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어······ 그러게? 어떻게 멀쩡하지?”
할아버지가 직접 내공을 폐하셨으니 실수하셨을 리가 없다.
발을 멈춘 백리리가 한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이야.”
청호객잔.
평범한 이름의 3층짜리 객잔이었다.
“저기로 들어갔어.”
강호인들이 주로 모이는 객잔인듯 때마침 허리에 칼을 찬 사람들 한 무리가 우르르 객잔을 나왔다. 비무 대회가 열리는 지금 객잔의 태반은 저런 모습이기에 이상할 것 없었다.
건물 안에 머무는 사람들도 특이한 점을 찾기 어려운······.
나는 품에서 명패를 꺼내 백리리에게 건넸다.
“뭐, 뭐야?”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거 들고 무림맹 본성 정문에서 기다려. 기다리다가 내가 1시진이 지나도 안 돌아오면······ 남궁류청을 찾아 가.”
이럴 때 떠오르는 게 남궁류청이라는 사실이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백리리가 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어,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일단 가. 혹시나 해서 그런 거니까.”
좀 전까지 가만 안 둔다며 패기 넘치던 백리리의 눈동자가 지진난 것처럼 흔들렸다.
“어, 언니, 위험하면 그냥 차라리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같이 가는 게······.”
흥, 죽어도 아버지 만나러는 안 가겠다더니. 얘가 나를 걱정하기는 하는 구나 싶었다.
“걱정 마. 별일 없을 거야.”
그러고서 나는 돌아보지 않고 바로 객잔으로 향했다.
* * *
나는 객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겉에서 보았듯 내부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객잔이었다. 내부 장식들과 깔끔하니 잘 정돈된 모습들로 보아 무한에 있는 객잔중 중급 정도였다.
보통 1층은 식당으로 운영하는 객잔의 특성상 점심시간이 지난 지금은 꽤 한산했다. 드문드문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사람들만 몇 보였다.
그때 점원처럼 보이는 청년이 객잔 계단을 빠르게 내려와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식사를 하러 오셨습니까? 숙박이라면 죄송합니다만 방이 꽉 차서 불가능합니다.”
나는 점원을 살피고는 삿갓을 벗었다. 숨을 헉 들이키는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사, 사람이요? 혹시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말씀해 주시면···.”
나는 1층 구석에 앉아 수을 마시던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건 저쪽이 알 것 같네.
“예?”
나는 의문을 나타내는 점원을 뒤로하고 객잔을 가로질렀다.
내가 손가락질을 할 때부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이들은 내가 다가가자 거짓말처럼 표정이 싹 사라졌다.
중년인이 스르륵 일어나며 말했다. 중년인의 뒤를 따라 다른 이들도 함께 일어났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나는 새삼 감탄했다.
천마지보가 나타난 이상 마교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는 건 달랐다.
‘무림맹 본단 바로 코앞에 이렇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니.’
어디 숨어 있다가나타난 것인지. 내가 무한 거리를 좀 더 구석구석 뒤져 봤어야 했나? 왠지 이자들은 새 발의 피 일 것 같았다.
내가 답없이 웃자 중년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혼자 나타나다니,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우리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
한 무리의 일행이 나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그건 내가 돌려주고 싶은 말인데.”
“당신 이름에 우리가 봐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오.”
중년인이 검을 뽑아들자 탁한 기운이 점차 짙어졌다. 몇 번 겪었다고 어떻게 쌓은 기운인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검을 쥐었다.
당장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순간.
“그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를 듣는 순간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당장 내게 덤벼들 것 같던 이들이 갑자기 공손한 태도로 변했다.
“오셨습니까.”
“다들 죽고 싶어? 누가 이러라고 했지?”
언성이 높아지지도 않은 나직한 타박에 중년인과 나를 둘러싼 놈들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 수록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검을 꽉 쥐고 뒤를 돌아보았다.
검붉은 빛이 희미하게 도는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눈꼬리가 흐릿하게 웃음지었다. 꾸며낸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오랜만이야.”
굳게 쥔 두 손과 달리 내 눈동자는 갈피를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 * *
정갈하고 넓은 방이었다. 본래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닌 듯 생활감이 전혀 없었다. 일부러 방을 빌려 자리를 마련한 듯싶었다.
앞자리의 낯선 얼굴의 청년이 찻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쪼르륵.
