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 * *
안이 흐릿하게 비쳐 보이는 발 너머 침상.
이불이 불룩한 형태와 그 옆에 걸터앉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일어날 거야?”
볕을 머금은 더운 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와 핏줄이 비칠 것처럼 파리한 안색의 소년을 간질였다.
제갈화무.
살짝 창백해 보이는 것 외에는 그냥 편하게 잠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처음 쓰러졌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다.
걱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곧 깨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계속 깨어나지 않는 건······?’
나는 무심코 든 불길한 생각을 털어냈다.
이렇게 제갈 세가주가 누워 있으나, 제갈 세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친모와 사이가 안 좋댔지.’
죽이려고 든다고.
제갈 세가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오히려 좋아하면서 살수나 보내지 않을까?
백리 세가에 있으니 당할 일은 없겠지만.
‘자신이 쓰러질 걸 알아서 할아버지께 보호 요청을 한 건가?’
‘만신의의 능력의 비밀이 대체 뭐지?’
‘아버지가 중독된 것 같다는 독은···?’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답을 내줄 수 있는 자는 계속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럼 시작할게.”
제갈화무는 듣지 못할 말이었다.
내 말에 호위인 무영이 호법을 섰다.
나는 제갈화무의 단전 부근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자연지기가 내 손끝을 타고 제갈화무의 내공에 조심스레 어우러졌다.
곧이어 내가 이끄는 제갈화무의 내공이 그의 전신 기혈에 스며들었다.
쓰러진 제갈화무를 처음 운기시켰을 때는 운기만으로도 벅차서 몰랐다.
제갈화무의 기혈은 기이하게도 상단전 부근의 기맥만이 크고 넓었다. 그곳만 보아서는 절맥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반면에 그 부근을 벗어나면 기맥은 급격하게 좁아졌다.
백리 세가에 돌아온 후 한 달이 넘도록 매일같이 운기를 도와주다 보니 기맥이 좁아지는 속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앞으로 2년 정도······.’
기맥이 모두 막힐 때까지 남은 기간이었다.
그 전에도 상태가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객잔에서 쓰러진 이후로 상태가 확연히 악화됐다.
무영에게 물어봐도 아무런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단 한마디. ‘그저 무리했다.’ 라는 말 뿐이었다.
긔고 그 무리라는 것이 왠지 모르겠지만 나때문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여하튼 전과 달리 한 번 운기하는 것으로 좁아진 기맥을 막거나 뚫기는 힘들었다.
제갈화무의 내공이 부족했다. 내가 보충하는 자연지기로도 모자랐다.
원래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 악화하면서······.
그래서 최근 내가 집중하는 건 제갈 세가주의 기혈에 고여서 미처 녹이지 못했던 영약들을 내공에 녹여 내는 것이었다.
제갈화무의 내공이 증가하도록.
나는 눈을 떴다.
가져다 놓은 동경에 내 눈동자에 서렸던 금광이 스르륵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걸로 얼마나 늘릴 수 있을가?
답이 나오질 않았다.
고개를 숙이자 그나마 조금 생기가 돌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제갈화무와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나한테서 살짝 떨어진 장소에 몸을 말고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제갈화무의 운기를 도와줄 때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내가 끝난 걸 안 고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까끌까끌한 혓바닥이 내 손드을 핥았다. 마치 수고했다고 말하는 듯했다.
“돼지야, 넌 어떻게 생각해?”
고양이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먉?”
“내가 제갈 세가주에게······.”
이 방에 있는 무영을 생각하고 가까스로 말을 멈출 수 있었다.
나는 제갈 세가주를 내려다보다 애써 외면했다.
* * *
한여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나는 날씨였다.
늘 조용하던 처소가 외출 준비로 소란스러웠다.
머리도 예쁘게 묶고, 옷도 차려입고, 선물도 챙겼다.
왔다 갔다 하는 내 뒤를 고양이가 따라다녔다.
저러는 이유는 하나였다.
“안 돼.”
고양이가 불만스레 울었다.
“아니, 응? 네 주인이 그렇게 누워 있는데 옆 좀 지켜라.응?”
내가 고양이 표정은 잘 모르지만 저게 왠지 ‘내 알 바?’로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안 돼, 돼지야. 거기 새도 있단 말이야. 너 그 새 잡아먹을 거잖아.”
돼지 고양이가 계속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안 돼.”
