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창백한 빛의 검날이 야율을 가리켰다.
‘이걸······ 이걸 어째야 하나?’
야율은 처음부터 남궁류청을 이용할 생각이었던 게 분명하다.
뒤집어씌울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들······ 남궁류청이 베푼 호의를 야율이 보란 듯이 짓밟아 버린 건 달라질 것 없었다.
‘둘이 같이 있다길래 웬일인가 했더니만······.’
내가 잠시나마 기대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남궁류청이 느낀 배신감이 어떨지.
반면에 야율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쓸데없는 일로 힘 빼지 마.”
“······.”
“고작 이런 일 가지고 검을 뽑다니.”
야율의 방식과 태도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검을 뽑아 드는 건 지나친 방식이긴 했다.
나는 잠시 야율을 흘겨보았다가 말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 류청, 잠시 진정하는 게 어때? 자초지종을 따져 보고······.”
“자초지종?”
남궁류청이 헛웃음을 흘렸다.
“저 녀석이 나에게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 했는데?”
“천귀조가 얘기하던 중 그냥 궂었다더군.”
“······.”
나는 그 성의 없는 변명에 말을 잃었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그래. 연이 네 말을 들으니 알겠더군. 맞아. 저 녀석은 내게 뒤집어씌울 생각이 없었어. 처음부터 자신이 죽인 게 알려져도 상관없었겠지.”
남궁류청의 시선이 야율에게 향했다.
“그럴 가치가 없다고 여겨서. 천귀조의 죽음에도 그럴 가치가 없었고, 내게도 그럴 가치를 못 느껴서.”
“······.”
“너는 연이와 백리 대협만 납득시키면 될 테니, 누가 뭐라든, 내가 화를 내든 무슨 상관이겠어?”
“······.”
정답이었다.
야율은 살짝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제 속내를 제대로 숨기지 않았더라도 저렇게 남궁류청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나쁜 듯했다.
그때 너무 오래 소식이 없자 백리 세가의 무사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벌어 놓은 시간이 다 된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창고의 문을 닫고 기막을 펼쳤다. 그리고 일단 상황을 막아 보고자 입을 열려는 순간 남궁류청과 눈이 마주쳤다.
검을 든 남궁류청의 눈빛은······.
예상외로 침착했다. 분명 처음 내가 들어왔을 때만해도 분노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물론 아직도 화는 잔뜩 나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차분해 보이는 것이 되는대로 검을 뽑은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
그 눈빛에서 어떠한 의지가 읽혔다. 자신을 믿고 지켜봐 달라는 듯 보이기도 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잠시 물러났다.
야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로 고작 이런 일로 검을 뽑는다고?”
“그래. 네게 정식으로 비무를 신청하지.”
야율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별로 너랑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그냥 내가 졌다고 쳐.”
이를 꽉 깨문 남궁류청은 진정하려는 듯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네가 비무에서 이기면 천귀조의 죽음은 내 탓인 걸로 하겠어.”
“뭐?”
“내가 널 데려와 벌어진 일이기도 하니 어느 정도 내 탓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이 일을 외부에, 무림맹에 자신이 벌인 것으로 알리겠다는 뜻이다.
야율이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문제야 없겠지만, 귀찮은 일이 몇 생기긴 할 터였다. 그걸 막아주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의 사람들.
개방 사람들이 좀 걸리긴 하지만 우리가 입을 맞춘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가 죽인 사실을 숨실 생각이 없던 야율에게 굳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여전히 심드렁한 야율의 태도가 그런 뜻을 알리고 있었다.
“대신 네가 이기면?”
“진심으로 사과해.”
“······.”
야율이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을 했다.
“고작 그거?”
“그래.”
야율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때였다. 남궁류청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야율, 넌 내게 은인이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저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 그대로 머릿속을 빠져나갔다가 뒤늦게 파악했다.
“그래. 그걸 따지자면 나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있어.”
강호는 은원을 따진다.
남궁류청은 이를 명확히 하고있었다.
“날 이용한 건 기분 나쁜 일이지만······ 네 말대로 천귀조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지······. 그러니 따지고 들면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일이 맞아. 맞는 말이야.”
남궁류청은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또한 죽일 수 있다면 죽이고 싶었으니까.”
