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남궁류청은 굳은 얼굴로 다가오는 야율을 노려보았다.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도와주었지만, 거짓말까지 한 이 상황이 그의 마음에 들진 않았다.
남궁류청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번만이야. 앞으로 이런 거짓말 하게 하지 마. 알았어?”
야율은 대답도 없이 바로 창고 문고리를 잡았다.
열기 직전 야율이 갑자기 물었다.
“너, 기막 펼칠 줄 알아?”
“뭐, 기막?”
남궁류청은 살짝 자존심 상한 표정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막을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다 인정할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기막을 펼칠 바에는 전음을 하는 게 훨씬 쉽고 간편하니 그다지 필요없기도했다. 다른 여러 수련으로 바빴던지라 기막 수련은 뒷전이었다.
남궁류청만이 아니라 대부분 검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연이는 펼칠 줄 알던데.”
“하, 걔는 원래도 그런 기교에 뛰어나잖아. 그러는 너는?”
야율이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
“못 하니까 물어본 거지.”
“······.”
야율이 말했다.
“그럼 잠깐 자리 좀 비워 줘.”
야율을 노려보던 남궁류청은 몸을 휙 돌려 멀어졌다. 같이 있는 시간을 한시라도 더 줄이고 싶다는 태도였다.
야율은 남궁류청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즈음 문을 열었다.
끼익.
야율이 연 문에서 들어온 빛이 한낮임에도 어두컴컴한 창고 안을 밝혔다.
꽤 넓은 창고 안은 짐을 모두 치운 모양인지 바닥에 앉아 있는 천귀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달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보통 내공을 잃어서 저렇게 되진 않았다. 아마도 마공으로 얻은 내공이었기에 저렇게 된 것일 터였다. 쉽게 얻은 강한 힘은 그만큼 부작용도 컸다.
바닥에 그려진 그림자가 야율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다 문이 닫히고 그대로 어둠 속에 잠겼다.
어두워진 창고 안에서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흐흐, 찾아올 줄 알았다.”
“······.”
“생각보다 늦었어.”
야율은 답하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천귀조에게 다가갔다.
천귀조도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단 말이지. 분명 백리의강이 눈감아 준 게 아니라면 네가 이렇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그래 놓고는 나를 무림맹으로 끌고 가려고 하다니. 내가 입을 열면 곤란해질 게 한두 개가 아닐텐데, 주제에 고결한 척은······.”
천귀조가 숨찬 듯 기침을 했다.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에 반해 너는 참을 수 없었겠지.”
천귀조는 야율을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백리의강의 딸 옆에 붙어서 눈치 보기 바쁘다던데. 네가 흡성마공을 매운 사실을 그 애지중지하는 계집애한테 들키고 싶진 않겠지. 이렇게 온 건 내 입을 막고 싶어 온 것이겠지?”
“······연이는 아는데.”
“뭐?”
“내가 처음 만났을 때 흡성마공 쓰는 걸 보여 줬으니까.”
야율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미소 지었다. 제가 죽인 화분의 가루를 치우던······.
천귀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야율을 바라보았다.
“······부녀가 짜고 무림맹을 속이다니, 네가 대체 뭐라고? 남궁완은 아나? 아, 하긴 이제 팔 병신이 되어서 별로 상관없으려나?”
야율이 조소했다.
천귀조의 표정이 굳었다.
“왜 웃지?”
“네 멍청한 착각이 웃겨서.”
“뭐?”
“······.”
야율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야율을 노려보던 천귀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철창 열쇠를 내놓고 내가 쓴 서신 하나를 전하거라.”
야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네가 죽인 아이들과 흡성마공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 주지.”
천귀조가 움직였는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계집이 안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나? 네가 흡성마공을 배우고 무고한 아이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을 터. 어차피 너도 이것때문에 온 게 아닌가?”
“······하.”
야율이 고개를 틀며 한숨을 내쉬었다가 천귀조에게 바짝 다가갔다.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귀조가 깔고 앉은 멍석 아래에서 천 조각을 꺼냈다. 야율이 말했다.
“내가 널 어찌 믿고?”
천귀조가 혀를 찼다.
“야율아, 이런 귀한 비밀을 내가 뭐 하러 말하고 다닌단 말이냐? 내 손에 쥐고 있을 수록 가치가 높아질 텐데. 물론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 창고를 나가는 순간부터 네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겠지만.”
마치 아직 세상살이에 무지한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며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천산염제가 이런 건 가르치지 않았나 보지? 천산염제의 제자라니. 하하, 네 진짜 스승은 나인데말이야.”
야율이 천귀조에게서 천 조각을 건네받았다. 더러운 것을 만지듯 검지와 엄지로 살짝 쥔 천 조각에는 작게 글이 적혀 있었다.
