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
2화
* * *
침상에 병약해 보이는 아이가 멍하니 기대앉아 있었다.
방에 들어온 소녀는 아이를 보고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몇 번 아이를 불러 보던 소녀가 버럭 소리쳤다.
“아기씨!”
아이가 화다닥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혀를 찬 소녀가 대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신 좀 차리세요! 여기 소셋물인데, 시중은 필요 없죠?”
내 몸종인 당금이었다.
놋쇠 대야를 보던 내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자 당금이 혀를 차며 밖으로 향했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며 저 멀리 대화가 들렸다.
“아침부터 왜 소란이야?”
“아니, 몇 번을 불러도 못 듣잖아. 종일 멍하니 침대에 앉아만 있고. 죽다 살아나더니 백치 된 거 아냐?”
“충격이 크겠지. 내공 폐인이라잖아.”
“그러게 누가 능력도 안 되는 영약을······.”
저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내가 정말 살아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회귀라니······.’
그것도 주화입마에 빠지고 난 후라니!
주화입마란 몸 안의 기운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 폭주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주화입마에 빠지면 대부분 죽거나, 살아난다 하더라도 폐인이 됐다.
나 또한 목숨은 간신히 건졌으나 단전, 내공을 모으는 중심이 산산이 부서졌다.
즉, 평생 무공을 쓰지 못하는 폐인이 된 것이다.
내 나이 여섯 살, 백리 세가에 들어온 지 반년 만에 겪은 일이었다.
느리게 몸을 일으킨 난 타박타박 탁자로 향했다.
세숫대야 안 출렁이는 수면에 흐릿하게 아이의 얼굴이 비쳤다.
퀭한 눈가에 바짝 마른 입술, 푹 팬 뺨. 그야말로 병색이 완연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목도······ 잘 붙어 있고.’
하지만 목이 잘리던 감촉과 빙글 도는 시야 속에 삐뚜름히 짓던 미소가 선했다.
그건 한낱 망상으로 치부하기엔 아직도 너무 생생했다.
‘내가 겪었던 모든 일도······.’
정파의 명문 백리 세가.
그 백리 세가 가주 백리패혁에겐 세 명의 부인과 네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중 셋째 부인에게서 난 막내 공자가 내 아버지 백리의강이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온다는 검의 기재.
수려한 외모에 온화하지만, 불의를 참지 않는 강직한 성품.
완벽한 내면과 외면에 무공까지!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거는 기대가 무척 컸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딸이라고 데려온 아이. 그게 나, 백리연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혼인도 안 한 아들에게 딸이라니!
당연히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할아버지 또한 불같이 노했다.
게다가 나는 친모의 출신조차 알 수 없는 사생아였다.
가문과 할아버지는 반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백리 세가에 입적됐다.
당시 어렸던 난 이 모든 사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리고 아버지는 검은 천재여도 육아엔 그리 소질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딸이라고 데려온 다섯 쌀 짜리 아이를 이런 집구석에 반년 넘게 방치할 리 없으니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자들에게 둘러싸인 어린아이는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 했다. 능력도 안 되는 영약을 욕심낼 만큼.
멍청하고 욕심 많은 악역 조연의 탄생 설정이었다.
찰박찰박.
세수를 마친 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소설에선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얽히고설킨 채 간신히 균형을 지키고 있던 무림의 질서가 우르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의 제자인 남궁류청이 있었고.’
하지만 지금 남주인 남궁류청도 나와 같은 꼬꼬마. 아버지와 아직 사제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남궁류청과 아버지가 사제가 되는데 내 역할이 아주 주효했다.
나는 창밖으로 아버지가 있는 처소 방향을 바라보았다.
남궁류청이 활약할 메인 사건인 정마 대전까지 10여 년은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정마대전의 시작의 전초인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10여 년은 남았단 뜻이었다.
‘아버지를 살려야 해.’
아버지의 죽음은 미심쩍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전에는 밝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남주인공인 남궁류청 조차 밝히지 못한 것을 나까짓 게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나라고 궁금하지 않은 게, 아버지의 죽음이 억울하고 분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있으면 남궁류청에게 방해만 될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나는 살고 싶었다.
그리고 회귀한 삶.
이번에는······ 살리고 싶었다.
* * *
아버지와 내 처소는 ㅁ자형태로 서로 맞닿아 있었다.