남궁류청의 시선이 싸늘한 시신이 된 천귀조에게 향했다.
야율이 잘됐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냥 넘어 가.”
남궁류청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야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래. 나는 은을 고작 이런 일을 넘기는 데 쓰고 싶지 않아.”
“······”
“여기서 이 응어리를 풀지 않고 네가 날 도와준 일을 따져 눈을 감고 넘어갈 수 있겠지.”
“······.”
“하지만 이렇게 넘어간다면 앞으로 난 너와 있을 때마다 네 진심을 의심하게 되겠지. 네 말에 다른 뜻이 없나 생각하고,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을 믿을 수 없게 될 거야.”
“······.”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남궁류청의 시릴 정도로 곧고 맑은 시선이 야율을 향했다.
“······.”
“······.”
······정말로 남궁류청다웠다.
그래.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면······ 감정에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남궁류청은 그게 싫은 것이다.
믿는다면 믿고, 아니라면 아니고.
그걸 비무로 깔끔하게 털어내자는 것이었다. 무림의 방식으로.
새삼 남궁류청이 다르게 보였다. 이렇게 차분하게 은원을 따지며 후일 감정의 앙금이 문제가 될 상황까지 예비하다니.
마냥 어리게만 봤는데······ 어느새 제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청년이 되어있었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그러니 무림이의 방식으로 해결해.”
남궁류청이 선택하라는 듯이 야율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야율의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진 상태였다.
나를 잠시 바라본 야율의 시선이 남궁류청을 노려보았다.
“좋아.”
안도의 숨을 내쉰 내가 말했다.
“지금은 안 돼.”
야율과 남궁류청의 시선이 어째서냐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야 아직 남궁완 아저씨도 일어나지 못하셨는데 남궁류청 네가 검을 들고 설칠 때야? 그리고······.”
나는 우리를 감싸고 있던 기막을 풀었다. 그러자 창고 밖에서 몇몇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창고의 문을 열고 나갔다.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의 몇 발 뒤에는 내가 마주쳤던 백리 세가의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매우 좋지 못했다. 게다가 내 뒤로 남궁류청, 심지어 야율까지 나오자 안색은 더 더욱 검게 죽었다.
나는 아버지 앞에 멈춰서 말했다.
“천귀조가 죽었어요.”
“허억!”
“그, 아닙니다. 분명 살아 있었는데. 왜 갑자기······ 설마······?”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자 소리치던 무인이 입을 다물고 땀을 뻘뻘흘렸다.
“확인해 보도록.”
무인들이 황급히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아버지의 엄중한 시선이 나와 남궁류청, 야율을 향했다. 뭐라고 말씀하실 것 같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계셨다.
천귀조의 죽음을 확인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모두 날 따라오너라.”
* * *
“천귀조가 죽었다더군.”
“죽었다고? 그거 잘됐군!”
“조용히 하게! 알아낼 정보가 산더미였거늘.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
“흥, 나는 처음부터 그런 마두를 정보 때문에 살려둬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네.”
손바닥만 한 객잔이었다.
백리연에 남궁류청, 야율, 심지어 백리의강까지 함께 움직인 일이었다. 숨길 수는 없었다.
소문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죽인 건가?”
“그건 모르겠군. 셋이 함께 있다가 4공자님께 불려 갔으니.”
“누가 죽였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아니 게다가 죽인 것도 확실하지 않지 않나? 그냥 제풀에 뒈져 버린 걸지도 모르지.”
객잔에 있는 무인들 모두 제 가문과 단주에게 충성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무인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백리의강과 협력 중이던 개방의 거지는 사건이 벌어진 것을 알자마자 은근슬쩍 나가려고 했다. 당연히 보고를 위해서였을 터다. 하지만 턱도 없다. 바로 문 앞에서 붙잡혔다.
“단주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진 잠시 계시죠.”
“아니······.”
“그 정도는 기다려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거지를 붙잡은 백호단의 무사가 눈을 희번덕이며 물었다.
“설마 단주님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이고, 그럴 리가요! 백리 대협이 공명정대하신 것은 믿어 의심할 일 없죠.”
무사는 언제 눈을 희번덕였냐는 양 다시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앉아서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