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두 분 나이를 합치면 100세가 넘는 건 아시는 거죠?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주 익숙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계신데,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실 필요가 뭐가 있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가르치셨으니, 아버지가 나서신건 할아버지가 나서신 것이나 다름없는 거죠!”
여기선 할아버지만 칭찬하거나 아버지만 칭차나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두 사람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며 번갈아 찬양하고 나서야 두 분의 유치한 다툼은 끝날 수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뒤늦게 정신이 드셨는지 두 분이 헛기침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개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헤벌린 채 어리벙벙한 낯으로 모든 상황을 목격한 후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음, 개방에 인물 편람이 있다면 이렇게 올라가지 않을까? 백리패혁, 백리의강. 가끔 나잇값 못함······’
그 사이 정신을 차린 대개가 물었다.
“소저, 그럼 앞으로는 어쩌실 겁니까?”
나도 딴생각에서 벗어나 눈을 내리깕 고민했다.
“개방에서는 어쩌고 싶은데요?”
대개는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동호방주가 저 꼴이 되었으니 악양 세력에 한바탕 큰 변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틈에 백도 무림 세력이 자리잡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악양에 백도 세력을 확장해 보자는 얘기였다.
악양이 흑도 세력권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큰 도시에 백도 문파가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다만 여러 핍박을 받으며 고개 들고 살기 힘들었던 것뿐.
“게다가 백리 세가에서도 이대로 그냥 물러가긴 아깝지 않습니까?”
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미 대개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살짝 안도했다. 역시 할아버지가 아무 일도 없이 악양까지 걸음을 옮긴 건 아닌 것이다.
“어차피 동호방이 어떻게 되는지 조금 머물면서 지켜보려고 했어요.”
할아버지가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럼 네게 이곳 일을 맡기마. 백검단과 일 처리를 할 사람을 두고 갈 테니 네가 크게 신경 쓸 것은 없을 거야.”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저도 좀 더 머물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뭣하러? 네게 원한을 지닌 이들이 호시탐탐 널 노리고 있는 걸 알지 않느냐?”
아버지는 무림맹 앞에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이후로 점차 발작이 잦아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무림맹 일 이후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작이 드러난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무공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은 이제 사실 여부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한 번 더 그런 모습을 보이면 이제 소문을 돌이키기 어려울 터였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말했다.
“연이를 위해 백검단도 남겨두고 가실 거라지 않으셨습니까? 별강리 위험할 일은 없겠지요.”
할아버지의 수염이 씰룩거렸다.
아마도 ‘백검단은 연이를 위해서 남겨 놓은 거다!’라고 하고 싶으실 테다. 하지만 할아버지 체면에 그렇게 쪼잔해 보이는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불퉁한 표정으로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마음대로 하거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할아버지, 바로 돌아가실 거예요?”
“그래야지. 왜, 너도 내가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느냐?”
나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 사람들이 목 빼고 할아버지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서 가 보셔야죠. 그 전에 조금 시간이 있다면 이르긴 하지만 식사라도 같이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식사?”
“네. 악양의 유명한 맛집을 들어 봤거든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기가 막힌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그 소란을 피우고 나서 밥 생각이 나더냐?”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억울하다는 어조로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게다가 저 혼자였으면 간단하게 먹어도 상관없죠!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 기회에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은 제 마음을 그렇게 취급하시다니요! 저 서운해요!”
* * *
눈을 가렸던 천을 풀고 역용까지 하자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팔향거는 동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호수 근방에 자리했다. 식사 시간을 비켜 와서인지 다행히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식사 시간 때는 예약해야만 먹을 수 있대요.”
“팔향거, 들어 본 적 있구나. 거기 요리가 천하 일미라고 하더구나. 언젠가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만 기회가 없었지. 연이 덕분에 드디어 먹어 보는구나.”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심경을 어쩔 수 없었다.
악양의 유명 음식점인 팔향거를 알아 온 이는 야율이었다. 천산염제를 따라다닐 때 먹어 봤는데, 맛이 괜찮았다며 내게 시간이 나면 가자고 했었다.
하지만 남궁완 아저씨를 찾았을 때부터 연달아 일들이 몰아닥쳤고 결국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떠오른 생각을 떨쳐 냈다.
아버지가 물었다.
“왜 그러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귀해 보이는 차림새를 본 점소이는 우리를 가장 좋은 자리인 고층 창가로 안내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살짝 서늘했지만, 창가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그 정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호수에 비치는 햇살에 눈을 살짝 찡그리자마자 아버지가 물었다.
“눈은 괜찮은 게냐?”
