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 * *
저벅저벅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에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일찍 헤어졌구나. 오래 얘기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석가약의 팔등에 앉아 있던 새를 하인이 들고 온 새장에 다시 넣었다. 애완용으로는 잘 키우지 않는,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였다.
“집에 빨리 돌아가 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많이 비워뒀다고.”
“아쉬워 말거라. 너도 쉬어야지.
아직도 상처가 심하다는 사실을 좀 기억하거라.”
석가약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니었다. 새장을 든 하인이 멀어지자 석 태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좀 해 보았느냐?”
“어떤 얘기요?”
“그 능력에 대해서 말이다.
“아뇨. 안 했는데요.”
석 태의가 믿기지 않는 낯을 했다.
석가약이 태연스레 물었다.
“물어봐야 했나요?”
“그야 당연히······!”
석가약이 석 태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애도 물어보지 않던데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물어봐요?”
“뭐?”
“태의가 연이에게 했던 말부터, 왜 이런 상처가 생겼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더라고요.”
백리연은 석가약의 상처에 얽힌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래서 석가약도 백리연의 능력에 관해 물을 수 없었다. 자신 또한 상처에 대한 비밀을 말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약속. 나도 질문하지 않을테니, 너도 묻지 마라.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석가약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계속 만나도 괜찮겠냐고만 묻던걸요.”
“······그래서 뭐라고 하였느냐?”
석 태의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괜찮다고 했죠. 뭐, 간단하게만 설명했어요. 내가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검을 배울까 경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
“그러니까 넘어가던가?”
“네. 심지어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석 태의가 말을 이으라는 듯 석가약을 보았다.
“도와줄까?”
하하하하. 뒤이어 석가약이 웃음을 터트렸다.
석 태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는 참······ 바보 같군.”
석가약이 정색했다.
“연이한테 바보라뇨.”
“······.”
“하지만······틀린 말도 아니죠.”
* * *
다시 백리 세가에 도착한 것은 온전한 밤이 되어서였다.
쏟아져 내리는 듯한 별빛 아래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아버지의 손을 마구 잡아 당겼다.
“빨리요, 빨리.”
“왜 그러느냐?”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쪼르르 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금쇄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어머, 아기씨, 어디 가세요?
씻으셔야······”
“조금만 있다가!”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지도 확인해 보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나는 탁자에 손을 탁 올려놓고 아버지글 바라봤는데, 키가 작아서 그런지 진지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저번 제갈 세가주의 추측이 맞는다면요······. 이번에 제가 석가약에게 한 것처럼 독을 내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약간 허탈한 듯한 숨을 내쉬고 말했다.
“석 태의네에서도 빨리 집에 돌아가자 하더니만, 그 때문에 이리 재촉한 것이야?”
“네! 석 태의 댁에 있을 때부터 말하고 싶었다고요!”
“그랬느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째 반응이 영 미적지근 했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고맙구나. 기특한 생각을 하였어.
다만······.”
뭔가 말을 고르는 기색이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네 생각은 나쁘지 않다만······ 만약 제갈 세가주의 의견이 맞는다 치자. 그럼 내가 직접 제거해 보려고 하지 않았겠느냐?”
“······!”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당연한걸······.’
곧이어 깨달았다. 내가 내 능력에 취해 제대로 주변을 살피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힘이 탁 빠졌다.
“제가······ 바보 같았네요.”
시무룩한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손을 뻗었다.
“원래 그렇다.”
아버지가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의 희망이 보이면 눈이 흐려지고, 앞뒤 가리지 않게 되는 것이지.”
아버지의 말에 경험이 녹아있는 걸 알았다.
확실치 않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천명금혼단을 내게 먹였던 아버지.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
하지만 위로를 받는다고 당장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그대로 땅을 파고들어 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창피하고 허탈하고······.
그런데 이런 나와 달리 아버지는 오히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이 뭔가······ 꽤 ······ 기분이 좋아 보이는 기색이었다.
아버지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이런 실수를 하는 걸 보니, 아직 아이긴 아이로구나.”
“······.”
놀리는 것도 아니고! 창피해 죽겠는데 위로는 커녕 애답다고 좋아하다니······!
나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말했다.
“그럼 쉬세요. 전 가볼게요.”
터덜터덜 걸어간 내가 방문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연아, 한번 살펴보겠느냐?”
