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 * *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손발처럼 움직이던 자연지기가 손끝에서 흐트러지는 감각이 선연했다.
제갈화무의 운기를 도우며 얻었던 경험이 주효했다. 자연지기의 제어력이 한 단계 상승한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물살을 조종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가닥가닥 손가락에 와 닿는 느낌이랄까. 더는 석가약에게서 검은 탁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였다. 내가 자연지기를 운기하는 동안 내 곁을 지켜주던 아버지. 옆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파가 든든했다.
아버지는 언제 옮겼는지 모를 바짝 붙은 탁자 위에 검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 계셨다.
탁자에는 아버지 검 이외에도 온갖 의약 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있었는데, 한쪽에 검은 얼룩이 진 광목천이 구겨져 있었다.
석 태의의 모습도 보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무척 많은 낯이었다.
아버지가 눈을 뜨며 말했다.
“끝났느냐?”
“······.”
대답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몇 번 숨을 고르고 겨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네.”
“반나절이 넘게 운기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할 것이야.”
그래서 이렇게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구나.
간신히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보자 어느새 깊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시야도 가물가물하니 관자놀이 부근에서 두통이 시작되려는 조짐도 보였다.
아버지의 손이 내 옆을 지나쳐 석가약의 혈을 짚었다.
혼혈을 풀어주고 그대로 맥을 짚었다.
석가약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물가물한 시야 속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아버지가 담담히 말했다.
“안정적이다.”
석태의가 다급하게 석가약의 맥을 짚었다. 곧이어 탄성이 나왔다.
비틀거리는 나를 아버지가 받쳤다.
나는 아버지 옷자락을 잡았다.
“편히 자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수마에 빠져들었다.
* * *
석 태의는 아직 여물지 못한 아이의 손목을 짚은 채 신음했다.
“으음.”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아이의 손목이 석 태의의 손에서 쑥 빠져나왔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석가약이 반대 손으로 석 태의에게 붙잡혀 있던 손목을 주물렀다.
“몇 번을 다시 보시는 거예요.”
“크흠.”
석 태의가 헛기침을 하며 석가약 다리의 붕대를 풀어냈다.
벌써 새살이 돋아난 것이 눈으로도 보였다.
“······.”
석가약이 한숨을 내쉬며 석 태의의 손에서 연고를 확 뺏어 들었다. 그제야 멈춰 있던 석 태의가 다시 움직였다.
“아, 이런. 내가 하마.”
“됐어요. 이대로면 내일이나 끝내실 것 같은데.”
석 태의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했다.
석 태의는 도울 수 있다는 백리연의 말을 정말 믿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허락을 한 이유는 혹시나,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천명금혼단을 내줄까, 혹은 그와 비등한 수준의 영약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만신의의 연공실에 들어가 본 아이니까.
수중에 알 수 없는 영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나?
심지어 백리명에게 만신의의 연고를 내줬다는 이야기를 자신도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상처를 통해 빠져나오던 검은 액체.
그건 독이었다.
내공이 중후한 고수들이 독에 중독됐을 때 이런 식으로 독을 빼낸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었다.
보통은 독을 토해 내는 식이었다.
그것도 보통은 중독된 직후에, 자신의 몸이나 가능할 것이었다. 운기를 통한 내부 관조로 자신의 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런데 백리연은 대체 어떻게······?
그 아이가 단전 폐인인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심지어 석가약의 몸에서 빠져나온 독들은 찰나였지만, 허공에 떠 있다가 뚝 떨어졌다. 자신이 본 게 무엇인지 눈을 의심할 따름이었다.
석 태의는 너무 놀랐기에 저도 모르게 백리의강을 봤다. 하지만 백리의강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백리의강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간 석 태의와 나눴던 신의를 믿겠습니다.”
본 것에 관해 함구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때 문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의, 도련님, 백리 소저가 깨어나셨습니다.”
“아, 드디어 일어났어요? 무슨 잠을 이렇게 오래 자나 했네.”
