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 * *
“끝났군.”
“예.”
언덕배기 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허리에검을 찬 노인과 중년의 사내 둘은 멀리 보이는 악양의 전경을 바라보고, 그들 뒤의 무인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너무 싱겁군. 이럴 줄 알았다면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겠어. 동호방주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될 줄이야.”
“연이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지요.”
백리패혁이 제 아들을 흘겨보았다.
계례를 치르자마자 집을 나간 백리연은 뭘 하고 지냈는지 두 해만에 실력이 일취월장해 있었다.
원래도 또래에 비견할 바 없을 정도였거늘 이제는 제 나이의 곱절은 될 동호방주의 팔을 날려버릴 정도가 되었다.
백리의강의 뿌듯한 표정 아래 미약한 걱정이 서려 있었다.
백리의강이 작게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었다. 원래 커 가면서는 부모도 자식 속을 다 알지 못하는 법이니라. 음?”
“왜 그러십니까?”
“연이가 이쪽을 보고 있다.”
“예? 그럴 리가요. 아무리 눈이 좋다고 한들······.”
점으로 보일 만큼 먼 거리의 한 장원을 바라본 백리의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리패혁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런 들켰구나.”
* * *
대강이나마 동호방의 일을 수습하고 날듯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향했다. 악양에서 여러 일이 벌어진 후 백리 세가 사람들이 마련한 거점이었다.
“대체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부유한 상인 같은 차림새의 할아버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느냐?”
“그런 뜻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할아버지가 여기 계시면 가문은 어떻게 해요?”
무림맹이 마교에게 습격당한 이후, 무당파뿐만 아니라 백도의 세가와 문파 몇 곳이 연이어 마교의 습격을 받았다.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곳은 봉문하거나, 최악의 경우 멸문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마교를 뒷배로 사파들도 날뛰었으니.
할아버지의 거취 자체가 아주 예민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아버지까지 함께, 백검단운은 왜 이렇게 많이 데려오신 거예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상인처럼 백검단은 그들을 호위하는 이들처럼 변장한 상태였다.
“쯧, 쓸데없는 걱정도 많아. 걱정 마라. 우리가 온 걸 아무도 몰라 봤으니. 네가 만든 이 역용술 확실히 정말 괜찮더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역용술로 얼굴을 바꾼 상태였다.
말하는 어조,목소리, 태도는 할아버지와 똑같았지만, 얼굴만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느낌이 이상했다.
이번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용한 역용술은 나와 아버지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마교의 백면환술을 바탕으로 응용한 것이었다.
내가 금안으로 백면환술의 구조를 파악하고 기억해 놓았기에 가능했다.
원래 백면환술은 마교의 역용술답게 고통과 부작용이 꽤 컸다.
나와 아버지는 거기서 고통과 부작용을 덜어내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로 바꿨다. 대신 배우기 까다로우며 반나절마다 새로 손을 대야 하고 외모의 변형에 한계가 있었다.
백리 세가에도 대대로 전해지는 역용술이 있긴 했다. 다만 실전성이 너무 떨어져 인피면구를 쓰는 게 훨씬 나았다. 쓸 수 있는 상황이 한정적이었다.
‘조금만 내공 운기를 해도 역용이 풀려 버렸으니······.’
할아버지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에 든다는 듯 말했다.
“그놈들도 못 알아보더군.”
그놈이요?”
“하하, 소저 안녕하세요.”
그때 한쪽 구석에서 대개가 나타나 내게 인사했다.
“동호방주를 쓰러트리신 것 축하드립니다. 팔만 자르시다니 자비롭네요.”
나는 쓰게 웃었다.
과연 자비일까? 하는 행동은 거의 상인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동호방은 흑도.
팔을 잃은 방주가 살아남을지는 평소 그의 행동과 주변 방파들과의 관계,그리고 부하들의 인품에 달렸을 터다.
“고마워요.”
대개가 정말 감탄했다는 듯 열렬하게 말했다.
“그 연배에 동호방주를 쓰러트리다니. 소저의 얘기를 들으면다들 쉽게 믿지 못할 겁니다. 저도 비무를 지켜보았는데,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대개가 내 허리춤의 검을 흘끗 보았다. 허공섭물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눈빛이었다.
나는 이를 무시한 채 부끄럽다는 듯 할아버지를 보았다.
“동호방주를 쓰러트린 것이 저 혼자 능력으로 이뤄 낸 일이겠어요? 다 할아버지가 뒤에 버티고 계셔서 그렇죠.”
할아버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가 잘 알고 있구나.”
만약 동호방도들이 함께 덤벼들었다면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을 터. 하지만 다들 겁을 집어먹었던 게 컸다.
나는 일부러 동호방에 가는 것을 동네방네 알리며 갔다.
이렇게 목격한 사람이 많은 이상 동호방에서 나를 처리한 후 동정호에 빠트리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사라지면 당장 동호방이 의심받을테니.
