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그렇게 아버지가 도착한 이튿날 정오가 조금 지나서, 나와 남궁류청이 함께 있는 수색 본대가 악양에 도착했다.
아버지만큼은 못하더라도, 이동을 재촉하느라 다들 도착했을 때는 다들 녹초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점차 무더워지는 날씨에 체력소모가 엄청났다.
다행히 먼저 악양에 도착한 일행이 객잔을 통째로 빌려 놓은 상태였다. 3층짜리 평범한 사합원 형태의 객잔이었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남아있던 인력을 제외하고,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수색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우리는 모두 돌아오실 때까지 잠시 쉬기로 했다.
위층에 짐을 풀고 내려오자 열린 문으로 넓은 중앙 정원이 보였다.
“음?”
그곳을 가로질러오는 남궁류청이 보였다.
‘저쪽은 밖인데?’
남궁류청도 나를 보고는 멈칫했다. 굳어 있는 얼굴에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볕이 내리쬐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잠깐 객잔의 주변 거리를 좀 살펴 봤어. 별문제는 없어 보이더군.”
“아, 응. 수고했어.”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침묵했다.
“······.”
“······.”
뭔가 엄청나게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는 게 그날 이후로처음이지?’
바쁘기도 바빴고, 이동하는 동안은 늘 다른 사람과 섞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이후로 계속 신경 쓰였으나, 마땅히 말할 기회가 없어 담아 담아 두었던 말을 했다.
“그날 화무의 말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남궁류청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갈화무는 우리와 함께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고 해야 했다. 마교가 제갈 세가 또한 습격했기 때문이다.
제갈 세가의 오래된 보물이 가득한 창고와 서고가 모두 불타고, 그 화재에 휩쓸려 제갈화무의 친모도 크게 다쳤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 우리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심지어 제 가문에 대한 일을 할아버지와 아버지께는 말씀드려 놓고 내게는 출발 전까지 감쪽같이 속였다.
인상을 쓴 남궁류청이 말했다.
“됐어. 당장 떠나도 모자랄 상황에, 내 친부를 위해서 그 정도로 신경 써 준 것만으로 흥, 감사히 여겨야지.”
아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내 속마음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남궁류청이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괜찮아. 어차피 날 위한 게 아니고 널 위한 것이었으니까.”
“······.”
“그래도 도움 받았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라서.”
남궁류청이 팔짱을 끼고 입매를 비틀었다.
“기분 더럽군.”
이를 털어 내듯 남궁류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어차피 오래 못 산다며?
억울하겠지.”
“억울?”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게.”
“······.”
제갈화무는 나를 좋아한다 말하고서는 그 정도 선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굴었다.
그때는 당황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이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을 수가 있나?
감정이란 건 서로 교류하길 바라는 게 아닌가?
‘뭐, 내가 무슨 TV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연예인도 아니고.’
제갈화무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성인군자는 더더욱 아닐 테고.
왜 그런 식으로 구는지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할 테니까, 내게 답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본인이 얽매이지 않는 수밖에 없지.”
“오······.”
“그 반응은 뭐야?”
“아니, 웬일로 좀 맞는 말을 해서.”
아픈 사람을 위한 자비도 답지 않게 발휘하고.
‘아픈 사람한테 검 뽑으라고 윽박지르며 싸울 것 같은 싸움꾼 이미지였는데.’
회귀 후 첫 만남에서 폭언 퍼붓던 그때에 비하면 확실히 성숙해진 대처였다.
“정말 많이 컸네.”
“뭐?”
남궁류청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예전부터 이상하게 여겼는데, 너 왜 날 애 취급하는 거지? 나이를 따진다면 내가 너보다 연상이야.
오라버니라고······.”
“헉, 잠깐만!”
“왜, 무슨 일이야?”
남궁류청이 낯을 굳히며 경계하듯 검집에 손을 올렸다.
“나 오라버니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있어.”
“알 뭐?”
남궁류청이 또 헛소리 시작이냐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대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장난치지 마.”
“아니야. 자, 들어 봐. 나한테 오라버니라고 하면 백리명이랑 백리표, 소우악이란 말야.”
