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 * *
스님이 죽음으로써 나를 주화입마에 빠트린 범인이 고모라는 것은 증명하지 못하겠거니 싶었다.
이 정도만 밝히게 되었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모두 범인은 고모라고 생각할 테고, 백리명의 일은 형벌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원하던 목표는 이뤘다고 생각할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증인이 나타났다. 심 부인이었다.
심 부인은 유산할 때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 까닭에 한동안 운신할 수 조차 없었다. 거기다 상심이 컸는지 큰아버지가 아무리 괜찮으니 몸부터 회복하라 달래도 누워서 눈물만 줄줄 흘린다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할아버지를 찾아뵈어 내 주화입마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하는 것이었다.
심부인은 내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우연히 고모와 할머니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고 한다.
심 부인뿐만 아니라 몇 년 전 먼 곳으로 시집간 심 부인의 시비도 데려와 증언했다.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뭐, 두려워할 만하긴 했다. 내가 증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가 할머니가 그 약과 관련한 인물들을 모두 살해했기 때문이다.
‘이것 참······.’
처음 백리명의 주화입마 소식을 듣고 심 부인이 쓰러졌을 때, 원래부터 나약한 기질을 지녔기에 별달리 의심하지 않았다. 있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밝혀지니 알 수 있었다. 심 부인은 백리명이 주화입마에 빠지자마자 고모의 짓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때 입을 다문 결과가 이렇게 돌아가다니.’
그때 밝혔더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리라.
누구보다도 심 부인이 가장 괴로워했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소식은 굳이 내가 알아볼 필요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러 경로를 통해 내 귀에 들어왔다.
소녹이 손목을 주무르다가 다시 붓을 들었다.
“응?”
소녹이 소매에서 주머니를 꺼내 풀었다. 동전이 제일 많았고, 은 조각에 심지어 팔찌 같은 패물도 있었다.
[잘 봐달라고 하는 기색이길래, 평소에 저한테 잘해 준 사람들이 준 것만 받았어요.]“······그래, 잘했어.”
왜들 이러는지 속내가 아주 훤했다.
줄을 새로 서려는 것이다.
거기에 평소 내게 소원했던 이들이 마음이 급해 소녹에게 잘 봐달라고 바치는 것이고.
그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기씨,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석 태의께서 찾아오셨답니다.”
“알겠어요.”
바로 채비해 할아버지께 향했다.
하인은 수백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걸어가며 마주친 이들 중 내게 공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금세 도착한 곳엔 할아버지와 아버지, 석 태의가 함께 있었다.
“어서 오너라.”
아버지가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옆자리에 앉혔다.
석 태의와 그간의 안부를 간단히 나누곤 바로 본론을 꺼냈다.
“더는 알아봐도 소용없을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석 태의가 탁자에 작은 약병과 접혀 있는 포장지를 올려놓았다.
그동안 나는 석 태의에게 약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려 놓았다.
“더 알아봐야 소용없다니요?”
“일단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석 태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마저 말했다.
“이를 연구하려면 실험 대상이 필요합니다. 내공에 관련된 실험이다 보니······.”
인체 실험을 하는 게 아닌 이상은 더는 알아내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다들 무슨 말인지 눈치채곤 낯빛이 어두워졌다.
석태의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백도 정파라고 모두 공명정대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자행하는 가문도 분명 있긴 했다.
유명한 곳으로는 사천 당가, 진주언가가 있었다.
물론 저 둘은 범죄자들을 이용하고 본인 동의를 받고 연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백도 정파인들 사이에서도 저 두 가문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
게다가 독공과 강시술이 가문 비기인 두 가문과 달리 백리 세가는 검을 쓰는 가문이었다. 사람을 데려다가 실험 대상으로 쓴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침묵하는 이들 사이에서 석 태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점은 제가 건네받은 양이 연구를 진행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 약을 건넸다던 스님을 붙잡았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눈을 마주쳤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자에 대해 태의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그 스님은 죽었습니다.”
“허어, 그렇군요.”
하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왠지 그럴 줄 알았다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마교의 첩자인 듯 합니다.”
“역시 그럴 줄······ 예?”
