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 * *
이튿날.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난 나는 운기조식을 한 후 진진과 한바탕 대련을 했다.
진진은 나와 함께 이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내가 어차피 방도 남으니 함께 머무르자 했기 때문이다.
서하령 또한 초대했지만 거절당했다. 안휘성 후기지수들과 함께 머물고 있는데 그들을 두고 혼자 좋은 숙소로 옮기기 민망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씻고 진진과 아침을 먹은 후 그대로 방에 틀어박혔다.
나와 친분을 쌓고 싶다는 손님들이 계속해서 찾아왔으나 모두 거절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진진이 내 방으로 찾아왔다. 품 안에는 종이 뭉치가 잔뜩 있었다.
“아가씨, 이거 큰 어르신께서 아가씨께 보내신 거예요.”
“아, 여기다 놔.”
드디어 왔군.
진진이 내가 가리킨 탁자 위에 종이 뭉치를 내려놓고는 머뭇거렸다.
“할 말 있어?”
“그······ 괜찮을까요? 두 분께서 크게 싸우셔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여기서 말하는 두 분은 큰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였다.
어제 진진은 내가 남궁류청과 함께 율법원에 끌려갈 뻔하자 황급히 큰아버지를 찾아가서 보고했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는 장로회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 장소였다. 그리고 남궁완 아저씨도 참석해 있었다.
큰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 두분은 다급하게 율법원으로 향했다.비무장에 가도 이미 늦었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두 분이 율법원에 도착하기 전 내가 알아서 해결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그 사실을 들은 큰아버지는 곧장 남궁완 아저씨와 다투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충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으면 사고를 치느냐, 연이까지 엮이게 만들지 말고 처신 제대로 해라, 그런 싸움이었다고 한다.
진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진이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한 이유였다.
나야 큰아버지가 왜 그렇게 소란을 피웠는지 알지만, 진진은 정말 혼이 나갔을 테다. 어제부터 계속 괜히 보고한 게 아닌가 자책하며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보고 싶던 시합 못 봐서 아쉽겠어.”
“괜찮아요. 게다가 하령이 말로는 흙먼지밖에 안 보였다는데요.”
“······그건 그래.”
진진과 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내가 알 수 있었던 것들과 상대법을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하인이 휘장을 걷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백리 소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진진이 나서서 답했다.
“아가씨께서 모두 거절하라고 했던 거로 아는데.”
“예. 오늘 아무도 만나지 않으신다고 거절했습니다만, 물러가지 않고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어서요. 저희만으로는 해결이 힘들어서 치안대를 불러도 될까 하여 여쭈러 왔습니다.”
진진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아가씨, 제가 가 보겠습니다.”
“편히 쉬라고 오라고 한 건데 계속 잡일을 하게 되네.”
“별것도 아닌데요, 뭘. 아가씨는 일 보세요.”
진진이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진진이 가져온 종이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예선전 우승자 명단이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류청 그놈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초중반까지는 그래도 조금 확인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완전히 남궁류청에게 정신이 팔려 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제의 일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바스락.
갑자기 들린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내 손에 종이 뭉치가 구겨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쥔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구겨진 종이를 펼쳤다.
[승. 추도문 – 적야.]추도문은 처음 들어보는 문파였다.
강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문파가 있다. 그중 태반은 문파의 이름이 제 지역을 벗어나지도 못할 정도였다.
나는 탁자를 두들기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모르겠다면 해박한 사람을 찾아가면 되지.’
적당한 선물을 고르고 숙소 건물을 나왔을 때였다. 정원 너머로 소란이 느껴졌다.
씩씩거리며 돌아오던 진진이 나를 발견하고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시끄러웠죠? 안 된다고 해도 말이 통하질 않네요. 하인들이 무림맹 사람을 불렀으니 곧 조용해질 거예요.”
“아, 괜찮아. 그것 때문에 나온 거 아니니까. 나도 나가 보려고.”
“예? 어디 가시려고요?”
“공손 소저한테 가 볼까 하는데.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처소가 어느쪽인지 알아?”
“제가 안내할게요.”
나는 진진과 대화하며 정원을 가로질렀다.
소란스러운 대문이 눈에 담겼다. 하인들이 들어오려는 여인을 막아서고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러는가 싶어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진진이 그런 내 모습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불렀다.
“아가씨?”
손을 들어 진진의 말을 막았다.
‘아니, 뭐야? 얘가 왜 여기에······?’
