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야율과 저번에 제갈화무 앞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다시만나 사과를 하고 회포를 풀었다. 하지만 길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가 살짝 흥미 있는 듯 목검 방향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원래 있던 곳에 내려 두었다. 그리고 검을 멈추기가 무섭게 또다시 상념이 밀려들어 왔다.
이번엔 다른 주제였다.
‘대체 왜 마교가 가만히 있는 걸까?’
오래전 고모를 이용할 계획을 꾸민 녀석들이다. 고모의 이번 이상행동을 진즉에 눈치챘을 터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
‘대체 왜?’
이 일보다 더 신경 써야 할 다른 일이 있는 건가?
새롭게 드러난 지실이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후우······”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그때 야율의 목소리가 상념을 뚫고 들어왔다.
“무슨 생각 해?”
아, 사람을 앞에다 두고 너무 딴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를 응시하던 야율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4공자님 일 때문에 그래?”
“응?”
“4공자께서 가주가 될 거라던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반문했다.
“네 귀에도 들어갔어?”
“네 일에는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나는 비스듬히 바닥을 바라보았다. 어디든지 털어놓으면 이 불안하고 답답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려나?
곧이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날 소가주로 임명하시겠대.”
“그렇구나.”
뭐야, 대답은 이게 끝이야?
내가 더 할 말 없냐는 듯 바라보자 야율이 잠시 눈을 굴렸다가 덧붙였다.
“축하해. 너라면 잘할 거야.”
“그래······ 아주 고맙다.”
털어놓은 대상이 잘못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야율이 물었다.
“네가 가주가 될 거면, 백리 세가에 계속 있어야겠네?”
“아직 소가주야. 가주 아니거든. 큰일 날 소리를.”
“어쨌든 여기 계속 머물러야 하는 거지? 다른 데 안 가고?”
“내가 다른 데를 왜 가?”
“그렇지. 그래. 정말 잘됐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눈을 접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쪼르르 다가와 물었다.
“그럼 나중에 네가 가주가 되고 나면 나 여기서 지낼래.”
“백리가의 객원 무사를 하겠다는 거야?”
백리세가의 사람은 아니나 머물면서 손이 필요할 경우 돕는 이들을 그렇게 말했다.
“응.”
“뭐······ 너 하나 정도 지낼 자리는 마련할 수 있겠지.”
“그럼 약속해.”
“저기 나 아직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래도.”
그런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며 걷던 내가 주변을 둘러보고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야?”
“네 처소로 가고 있었는데.”
“나 그 일 이후로 계속 수백당에서 지내잖아.”
“······거긴 불편해서.”
하긴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라 손님은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었으니 불편할 만했다.
“그래. 나도 한번 가서 살펴야겠다.”
다소 안도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를 잠시 이상하게 바라보았다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처소에 도착하고 나서도 이상한 행동은 계속되었다.
처소를 감싼 담벼락 문 앞에 서있던 하인 한 명이 우리를 보자마자 황급히 안을 뛰어들어 갔다.
이어서 또 이상한 점을 느꼈다.
“쟤네가 왜 여깄지?”
“누구?”
“류청이랑 하령이 내 처소에 있는데?”
“그래?”
야율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 후 채근하듯 말했다.
“들어가자.”
뭐지······?
나는 야율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평소라면 쟤네들이 있는 걸 알자마자 다른 데로 가자고 할 사람이었다.
야율은 다른 사람이랑 함께 있는 걸 무척 불편해했다. 딱히 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야율은 그냥 사람과 있는 것 자체를 못 견디는 느낌이었다. 배정된 방에 하인도 다가오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나는 그게 아마도 천귀조에게 잡혔을 때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여겼다. 그나마 나 때문에 저 아이들과 어울리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쟤네는 주인도 없는 처소에서 뭘 하는 거야?’
아버지도 자리를 비웠고 나도 수백당에 있는데······.
심지어 남궁류청과 서하령뿐만이 아니라 진진에, 나와 어울리던 백검단원 아이들도 몇 명 보였다.
나는 빨리 확인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처소로 통하는 문을 넘어가고 마당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뭐야?”
넓은 마당에 탁자가 ㅁ 모양으로 마련되어 하인들이 부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연아.”
“언니!”
서하령과 진진이 쪼르르 달려와 내 양팔을 붙잡고 마치 연행하듯 끌고 갔다.
“이쪽, 이쪽이야.”
“왜들 이래? 뭐 하는 건데? 이게 대체 뭐야?”
나는 중앙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혀졌다.