말을 끌고 온 언두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예쁘게 생긴 고양이한테 돼지라니. 아기씨 나중에 아이 새기면 작명은 하시면 안 되겠어요.”
“······나 일곱 살인데.”
“금방이죠. 돼지야, 아기씨가 안 된다잖아. 이리 와.”
고양이가 붙잡으려는 언두의 손을 발로 타타타탁 쳤다.
“어이쿠. 성깔 봐라.”
나는 그사이 아버지와 함께 말을 끌고 처소를 나갔다.
고양이가 언두의 손길을 피해 황급히 나를 쫓아왔다. 나는 이를 무시하며 대문 밖으로 나가 아버지와 함께 말에 올라탔다.
“먀옹! 먀옹!”
곧이어 쫓아오던 고양이가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입술을 떼기 전에 먼저 말했다.
“안 돼요.”
“으음.”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돌리고자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 예전에 저 처음 학당에 나간 날 석 태의네 집에 계셨죠?”
“네가 학당에 처음 나간 날?”
“그······ 완 아저씨랑 대문 앞에서 마주쳤던 날이요.”
“아, 맞다. 그랬지. 어찌 아느냐?”
“그날 석태의네 마구간에서 아버지 말을 봤거든요.”
나는 타고 있는 검갈색의 말 목덜미를 툭툭 두들겼다.
“그랬느냐?”
그랬는데 석가약이 시침을 뚝 뗐었지.
올려다 본 아버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나쳤다.
“······숨길 필요 없어서 그건 좋구나.”
할아버지는 내게 비밀을 알려준 뒤, 아버지께 나도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반응은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백검단주가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싸웠냐고 나한테 슬쩍 물어본 것으로 보아 좋은 말이 오간 것 같진 않았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석 태의네였다
석 태의 자택에 이렇게 늦게 가게 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 석가약이 본가의 부름을 받아 떠났다는 게 아닌가?
석 태의가 나한테 석가약 보러 오라고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달까.
아버지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먼저 내리고 이어서 내 허리를 안고 말에서 내려 주었다.
마중 나온 하인의 안내를 따라 들어갔다.
앉아서 조금 기다리고 있자 석 태의가 왔다.
“오랜만입니다.”
“예, 오랜만입니다.”
아버지와 인사를 주고받길 기다려 나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뭔가 묘한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피로한 기색이었다.
석 태의가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아버지와 함께 떠났다.
잠시 기다리자 석 태의가 돌아왔다.
나는 재빨리 물었다.
“아버지는 어떤가요?”
“환자의 상태를
말해 줄 수는 없단다.”
“저는 딸이잖아요?”
“그럼 직접 여쭤보거라.”
“······.”
젠장. 아주 칼 같으셨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이건 알려 주실 수 있죠?
치료법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석 태의가 잠시 침묵하다 입술을 뗐다.
“네 아비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이제 네 아버지의 병을 연구하는 것을 그만둘 생각이다.”
“······네?”
이어서 석 태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백리세가에 방문할 테니, 찾아오지 말거라.”
뭐지? 나한테 그렇게 한번 오라고 눈치 줄 때는 언제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석 태의가 원래 인자한 사람은 아니었다.
태의원에서 수장까지 한 관료이니 자신의 능력과 삶에 자부심이 넘치는, 살짝 꼬장꼬장한 타입이랄까?
아니면 아니다, 기면 기다.
내가 아버지의 상태에 관해서 물어봤을 때 딸임에도 딱 잘라 말하는 것만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날 상대할 때는 다정다감하니 꽤 인자하게 대해주셨기에, 저 모습은 의외였다.
석 태의가 내 손목을 잡고 진맥을 시작했기에 일단 입을 다물었다.
“피로가 좀 쌓였구나. 수련하는 것도 좋지만 네 몸은 한 번 다쳤던 것을 기억하고 쉬어 가며 하거라.”
그러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방전은 하인을 통해 보내 주마. 오늘은 여기에 조용히 있다가 네 아버지 치료가 끝나면 돌아가거라.”
석 태의는 몸을 돌려 곧바로 방을 벗어났다.
저 반응은 뭐지······?
나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석 태의는 이번 생에 유달리 내게 호의를 보였다.
전생과 달라진 점.
이제는 손꼽을 수 없게 많았다.
하지만 석 태의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 걸로 여겨지는 것은······.
‘석가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