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석가약이 물었다.
“그 애를 찾으러 가는 거야?”
침묵하던 난 작게 답했다.
“아니.”
야율의 소식은 아직도 전혀 없었다.
거의 3년이 다 되었으니, 이제는 백리 세가와 남궁 세가에서도 손을 놓은 상태였다. 언제까지 야율 한 사람에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야율이 살아 있다면 그를 이렇게 찾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연락하고도 남았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이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은 본인이 알릴 생각이 없거나, 어딘가에 억류도어 있거나 혹은······ 죽었거나.
석가약이 고개를 기울이더니 물었다.
“그럼 왜 떠나는 거야? 이런 위험한 때에?”
나는 미리 생각해 놓은 답을 말했다.
“수련하러 간다고 보면 돼.’
“수려언?”
석가약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수련이라면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않아도 지금 세상이 혼란스러운데······ 네가 실력이 좋은 건 알지만······ 너무, 너무 위험하지 않아?”
석가약의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위험하지. 그래도 밖에서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있어.”
“······.”
석가약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미래를 알기에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 떠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야밤에 몰래 빠져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어차피 가문에 있다고 해도 안전한 건 아니야.”
“네 할아버님, 백리 세가주께서 계시잖아?”
“할아버지는 지킬 게 많으시지. 천마는 지킬 게 없는 사람이고.”
천마의 이야기가 나오자 석가약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백리 세가에 틀어박혀 있다고 천마를 영원히 피해 갈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강하시다고 해도 세월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다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독을 해독할 방법은 아직도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때 석가약이 말했다.
“만약에 천마에게서 벗어나서 남은 생을 안전하게 살 방법이 있다면 어쩔 거야?”
나는 놀라서 석가약을 돌아보았다.
“뭐라고?”
어느새 석가약은 걸음을 멈춘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석가약은 허튼 말을 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이 제안이 그냥 빈말이 아닌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간 교류하면서 석가약이 그저 평범한 의원 집안의 자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석가약이 한 이 제안은 그가 숨기고 있던 비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천마에게서 완전히 벗어난다?
가능한지는 둘째 치더라도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틀었다.
어느새 시야 끝에 흐르는 강이 보였다. 깊은 밤하늘 아래 흐르는 강은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보다 더욱 새카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같았다.
나는 나직이 말했다.
“제안은 고맙지만 거절할래.”
“왜? 못 미더워서?”
“아니, 믿어. 네가 허튼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설사 천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백리 세가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석가약은 내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지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만약에 저번 생이었다면 고민할 것 없이 석가약을 따라갔으리라.
“게다가 세상에 아무 대가없는 일은 없어.”
석가약이 나를 바라보다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맞아. 아마 더는 검을 들기 힘들 거야. 취미 정도면 상관없지만.”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그러면 네가 대답하기 너무 쉬워지잖아.”
나는 석가약을 흘겨보았다. 석가약이 담담히 웃었다.
“글고 내가 아쉬워서.”
“······.”
석가약이 나를 향해 몸을 숙었다 너무 가까워 뒤로 물러나려는 내 귓가에 석가약이 속삭였다.
“사실 내 성씨는 진이야.”
나는 눈을 부릅뜨고 석가약을 보았다.
진 씨라니? 현 황가의 성이 진씨였다.
그리고 진가약이라면······
아니 세상에.
나는 입을 틀어막었다.
“그럼, 잘 지내.”
석가약이 가보라는듯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에 떠밀리듯 나는 발을 옮겼다.
걸아가면서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석가약의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던 게 당연했다. 진가약이 원래 이름이었으니.
‘천마도 이걸 알고 있을까?’
왠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데 석가약은 갑자기 그 사실을 왜 알려 주는 거지? 이 상황에서?’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나는 이내 답을 깨달았다.
앞으로 석태의네에서 석가약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걸.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석가약이 싱긋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 또한 석가약을 향해 작별인사를 했다.
이별은 늘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있다면 언젠가 만날 날이 올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 선착장이 아닌 강가에 홀로 서 있는 배는 집중해 살피지 않는다면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자 배 안의 천막이 걷히고 안에서 소녹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 고개 숙이는 소녹은 꽤 당혹스러운 낯이었다.
그리고 소녹이 몸을 모로 틀자 소녹 뒷편에서 진진이 내게 인사했다. 이미 멀리서도 진진이 배에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있어서 놀랍지는 않았다.
코흘리개 꼬맹이였던 진진은 이제 나와 눈높이가 같았다. 죽순 자라듯 매일 쑥쑥 자라더니 어느새 내 키마저 따라잡은 상태였다.
참고로 내가 작은 게 아니라 진진의 발육이 유달리 빠른 편인 것이었다.
