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 * *
사흘이 아니었다. 내가 굶은 시간은 거의 나흘이었다!
그래선지 배 속이 미친 것처럼 날뛰었다.
하지만 나는 밥 먹는 내내 한눈을 좀 팔았다. 잠들기 전 느꼈던 것들 때문에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잘하면······.’
보통 이렇게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면, 아버지가 한마디 하실 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내 밥 위에 반찬만 올려 줄 뿐이었다.
나는 수저에 올라온 반찬을 보다가 물었다.
“아버지는 안 드세요?”
솔직히 너무 뒤늦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난 먹었다.
“저도 이제 배불러요.”
그러자 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이윽고 시비가 와서 서둘러 탁자를 치웠다.
시비가 나가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기다리고 있을 때, 아버지가 먼저 입을 뗐다.
“잠시 정원에 나가자꾸나.”
“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건물을 나왔다.
밖에 나오자 석양의 붉은빛이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미리 정해 둔 곳이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걸어갔다.
식후 산책을 생각하던 나는 의아하게 아버지를 뒤따랐다.
아버지는 넓은 공터 같은 곳에 멈춰섰다. 그러곤 화단 한쪽에 장식용으로 놓아둔 커다란 바위에 손을 올렸다.
‘뭐 하시는 거지?’
뭔가 살펴보는 듯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구나.”
“네?”
“여기 서 보거라.”
아버지가 바위에서 몇 발 떨어진 위치를 가리켰다.
다가온 아버지가 살짝 등을 밀어서 반 발짝 앞에 자리를 잡게 두었다.
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버지는 그 검을 그대로 내게 건넸다.
“아버지?”
“들거라.”
일단 받아 들긴 하였는데, 손잡이를 쥐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엄청 무거웠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아니, 이걸 어떻게 들라는 거야?’
나는 당황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으나, 아버지는 어서 들라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자연지기를 팔의 기혈로 보내 근력을 강화하자 그나마 조금 들만해졌다.
“무백신공의 1식을 휘둘러 보거라.”
“네?”
“내 손이 검의 끝까지라고 생각하고 호흡하며, 휘두르거라.”
‘대체 지금 일곱 살에게 뭘 시키는 거야?’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평소처럼 휘두르면 된다.”
나는 적색의 노을빛에 붉게 타오르는 검신을 내려보았다.
여러 하고싶은 말들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렀다.
‘내게 해가 가는 일을 시키시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버지는 이걸 무슨 이쑤시개 휘두르듯 휙휙 휘둘렀는데······.
‘이걸 내가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까?’
위에서 아래로 딱 한 번 휘두르는 거니까 어찌어찌 자연지기를 끌어 쓰면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자세를 살짝 교정해 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를 악문 채 숫자를 세고, 셋을 세는 순간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 주변의 기운이 나를 향해, 아니 검을 향해 훅 끌어당겨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른 속도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검을 땅바닥에 박았다.
‘뭔가······조금 다른데?’
휘두를 때 전과 느낌이 살짝 다르긴 했다. 훨씬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진검과 목검의 차이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그때, 아버지가 내 손에서 검을 받아갔다. 그러곤 검신을 손으로 받쳐서 내게 보여 주듯 검을 들었다. 바위에 검 끝이 긁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멀쩡했다.
나는 아버지의 손짓을 따라 바위로 다가가고 깜짝 놀랐다.
칼끝이 스친 바위에 일자로 파인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그게 꽤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러니까 내 검지 손톱 정도로.
‘아니 살짝 긁힌 느낌이었는데?! ‘
이 정도로 파였다고?
나는 당황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 이거 어떻게 해요?”
남의 집 정원 바위에
이게 무슨 짓인지?!
‘이거, 어떻게 숨길 수 있으려나?’
안 되겠지? 물어 줘야겠지? 비싸려나? 석 태의 꽤 잘사는 것 같던데······.
아버지가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무백신공 2성을 이뤘구나. 축하한다.”
“······네?”
아버지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석가약이 있었다. 열심히 박수를 치는 소년 옆에는 석 태의도 함께 있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기가 막혀 바라봤다. 석가약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잘된 거 아니야?”
* * *
정원 한쪽에는 동그란 돌로 된 탁자와 걸상이 있었다.
