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밖에서 그런 사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시각 백리의강은 야율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남궁류청은 일단 남궁완의 곁을 지키라 보내 놓은 상태. 백리연도 다른 방에 따로 머물며 자신이 찾아갈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한 상황이었다.
백리의강은 활짝 열려있던 창을 닫으며 야율을 돌아보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더냐?”
“어찌 된 일이냐니요? 이미 심증은 저로 굳히신 거 아닌가요?”
“······.”
“그러니 저와 가장 먼저 얘기하고 계신거잖아요?”
백리의강이 담담하게 말했다.
“천귀조와 가장 많이 얽혀 있는 자가 너이기에 너와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뿐이니라.”
멈칫한 야율이 얌전히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백리의강은 별다른 말 없이 움직여 찻주전자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야율 앞에 차를 따라 주었다.
“내 분명 네게 천귀조와 만나지 말라 이르지 않았더냐? 어떻게 그 안에서 나온 게냐?”
좀 더 명확해진 질문이었다.
야율의 날 선 말이 제 질문이 명확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침묵하던 야율이 질문으로 답했다.
“······제가 죽이지 않았다고 하면 믿으실 건가요?”
백리의강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
야율이 탄식하며 고개를 모로 틀었다.
“간단히 살펴보았을 뿐이지만, 사인은 알 수 없었다. 네가 아니라고 한다면 류청과 연이의 얘기를 들어보고 사이을 알아봐야겠지.”
“아니요. 제가 죽인 게 맞으니까 그러실 필요 없어요.”
백리의강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왜 그랬느냐?”
어느새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변한 야율이 되물었다.
“이유가 중요한가요?”
“······.”
“대협은 대협이 할 일을 하셨을 뿐이고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이죠.”
“네 할일이 천귀조의 목숨을 네 손으로 끊는 것이냐?”
야율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천귀조의 사인은 알아내셨나요?”
“······아직이니라.”
이를 알아보려면 검시에 소양이 깊은 이를 데려와 자세히 조사해야 했다. 무림맹이라면 모를까.
심지어 흑도 영역인 악양에서 그런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더운 날씨도 문제였다. 억지로 한다면야 불가능한 건 아닐터다.
하지만 굳이?
상대는 죽어 마땅한 마두였다.
그가 그 동안 납치해 간 아이들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야율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그런 놈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가 있었다.
“······.”
야율이 증언하지 않는다면 천귀조의 죽음은 누가 죽였는지 답이 뻔히 나와 있지만, 증거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게다가 야율의 증언으로 천귀조를 죽인 범인이 그라고 알려지더라도······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천귀조의 죽음에 따지고 들 사람이 없을텐데.
천귀조를 죽였다고 천산염제의 제자인 야율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기라도 한단 말인가? 되려 무림맹이 뭐하는 짓이냐고 욕을 먹게 될 일이었다.
백리의강이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내게 천귀조와 만나지 못하게 막았느냐고 물어보러 왔을 때부터 이미 천귀조를 죽일 생각이었구나.”
그때 야율이 말했다.
“독으로 죽였어요.”
“독? 그런 것을 지니고 다녔느냐?”
그런 위험한 것을 지니고 다녔냐는 듯한 말투였다.
“제 것은 아니고, 연이 거예요.”
“뭐? 연이 것이라고?”
침착함을 유지하던 백리의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정확히 말하자면 객잔에서 첩자가 연이를 공격할 때 썼던 독무 가루죠.”
백리의강도 들은 바 있었다. 첩자가 백리연을 공격할 때 이상한 가루를 퍼트렸다고. 백리연이 그걸 모아 두었다는 것도.
백리연이 그 공격에 다칠 만한 아이가 아니라는 건 믿지만 그래도 위험한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현재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뒷전으로 밀어 두었던 참이었다.
야율이 말했다.
“그걸 썼어요.”
백리의강이 미간을 좁혔다.
반면 야율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게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이었다면 죽을 것이고 별거 아니었다면 살았겠지요. 죽은 걸 봐선 독인가 보네요.”
“······.”
