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 * *
나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너무 자신감을 내비쳤나 싶지만, 어차피 약육강식인 강호의 세계에서 겸손은 진짜 강자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물러난다고 저들이 멈출까? 오히려 얕잡아 보고 더 괴롭혔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맹주의 말에 진심으로 동의해 험담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강자의 주장에 편승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이름을 깎아내리고 제 도덕적 우월성이나 조금 채우는 정도.
내가 이렇게 강하게 나갔으니 이제 또 내 의견에 편승해 위 맹주도 너무하다고 할 터였다.
게다가 내 본선 진출을 가지고 아버지에 관해서 자꾸 왈가왈부하는 게 꼴 보기 싫었다.
아버지의 우승까지 빛이 바래게 만들려고 작업하는 것이 느껴졌다. 백리의강이 그렇게 세간의 평판만큼 고결한 인물이 아니라고.
삼인성호라지 않나?
없는 호랑이도 세 사람이 우기면 만들어 낸다는데, 말도 안 되는 비난이라지만 그게 계속 이어지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기세를 꺾어 놔야 했다.
나는 근처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난간을 넘어 비무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꽤 멀어진 거리 너머 나뭇가지 같은 크기의 사람들이 서로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계속해 따라오던 기척이 거리를 두고 멈추는 게 느껴졌다. 내가 비무장을 나서기가 무섭게 따라오던 기척이었다. 지금까지는 필요에 의해 모르는 척했다. 일부러 정보를 흘리는 용도로. 그런데 이 상황이 되자 거슬렸다.
‘괜히 내버려뒀나?’
그때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또 다른 기척이 있었다.
탁, 탁, 탁. 제가 있다는 걸 알리는 듯한 발걸음소리였다.
남궁류청이었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늘 속 남궁류청의 얼굴 위로 투명한 햇빛이 자리를 넓혀 갔다. 화공이 있다면 지금 당장 붓을 들지 못하는 것을 한탄할 것 같은 자태였다. 나도 모르게 그 외모에 감탄했다.
그때 남궁류청에게서 전음이 들렸다.
「 네 뒤를 밟는 사람이 있어. 」
「 알고 있어. 위 맹주겠지. 」
「 알고 있다고? 」
남궁류청이 인상을 찡그렸다.
침묵하던 남궁류청이 되물었다.
「 ······방금전에는 대화를 엿들었다고 화내며 떠났으면서 이건 괜찮다는 건가?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 저들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두는 거지. 」
「 불편하잖아.」
「 불편하지. 그래도 감수할 만하니까. 」
나는 비무장을 돌아보며 축객령을 내렸다.
“어쨌든 나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돌아가. 공손 소저를 두고 오면 어떻게 해?”
남궁류청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왠지 눈을 마주치면 내 속을 읽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백리연.”
나는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나만 물을 테니 대답해. 그럼 갈게.”
나는 비무장을 한 번 더 주시하고 남궁류청을 돌아보았다.
“물어봐.”
“왜 그렇게 공손월을 신경 쓰지?”
단번에 중심을 파고드는 주제였다.
남궁류청은 눈치를 보지 않는거지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눈치는 매우 빠른 쪽에 속했다.
곧장 무슨 소리냐고 대답해야 했는데, 갑자기 당한 기습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제 와서 난 신경 쓴 적 없다고 부인해 봤자 소용없었다.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남궁류청의 입꼬리가 점차 올라갔다.
나는 그제야 입을 겨우 열었다.
최대한 냉정하고 싸늘하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아니야.”
남궁류청이 바로 입꼬리를 내리며 답했다.
“그래.”
이 자식, 전혀 안 믿고 있잖아!
나는 난간을 부서트릴 듯 꽉 부여잡았다. 내가 이럴 것 같아서 남궁류청이랑 마주치는 걸 피했던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매몰차게 말했다.
“류청, 내가 저번에 했던 말을 또 해야 겠어?”
사당에서 남궁류청의 마음을 거절한 이후, 당시 남궁류청의 표정이 때때로 떠올랐다. 이를 떠올리면 식사를 하다가도 입맛이 떨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남궁류청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새 무슨 결론을 냈는지 이젠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상관없어.”
“상관이 없다니.”
“너는 내가 싫다고 하지 않았잖아.”
