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 * *
그 시각 백리 세가가 머물던 객잔.
남궁류청은 내게 쉬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으나, 나는 다른 관도 마저 살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머리가 화끈거리던 느김도 이젠 거의 사라졌다.
‘뭔가 더 얻어 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갑자기 내 어깨를 짚는 손길이 느껴졌다. 남궁류청이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응?”
“입술 좀 내버려 둬.”
“어?”
그제야 내가 계속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궁류청이 날 수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 혹시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어?”
“······.”
“있군. 말해.”
남궁류청이 원래 이렇게 눈치가 좋은 아이였던가?
남궁류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보았다.
“혼자서 감당하지 말고 말해.”
그런데 왠지 말하는 어투가 캐묻는 것보단 나를 걱정하는 듯했다.
그때 분위기를 깨듯 막개가 중얼거렸다.
“대협이 좀 늦으시는데 소저, 뭐 들은 거 없나?”
“그러게요. 좀 늦으시네요.”
악양이 넓다고 한들 비상 연락을 했으니 아버지가 돌아오겠다 마음먹기만 한다면 금방 오실 터였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라고 해야 할까? 거지 한 명이 요란스럽게 객잔으로 들어왔다.
막개의 표정이 살짝 굳었으나 금방 아무렇지 않게 변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
숨을 다급하게 몰아쉰 거지가 나와 남궁류청을 보고 멈칫했다.
“이쪽은 남궁 공자고 이쪽은 백리 소저네.”
남궁류청이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와 관련한 일이라면 저 또한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거지가 얼굴을 긁적이자 막개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쪽 저잣거리에서 마교 놈들이 나타났네.”
막개가 상상도 못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아니, 왜? 무슨 일로!”
“양민 차림새를 한 무림인과 싸움을 벌였는데, 양민 차림새의 무인이 지고 그놈들에게 잡혀갔다네.”
“잡혀간 사람은······?”
“모르겠습니다. 목격한 녀석 말로는 남궁 세가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마 백호단원이 아닐까요?”
“하,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드디어 미친 건가? 하긴 맹을 습격한 것부터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래도 대체 뭐가 그리 급했던 거지?”
막개가 심각한 낯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다 물었다.
“그래서 그놈들은 쫓았겠지? 어디로 갔나? 드디어 근거지를 잡겠군.”
“그게······.”
거지가 갑자기 시선을 피하며 말을 우물거렸다.
눈을 끔뻑이던 막개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거지가 말했다.
“놓쳤습니다.”
“뭐 악양에 깔린 방도가 몇인데 그놈들을 놓쳤다고!”
거지가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아이고, 이 식충이 놈들 대체 뭘 한 거야?”
“혹시 나타난 마교도가 맨손을 썼다던가요?”
“어, 맞아. 어떻게 알았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천귀조예요.”
“천귀조라고?”
“네. 상대가천귀조니 놓치는 것도 당연하겠죠.”
“아니, 잠깐. 천귀조가 여기서 왜 나와?”
막개의 눈이 커지고, 막개에게 한 소리 듣던 거지도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우리야 첩자의 정보로 천귀조가 합류한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은 처음 듣는 소리일 터였다.
그들이 수습한 시신들에도 천귀조와 전투한 흔적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남궁완 아저씨만 노린 모양이었다.
황상처럼 보인 기억속에서 천귀조는 인피면구를 하고 있었다.
무공을 자세히 살펴보는 게 아니라면 멀리서 본 것만으로 그의 정체를 알아보기는 어려울 터였다.
거지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에이, 뭘 잘못 안 게 아니냐?
천귀조가 악랄한 마두긴 했지만 마교와는······”
그때 남궁류청이 자못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연이가 거짓말이라도 한단 말입니까?”
“그······ 그럴 리는 없겠지.”
“아신다면 이런 쓸데없는 논쟁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
음, 오랜만이었다. 저 성질머리.
나야 굳이 설득할 필요 없어서 편했다.
그렇게 거지의 입을 막은 남궁류청이 막개를 보았다. 너도 쓸데없는 소리하면 가만 안 둔다는 눈빛이었다.
막개가 고개를 주억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천귀조라면······ 우리를 따돌릴 만하지.”
천귀조가 용봉지회 습격 사건때 무림맹의 추적을 따돌린 일은 아주 유명했다.
당시 무림맹의 요청으로 개방뿐만 아니라 근방의 백도 정파들과 제 혈족이 피해를 본 사천 당가, 산동 악가도 사람을 보내 천귀조를 추적했다.
하지만 남궁완 아저씨께 부상을 입은 몸으로도 천귀조는 추적을 따돌렸다. 백도 무림이 제대로 자존심을 구긴 일이었다.