“그게 뭐?”
“그래서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그 사람한테 왠지 정이 떨어져.”
“······.”
남궁류청은 긴가민가한 의심스러운 낯이었다.
무작정 헛소리 말라고 다그치기에는 그도 백리 세가에 머물면서 못 볼 꼴을 꽤 본 상태였다.
나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야. ”
“너······.”
“뭐어 굳이 네가 오라버니라고 불러 주길 바란다면 불러 줄 수 는 있지만, 기억해 두라는 거. 내게 오라버니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알았어. 부르라고 안 해. 안 한다고.”
남궁류청이 성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휴우.
다행이었다. 회귀전에도 오라버니라고 부른 적 없이 공자, 공자 불러 댔는데 회귀 후에 오라버니라니?
으, 그건 좀. 소름.
‘정신 연령으로 따지면 내가 누나라고!’
게다가······
‘소설에서 백리연이 남궁류청에게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면서 졸졸 따라다녔다고······!”
고개를 내젓다가 남궁류청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본 우리는 언제 어색했냐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후우,
정말 너랑 얘기하고 있으면······.”
“있으면?”
“······.”
“있으면? 왜 말을 하다 말아?”
“말려드는 기분이라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남궁류청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맺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궁류청의 웃는 모습이었다.
원래도 잘 웃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근래는 정말 굳은 표정만 봐서 웃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미소도 아주 잠깐이었다. 금세 웃음기가 사라진 굳은 낯은 우울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른스럽게 이 상황을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을 터였다.
“괜찮아.”
허공을 향했던 남궁류청의 시선이 다시 나를 보았다.
“아저씨는 살아 계실 거야. 여기서 돌아가실 분이 아니야.”
“······당연한 소릴.”
턱을 꼿꼿이 세우며 답한 남궁류청이 다시 발을 뗐다.
나를 향해 다가오던 남궁류청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맞아. 제갈 세가주의 일을 왜 네가 대신 사과하는데?”
“그 얘기 끝난 거 아니었어? 집착남도 별로 좋지 않아.”
“집착남은 또 뭐야? 네가 좋아하는 게 있긴 한가?”
“그럼! 내 아버지.”
“하아.”
“말 돌리지 말고.”
대충 넘어가려던 나는 얼굴을 긁적였다. 남궁류청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제갈 세가주 대신 사과해야 할 관계도 아니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신 할 수도 있지. 우리 집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친구니까.”
“대신 사과할 정도의 관계는 친구라고 보기엔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음······.”
생각해 보면 남궁류청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신 사과할 필요까진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와 관련한 얘기기도 했고, 제갈화무에게는 왠지 모를 동지의식이 샘솟았다.
‘······내 회귀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니.’
야율과 남궁류청 둘 다 회귀 전에 얽힌 이들이고,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제갈화무는 오로지 이번에 처음 만나서 처음 쌓아 간 인연이라서······.
그래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 마음이 쓰였다.
“넌······.”
나를 빤히 바라보던 남궁류청이 한숨을 내쉬며 고갯짓했다.
남궁류청의 고갯짓을 따라 본 방향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야율이 있었다.
야율이 내게 다가와 접시 위의 잔을 건넸다.
“여기 시원한 물.”
“아, 고마워.”
객잔에 들어오기 전에 마시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해 둔 모양이었다.
잔을 집어 마시려던 나는 남궁류청의 시선을 느끼고 바라봤다.
“왜? 너도 마실래?”
남궁류청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쉬고 있어, 대협께서 오시면 사람을 보낼 테니까.”
나는 몸을 돌려 휙 자리를 뜨는 남궁류청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야율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멈칫했다. 멀어지는 남궁류청을 바라보는 야율의 시선이 싸늘하다 못해 서릿발 같았기 때문이다.
원래도 남궁류청과 야율의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거의 소 닭 보듯 한 무심함을 기반으로 거슬려 하는 정도였었다.
“······야율?”
내 부름에 돌아보는 야율은 언제 그렇게 남궁류청을 보았냐는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