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나는 방 안에 서 있는 시비를 보았다.
‘어떻게 할까.’
순간 시비와 눈이 마주쳤다.
시비가 웃으며 말했다.
“필요하신 것 있으신가요?”
“아니, 괜찮아.”
저 시비가 있는 한 나갈 수 없을 터였다.
그때,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청소년 정도로 보이는 하인이 있었다.
놀란 표정의 시비가 내게 다가오던 하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곤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네가 여기 왜 온 거야?”
내게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청력을 높여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석 공자가 데려오라 하셨어.”
“뭐? 하지만······ .”
“난 석 공자님 명을 따를 뿐이야.”
“······ 주인어른께 말할 거야.”
“마음대로 해.”
대화가 뭔가 조금 이상한데?
곧이어 하인이 내게 다가와 공손히 고개 숙였다.
반대로 시비는 내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방금 하인과의 말다툼이 표정에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다.
하인이 내게 말했다.
“백리 소저께 인사 올립니다.
안내가 늦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언뜻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기억을 뒤졌다. 예전에 석가약이 우리 집에 올 때 모란 화분을 들고 있던 하인이었다.
“······ 석 태의가 여기에 얌전히 있으라던데.”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
나는 미묘한 기분을 뒤로 한 채 하인을 따라갔다.
곧이어 하인을 따라서 들어간 처소에서 석 태의의 표정이 굳어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도, 방 안에는 고약 냄생와 탕약 향이 풍겼다.
‘뭔가 비슷한 상황을 얼마 전에도···· .’
석가약이 침상에 앉아서 나를 환영했다.
역시 한창 성장할 시기의 아이라 그런지 그 사이 꽤 자라 있었다. 젖살이 빠진 듯 갸름해진 뺨에 빼어나던 분위기가 더 깊어졌다.
석가약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누구세요?”
“······ 나야, 백리연.”
“백리연이 누구?”
나는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남궁세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이 넘게 기다렸는데 서신이 없길래, 난 네가 나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내가 좀 정신이 없었어······. 그, 그래서 내가 너 돌아왔다는 소식 들리자마자 이렇게 왔잖아. 그리고 답신도 보냈고.”
“아, 그 성의 없는 그거?”
“그땐 내가 손을 다쳤었어.”
나는 결백을 증명하듯 손바닥을 보여줬다.
하얀 흉터가 아주 작게 남아 있었다. 원래라면 더 컸을 텐데, 자연지기의 영향인지 흉터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석가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생채기 같은데.”
“아니야! 피가 뚝뚝 떨어져서 꿰매기도 했어!”
“······ 그 정도로 다쳤다고?”
석가약이 손바닥을 자세히 살피려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틈을 타 눈을 감고 금안의 능력을 끌어올렸다.
‘이럴줄 알았으면 가리개 하고 올걸.’
요새 날이 너무 더웠다. 가리개 하는 것도 거슬릴 정도였다.
뭐어, 금안 자체가 시력에 의지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눈을 감고 쓸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능력이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곧바로 이상한 점을 찾았다.
다리. 다리의 한 부분의 기운이 검은색으로 탁하게 뭉쳐, 뒤틀려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서둘러 금안을 풀고 눈을 떴다.
“너 다리 왜 그래?”
“응”
석가약이 놀라면서 눈을 살짝 굴렸다.
“그냥 조금. 네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나는 거짓말이네 뭐네 실랑이하지 않고 그냥 석가약이 덮고 있던 이불을 확 들췄다.
“연아!”
석가약이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이게 별거 아냐”
석가약이 난감한 듯 눈가를 살짝 짚었다.
“꽤 아플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언제 다친거야? 아직도 피냄새가 나잔항.”
머뭇거리던 석가약이 결국 입을 열었다.
“본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받았어.”
“습격?”
“하지만 네가 신경 쓸 정도의 일은 아니야.”
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탕약 먹어서 지금 별로 안 아프기도 하고. 여기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석 태의가 계시잖아?
걱정 안 해도 돼. 그래서 비밀로 하려고 한 건데 어떻게 아주 귀신 같네.”
“······ .”
설명하는 표정이 정말 태연했다.