이건 전혀 예상 못한 듯 경악했다.
“어허, 이거 참······ 마교라니.”
아버지가 사죄하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태의의 안전은 백리 세가에서 전적으로 맡겠습니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당황한 듯하던 석 태의가 훨씬 심각해진 낯빛으로 말했다.
“그건 일단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지요. 그보다 확실해지면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석 태의가 아버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 주화입마 약 말입니다. 그 약이······ 4공자님의 내공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실험을 더 해봐야 했으나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마교와 관련되었다니 일단 말씀드리는 겁니다.”
잠시 탁자를 바라보던 나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석태의의 가설이 맞는 것 같아요.”
의아한 시선이 날 향했다.
“저도 하나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무엇이 말이냐?”
“명 오라버니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요. 왠지······ 아버지의 증상과 비슷한 느낌이 들긴 했어요.”
석 태의가 눈을 빛내며 관심을 기울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나는 석 태의에게 백리명의 폭주하는 내공을 대신 진정시키며 느꼈던 감각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홀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석 태의가 질문했다.
“4공자께서는 영약을 먹고 문제가 생긴 게 아니랬지요?”
“예.”
“역시 원래는 내공의 흐름을 막는 약인듯 하군요. 이를 영약과 함께 섭취했을 때 주화입마가 일어나는 듯 합니다.”
아버지가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손을 보았다.
“확실히······ 만약 제 문제가 영약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면 확실히 주화입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은 대부분 죽거나 폐인이 되어버린다.
영약이 잘못된 것 같다고 주장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주화입마를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였다. 왜 현대에서도 정신병은 개인의 의지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여기서 주화입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다.
개인의 의지,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여겼다.
능력도 안 되는 자가 영약에 욕심을 부리다 벌 받은 것처럼 취급했으니······ 살아남은 사람이 감시 영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해 봤자 조롱이나 당했을 것이다.
‘나도 고모가 영약에 손을 쓴 사실을 들을 때까지 내 잘못인 줄 알았지.’
석 태의가 탄식했다.
“이거 참 아주 교묘한······ 무림인들만 노린 극약이나 다름없군요.”
아버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약을 마교가 지니고 있다니. 어서 이 일을 맹에 알려야 겠습니다. 다른 가문에 알려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 이런 일이 우리 가문에만 있을 리가 없지.”
당장 일어날 것 같은 아버지를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리려면 명이와 의란의 일을 밝혀야 하겠지.”
멈칫한 아버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아버지,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면 우리 가문의 명예는 땅에 추락할 것이다.”
“설마 이 상황에서 체면을 신경쓰시는 겁니까?”
나는 두 분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기 전에 끼어들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진정하세요.”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생각에도 맹에 알리는 건 시기상조라고 봐요.”
아버지가 큰 충격에 빠진 낯을 했다. 거의 울 것같았다.
반면에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무랐다.
“이것 보아라. 연이도 반대하지 않느냐! 네 생각이 얼마나 말도 안 되면 이 아이도 반대해?”
“할아버지,
아버지 자극하지 마세요!”
나는 한숨을 내쉬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울지 마시고요. 잠시만 제 설명을 들어 보세요.”
살짝 발끈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울지 않았느니라.”
나는 살짝 미소 짓고 말했다.
“맹에도 첩자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지.”
“아뇨, 약을 쓸 거였다면 진작 썼을 거라는 거죠. 제가 주화입마에 빠진 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잖아요?”
“······.”
그사이 손을 써도 몇 번은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맹은 아직 조용했다.
‘지금은 한창 맹회 중이겠네.’
내 기억상으로 몇 년간은 맹은 별문제 없이 굴러갔다.
아버지가 다소 침착해진 어조로 말했다.
“네 뜻은 그러니까 마교가 지금껏 손을 쓰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냐?”
“네! 맞아요.”
“그래,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저것이다!”
나는 입을 비죽이며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럼 그것부터 말씀하셔야지 왜 아버지랑 싸우고 계세요?”
“말하려 했는데, 아니 저놈이 눈이 뒤집혀서 먼저 내게 대들었으니라!”
“······.”
내 눈초리에 할아버지가 헛기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