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아버지가 나를 안아 들고 황급히 뒤뜰에서 객잔을 통과해 객잔 정문으로 향했다.
멀리에서 빛무리들이 어른거렸다. 그 중 한 명에게서 아주 강대한 기도가 느껴졌다. 이 정도의 기도를 풍기는 분은 지금껏 딱 두 분이었다.
천산염제, 남궁 세가주.
그리고 이제 세 분이 되었다.
할아버지 백리패혁.
새벽 여명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간임에도 소란에 구경 나온 이들이 꽤 되었다.
“백리 세가주?”
“백리 세가주가 여긴 대체 무슨 일로?”
할아버지 뒤편으로 백리 세가의 호위대인 백검대도 사열해 있었다.
그 삼엄한 기도의 백검대 사이.
의외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반년 새 턱선이 좀 더 날렵해진 사촌 오라버니, 백리명이었다.
‘쟤는 왜······ 온 거야?’
순간 백리명과 눈이 마주쳤다.
백리명이 마치 다정한 오라비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표정관리를 못 할 뻔했다.
그리고 백검대 사이에 감색 지붕의 화려한 마차가 보였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연세가 지긋한 노인이 신음하며 내렸다.
굴러떨어졌다는 말과 비슷했다.
백검대 무사 한 분이 황급히 노인을 부축했다.
나는 모든 모습을 눈을 부릅뜬 채 바라봤다.
“아이고, 아이고오, 이게 무슨 고생인지. 어우, 허리야.”
석 태의였다.
아버지가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포권지례를 올렸다.
“가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같이 인사올렸다.
할아버지가 커다란 흑마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의아한 듯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어지 여기까지······ ?”
“내 오지 않으면 내년에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
우렁찬 외침에 할아버지와 백검대를 보고 소란스럽던 주변마저 순간 침묵에 잠길 정도였다.
그 뒤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몰아치는 상황 속에 정신을 차렸을 땐, 객잔의 가장 넓고 좋은 객방에서 석 태의에게 진찰을 받고 있었다.
‘여기 다른 사람이 묵고 있지 않았나······ ?”
눈을 감고 있던 석 태의가 내 손목에서 손가락을 떼며 눈을 떴다.
“몸에 큰 이상은 없습니다. 경맥에 입었던 상처도 거의 다 나았고······ 순조롭게 회복한 것 같군요.”
석 태의가 내 눈을 살피며 몇 가지 확인을 하곤 말했다.
“눈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시력에 이상은 없으니 큰 걱정은 하지 마시고 강한 빛만 피하면 될 듯 합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석 태의, 고맙소.”
석 태의가 허리를 두들기며 일어났다.
“뭘요. 그럼 돌아가는 길에 마차 좀 살살 몰아 주시지요.”
“크흠. 돌아가는 길은 급하게 달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어이구, 삭신이 아직도 쑤시는 것이 이 나이에 그렇게 거친 마차라니····· .”
석 태의의 눈치에 할아버지가 내리 헛기침을 했다.
할아버지를 저리 눈치 보게 만드는 모습에서 황실에서 오랫동안 태의로 일한 저력이 느껴졌다.
석 태의가 객방을 나서기 전 배웅하는 나를 돌아보았다.
“소저,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백리 세가주의 부탁도 있지만, 가약이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 석 공자요?”
“예.”
“아, 석 공자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럼요. 소저가 돌아오시길 손꼽아 기다리지요.”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살짝 내렸다.
‘뭘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솔직히 석가약에게 서신을 받고나서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석가약이 나에 대해서 금세 잊어버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하루는 빠르고, 두어 번 만난 또래 따위 금세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저도 석 공자에게 서신을 받아서 음, 놀라고 좋았어요.”
내가 석가약을 잊어버리고 있던 것과 별개로, 누군가 잊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내게 서신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조금 기쁘긴 했다.
“아 참, 석 태의께서 주신 약 엄청 잘 썼어요! 효과가 엄청 좋더라고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석 태의가 껄껄 웃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그 약은 황실 비전약입니다. 그것도 석가약이 내주라고 성화를 부려서 드린 것이지요.”
“······ .”
석가약, 석가약 하는 것이 석 태의가 왠지 모르게 내게 빚 독촉하러 온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오시면 또 드리지요.”
“아, 아니에요. 황실 비전약이라면서요?”
“아니요, 백리 세가로 돌아오시면 바로 꼭 한번 들러 주시지요.”
하하하, 나는 빚쟁이가 된 기분을 만끽하며 석 태의를 배웅했다.
다시 돌아가자마자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백리연, 이리 와 보거라.”
할아버지 곁에 아버지도 계셨기에 큰 부담 없이 다가갔다.
할아버지가 손을 뻗어 내 팔을 꾹꾹 눌러 보았다.
“부러졌다더니,
크게 다치진 않았던 모양이구나.”
석태의가 모두 확인했는데도 할아버지는 꼼꼼히 내 팔을 눌러보며 확인하셨다.
“부러지진 않았고요.
금 간 정도였어요.”
그것도 만신의의 눈을 넘겨받으면서 싹 다 나았다.
할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도 좀 큰 것 같고.”
내 어깨를 짚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약간 눈빛으로 수색받는 기분이었다.
“낯빛도 꽤 좋아졌어.”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아진 듯 인자하게 웃는 낯으로 물었다.
“남궁 세가가 너와 잘 맞았던 모양이구나.”
“······ .”
순간 함정카드가 생각났다.
머릿속에서 비상등이 삐용삐용 울리는,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같은 그런 강렬한 느낌에 입을 열었다.
“그럴 리······ .”