“생각보다 늦었네. 바로 찾아올 줄 알았는데.”
“네가 도망칠 것도 아닌데 급할 필요없지.”
탁.
찻주전자를 내려놓는 소리가 거슬리게 들렸다.
“거짓말. 그날 남궁 놈한테 붙잡혀서잖아.”
예선전을 치르면서도 그걸 보다니.
청년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붉은 빛이 희미하게 도는 눈동자 아래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남궁류청을 죽이고 싶어서, 증오하여 그러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자를 죽이고 피바다를 헤치고 살아남은 자의 살기였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추도문의 적야.”
“그냥 야율이라고 불러.”
“그 얼굴은 뭐야?”
야율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교한 인피면구였다. 오히려 기맥이 뒤틀린 것을 살필 수 있는 역용술이 더 알아보기 쉬웠다.
야율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인피면구를 벗었다. 칠흑같은 머리카락이 새하얀 이마 위에 흐트러졌다.
나는 거의 숨을 멈추다시피 했다.
그늘진 눈매 아래 눈물점이 선명했다. 살짝 음울해 보이면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다. 수십 번을 꿨던 꿈 속과 완전히 똑같았다.
야율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쪽이 익숙한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 싸늘하게 나왔다.
“무슨 의미야?”
야율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야, 내가 네 목을 잘랐으니까.”
말하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고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기억을 해낸 건가?······아니면 들은 건가?’
놀랍지는 않았다. 야율이 천마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지않을까 짐작했으니까.
야율이 인피면구를 탁자 위에 툭 던지며 말했다.
“궁금해. 날 왜 살렸어?”
“······.”
“어떻게 자신을 죽인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야율의 시선이 내 목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날 동정했어?”
“······.”
“아니면 악인을 계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목덜미가 간지러웠다. 손으로 벅벅 긁으면 이 간지러움이 해소될 것 같았다. 하지만 찻잔을 꽉 움켜쥐며 참았다. 긁는다고 해소되는 통증이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야율을 쏘아보며 말했다.
“네가 그리 말하니 나도 궁금한 게 있어.”
나는 야율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바로 물었다.
“나 왜 죽였어?”
“······.”
이번에는 반대로 야율이 침묵했다.
나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나는 살고 싶어서 아무 연관도 없는 곳으로 떠나 조용히 살고 있었어. 너를 만난 적도 없었지. 죽을 만큼 죄를 지은것도 없었어. 그런데 왜 죽였어?”
야율이 답했다.
“몰라.”
“모른다고?”
“응. 기억이 안 나.”
잔뜩 긴장했던 나는 야율의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거 참 편리한 기억력이네. 날 죽인 사실은 떠올리고 이유는 모르고.”
야율이 물었다.
“······화났어?”
“그럴 리가. 내가 왜 화를 내?”
“화났구나.”
제멋대로 단정한 야율이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꿈을 꿨어.”
“······.”
“어떤 여인의 목을 자르는 꿈.”
그 여인이 나를 말하는 거라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어. 그게 너라는 걸.”
“언제부터?”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꿨을 거야.”
전혀 몰랐다. 야율이 그런 꿈을 꾸고 있는지.
제갈화무에게 들은 적 있었다.
일부 이런 식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보통은 정말 꿈처럼 잊어버린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잘 때 가끔 살려달라고 했어.”
“······.”
나는 몰랐지만, 야율은 꽤 오랫동안 자는 나를 지켜보았다. 내가 손바닥을 다쳤을 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면서.
그리고 나는 그때 때때로 악몽을 꿨다. 잠버릇이 고약하다고듣긴 했지만, 꿈속의 일을 말하기까지 한 줄은 몰랐다.
야율이 말을 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따금 떠올랐어. 하지만 그게 천마인지는 몰랐지. 천마를 본 날 바로 았았고.”
야율이 천마를 언급한 순간 다시 정신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그래서 너 지금 왜 마교 놈들하고 함께 있는 거야? 너 정말로 천마와······.”
멍청한 질문이었다.
천마와 함께 사라졌던 야율이 마교도들의 복종을 받으며 함께 있다?
몸속에 혈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억류되어 있지도 않았다. 무림맹 비무 대회 예선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난 내공.
극양지체의 체질은 본디 내공을 빠르게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야율의 성장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흡성마공.
야율이 다시 흡성마공에 손을 댄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