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허리춤에 휘황한 보검을 차고 고급스러운 황색 무복을 입은 청년이 비무장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갓 약관을 넘긴 나이답게 얼굴에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전신에 흘러나오는 기도가 연배에 맞지 않게 매우 비범했다.
위구중은 주변을 둘러보거나 상대를 살펴보지도 않고 무료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날을 잘 잡았구먼! 왠지 오늘따라 후기지수들이 많이 보이더라니!”
관객들이 기대에 찬 낯을 했다.
반면 위구중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낯빛이 퍼렇게 질린 이들도 있었다.
먼저 비무장에 올라왔거나 호명되어 올라오는 이들 모두 귀신이라도 본 듯한 낯이었다.
벌써 포기한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덜덜 떠는 자도 있었다.
‘끝났네.’
위구중과 비벼 볼 만한 실력자조차 없었다.
곧이어 마지막 참석자까지 비무장에 오르고 슬여가 외쳤다.
“그럼 시작하시오!”
말이 끝나자 마자였다.
콰아아아아앙!
빛살처럼 검이 뽑혀 나오고 굉음이 비무장을 강타했다. 보통 사람들은 검을 뽑는 것을 보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먼지구름이 비무장을 가득 채우자 관객들이 아우성을 쳤다.
“뭐, 뭐야”
“안 보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먼지구름 속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퍽! 쾅 – 으악! 컥! 억!
짤막한 신음들도 연달아 들렸다.
잠시 후, 피어났던 먼지구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비무장엔 이제 단 한 명만 서 있었다.
9명 모두 비무장 밖으로 떨어져 있었다. 정신을 잃은 자는 있는 것 같았지만 핏자국 하나 없는 것이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침묵. 그리고 관중석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위구중! 위구중!”
처음 시작할 때도 환호성을 질렀지만, 아까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 땅이 울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승자, 위천검파 위구중!”
경기가 끝났음에도 위구중의 모습은 시작했을 때와 전혀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표정부터 허리춤에 다시 꽂은 검까지. 옷자락이 조금 흐트러진 정도랄까.
어마어마한 함성과 응원속에서도 위구중은 별다른 감흥 없는 표정으로 비무장을 내려갔다.
“어떻게 이긴거야? 나······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어떻게 9명을 단번에!”
놀란 서하령이 몸까지 일으킨 상태였다.
“일부러 먼지구름을 피운 거야. 제 무공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동시에 상대의 시야를 차단해서 빠르게 승부를 본 거지.”
나는 남궁류청을 흘끗 보았다.
그리고 순간 터져나올뻔한 웃음을 참았다.
위구중의 표정이 감흥 없다고?
여기도 똑같은 표정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하하, 왠지 류청도 무대 올라가면 똑같이 저럴 것 같은데.’
나는 서하령의 감탄을 배경 삼아 말을 이어갔다.
“다섯은 검도 뽑지 못하고 당했어.”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관객들에게는 먼지구름이 피어나고 가라앉으니 비무장에서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일 터. 뇌리에 확실히 각인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왜 위 맹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지 알겠네. 확실히 실력은 좋아.’
나는 턱을 괴고 부축을 받으며 비무장을 벗어나는 참석자들을 보았다.
하지만 위구중이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위구중의 조가 특히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조작은 있는 걸로 알았지만······ 어떻게 예선에서부터 손을 써?’
위구중도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번 승부는 그야말로 잘짠 무대나 다름없었다.
물론 조마다 실력의 편차는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예선전 참가자중 위구중의 상대가 될 만한 이는 없었다. 어차피 승리해 올라올 텐데 왜 이런 짓을 벌였는가?
간단했다. 압도적인 모습을 뇌리에 각인하기 위해서.
남궁류청이 압도적인 예선 성적으로 계속 회자되며, 끌고 있는 주목을 뺏어 오기 위해서였다.
문파나 세가들이 달리 권력을 쥔 게 아니다. 무가의 권력은 바로 무에서 비롯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대를 이어갈 후계가 마땅치 않다?
그럼 바로 어디에 줄을 댈지 주판알을 튕기며 비교하기 마련이었다.
위맹주의 본신의 능력이 얼마나 잘났건 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구중은 확실히 강자였다.
하지만 소요없다.
회귀 전의 남궁류청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남궁류청은 과거의 이 시점보다 훨씬 더 강했다.
‘큰 변수는 없네.’
혹시나 뭔가 변한 게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확인했으니 됐다.
