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여기 오는 동안 당연히 동호방도들도 몇 명 마주쳤다. 나를 마주친 이들이 꽁지 빠져라 도망친 지 시간이 좀 지났으니 내가 온 사실이 퍼지고도 남았을텐데······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들은 소식이 좀 늦은 모양이었다.
입을 꾹 다문 사내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탁. 나는 말 위에서 가볍게 뛰어 내렸다.
“계속 말해 봐. 왜 갑자기 멈춰?”
그 순간 동호방도들이 뒤돌아 도망쳤다. 서로 반대 방향, 내 좌우로 흩어지는 게 마치 짜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언제 둘러쌌는지 구경하던 사람들이 동호방도들에게 거칠게 떠밀려 넘어졌다.
“꺄악!”
“어이쿠!”
나는 쫓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바닥에 나뒹굴던 부서진 좌판 파편을 발로 걷어찼다.
슉!
주변의 구경꾼들에게는 동호방도들이 갑자기 바닥을 나뒹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동호방도는 수는 많았지만, 수준은 대부분 삼류 무사 정도로 건달에 가까웠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동호방도를 한 명씩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점혈당해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이었다. 넘어지면서 얼굴을 바닥에 박았는지 코피를 줄줄 흘리며 말했다.
“사, 살려 주십쇼.”
* * *
붙잡은 동호방도를 앞세워 동호방으로 향했다.
동호방의 본거지는 누가 보면 고관대작의 저택인 줄 알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내가 오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이미 장원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의외로 안에는 사람이 적었다.
대충 가늠해 보았을 때 간부급만 모인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껏 길을 안내한 동호방도들을 버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넓은 공터의 중앙은 비어 있었고, 동호방주가 앞쪽 단산 위의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동호방의 간부로 보이는 이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윤기가 좔좌라 흐르는 낯의 동호방주는 평범한 분위기의 무인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장사꾼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변한 점은 없었다. 아니, 내공은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에 비하면 늘었다.
‘동호방이 돈은 많다더니.’
대체 얼마나 영약을 먹어 댔으면······.
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이들을 잡아먹고 마공을 쌓은 천귀조와 비슷한 정도였다.
어쨌든 동호방주의 내공만큼은 심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정도 되니 그동안 악양 제일의 흑도로 군림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간부들도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었다. 호의호식한 생활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나는 동호방주 앞에 마주 서서 고개를 기울였다.
“웬일로 도망을 안 갔지? 매번 쥐새끼처럼 도망치기 바쁘더니.”
간부들 몇 명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으나 우습게도 덤벼들지 않았다.
악양의 동호방과 충돌하는 것은 벌써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 왔을 때 동호방의 고수들을 죽이고 부방주의 팔을 날렸다. 하지만 그사이 어디론가 도망친 방주의 위치를 찾을 수 없어서 물러났다.
다음에 방주의 위치를 파악하고 왔을 때는 방주는 새롭게 뽑은 부방주와 방도를 희생양 삼아 도망쳤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동호방주가 입을 열었다.
“백리 소저. 이번에도 혼자 온 것이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동호방주가 말을 이었다.
“자네 때문에 우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러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이유?”
고개를 기울인 나는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왜 갑자기 모였나 했더니 지금 나랑 협상해 보려고 그런 거였어?”
동호방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백리 세가와 사감이 없네. 원한이 있다면 이번에 풀었으면 하네.”
나는 웃음기 남은 낯으로 말했다.
“6년 전, 천마가 악양에 왔을 대.”
“······.”
“그 병력이 어떻게 눈에 띄지 않게 올 수 있었는지 그쪽이 잘 알것 같은데?”
동호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네. 천마의 앞에서 거부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 같나?”
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까딱이고 말했다.
“오는 길에 너희 방도를 마주쳤거든.”
뜬금없는 말에 다들 의아한 눈빛을 했다.
“양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이런 말을 하더라고. ‘어디 당장 백리 세가로 달려가서 살려 달라고 빌어 봐.'”
“······.”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어디 당장 천마한테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빌어 봐.”
“······.”
간부들의 낯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직도 덤벼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직도 준비 안 됐어?”
순간 간부 두엇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나는 허리를 짚으며 공터를 쭉 들러보았다.
“함정 파고 기다린 거 아냐? 언제까지 기다려 줘야 해?”
동호방주가 억지고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함정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니라고요? 그럼, 동호방주 선배님 검을 뽑으시지요. 아니면 선수는 제게 양보하시겠습니까?”