안뜰을 지나 아버지 처소에 다가갈수록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대로 뒤로 돌아 다시 내 처소에 숨어 버리고 싶었다.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추길 반복했으나 어느새 아버지 방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할 수 있어, 백리연.’
난 두 주먹을 꽉 쥐고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군가 지금 내 표정을 본다면 전장에 나가는 장수와 같을 것이었다.
‘창피함은 잠깐이야. 아버지 살리고 싶잖아?’
아버지가 살아계셔야 내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올랐다.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적으로 무림 강자중 한 명인 아버지도 죽는 세상이라면, 내 무사생존의 꿈이 이뤄지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백리연. 할 수 있어. 죽을 정도로 창피한 걸로는 진짜 죽진 않아!’
어차피 첫 단추는 내가 눈뜬 순간 끼워졌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스스로 최면을 건 난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마자 탕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일어났구나.”
아버지가 산수 문양 가림막 뒤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난 최대한 순진하고 귀엽게,
“아-버-지악!”
비명을 질렀다.
철퍼덕 얼굴을 바닥에 박기 전, 바람이 불었다.
예상한 통증이 오질 않아 꽉 감았던 눈을 떴다. 바닥과 콧등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조심해야지.”
아버지는 고양이가 자기 새끼 물어 옮기듯 내 목덜미 깃을 잡아들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언제 이렇게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난 콧잔등을 문지르며 바닥을 살폈다.
‘으아아, 창피해! 대체 뭐야? 뭔가 밟고 넘어진 것 같은데······. 저게 뭐야, 죽간본?’
끈으로 엮은 대나무 장대에 쓰인 깨알 같은 글자 몇이 눈에 띄었다. 약초에 관한 내용이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건 죽간본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쌓인 서책부터 여러 약재까지 전혀 정돈되지 않은 방은 완전 엉망이었다.
난 고개를 들어 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오늘도 눈가에 그늘이 짙었다.
‘또 밤새우셨나 보네.’
벌써 며칠째 처소에 불이 꺼지는 걸 본 적 없었다.
병을 앓은 나만큼은 아니지만, 아버지도 그간 살이 꽤 내렸다.
달랑달랑 아버지께 들려 있던 난 안아 달라고 손을 뻗었다.
머뭇거리던 아버지가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방에서 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헤헤.”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최대한 귀엽게 계속 손을 내밀었다.
“안 안아 줄 거예요?”
아버지의 엄정한 얼굴에 망설임이 스쳤다.
짧은 갈등.
하지만 승자는 나였다.
당연했다. 난 아픈 몸이니까!
아버지 품에 당당히 안긴 난 목덜미를 껴안았다. 움찔 놀란 아버지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큼.” 헛기침한 아버지가 괜히 아무도 없는 방을 둘러보았다.
내 첫 번째 목표.
그것은 아버지와 가까워지기였다.
그리고 스킨십은 사람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처음 아버지에게 안겼을 땐 어찌나 불편하던지.
어정쩡한 자세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몸. 아이를 안아 보지 않았다는 티란 티는 다 냈다.
나도 기억하는 생을 통틀어 아버지란 사람들에게 안겨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뭐······.
아버지는 빠르게 걸으면서도 내가 날아갈세라 아주 조심스럽게 방을 가로질렀다.
“간밤에 잠은 잘 잤느냐?”
“네.”
“몸은 괜찮고?”
“네.”
“아픈데 참으면 안 된다. 열이 나거든 꼭 말하고.”
“네.”
“탕약을 내오라 해야겠다.”
“우······.”
탄식은 반사적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내미는 약은 매번 지옥처럼 썼다.
과거의 나는 못 먹겠다며 울고불고 떼를 썼고, 아버지는 억지로 먹이려 들었다.
평생 검을 들며 살아온 사람답게 그다지 상냥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저 ‘먹거라.’ 말을 하고 마실 때까지 지켜봤다.
엄중한 감시 속에서 억지로 마시다 토하면 다시 약을 달여 와 마셔야 했다. 이를 반복하면서 아버지에게 원망의 감정까지 품었더랬다.
‘솔직히 양이 너무 많긴 해.’
이번엔 얌전하게 받아 마셨으나 약해진 몸이 약을 받아들이질 못하고 모조리 토한 적도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아버지의 반응도 달라졌다. 한 수저 한 수저 직접 떠먹여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 갈수록 애가 되어 가는 것이야?”
근심을 감추느라 내내 딱딱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설핏 웃음이 비쳤다.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왠지 너무나 부끄러워 아버지 품에 얼굴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