문앞에 하얗게 질린 낯의 백리리가 있었다.
* * *
쪼르르르.
백리리 앞의 찻잔에 찻물이 차올랐다. 백리리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낯이었다.
나는 찾아온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차를 두 잔이나 비우고 나서야 백리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있는데 언니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네.”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야 알고 있었으니까. 네가 여기 있는걸.”
“알고 있었다고?”
“응. 마주친 적 있거든.”
“어디서?”
“거리에서. 넌 못 봤을 거야.”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큰아버지도 아셔.”
백리리가 의자에서 움찔 떨고 소리쳤다.
“언니가 말했어?”
“응.”
백리리가 배신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걸 왜 말해!”
“그럼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뭔데?”
“······.”
“큰아버지가 여기 계신 거 너도 알지?”
백리리가 뾰족하게 말했다.
“알아.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아, 당장 내가 왔다고 또 아버지한테 일러바치려고?”
“큰아버지가 너를 잡으로 가겠다고 펄펄 날뛰시던 걸 내가 말렸어.”
“······말렸다고?”
사실은 백리리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정확히 어디 머무는지 알지 못해서 잡으러 갈 수 없었던 거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었다. 중의적 표현일 뿐.
“네게도 생각이 있을 테니 내가 먼저 너랑 천천히 얘기해 본다고 했지.”
“······.”
“다들 걱정하고 있어. 걱정 그만 끼치고 돌아와.”
백리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난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여기는 왜 온 거야?”
질문하자마자 다시 백리리의 안색이 확 나빠졌다.
이쯤 되자 정말 궁금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반응이 저런 거지?’
그리고 백리리에게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 고모를 봤어.”
* * *
고모는 그때 실종된 후,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내공 폐인인 고모가 누군가의 조력없이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시기상 조력자들이 마교일거라 여겼다. 하지만 심증일 뿐 증거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한동안 고모를 계속해서 찾던 할아버지는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찾는 걸 포기했다. 대신 쌍둥이들을 엄중히 감시했다. 고모가 살아있다면 쌍둥이들을 어떻게든 되찾아가려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모는 지금까지 쌍둥이들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모두 고모에 대해 거의 잊은 채 다들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이쪽으로 쭉 가면 돼.”
나는 백리리를 앞세워 무림맹 본단을 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아래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무한에 온 백리리는 가짜신분으로 본단 밖의 객잔에 머물렀다고 한다.
가짜 신분으로 새로운 벗도 사귀고 예선도 구경하러 다니며 – 참고로 비무 대회 참여는 안 했다고 한다 –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 그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어서 계속 쫓았는데······”
고모가 한객잔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어찌 해야 할지 종일 고민하다가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지? 무림맹 한복판에 나타날 생각을 하고.”
글쎄. 가출한 주제에 뻔뻔하게 무림맹 한복판에 나타난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니, 리리야?
“고모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고모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얼굴은 당연히 더 그랬다.
그나마 고모의 얼굴을 기억할 고모의 지인들은 다 호남성 지역 사람이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여기 있더라도 무한은 넓으니 조금만 조심해도 문제없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위였다.
“고모인 거 확실해?”
백리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변한 게 하나도 없어서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다고! 염치도 없는 인간 같으니. 살려 준 걸 감사하게 여겨도 모자란 마당에, 도망을 쳐? 절대 가만 안 둬.”
백리리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백리리도 조금만 삐끗하면 제 오빠처럼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으니 그 원한이 대단했다.
나는 백리리의 말 중 신경 쓰이는 부분을 되물었다.
“······변한 게 없다고?”
“응. 완전 똑같았어. 나도 변장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제정신인가 싶었다니까.”
“이상한데.”
“뭐가?”
“고모는 내공을 폐했잖아.”
백리리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백도, 그러니까 정종 무공을 익힌 이들은 노화가 다른 이들에 비해 느린 편이었다. 고모가 가장 좋아하는 찬사중 하나가 아이 둘을 가진 것 같지 않은 외모라는 소리였으니.
고모는 외모도 무척 신경 썼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만해도 20대 중후반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모는 내공 폐인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쯤은 제 나이대로 보이는 게 맞았다.
흑도 놈들이 익히는 사파 무공처럼 갑자기 확 늙거나 하는 부작용은 없지만 어쨌든 내공을 폐한다는 건 몸이 크게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 말뜻을 이제야 깨달은 듯 백리리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