금안이 없었다면 정말 별거아닌 상처로 여기고 껌뻑 속아 넘어갈 정도로.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결국, 이렇게 왔구나.”
등 뒤로 익숙한 기척이 가까워졌다.
“내 얌전히 돌아가 달라고 부탁까지 했거늘.”
“제가 불렀어요. 태의, 신경 쓰지 말고 가세요.”
석가약은 전혀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뭐지?’
거기서 뭔가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시비와 하인의 대화를 들었을 때부터 미묘하게 느끼던······ .
‘상하관계가 뒤틀려 있는 것 같은······ . 먼 친척이라지 않았나?’
거기다 석가약은 석 태의네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을 봐서는 석가약은 석 태의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있었다.
그때 석 태의가 말했다.
“가약의 상처에 대해 소저가 알 것은, 소저와 엮이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 .”
“석 태의!”
석가약의 외침이 석 태의의 말을 끊어냈다.
나는 놀라서 석가약을 바라보았다.
석가약이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네 탓 아니니까, 신경쓸 거 없어.”
“······ .”
나는 석가약을 바라보다 석 태의를 돌아보며 물었다.
“태의, 저랑 연관되다니요?”
“네가 자세히는 알 필요 없다.”
미간을 찌푸렸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내 선선한 대답에 석태의와 석가약 둘 다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가약의 상처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그 또한 네가 알 필요 없다.
돌아가거라.”
“······ .”
이쯤 되면 낟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 제가 도울 수 있을지 몰라요.”
“네가? 하, 어떠헥 도운단 말이냐.”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요.”
석 태의가 헛숨을 들이켰다.
옆의 석가약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웃음이 나와?’
나는 눈을 흘겼다.
석 태의가 수염을 부들부들 떨다가 내뱉듯 말했다.
“좋다! 말뿐만이 아니길 바란다.”
“태의?”
석가약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했다.
나도 이렇게 쉽게 허락할지 몰랐기에 살짝 놀랐다.
석 태의가 석가약의 붕대를 풀어냈다.
석가약은 이걸 말릴까 말까, 하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느껴지는 낯이었다.
곧이어 상처가 드러나고, 나는 침음했다. 상처가 상당히 깊었다.
심지어 아직도 조금씩 피가 배어 나왔다.
석 태의가 설명했다.
“스친 칼날에 독이 묻어 있었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상처는 얕았지만, 칼날이 닿은 부분은 모두 절제해야 했지. 해독도 했지만······ 상처의 회복이 더뎌.”
석 태의가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절름발이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상처를 응시하다 말했다.
“해독이 다 됐다고요?
아니요, 그럴 리가.”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금안으로 본 검은색의 탁한 기운들.
‘그게 뭔가 했더니만······ 독이었던 거야.’
독들이 미세하게 남아 환부의 회복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절제할 수 없어 차선책으로 해독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해독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
“제가 도울 수 있어요.”
“정말이냐?”
나는 더 대답하기보단 바로 석가약의 어깨를 잡고 눕혔다.
“윽! 연아, 살사······ .”
괜히 말하면 안 좋으니까 아혈을 짚고, 단전에 손을 댄다.
‘고수들은 독에 중독돼도 진기의 흐름으로 독을 토해 낼 수 있다고 들었어.’
내가 하려는 건 이와 같은 것이었다.
운기조식을 하여 독을 토해 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남궁완 아저씨가 산공독에 중독되었을 때, 당소용이 그 자리에서 해독해 주었던 일도 이와 비슷하다 볼 수 있었다.
‘음?’
석가약의 기맥이 꽤 잘 닦여 있었다.
심법 훈련을 꽤 꾸준히 한 사람의 기혈이었다. 단전에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똬리 튼 내공이 보였다.
전문적으로 수련한 무인의 것은 아니다. 그저 몸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지내기 위한 정도. 내공을 느낄 수 있다면 차라리 정신을 잃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다른 손으로 석가약의 혼혈을 짚었다.
“······ !”
소리 낼 수 없던 소년이 그대로 정신을 잃는 게 느껴졌다.
석 태의의 기겁한 들숨이 느껴졌다.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께 호법을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