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 * *
5월 하순, 화창한 하늘 아래 한 사내가 땀을 닦아 내며 사람들이 바글바글 가득 찬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점소이가 곧장 물었다.
“몇 명이십니까?”
“혼자요.”
“다행이네요. 딱 한 자리 남아있습니다만, 합석 괜찮으신지요?”
사내가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점소이가 안내해 준 자리에는 이미 음식이 나온 세 명의 선객들이 있었다. 그중 사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선객이 넉살 좋게 말했다.
“밖이 상당히 덥나 보구려. 여기 차 좀 드시오.”
차를 들이켠 사내가 크게 숨을 내쉬고는 투덜거렸다.
“여기가 네 번째 객잔이오. 앞서 세 군데는 자리가 하나도 없더군. 아니, 백리 세가주의 손녀라지만 고작해야 계집애 계례에 무슨 손님이 이렇게 많은지 원······.”
선객끼리 눈빛을 교환하고 물었다.
“외지인이오?”
사내가 손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손녀가 아니지 않소. 다음 대 가주가 될 것 같으니 다들 눈도장이랃 찍어 놓으려는 게지.”
“허? 가주? 자식들은 어쩌고? 게다가 장손도 아니지 않소?”
“크흠. 장손에게 문제가 있어서 장자도 가주 자리르르 잇기는 어렵다 들었소. 뭐, 재능 있는 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겠소?”
“계집애가 가주라니······ 그럼 혼인은 어쩌고”
사내 옆자리의 선객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데릴 사위를 들이겠지. 뭘 걱정이오?”
“맞소. 벌써 제 아들 밀어 넣겠다고 문지방이닳고 있소.”
“백리 소저가 그렇게 미인이라던데,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구먼.”
“그럼. 백리 4공자 피가 어디 가겠어? 백리 4공자를 멀리서 본 적 있는데 아주 멀리서도 후광이······.”
“왕년에 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그렇게 여인들이 꽃이랑 손수건을 던져 댔다지 않소.”
“흥, 이제 계례 치르면 고작해야 열다섯인 것 아니오?”
“······.”
“······.”
“게다가 어미를 닮았을 수도 있잖소? 어미가 누군지는 아직도 모르오?”
“······.”
“다들 왜 갑자기 말이 없소?”
그때 점소이가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여기 국수 나왔습니다.”
헛기침한 선객이 더는 말을 섞기 싫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뭐······ 사연이 있나 보지. 식사하세.”
그러나 사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 아이, 천마를 만나고도 살아 돌아왔다면서요?”
······.”
“거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던데요. 설마 정말 백리 세가가 마교와······.”
국수 그릇을 내려놓던 점소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요?”
탕!
선객 또한 젓가락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나무랐다.
“어허! 지금 이 사람 무슨 말을 하는건가?”
“아니, 왜 화를 냅니까?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겠냔 말이지요. 무림맹에서도······.”
그때 점소이가 갑자기 젓가락과 국수 그릇을 다시 가져갔다.
사내가 깜짝 놀라 말했다.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이긴 무슨 짓이야? 나가란 뜻이지!”
“뭐, 뭐요?”
“그쪽한테는 안 파니까 나가라고요! 부정 타게 뭐라는 거야? 퉤!”
“아니 직므······! 이보시오!”
* * *
바깥에서 백리연의 계례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듯 백리 세가 안도 계례 준비로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아가씨 비녀는 어떤 걸로 하실 거예요?”
“할아버지 걸로 해야지.”
할아버지가 보내 주신 비녀는 봉황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깃털을 비취로 묘사해 절로 입이 벌어질 만큼 화려했다. 오늘 같은 날 말고는 무거워서 끼고 다니기 불편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산호와 진주로 장식한 상아로 만든 머리 장식을 주었다.
큰어머니는 홍옥 장식의 귀걸이를 주었고, 백리명 오라버니도 금으로 된 팔찌를 주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선물을 보내왔는데, 고작 15살 여자아이의 성인식 축하 선물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 선물에 무림맹과 백리세가와의 대립에서 우리 가문을 지지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화려한 선물 목록 중 남궁세가에서 보내온 것은······.
“이것도 예쁜데 아쉽네요.”
백옥으로 연꽃을 조각하고 거기에 순금으로 장식한 나비가 달린 비녀였다.
영롱한 빛깔의 백옥은 둘째 치더라도 순금으로 만든 나비는 움직일 때마다 파르르 떨리며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같이 날갯짓하는 모습이었다. 장인 몇 명이 달라붙었을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받기에는 너무 귀한 선물이야.”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 맞아요.」
들려오는 전음에 소녹을 돌아보았다.