“그건······.”
그랬다.
‘실수였나? 그때 싫다고 했어야 했나?’
아니다. 남궁류청은 거짓으로 설득될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진심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남궁류청을 거짓으로 설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그때 싫다고 하지 않은 걸 후회 해?”
폐부를 찌르는 듯한 질문이었다.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남궁류청이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물어보지. 내가 싫어?”
나는 넘어가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질문, 하나만 한다과 했잖아.”
남궁류청이 피식 웃었다.
“할 말 없으니까 꼬치꼬치 따지기는······.”
“······.”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뭐, 어디서 말하는 법 수행이라도 하고 온 건가? 왜 이렇게·····.’
말려드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착각하게 둘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널 연모하는 것도 아니거든.”
“알아.”
남궁류청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고개를 살짝 틀었다. 조각같은 콧날을 따라 짙은 음영이 졌다.
“그날 이후로 내 패인을 고민해 봤어.”
“그런 거 안 해도 돼.”
남궁류청은 내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데 너도 당연히 나를 좋아할 거라고 여겼지.”
······뭐지? 이 뻔뻔하기 그지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자신감은?
나도 모르게 남궁류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가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그래. 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저런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내 아버지가 누구냐! 바로 여인들이 던진 꽃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던 미남 중 미남이신 백리의강 아닌가.
남궁류청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은 없었어. 그래서 앞으로 네게······.”
남궁류청이 잠시 머뭇거렸다.
“네게 뭐?”
“네게 구애할 생각이야.”
“······.”
나도 모르게 몸이 주춤 물러났다.
‘어, 어, 어, 어, 어떻게 저런 말을······ 창피하지도 않나?’
얘가 원래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 남궁류청이 내게 바짝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남궁류청은 천천히 겁먹지 말라는 듯 손을 뻗어 내 오른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이 보이도록 펼쳤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바닥은 깨끗했다.
남궁류청이 과거 흉터가 남아 있던 부분을 살짝 쓸어내렸다.
“이때 거절했어야지.”
“······.”
내가 손바닥을 다쳤을 때 그때, 남궁류청이 시중을 든다고 찾아왔던 그때, 거절했어야 했다고.
“네 잘못이야.”
심지어 이렇게 나한테 책임을 전가한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인지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소리쳤다.
“너, 너······ 설마!”
“천천히 말해.”
“네가 공손 소저를 시켜서 자리를 마련한 거야? 하령이를 시켜서 나를 데리고 온 거고?”
남궁류청이 선선히 답했다.
“서하령은 내가 시키지 않았고, 공손월의 일이라면 맞아.”
서하령은 행동 양식이 뻔했다.
굳이 남궁류청이 나를 데려오라고 시키지 않아도 그녀의 행동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궁류청이 말을 이었다.
“내가 부탁한 거야. 이게 아니었다면 넌 나 본선에서 만날 때까지 피해 다녔을 거잖아?”
“······.”
“내가 자리를 마련했다고 초대하면 거절했을 테고.”
한참 입을 뻐끔거리다 왠지 억울한 마음이 치솟았다. 남궁류청에게 잡힌 손을 확 빼며 말했다.
“나 때문이라지만, 네가 공손월이랑 지내는 모습을 보고 내가 싫어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나는 당연히 네가 바로 눈치챌 줄 알았는데.”
“······”
또 할 말을 잃었다.
‘그러게. 이런 뻔한 수를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다니.’
이유는 간단했다. 공손월에게 정신이 팔려서.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했다.
“그래서 굳이 가시밭길인 걸 알면서 가겠다고?”
“너는 예전부터 그랬어.”
남궁류청이 고개를 살짝 틀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늘 미래만 봐.”
“······.”
“현재의 자신을 아낄 줄 모르지. 미래를 위해서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는 것처럼 굴어.”
“사람은 현재에 안주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남궁류청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저 벌레는 내가 치우겠어.”
남궁류청이 말한 벌레는 나를 따라다니던 위 맹주의 수하였다. 허공을 바라본다고여겼던 남궁류청의 시선은 그자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네가 싫다고 해도 할 거야. 내가 널 따라다니기 불편해. 거슬려.”
그렇게 난간을 밟은 남궁류청이 소리없이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