“이걸 전해 달라고?”
“그래. 서호방의 동작이란 자를 찾으면 된다.”
“그래.”
그 대답과 함께 천귀조의 얼굴 앞으로 뭔가 확 뿌려졌다.
“······!”
강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자답게 천귀조는 바로 숨을 멈추고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다.
절그럭.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야율이 태연한 태도로 천귀조의 족쇄를 밟고 있었다.
절그럭, 절그럭!
천귀조가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몸부림쳤으나 야율의 발은 미동도 없었다. 이내 천귀조가 더는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흡수되었다.
“허억! 헉! 켁! 콜록, 캑캑!”
헉헉거리며 숨을 들이쉬던 천귀조가 기침하기 시작했다.
“지금 켁, 캑! 무슨 짓을······!”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세운 천귀조를 내려다보는 야율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살짝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는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천귀조가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으로 야율을 가리켰다.
“네가, 네가······ 가, 감히 컥, 컥.”
어떻게든 숨 쉬는 것을 줄이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천귀조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졌다.
어느 순간 코와 입가로 주륵 피를 흘렸다. 곧이어 눈을 까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간헐적으로 떨리던 움직임마저 완전히 멈추고. 야율의 손에 있던 천 조각이 갑자기 확 타오랐다.
뜨겁지고 않은지 야율은 그대로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마치 불꽃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야율과 천귀조 주변의 허공에 불꽃이 타올랐다.
허공에 타오르는 불이라니 누군가 본다면 제 눈을 믿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기이한 불은 갑자기 피어났듯 갑자기 꺼졌다. 더 태울 독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율이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잠시나마 환하게 밝아졌던 창고안이 다시 어둠에 잠겼다.
야율은 바닥에 널브러진 천귀조의 시신을 가만히 바라봤다.
악취나는 어두운 공간과 시체.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야율이 자기 손으로 죽인 아이들은 다섯이 넘었다.
“뭘 새삼.”
그리고 그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느낌이었다.
“악종이구나! 지금 죽여 그 싹을 잘라야겠다.”
“헉, 소가주님! 안 됩니다.”
바람이 느껴지고 귀 아래부터 목덜미가 뜨끔한 느낌. 새파란 검이 그의 목을 간신히 빗나갔다.
“이런 쓰레기를 살려서 뭐 해?”
그리고 또 다시 사내가 소리쳤다.
사내의 목소리는 들어 본 적 있었다. 야율은 잠시 고민했고 곧 그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남궁 소가주. 남궁완의 목소리였다.
“······?”
이런 일이 있었나?
기억과 전혀 달랐다.
분명 천귀조에게 잡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내게 말을 건 사람은······.
“네가 생존자구나······.”
백리 대협이었다.
남궁소가주는 전혀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건 무슨 기억인 거지?
쾅쾅!
야율이 살짝 놀라며 문을 돌아보았다. 누군가 이렇게 접근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니.
문 너머에서 남궁류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시간을 줘야 해?
적당히 하고 나와.”
“······.”
쾅쾅.
“왜 대답이 없어?”
“······”
쾅쾅쾅.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두들기는 소리가 뒤로 갈수록 조급해졌다.
“야율!”
문이 벌컥 열리고 남궁류청이 뛰어들어 왔다.
“······.”
남궁류청이 자신을 바라보는 야율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뭐야, 멀쩡하면서 왜 대답을 안 해?”
“······.”
남궁류청이 야율을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
“볼일 끝났으면 나와. 백리 세가 무사들이 의심할 수 있으니······.”
말을 이어가던 남궁류청이 그제야 천귀조를 보았다.
어둠속이어도 야율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듯, 남궁류청도 이와 같았다.
대낮처럼 시야가 밝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하게 느낄 정도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남궁류청은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꽤 긴 침묵 후 남궁류청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뭐야?”
“······.”
“설마······죽은 거야?”
“응.”
“응.”
야율의 대답에 남궁류청이 고개를 매섭게 돌렸다.
“으응? 으으응? 지금 천귀조가 죽었는데 그냥 응이라고?”
“얘기하다가 갑자기 죽었어.”
남궁류청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너랑 말하다가 그냥, 갑자기, 죽었다고?”
“응.”
“······.”
“······.”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남궁류청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이놈을 왜 살려 놨는데······!”
다가간 남궁류청이 야율의 멱살을 덥석 잡았다.
“변명이라도 제대로 하는 성의를······.”
소리치던 남궁류청이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남궁류청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열린 창고 문과 다가오는 기척을 살폈다. 그리고 다가온 인물을 보고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창고 문 앞에 선 백리연이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