그간 소녹도 무공을 조금 배웠다. 그녀가 말을 못 하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혹시나 전음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가르쳐 본 것인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무공에 꽤 재능 있는 편이었다.
다만 소녹은 전음을 할 수 있게 되어서도 말하는 걸 꺼리는지 주로 손짓을 많이 썼다.
소녹이 자신의 팔을 가리킨 후 동그라미를 표현했다.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읽혔다.
천명금혼단으로 팔을 낫게 해줬는데 저 정도는 당연하다······ 그런 뜻이었다.
애매하게 웃을 때 금쇄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 남궁 세가에는 답신을 보내지 않으시나요?”
“······.”
“······.”
잠깐 방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소녹은 눈을 내리깔고 듣지 못한 것처럼 열심히 물품을 정리했다.
“이미 보냈잖아.”
“그······ 남궁 공자님께서도 서신을 보내셨잖아요.”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불편한 침묵이 방을 채웠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때마침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사공자님 오셨습니다.”
방에 들어온 아버지가 금쇄와 소녹에게 눈짓하자 두 사람이 재빨리 방을 나갔다.
나는 탁자 위의 찻잔을 채워 아버지께 드리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 계례, 성인식에 온 손님이지만 대접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하고 계셨으니 나보다 아버지가 더 바쁜 상황이었다.
“정오가 넘으면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열어 보거라.”
아버지는 흑색의 기다란 나무함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흘끔 본 것만으로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척 설레는 표정으로 나무함을 집었다.
“뭐에요? 선물이에요?
이미 머리 장신구도 주셨는데 뭘 또······?”
나는 나무함을 열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검이네요.”
기다란 함을 본 순간 검이 들어있을 것을 예상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상자 안의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별다른 장식은 없는 깔끔한 백색의 검집. 화려하진 않았지만 고아한 느낌이 물씸 풍겼다. 평소 아버지의 취향 그대로였다.
나는 나무함에서 조심스럽게 검을 꺼내 손잡이를 쥐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살짝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
“어떤 것 같으냐?”
“······.”
손잡이를 잡고 당기자 달칵 살짝 걸리는 느낌과 함께 손만 대도 베일 듯 새파란 칼날이 검집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한번 휘둘러 보겠느냐? 잘 맞는지 봐야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손에 와 닿는 감촉. 무게감.
회귀 전에 아버지께 계례에 받았던 검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다. 휘둘러 보지 않아도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버지의 취향이 일관되어 똑같은 외견으로 의뢰를 넣은 걸까?
그렇다고 한들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전과 달라졌는데,이렇게 똑같이 생기는 게 가능할까?
문득 의심이 들어 물었다.
“이거 언제 만드신 거예요?”
“······.”
아버지가 잠시 침묵했다.
“네가 처음 목검을 잡았을 때, 대대로 백리가의 검을 만들어 오던 장인에게 부탁했다.”
“······고작해야 여섯 살인데 제가 성인이 되어서 쓸 검을 맡겼다고요?”
아버지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근골을 살피면 성인이 되었을 때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
나는 검집을 쓸어내렸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검을 맡겼을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며 과거 내게 이 검을 선물로 주셨을지. 이제는 영영 알 수 없어졌다.
아버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연아, 우느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또다시 고개를 저으며 검을 꼭 끌어안았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 * *
계례를 치른 그날 밤.
나는 침상에 서신을 남겨 놓고 조용히 백리 세가를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한참을 달려 백리 세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푸릉, 바스락.
투레질 소리와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내게 다가왔다.
이제 청년이 된 석가약이었다.
나는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맡아 줘서 고마워.”
“대체 뭘 부탁하려나 했더니만······ 고작 이런거라니.”
내 한 몸 백리 세가에서 빼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말을 데리고 나가는 건 다른 얘기였다.
어쩔 수 없이 석가약에게 말을 맡겨 놓고 늦은 시각에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석가약은 점점 석 태의네에서 머무는 식나이 줄어들고 있었다.
1년을 넘게 비웠다가 한 달 머물고 다시 떠나고, 지금 또 4개월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4개월 만에 만난 석가약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었다.
석가약이 말고삐를 넘기며 물었다.
“정말 가?”
“응.”
석가약은 마치 배웅하듯 내 옆을 따라왔다.
“이 방향은 강인데······ 배를 타려고?”
배를 탈 거면서 말은 왜 끌고 가냐는 의문이 드러나 있었다.
“응. 한 시진 정도 배를 탄 다음에 거기서부터 말을 탈 거야.”
아버지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금세 내가 없어진 것을 눈치 채실 터였다.
그러니······ 그전까지 최대한 빨리 백리 세가에서 멀어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