에 속하는 건데······ 뭔가 이상했다.
‘너무 아파······.’
분명 죽었을 텐데 온몸이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불 속을 데굴데굴 구르면 이리 아플까?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 손등이 미치도록 간지러웠다.
차갑고 간지럽고 따뜻한 기묘한 감각에 온 힘을 다하자 순간, 눈이 떠졌다.
시야가 돌아오는 덴 한참이 걸렸다.
어둑한 방. 천장의 대들보부터 목련 모양의 창틀.
침상에 걸려 있는 쪽빛 비단발의 자수 문양까지 기이하게 익숙했다.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는······.’
촛불의 일렁임에 따라 사람 모양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림자 주인을 확인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
순간 아버지의 눈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내 손등을 적신 눈물을 보자 나를 깨우던 감각의 정체를 깨달았다.
‘뭐야, 이거 주마등인가?’
아버지는 매우 수려한 외모로 많은 여인의 흠모를 받았다.
하지만 무릇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을 담당하는 스승답게 외견과 다른 강직하고 의로운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이시니 함께 지내는 동안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네 곁을 지켜야 했는데.”
기억과 똑같은 말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주마등이든 꿈이든 지옥이든 뭐든 무슨 상관인가?
“아버지······ 아니, 아빠. 울지 마요.”
아버지가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렇게 당황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몇 년을 함께 지냈는데도······
짧은 웃음이 스친 후 왠지 모르게 울컥 감정이 치솟았다.
자랄수록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나빠지기만 했다.
놀란 모습은커녕 웃는 모습도, 아니 마지막엔 어떤 얼굴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깟 주인공이 뭐라고 희생하고 죽는지.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비록 소설 속 인물이었지만, 무척 서툴렀지만, 내겐 늘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걸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거지 같은 소설 속 악역 조연을 진심으로 위해 준 사람은 아버지 한 명뿐이었다는 걸.
“그동안 죄송했어요.”
아버지는 아직도 혼이 나간 듯한 얼굴이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 하려면 제대로 하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에라도 효녀 노릇 좀 하자는 심보로 말했다.
“사랑해요.”
아버지가 눈을 부릅떴다.
‘후후.’
놀란 표정을 보니 좀 뿌듯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군.
이대로 편안히 눈을 감으면······
그 순간 아버지가 나를 숨이 막힐 정도로 끌어안았다.
기억과 똑같은 아버지의 청량한 향.
‘와······ 진짜 같네. 아니, 잠깐만.’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주마등 맞아? 무슨 주마등이 이래?
아버지가 울컥 감정이 치솟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간 네가 나를 원망한다고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구나.”
“네?”
“미안하다. 아비가 그간, 그동안, 네 마음을 몰랐구나. 다 내가 모자란 탓이다. 미안하다. 미안해.”
“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