나는 그 동그란 걸상에 털썩 앉고 기가 막혀 석가약을 보았다.
“너 미쳤어?”
“연아.”
나무라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내리꽂혔다.
‘아, 맞아. 여기 아버지도 계셨지.’
하하하, 나는 아버지를 향해 어색하게 웃고는 한 단계 순화했다.
“너 제정신이니? 그 다리로 어딜 걸어 나온 거야?
아버지의 한숨이 머리맡에 퍼졌다.
반면에 석가약 옆자리의 석태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 말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석가약이 입을 삐죽이곤 투덜거렸다.
“들어봐. 네가 일어났다길래 나는 기다렸지. 그런데 올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고, 밥 먹고 정원에 나갔다잖아. 보고 싶은 사람이 와야지 어쩌겠어. 서신처럼 한 달 뒤에나 오면 어떻게 해.”
이 자식······ 뒤끈 쩌는데?
“그래도 그렇지.
상처 덧나면 어쩌려고?”
“덧나면 덧나는 거지. 뭐.”
“뭐라고오?
너 절름발이 될 뻔했댔거든?”
“아, 됐어. 잔소리 그만.”
석가약이 귀찮다는 듯 손을 설레설레 내저었다.
나는 기가 찬 표저으로 바라봤다.
열심히 낫게 해줬더니 이게 대체 무슨 반응?
석가약이 다리의 상처 숨기면서 나를 맞이한 걸 나는 내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냥 별생각 없었던 거 아냐?’
자기 상처에 아주 무관심해 보였다.
“석 태의만으로도 잔소리는 충분해. 아니, 생각해보니까, 너한테 잔소리를 들으니 어이가 없는데?”
“내가 뭐?”
“너 전음하겠다고 선천······.”
나는 번개같이 석가약의 입을 막았다. 그리곤 석가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 상황이 재밌는지 그저 실실 웃는 석가약의 숨이 손등을 간질였다.
나는 또 하하하 웃으며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저 가약이랑 단둘이 얘기할 수 있을까요?”
“······.”
“안 될까요?”
“······공자, 잠시 저랑 얘기 좀 하지요.”
석 태의의 재촉에야 아버지가 일어났다. 그 모습에서 별로 내키지 않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게 석가약이 몸을 숙였다.
“봤어?
네 아버지가 나 노려보고 갔어.”
“······아버지 이 정도 거리면 들을 수 있을 텐데.”
석가약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흠흠, 내가 착각했나 봐. 정말 좋은 아버지시네.”
“그리고 아버진 어린 애 노려보고 그런 사람 아냐.”
“······아버지랑 사이가 정말 좋네.”
“당연하지.”
나는 애써 뿌듯한 기색을 내리 눌렀다. 회귀 전에 사이가 최악이던 시절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석가약이 턱을 괴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역시······ 네가 제일 재밌는 것 같아.”
“내가 네 광대야? 재밌는 거 보고 싶으면 저잣거리 가서 놀이패나 봐.”
“하하, 그 표정 귀엽다. 완전 애같아.”
석가약이 손을 뻗어 내 볼을 조몰락거렸다.
어이없는 상황에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석가약의 손을 탁 쳐냈다.
석가약이 맞은 손을 만지작거리다 웃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뭐가?”
“네가 산사태에 휩쓸렸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걱정했거든.
사실 다시 못 볼줄 알았어. 무사해서 천만다행이야.”
나는 왠지 간지러운 느낌에 어깨를 움츠렸다.
아버지부터 남궁완 아저씨, 심 부관, 할아버지, 언두 등 그간 나를 걱정했다고 말한 사람들은 다 회귀 전부터 알던 이들이었다.
믿을 수 있는 인품을 지녔던 자들.
그리고 오롯이 나만의 인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다리를 걸친 인연이었다.
야율은 인연이 아니라 악연에 가까웠으며, 소녹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석가약에게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정말로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그리고 잘 살아가고 있는 걸 증명받은 느낌이랄까.
나는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
“······.”
석가약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기율였다.
“아니, 아냐.”
“싱겁기는.”
나는 미지근해진 차를 들었다.
거의 해가 져가고 있어 그나마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시비가 정원과 건물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석등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