아니라기에 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도호방주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이내 벌떡 일어난 동호방주가 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렇게 당장 검을 뽑아 들 것처럼 패기롭게 걸어와 놓고 검을 뽑지 않았다.
“······.”
“······.’
태연하게 표정을 꾸며 내던 동호방주가 결국 버럭 소리쳤다.
“X팔,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분명 때맞춰서 온다고 했잖아!”
나이 든 간부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 모, 모르겠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역시나. 더군에 무슨 상황인지 대충 파악했다. 아마도 돈을 주고 고수를 고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망을 쳤는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흑도 놈들이란.”
그 순간이었다.
쐐액!
바람을 가르며 내게 무언가 날아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 정도의 내력을 담았는지, 누가 던졌는지.
“허억!”
“흡!”
놀란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나는 느리게 뒤를 돌아보았다.
간부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눈동자가 당장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허, 허공섭물?”
“이건 얘기가······.”
“아니······.”
저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다.
내 시선이 닿는 순간 수군거리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반쯤 뽑은 검들을 보아하니 이 암습은 함께 덤벼들 신호와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모두 검을 뽑던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러고는 검을 더 뽑지도, 다시 넣지도 못했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던 암기가 빛살이 되어 다시 날아갔다.
쐐애애액!
자신이 던지지 않은 척 숨어 있던 간부는 장풍에 맞은 것처럼 몸을 반으로 접으며 뒤로 날아갔다.
암기에 내공을 담은 것이라면 암기가 간부의 몸을 꿰뚫었을 터나 자연지기로 조종하듯 움직였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커억!”
허공을 날아간 간부가 퍽 소리와 함께 전각 기둥에 부딪쳤다.
간부는 대략 3자 정도 높이에 부딪쳤는데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핏물만 기둥을 타고 주르륵 내려왔다. 암기가 그를 기둥에 고정한 것이었다. 동정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막거나 피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저승에 간 건 나였을 테니까.
“······.”
“······.”
모두의 시선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내가 버르적거리는 것에 고정되었다.
나는 말했다.
“검 뽑는 순간 같이 덤비는 걸로 알겠어.”
마른침을 삼키는 이들 눈에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찰칵. 철컥.
반쯤 뽑혔던 검이 검집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동호방주가 눈이 뒤집혀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야! 당장 쳐!”
나는 아직 검을 집어넣지 않은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헉!”
사내가 쥐고 있던 검이 내게 날아왔다. 검과 함께 살짝 딸려오던 사내는 기겁하며 검을 놓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게 날아온 검을 쥔 나는 바로 동호방주를 향해 돌진했다.
동호방주가 기겁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베고 찌르고 휘두르며 동호방주는 잘 버텼다. 한 지역을 주름잡은 흑도 방파의 수장다웠다.
쩡!
검과 검이 마주쳤다. 도호방주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인지 속내가 모조리 읽혔다.
아마도 내가 허공섭물을 보여 준 것에 비하면 상대할 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테다.
아니나 다를까.
동호방주가 내게 내력을 가득담은 공격을 펼쳐 밀어낸 후, 멀찌감치 떨어진 간부들을 향해 명령했다.
“뭣들 하는 거야! 구경만 하지 말고 쳐! 치라고! 다들 한꺼번에 덤벼!”
동호방주의 명령에 몇몇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나는 그 순간 검을 놓았다.
쐐액-
검을 놓은 손으로 허리춤의 내 검을 뽑아드는 것과 동시에 가장 크게 움찔거린 간부를 향해 검이 날아갔다.
그 간부가 기겁하며 몸을 날려 피했다. 하지만 마치 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피한 간부를 쫓았고 검을 쥔 간부의 손목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
손목이 날아간 간부가 팔을 쥔 채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웃기게도 동호방주는 그 틈을 타 도망치려 했다. 손목을 잘라 낸 검이 곧장 동호방주에게 날아갔다. 동호방주는 기겁하며 제게 날아온 검을 쳐 냈다.
캉!
귀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호방주가 날아온 검을 처낸다고 내게 등을 보였으니 당연히,
스걱.
살점을 베는 느낌이 들었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동호방주의 옷자락이 피로 물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 고작 이런 놈 때문에······.”
동호방주의 안색이 창백했다.
나와 마주쳤던 검보다 좀 전에 쳐낸 검에 담긴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느낀 탓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나는 동호방주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방주, 야율 어딨어?”
“······.”
“알잖아?”
동호방주의 목덜미에 아슬아슬하게 검이 스쳐 지나갔다.
동호방주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오! 당시 교주가! 천마가 데려갔을 뿐이오!”
“······그래.”
핏물이 하늘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