야율이 말을 이어갔다.
“천귀조가 제게 그러더군요. 무림맹에 제가 흡성마공을 익혔고, 이를 대협이 숨겻다고 알릴 거라고. 그럼 상황이 곤란해지지 않겠냐고. 그러기 전에 자신이 도망치는 데 협조해 달라더군요.”
백리의강의 표정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대협께도 이런 협박을 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저를 천귀조와 만나지 못하게 막으신 거 아닌가요?”
“······.”
“대협은······ 좋은 사람이죠. 대협의 명성을 저 같은 놈 때문에 더럽힐 필요 없어요. 그래서 죽였어요.”
“······.”
“이유를 물어보셨죠. 이게 이유예요.”
야율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대협, 반성은 없고 협박에 탈출을 생각하는 이런 쓰레기에게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신 건가요?”
“······.”
눈을 감은 백리의강이 머리를 짚었다. 하지만 거의 바로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다급히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야율과 얘기한다고 사람을 물려 놓은 데다가 원래 객잔 3층은 남궁완의 상태 때문에 늘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문밖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협.”
“무슨 일인가?”
“소가주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야율이 말했다.
“가 보세요.”
백리의강이 잠시 야율을 바라보았다.
“계속 하실 건가요?”
야율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잠시 고민한 백리의강이 결국 일어났다.
남궁완이 깨어난 이상 천귀조의 죽음은 뒷전으로 밀릴 터였다.
야율로서는 적기에 천귀조를 죽인 상황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아, 대협.”
나가려는 백리의강을 야율이 다시 불렀다.
“천귀조의 소굴에서 절 발견했을 때 대협께서 계셨죠?”
백리의강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기억나지 않느냐?”
“조금 헷갈려서요.”
“그래. 내가 널 데리고 나왔느니라.”
“그렇군요.”
야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용건은 그게 다라는 듯한 모습에 백리의강이 방을 나섰다.
방안이 텅 비자 야율이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창가였다. 백리의강이 닫았던 창으로 손을 뻗던 야율의 눈에 화병이 담겼다.
그의 손이 향한 곳은 옆자리 선반에 있던 꽃병이었다. 약간 시들한 꽃을 야율이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백리의강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야율이 의아한 눈빛으로 백리의강을 돌아보았다.
백리의강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율, 내 명성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건 너 때문이 아니라, 천귀조 때문이니라. 네 탓이라 여길 것 없는 일이다.”
백리의강은 오직 그 말을 하기 위해 온 듯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방을 떠났다.
“······.”
방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 * *
남궁완 아저씨가 멀쩡한 팔로 모습을 드러내자 남궁세가 사람들의 분위기는 거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가슴을 졸이던 백리세가와 백호단 사람들도 안도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남궁완 아저씨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무림맹의 본성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때마침 남궁세가에서 지원을 보낸 사람들이 드디어 근처에 당도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아직은 거리가 있어며칠 뒤에나 도착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바쁜 와중에 남궁완 아저씨와 긴 대화도 나누셨다.
그렇게 남궁완 아저씨가 깨어난지 이튿날, 나는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했다.
“완이 말 잘 듣고.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느냐.”
“네. 아버지도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몸조심 하셔야 해요.”
아버지는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삐를 당겼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지 한참 후에도 계속 서 있었다.
“아가씨 이만 들어가시지요.”
네.”
나는 좀 더 머물다가 남궁세가의 지원이 도착하면 남은 백리세가 인원들과 함께 귀환하기로 했다.
그리고 천귀조는······.
“근방의 야산에 묻었다네. 어후 지고 가는데 냄새가 심해 고생했네. 날이 더워선가 묻으려고 보니 벌써 구더기가 끓더군.”
소개가 다른 거지와 나누는 대화를 들은 것이 천귀조에 관한 유일한 이야기였다. 그것 말고는 아무도 천귀조에 관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 기쁜 상황에서 굳이 그런 마두 얘기를 꺼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뭐, 잘 됐지.’
그렇게 천귀조의 죽음은 자그만 파문만 일으키고 허무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