‘하지만 천귀조가 아무리 자신만만하다고 해도 지금 모습을 드러낸 건 이상해.’
“그래서 천귀조가 나타난 곳이 어딥니까?
“어, 어? 가, 가 보게?”
남궁류청이 안내하라는 듯 고갯짓했다.
거지가 당황하여 막개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런 남궁류청을 붙잡았다.
“잠깐만.”
“넌 따라오지 마. 여길 지켜야지.”
그러고는 첩자가 있는 방향을 흘끔 보았다.
“아니, 잠깐 기다려 봐. 혹시 지금 이 사실을 아버지도 아시나요?”
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리 올 때, 우리 방도가 그쪽으로도 향했으니 소식이 들어갔을 걸세.”
“그럼 대협도 그쪽으로 가셨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지.
“왠지 늦어지신다 했더니만.”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에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정면에 와 닿는 빛에 눈이 부셨다. 머릿속에는 정반대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흐린 날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마교와 전쟁이 촉발되어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 않았던가.
남궁완 아저씨도 이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남궁완 아저씨가 아버지처럼 돌아가시는 건 아니었다. 다만 오른팔이 잘려, 다시는 검을 들 수 없게 되었을 뿐.
소설에서 남궁류청이 같은 편이어야 할 무림맹주에게 어처구니 없는 견제와 핍박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항렬상 무림맹주를 견제할 수 있는 보호자가 실각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남궁 세가주께서 계신다고 하지만 그분이 사소한 일까지 매번 나설 수는 없었다. 남궁류청이 그런 걸 의논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런데 이번에도 오른팔에 부상이라니.’
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이 들어간 깊이를 보아선 분명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상은 아니었다.
‘그냥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는 막개를 보았다.
“마교의 은신처, 알아내셨죠?”
막개와 남궁류청과 얘기하고 있던 거지 모두 깜짝 놀라 나를 보았다.
막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야 얼마나 좋겠느냐? 휴우.”
“객잔에 마교의 첩자가 잠입해 있었어요.”
“······.”
나는 다시 물었다.
“은신처 알아내셨죠?”
눈을 끔뻑이던 막개가 마른 입술을 훑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막개가 거지를 향해 눈짓했다. 거지가 멀어지면서 주변을 경계하듯 살폈다.
남궁류청이 조금만 잘못 말하면 당장 검을 뽑을 것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풍겼다. 거의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알면서 지금껏 조용히 있었던 겁니까?”
막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잠깐. 진정하게. 대협이 오면 말씀드리려고 했네! 그리고 완벽하게 찾은 건 아니라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막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마교 녀석들이 있을 법한 곳으로 추린 건 네 곳일세. 오늘 일로 알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하필 천귀조라니.”
막개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네 곳중 두 곳은 가짜로 만든 곳일 걸세. 그리고 한 곳을 건드리면 다른 곳에도 곧장 알려지도록 만들어 놨지. 만약 가짜인 곳을 건드리면 진짜 은신처에 숨어 있던 놈들이 바로 도망치겠지. 그래서 우리도 더 알아보지 못했던 게야. 어차피 지금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 중요한 건 남궁 소가주를 중심으로 한 생존자들이니까.”
그리고 막개가 말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개방은 마교와 직접 전투를 벌일 의욕이 없다는 것이었다.
개방도의 수는 그 어떤 방파도 따라올 수 없다고 하지만 대부분 정말 삼류.
마교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긴 했으나 개방이 직접 전투를 벌이는 건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무림맹의 습격으로 개방도도 상당히 죽었으며 개방과 무림맹은 오랜 동맹이었으니까.
그러니 자신들은 정보를 수집해 우리에게 넘기고 대신 싸우게 만드는, 우리에게 투견 역할을 시킬 생각이었을 터다.
막개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대체 소저는 어떻게 눈치 챈 거야?”
“아버지를 도우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막개가 황당하단 얼굴을 했다.
“고작 그걸로?”
“시신 수습을 하는 동안 마교가 숨어있는 근거지도 추려 내지 못했으면 강호 제일의 정보 방파라는 이름을 떼야죠.”
“으음······.”
막개가 침음성을 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도 그렇군. 그래서 소저, 객잔에 잠입한 첩자라니? 심지어 잡았다니?”
“점원으로 위장해서 들어와 있었어요.”
“점원으로? 대체 언제······? 첩자를 잡은 건 역시 소저가 알아 낸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아주 잘 됐어. 알아낼 수 있는 게 꽤 되겠군. 그 전에 일단 한번 볼 수 있겠나?”
“그건 안 돼요.”
막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저,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 첩자는 우리가 실수로 놓칠거니까요.”
“······뭐라고?”
막개와 남궁류청이 그게 지금 무슨 미친 소리냐는 듯이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