내가 잠깐 머뭇거리는 새 아버지가 나서서 답했다.
“예. 남궁 세가에서 연이를 아주 잘 보살펴 주더군요.”
“······ .”
아버지 말에 할아버지 눈에서 불이 튀었다.
나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그러냐는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아버지, 이런 말씀 드리긴 조금 그렇지만 눈치 좀······ .’
곧장 할아버지에게서 불호령이 튀어나왔다.
“잘 보살폈는데 손바닥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검을 쥐는 사람에게 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더냐!”
내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펼쳐 본 할아버지의 잇새에서 빠득 소리가 났다.
나는 황급히 답했다.
“저 손바닥은 이제 다 나았어요. 그, 그리고 창궁관도 들어가보고 좋았어요.”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들여 보내야지! 그깟 게 뭐라고!”
할아버지가 허공을 향해 코웃음을 치더니 의자 손잡이를 두들기며 소리쳤다.
“남궁 세가주가 내게 서신을 보냈다.
뭐라는 줄 아느냐?”
“······ 뭐라고 적혀있었습니까?”
“연이가 마음에 들어 잘 가르쳐 보고 싶으니 남궁 세가에 남게 해달라더구나! 내 손녀딸을 제가 뭐라고 맘에 들고 말고 해?! 노인네가 노릴 것이 없어서 내 손녀딸을······ ! 자기 손자나 잘 가르칠 것이지! 나는 노친네가 노망나 비무 신청한 줄 알았다!”
금시초문인 일이었다.
아버지 또한 듣지 못했던 일인듯 살짝 놀란 듯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살짝 뿌듯함도 느껴졌다.
“아버지. 그래도 남궁 세가주께 말씀이 너무 심하······ .”
나는 아버지 소매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아버지가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눈빛으로 열렬하게 말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욧! 한마디 들을 것 열 마디 듣게 된다고욧!
“······ .”
내 눈빛에 담긴 뜻을 읽었는지, 아버지가 떨떠름한 낯으로 입을 다무셨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수염이 떨리도록 코웃음을 쳤다.
“서로 아주 절절하구나! 눈앞의 할애비는 안중에도 없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버지께 바짝 붙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할아버지가 입매를 비틀며 나를 노려보았다.
“백리연, 네 아비보다 네가 문제야!”
“네에?”
나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아버지보다 내가 문제라니? 이건 조금 억울했다.
할아버지가 숨을 가다듬듯 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 입을 열었다.
“팔괘촌에서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다른 아이들을 구하자고,
네 아비한테 아이들을 떠밀고 홀로 휩쓸려 갔다지?”
“······ .”
그 말에 아버지의 낯빛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버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내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하늘이 다 노래지더구나!”
할아버지가 의자 손잡이를 내리쳤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한 것이야!”
내가 움찔 어깨를 떨자, 아버지가 내 앞으로 나서며 할아버지와 내 사이를 막아섰다.
“아버님, 연이도 그 일로 많이 다쳤습니다. 모두 소자가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니, 연이를 탓하지 마십시오.”
할아버지가 입매를 비틀었다.
“네가 연이를 잘 가르치지 못해 네 탓이라면, 네 잘못은 널 잘 가르치지 못한 내 탓이더냐? 네가 지금 내 탓을 하는 게야?”
“······ 그런 뜻이 아닙니다.”
“뭐가 틀리느냐! 내 잘못은 내 아버님 탓이니 백리연이 저런 것이, 백리가의 조상님이 잘못하셨다는 말이냐!”
“······ .”
말문 틀어막는 논리 점프가 대단하셨다.
‘저렇게 말하면 어떻게 반박해······ ?’
아버지와 나 둘 다 할 말을 잃은 채 발끝만 바라봤다.
“의강, 저리 비키거라!”
할아버지가 성가시다는 듯 손짓하고 말을 이었다.
“네가 구했다는 네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그 아이나 한번 보자꾸나! 대체 얼마나 잘난 녀석이기에 네가 네 목숨까지 포기하고 구하는지!”
당장 이 자리로 불러오라는 듯한 태도셨다. 나는 속으로 천산염제께 감사 인사를 올리며 답했다.
“지금은 없어요.”
“뭐라? 계속 데리고 있었던 것 아니더냐?”
“그게 어······ 좋은, 좋은 데로 갔어요.”
할아버지가 살짝 놀란 듯 되물었다.
“죽었단 말이냐?”
“아, 아뇨! 그 음······ 음, 좋은 스승 아래 제자로 들어갔어요.”
“감히 백리 세가에 은혜를 입고 다른 곳으로 가?”
어쩌란 거지······ ?
‘방금까지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것처럼 구셔놓고······ .’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새,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반쯤 일어났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러곤 무척 피로해 보이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느 경지에 오르면 노화가 느려진다.
절대 고수 중 한 분이신 할아버지가 반년 만에 나이드실 리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갑자기 주름이 늘어난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문을 뗐다.
“내 분명 아비가 아무 말 안 했을 걸 아니 대신 말하마.”
나는 아버지를 흘끗 보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예상이 가지 않는 듯했다.
“그래. 산사태에 모두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을 구한 행동, 아주 의로운 일이지.”
할아버지가 진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연아, 너는 널 눈앞에서 잃은 아비 생각은 안 하느냐?”
“네?”
“널 눈앞에서 놓친 네 아비가 얼마나 괴로울지 정녕 모르겠느냔 말이다.”
아버지는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폐관 수련에서 나왔을 때 소식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아,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몰랐구나.”
그 말을 끝으로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눈가를 짚었다.
“할애비 말을 이해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