석가약이 침상에서 일어나려는 모습에, 석 태의가 깜짝 놀라며 말렸다.
“뭘 하는 것이냐?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느니라!”
* * *
머리가 계속해 지끈거렸다.
두통이 너무 심하면 잠을 자면서도 끙끙 앓지 않나. 지금이 그랬다.
두통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선지 계속해서 꿈을 꿨다.
말도 안 되는 여러 꿈을 꾸다가 어느 순간 기픈 어둠 속에 있었다.
어딘지 모를 어둠 속에서는 이따금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신음만이 차가운 돌벽을 타고 울렸다. 그리고 바로 앞에 철창이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그 안에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 또한.
몇 번을 살펴보고 나서야, 쭈그려 앉은 사람이 여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은 어깨를 바짝 움츠린 채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간간이 오들오들 떨기도 했다.
추위때문은 아니고 공포 때문인듯 했다.
여인의 발치에 팔뚝만 한 생쥐가 냄새를 맡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고 저 여인은 왜 갇혀 있는 걸까?
그때 내 옆에서 갑자기 불빛이 피어났다. 이 자리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에게서는 기척도 숨소리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온통 검은색의 옷을 둘러 입어 완전히 어둠 속에 녹아 있었다.
갑자기 생긴 불빛은 그 사람이 피워 낸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살 안을 보았다. 여인이 누군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숨을 들이켰다.
‘······ 나 잖아?’
창살 속 여인은 나였다.
성인이 된 백리연.
나 인걸 인지한 순간, 창살 안 여인은 내가 되었다. 그리고 검은 옷의 복면인을 마주 보았다.
복면인은 눈만 겨우 드러나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눈매가 익숙했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할 때였다.
내가 갑자기 바닥을 기어가서 철창을 붙잡았다. 시점만 나일 뿐,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청이가 보낸 건가요?”
청이가 누구야?
의문을 가졌다가 순간 떠올랐다.
설마······ 남궁류청을 저렇게 부르는 건 아니겠지?
“······.”
복면인은 침묵하며 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내가 다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아니, 가만히 좀 바라봐 봐.’
복면인의 눈을 좀 확인해 보고 싶은데, 겁먹은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곧이어 철창이 철컥 소리와 함께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복면인이 내 팔뚝을 덥석 붙잡았다.
그 순간 현실에서 눈을 떴다.
* * *
눈을 뜨긴 했는데 정신이 아주 혼미했다. 한참을 그렇게 눈만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대체 무슨 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감옥은 대체 뭐고, 나는 왜 거기 갇혀 있던 건지······.’
회귀 전에도 그런 감옥에는 갇혀 본 적 없었다. 거기다가······.
‘청이라니!’
나는 남궁류청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그냥 늘 그렇듯 개꿈인 건가?’
나는 원해 꿈을 되게 많이 꾸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그 복면인의 눈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본 것만 같았다.
그때 머리맡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 났느냐?”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띵했다.
머리를 짚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니 입가에 물잔이 닿았다.
그제야 내가 목이 무척 말랐다는 사실을 때달았다.
나는 허겁지겁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상황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여긴 아직 석 태의 의원 내였다.
내가 쓰러지듯 잠들고 손님방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잠들었던 나는······.
“사흘이나 지났다고요?”
“그래.”
소리쳤더니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나는 관자놀이 부분을 콩콩 두들겼다.
“자면서도 머리가 아픈지 끙끙 앓더구나. 괜찮으냐?”
“네. 방금은 갑자기 소리쳐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답하면서도 뭔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러느냐?”
“근데 제가 뭔갈 잊어버린 것 같은데······ 아! 제갈 세가주는 그럼······?”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연락 보내 놨단다. 사정이 생겨 갈 수 없게 되었다고.”
“다행이네요.”
그때였다.
꼬르륵. 사흘을 굶은 배 속이 아우성쳤다. 아버지가 차분히 말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