“뭘요?”
“내 기맥. 살펴보고 싶어 했지?”
숫제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였지만, 필요 없다고 무시하기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 * *
나는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가 침상에 벌러덩 누웠다.
“하으으으.”
신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집이 최고야.
아 – 주 바보같은 착각을 했다.
펄떡펄떡 몸부림치며 손발을 휘둘렀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금쇄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잠깐 다녀오신다더니 갑자기 며칠이나 비우셔서 놀랐······어머, 뭐 하시는 거예요?”
“그냥······.”
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본 금쇄가 말했다.
“씻고 누우세요.
뜨거운 물 준비됐어요.”
“우으으으, 좀만 있다가······
좀 더 누워 있을래.”
나는 금쇄의 손을 피해 몸을 호떡처럼 뒤집으며 말했다.
“별일은 없었어?”
“네.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금쇄가 작은 종이쪽지들을 건넸다.
‘소녹이 잘하고 있네.’
나는 좀 더 버티다 금쇄의 손에 질질 끌려 탕에 들어갔다. 씻은 후 자려고 누웠는데 문제가 생겼다.
‘잠이······안 와.’
생각해보니 사흘을 잠만 자다가 일어난 지 아직 반나절도 안 지났다.
잠이 올 리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아버지의 전신 기맥을 살폈던 일이 떠올랐다.
전신 세맥까지 샅샅이 살폈지만, 그때 막혔던 내공 흐름이나 다른 사람과의 다른 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광활하게 느껴질 정도의 넓은 기맥이었지.’
일주천하는 동안 단 한번의 걸림도 없이 매끈했다.
내가 주도해서 운기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기맥에 이끌리듯 쭉 딸려갔다는 느낌이 강했다.
새삼 아버지의 격을 느꼈달까?
특히 제갈 세가주.
그의 절맥과 아버지의 기맥이 비교되었다.
‘역시 천명금혼단 보다는······ 어, 그러고 보니 돼지는 어디 갔지?’
매번 밤마다 침상에 올라와 같이 자던 녀석이었다.
거기다 오늘 돌아와서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어련히 잘 지내겠지만······ 마지막에 쫓아오다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일어나 겉옷을 걸치고 방을 나왔다. 금쇄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고, 조금 걷자 아버지 처소에서 나오는 언두를 볼 수 있었다.
언두가 나를 보곤 물었다.
“아기씨? 도련님은 잠깐 나가셨어요.”
“또? 아, 근데 아버지 뵈러 온 건 아니야. 혹시 돼······ 고양이 못 봤어?”
“오늘은 못 봤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그 고양이, 아기씨가 떠나고 나서 밥도 잘 안 먹더라고요.”
“뭐어? 왜 밥을 안 먹었지?”
“글쎄요. 돼지라고 놀려서?”
“그게 말이 돼?!”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돌렸다.
언두가 뒤따르며 말했다.
“어디 가시려고요?”
“고양이 있을만한 곳을 가 보려고.”
“어두운데 저도 같이 갈게요.”
“아냐. 괜찮아. 거기 갈 거야.”
“아······으음, 거기요. 알겠습니다.”
내가 바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경계가 엄중한 별관이었다 제갈 세가주가 묵고 있는 곳.
내 처소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 거침없이 걸어가던 내 걸음은 별관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느려졌다.
전각 안의 방문 앞에 선객이 있었다.
“아버지?”
무영이 나를 돌아보고는 묵묵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살짝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버지, 여기서 뭐 하세요?”
“별거 아니다.”
그때 방 안에서 제갈 세가주의 노복인 막추가 문을 열고 나왔다.
“소저, 돌아오셨군요!”
나는 재빨리 물었다.
“막추,
아버지가 왜 여기 계신거예요?”
“아, 소저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대협께서 가주님을 직접 살피셨습니다.”
직접이라는 말까지 한 것을 보아 내가 잠든 동안 아버지가 제갈 세가주의 운기를 살핀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막추를 보았다. 대충,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막추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쯤 되자 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신경 쓸 것 같아 챙겼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 아버지 품에 달려들 듯 안겼다.
“아버지, 제가 세상에서 아버지를 제일 좋아하는 거 아시죠?”
무영은 표정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고, 아버지만 살짝 당황한 듯 귀가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