“하하. 괜찮아요, 이 정도는.”
“자리를 바꾸자꾸나.”
아니, 정말 괜찮은데······.
결국 아버지 등쌀에 자리를 바꿨다.
그사이 할아버지는 점소이에게 어울리는 술을 추천받아 주문했다.
희색이 만면한 점소이가 물러간 후 나는 아버지께 전음했다.
「 아무리 봐도 그냥 제일 비싼 술 추천한 것 같은데요? 」
분명 내가 알아봤을 때는 다른 술이 추천대상이었거늘. 외지인처럼 보이니, 눈탱이 맞은 것 같은데
······.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흘끔 보았다가 전음했다.
「 ······모른 척하거라. 」
할아버지께서 너무 좋아하고 계셨다.
나는 알겠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뭐 돈으로는 아쉬울 것 없으니.’
이따가 점소이가 다시 왔을 때 추가로 주문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리의 혼사가 결정됐다. 길일을 잡고 있으니 빠르면 올여름, 늦어도 올가을에 치를 것이다.”
“네에?”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낯이었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상대는 누구예요?”
“명호문주의 둘째 자제다.”
“아······.”
명호문은 백리 세가 근방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규모가 큰 문파였다. 할머니 쪽의 친척 관계로 알고 있었다.
명호문의 둘째 자제라면 예전에 할아버지 산수연과 백리명 오라버니가 주최한 후기지수 모임에서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났다.
“아직······ 혼인하기에는 어리지 않나요?”
“계례도 치른 지 벌써 2년이나 지났거늘 뭐가 어리다는 것이냐?”
“······.”
나는 바람에 출렁이는 찻잔 표명을 바라보았다.
사실 열일곱이면 이곳 시점으로는 딱 혼인하기 좋은 나이였다. 무가의 경우에는 조금 달라서 수련에 집중하라고 혼인을 늦게 하는 편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바라볼뻔 한 것을 억눌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지 않는가?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깊게 고민했을 터였다. 그리고 이건 그 결과였다.
차라리 일찍 혼인시키자.
참고로 백리명 오라버니도 내가 계례를 치르고 집을 나간 해에 혼인했다.
신기하게도, 아니 이젠 신기하다고 느낄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백리명은 회귀 전에 혼인했던 상대와 이번에도 혼인했다.
할아버지가 차를 마시고 말했다.
“그리고 네 할머니 뜻이다.”
고모 일로 충격을 받고 쓰러진 할머니는 원래 앓던 지병이 도졌다.
해가 지나갈수록 상세가 나빠졌고 근래는 앉아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길다고.
건너건너 들은 바로는 의원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고 한다.
“나도 찬성했다. 어차피 리, 그 아이는 대성하긴 글렀어. 흥, 수련이란 것은 스스로와 싸움이거늘, 그렇게 귀애해서 키웠으니 제대로······.”
“아버지.”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말을 막았다.
“그 나이는 원래 노는 걸 좋아 할 때입니다. 리도 잠시 한눈을 판 것뿐이지요.”
“너랑 연이는 그런 적 없었다.”
그야 나와 아버지가 별종이니까요.”
칭찬을 받는 건 좋지만, 그게 누군가와 비교를 통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온전히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명이 그 아이도 수련만큼은 밤으로 낮으로 늘 열심이었다! 쯧.”
음······ 그러니까 백리리는 심지가 굳지 못하고 귀가 얇았다.
친우가 집에 찾아와 수련 그만하고 놀자, 놀자 앵앵거리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아니고 그럴까? 하고 따라가 버리는······ 그 나이대의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던 것이다.
매일같이 이리 놀고 저리 노는 꼴을 보며 참고 참던 할아버지는 백리리가 계례를 치르자마자 폐관 수련을 명했다.
그동안 한 번도 폐관 수련을 한 적 없던 백리리는 그게 뭐 힘들겠냐고 의기양양하게 백리 세가 자제들이 폐관 수련을 하는 백영유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리고 2개월만에 못 하겠다고 뛰쳐나왔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백리리가 이해 갔다.
나처럼 죽음을 경험해 보거나 남궁류청처럼 돌여변이가 아니고서야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씩 집중해 운기조식을 하고 뙤약볕 아래서 검을 휘두르는 걸 어찌 좋아하겠는가?
엄청나게 굳은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류청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남궁류청과 내 혼사 얘기는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가문을 잇게 할 생각이셨다. 내게도 그 뜻을 알렸고.
남궁세가의 유일한 후계자인 남궁류청과의 혼사가 이뤄지기 힘든 건 당연지사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을 한쪽으로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