백리 세가는 악양에서 멀지 않았고 천하 십강인 할아버지라면 언제든지 빠르게 왔다 갈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내게 함부로 할 수 없는데, 나는그들에게 멋대로 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으음······ 아! 금전적으로 산 듯한 실력이었어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만 의아한 눈빛이었다.
저런 사람이 정보를 다뤄도 되는 걸까?
나는 대개를 위해 설명했다.
“내공은 심후했는데 실정경험이 별로 없어 보였어요.”
특히 강자랑 싸운 경험이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
대개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바보같이 웃었다.
“아하, 그런 뜻이었군요. 그럴만도 합니다. 동호방주가 일선에 나선 게 거의 스무해 정도 되었으니까요.”
동호방을 만들었던 전대 늙은방주는 주색잡기에 골몰하다 어느 날 돌연사했다.
당연히 장자가 동호방을 이어받게 될 줄 알았으나, 그간 눈에 띄지 않고 돈 버는 데만 집중하던 넷째 아들이 방주 아래 간부 몇 과 손을 잡아 손위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고 방주 자리에 앉았다.
그게 내가 외팔이로 만든 현 동호방주였다.
그는 자신과 손을 잡았던 간부들과 동호방을 장악했고······
그리고 거기까지가 그의 능력이었다.
당시에는 손위 형제를 차례로 쓰러트릴 만큼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 실력을 숨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나 방주가 된 이후로는 흥청망청 놀며 제 아비처럼 주색잡기에 열중했고, 실력은 퇴보했다.
그런 동호방의 세력을 노린 흑도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돈 버는 데 재주가 많았던 방주가 돈으로 고수를 고용해서 부렸다.
“무력은 금전으로 해결한 결과죠.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은 없지만, 돈에는 의리가 없는 걸요.”
동호방에 고용되었던 고수들은 나와 싸우게 되자 재빨리 발을 뺐다. 나를 건드리면 할아버지가 나설 텐데 그건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도 그냥 무작정 덤빈 건 아니예요. 세심하게 알아봤다고요. 그리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물론 저걸 알아보는 데는 개방의 도움이 컸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이번에 네가 수월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건 류청의 조력도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거라.”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동호방에 쳐들어갔을 때, 일거에 쓸어버리지 못한 것은 동호방주의 거취를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투 중 동호방을 도우러 온 다른 흑도들에게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상이 심하진 않았지만 더는 싸움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후퇴했다.
그리고 그 뒤 악양에 온 남궁류청이 동호방을 지원했던 흑도 방파 두엇들 말 그대로 박살 내고 갔다.
그 뒤로 다른 흑도방파들은 동호방을 돕는데 몸을 사리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나무라듯 말했다.
“뭐 하러 그런 말을 하느냐?
연이가 그것도 모르겠느냐?”
아버지가 나를 응시했다가 담담히 말했다.
“예,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수그리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연아, 네가 꽤 생각하고 동호방을 상대한 것은 알겠다. 다만 그라도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거라.”
뭔가 숨겨진 뜻이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때 눈치를 살살 보던 대개가 말했다.
“동호방주가 섬서유갈을 고용했더라고요.”
“섬서육살이요?”
대개가 민망한 낯으로 말했다.
“예에. 워낙 비밀리에 고용해 저희도 알아채는 게 늦었습니다.”
섬서육살은 악명 높은 살수였다. 이름만 보면 알듯이 섬서의 여섯 명으로 이뤄진 살수들이었는데 의뢰를 받으면 무조건 성공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생각보다 더 큰 거물을 고용했다.
‘그러니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거군.”
게다가 섬서육살의 주 활동 지역인 섬서는 백리 세가가 있는 호남성과 떨어져 있으니, 나를 처리하고 섬서 지역으로 도망치면 할아버지가 어쩌겠는가?
할아버지가 섬서까지 쫓아가 그 넓은 섬서 지역을 뒤져가며 섬서 육살을 찾겠는가?
“그래. 아마도 네가 동호방주랑 일대링로 맞서기 직전에 먼저 덤벼들게 할 생각이었겠지.”
“뭔가 함정을 판 것 같더니만, 그런 거였군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섬서육살을 상대한 것은 아비니라.”
“허!”
할아버지가 기가 막힌다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아주 대단하고 멋지다는 듯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상대하신 거예요?다친 곳은 없으시죠?”
다시 할아버지가 끼어들어 호통치듯 말했다.
“내가 옆에 있었는데 걱정할 일이 뭐 있겠느냐!”
아버지는 마치 담담하게 그저 사실을 언급하는 것뿐이라는 듯 말했다.
“네 할아버지가 나서실 일은 없었느니라.”
아니, 어째 두 분은 갈수록 투닥거리시는 게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분명 원래 아버지는 할아버지앞어세 늘 공손하고 진중한 모습만 보였거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