“네 생일 축하연!”
“응?”
“며칠 전에 생일이었잖아! 바쁜 것 같아서 제대로 축하도 못 하고······ 그래서 우리끼리 가볍게 축하하지고 마련했어!”
“아니······ 이런 걸 언제······?”
나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궁류청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내 시선을 피했다. 굳은 표정은 화가 났다기보단 뭔가 어색하고 쑥스러워 보였다. 다른 백검단원들은 짓궂은 낯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 서 있던 금쇄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기씨, 4공자님께 허락받고 한 일이에요!”
“아버지께 허락을 받았다고?”
“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왠지 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울컥 치솟는 기분이었다.
“그······ 소녹은?”
이 자리에 없는 게 이상해 물었다.
서하령과 백검단 아이 한 명이 전음을 교환하는 게 보였다.
곧이어 소녹이 나타났다.
소녹은 큰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이를 보곤 어이가 없어서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저건 대체······?’
3단으로 쌓인 찐빵에 12개의 초가 꽂혀 있었다. 그 괴상망측한 모습에 찡하게 치솟던 감동이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네가 내 생일 때 저러고 축하해 줬잖아. 분명 그때 네가 너희 지역 사람들은 이러고 축하한다며? 내가 말하니까 여기 사람들 아무도 모르던데?”
“······.”
“자기네들이 언제 이런 식으로 축하했냐고 그러던데?”
당연히 모르겠지······!
내가 남궁 세가에 머물 때 서하령의 생일이 있었다.
당시 난 하령이에게 줄 선물도 딱히 없고 그냥 저렇게 간당하게 축하해 줬다. 그때 대충 우리 지역에서는······ 이러고 둘러댔는데······.
“내가 진짜 창피해서! 정월도 아닌데 폭죽은 왜 찾느냐고 다들 이상하게 봤다고!”
남궁류청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진작 말했잖아. 네가 속은 거라고.”
“······.”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아하하하학!”
의자에 안자은 게 아니라면 배를 잡고 뒹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탁자를 두드리며 웃다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포, 폭죽은······ 폭죽은 어딨어?
빨리 터트려 줘.”
서하령이 성난 낯으로 소리쳤다.
“안 가져왔어!”
“왜에 – 해 줘 -!”
그렇게 치근덕거리고 있을 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시작한 거야?”
서하령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음, 좀 늦었네.”
“아니, 왜 이제 와요? 원래 연이는 제갈 세가주께서 데려오기로 했잖아요! 하도 안 와서 야율이 갔잖아요!”
“사과할게.”
제갈화무가 순순히 사과하자 서하령이 더는 뭐라고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야. 날 데려오는 임무가 원래는 너였어?”
“들은 바대로.”
“네가 거짓말을 잘할 것 같았나 본데.”
“억울한걸. 너한테는 늘 진실했던 것 같은데.”
실없는 얘기를 나눈 후 말했다.
“무리해서 올 필요는 없어.”
서하령이 늦은 이유가 아픈 거였던 거냐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 그래서 늦은 건 아니고······.”
흐리게 웃은 제갈화무가 주제를 돌리듯 서책을 내밀었다.
“이거 선물이야.”
그 뒤로 한 명씩 내게 선물을 건넸다
서하령, 백검단 또래 아이들. 진진은 일하느라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다른 친우들의 선물도 함께 건넸다.
그리고 마침내 남궁류청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네가 무슨 선물을 준비했을지 다들 기대되는가 본데?”
“기대할 것도 많군.”
남궁류청이 내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함을 건넸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전혀 예상가지 않았다.
‘이러니 다들 궁금하지.’
내가 나무함의 잠금쇠를 풀 때였다.
“도련님! 도련님!”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며 마당으로 뛰어들어왔다.
뛰어 들어온 자는 남궁류청의 하인으로 남궁 세가에서부터 함께 온 이였다.
한참을 뛰었는지 거세게 숨을 몰아쉬는 하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마치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 싶었다.
인상을 찌푸린 남궁류청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숨을 몰아쉰 하인이 다시 외쳤다.
“무림맹 본성이 마교의 습격을 받았답니다!”
“······.”
모두 말하는 것조차 잊은 채 눈을 부릅뜨고 하인을 보았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남궁류청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찌 되었느냐?”
“소가주님도 본성에 함께 계셨는데······ 본성은 지금 거의······ 거의 전멸 상태라고 합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제갈화무를 보았다.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제갈화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힘이 빠진 손에서 미끄러진 나무함이 바닥을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