대단하다고 계속 요란을 피우던 서하령이 남궁류청을 돌아보았다.
“넌 할 말 없어? 별 반응이 없네.”
남궁류청이 무심히 답했다.
“뭐가?”
“아까부터 너무 조용해서 그러지. 혹시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은 건가? 응?”
서하령이 약 올리듯 장난 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서하령의 도발에도 남궁류청은 심드렁했다. 아니 오히려 싸늘하기까지 했다.
“호들갑은, 대단치도 않아.”
······얘도 눈치챘네.
반응을 보아하니 남궁류청도 위구중의 조가 조작된 것을 알아챘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남궁류청은 강자를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호승심도 매우 강했다. 하지만 위구중에게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제 상대가 아니라 이거지.’
하지만 서하령은 위구중의 조가 조작된 것까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일까? 남궁류청의 말에 서하령은 기분이 크게 상한 듯 보였다.
“어련하시겠어. 네 눈에 차는 사람이 있기는 하니?”
남궁류청은 서하령의 기분이 상한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상한 태도로 말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일 만큼 대단치 않다는 말이라고.”
“나도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네 눈에 차는 사람 없잖아? 맨날 그렇게 깔보기만 하고.”
남궁류청이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서하령, 뭐 하는거야?”
“내가 뭘? 틀린 말 했나?”
나는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 진정······.”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거 듣자하니 말이 너무한 것 아니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또 시비야?’
벌써 두 번째 시비였다.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은 가까운 자리에 있던 후기지수였다. 얼굴도 익숙했다. 좀 전에 내가 공작새 같다고 생각했던 그 청년이었다.
청년과 함께 앉아 있던 다른 후기지수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를 말리려 드는 이도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그쪽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예선에서 이렇게 활약한 위 공자의 실력을 무시하시오? 아, 남궁 세가의 자제라 당연한 건가?”
남궁류청의 표정은 대충 해석하면 이 잡것은 또 뭐야? 정도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뜬금없다고 여길만한 시비였다.
공손월이 무장을 지키는 무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황보찬 때는 딱히 제지할 사람이 없어서 싸움이 커졌으나, 지금은 예선 도중이었다.
“거기 무슨 일이오!”
청년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사내 대장부가 수치도 모르고 여인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추앙이나 받고 있질 않아.”
“······.”
아니 여기서 누가 추앙했다는 거야?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저말로 확실해졌다. 질투였다.
남궁류청은 함께 있다가 그냥 불똥이 튀었다고 할 상황이었다. 그때 그 불똥이 내게도 튀었다.
“다른 한 명은 아버지 휘광으로 본선에 올라온 주제에 잘난 척을 하질 않나.”
음, 생각해 보니 갑자기는 아니었다. 나 때문에 서하령과 함께 앉지 못했을 때부터 나를 노려보는 눈빛을 느끼긴 했다.
살짝 짜증난다는 정도였던 남궁류청의 표정이 어느새 싸늘해져 있었고 이를 공손월이 진정시키고 있었다.
후우, 안 그래도 기분이 계속 꿀꿀했는데 잘됐다.
나는 청년을 향해 비웃듯 말했다.
“신기하네요. 저는 그쪽의 성함도 모르는데, 개인적인 대화를 엿들으시다니. 원래 취향이 그렇게 음침하신가 봐요?”
“······뭐, 뭐라고?”
“설마, 하령이에게 같이 앉자는 거 거절당해서 이렇게 추잡하게 구시는 건 아니겠죠?”
청년이 붉어진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관객석의 소란과 상관없이 정리가 끝난 비무장을 다음 참석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움직임을 느끼고 별생각 없이 비무장을 바라보았던 나는 순간 그대로 굳었다.
그때 청년이 소리쳤다.
“추, 추잡이라니! 추잡한 건 그쪽이겠지! 내공 폐인이었으면서 특권으로 올라와 놓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도 재주는 재주구려!”
계속 이어진 소란에 주변 관객석의 사람들이 비무장이 아닌 우리는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칼을 귀로 넘기며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청년이 앉은 채로 주춤 뒤로 물러났다.
“특권이라고?”
나는 청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내 아버지는 정정당당하게 우승하셨어. 이 특권이 바로 내 아버지의 우승을 상징하지. 내 행동은 바로 그 결과야.”
나는 내게 모인 시선들을 훑어보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본선에서 이를 증명할 자신이 있어.”
그리고 나는 바로 비무장의 관객석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