그리고 키 뿐만이 아니었다. 앙증맞고 귀엽던 아이는 이제 백검단주의 막내 제자답게 흐트러짐 없이 단단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진을 향해 물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내가 집을 떠나는 것은 소녹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진진이 공손하게 말했다.
“가주님께서 아가씨를 잘 보필하라 하셨어요.”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가······?”
“예.”
소녹이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몰래 준비한닥 하였는데, 할아버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런데 왜 아무 말씀도······.”
머릿속이 복잡해 이마를 짚었다.
나는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안다면 할아버지가 당연히 못 가게 막으실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빠져나온 것이었는데······.
그대 진진이 내게 서신을 하나 내밀었다.
“그리고 여기 가주님께서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머리를 짚던 손을 내밀어 서신을 받아 펼쳤다.
할아버지의 호방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든 네가 백리 세가의 사람인 것을 잊지 말거라.]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살짝 떨어진 아래, 뒤늦게 덧붙인 듯한 글이 적혀 있었다. 쓴지 얼마 안 된것처럼 그 글귀만 아직 먹이 덜 말라 있었다.
[할애비가 있으니 걱정말아라.]* * *
다음 날 아침 백리연의 빈 침상을 확인한 백리 세가는 한바탕 뒤집어졌다. 그러나 가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해졌다.
백리연의 이름이 다시 들린 것은 2년 후 악양에서였다.
* * *
3월 초.
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몰려오는 듯하더니 한바탕 쏟아진 비에 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철벅철벅.
팔짱을 낀 채 움츠리고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말을 탄 한 여인이 지나갔다.
여인을 목격한 사람들이 놀라서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검을 찬 험상궂은 인상의 사람들은 황급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말을 타고 가는 여인은 상아색 무복에 허리에는 백색 검집의 검을 차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눈을 두른 천이었다.
“저러고 어떻게 싸우는 거요?”
“쉿, 목소리 낮추게나. 강호인들이니까 그렇겠지. 왜 막 기파를 날려서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다더라고.”
“오오.”
이제 사실은 눈부시거나 조절이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천을 두르고 다니는 건 그냥 이제 버릇같은 것이었다.
나는 객잔 거리를 둘러보며 걸었다.
이렇게 여행자로 보이는 이가 지나가면 호객하는 애들이 붙을만도 한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뿐 내게 호객하려는 아이는 없었다.
좌판을 펼친 상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수군거리는 말이 들렸다.
“그 소문이 사실인감? 아직 약관도 못 된 것 같은데. 심지어 혼자지 않은가?”
“왜 작년에 동호방에 쳐들어가서 부방주의 팔을 날려버렸을 때도 혼자였네. 이제 나이가······ 부방주를 외팔이로 만들었을 때가 열일곱이었으니 지금은 열여덟이겠군.”
흑도방파에게 매번 보호세라는 이름으로 돈을 뜯기는 상인들은 이 바닥의 세력 구도에 관심이 깊었다.
괜히 줄을 잘못 섰다간 장사하기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구먼. 팔이 날아간 부방주는 어떻게 됐나?”
“검을 쥐는 쪽 손이 날아갔는데 어떻게 됐겠는가 당연히 쫓겨났지. 그리고 부방주를 새롭게 뽑아 앉혔는데······ 이번에는 남궁공자가 와서 새 부방주를 외팔이로 만들었다더군.”
나도 모르게 고삐를 쥔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으려나?”
“무슨 일이겠어? 당연히 동호방이겠지. 이번에야말로 정말 동호방을······.”
“목소리 낮추게나. 만약 그놈들 귀에 들어가면 당장 자네 가게부터 때려 부수지 않겠나.”
말이 원흉이라도 된 듯이 갑자기 비명과 함께 누군가 객잔 창문을 부수며 날아와 좌판 위를 나뒹굴었다.
“아이고!”
방금까지 수군거리던 좌판 주인과 상인들이 놀라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곧이어 객잔 안에서 소녀가 뛰쳐 나왔다. 그리고는 부서진 좌판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던 중년의 위로 엎어졌다.
“아버지, 아버지!”
그 뒤를 험상궂은 사내들이 걸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뒤쫓았다.
“뭐라고 이 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 봐. 그깟 백리 세가 계집한테 동호방이 뭐? 방주님이 도망친 거라고? 감히 그딴 말을, 너 이 새끼 장사 접고 싶지?”
“딸년이 반반해서 좀 봐줬더니 아주 주제를 모르네.”
사내가 주먹을 쥐며 건들건들 다가왔다.
“어디 당장 백리 세가로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빌어······.”
그 순간 사내들과 내 눈이 마주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