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 * *
여인과의 대화를 마친 후 생각에 잠긴 채 돌아가는 길이었다.
모르는 척 걸어가던 나는 민가에서멀어진 후 뒤를 돌아보았다.
“그만하고 나와.”
어둠 속에서 야율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정말로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을 터였다.
“아주 이제 정체도 들켰겠다, 대놓고 따라다니는 건가? 응?”
맨얼굴의 야율이 내 말이 맞는다는 듯 웃기만 하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안도가 되었다. 내게 아직 관심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으니 나를 이렇게 몰래 따라오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 관심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맨얼굴의 야율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호위도 없이 야밤에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
“야밤을 틈타 누가 날 습격이라도 할까 봐?”
“조심하는 게 좋으니까.”
“글쎄. 나한테는 지금 네가 제일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가.”
야율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주 태연한 모습이었다.
주변을 쭉 훑어본 야율이 물었다.
“네 거머리는······ 일이 있나봐?”
거머리······.
거머리가 누구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누굴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야율을 바라보았다.
“걔가 거머리면 너도 거머리지.”
나로선 거머리 하나 떠났더니 다른 거머리가 붙은 꼴 아닌가.
야율이 입을 다물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뭐 중요해? 중요한 건 우리가 만났다는 거지.”
“······.”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었다.
미소 띤 얼굴의 야율이 궁금증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거머리랑 방에서 뭘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또 어떻게······?”
야율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했다.
“걱정 마. 내가 주루에 들어가거나 주루에 사람을 심어 놓은 건 아니니까. 돈만 주면 소식을 전해 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넌 워낙 눈에 띄니까.”
“······.”
“그래서 방에서 뭘 한 거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 말했다.
“돈 써서 알아봐.”
“아, 너무해.”
나는 살짝 실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허튼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어둠에 파묻힌 듯한 야율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지금 다시 만난 게 다행일 수도.’
급작스럽게 만나고 급작스럽게 헤어져 제대로 묻지 못한 것들이 있으니.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내가 무한에 처음 온 날 내 앞에 왜 나타났어? 내가 쫓는 걸 알고 왜 도망쳤고?”
이상한 일이었다. 내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야율이라면 가시거리 안에 들어가는 순간 애가 알아볼 것을 뻔히 알았을 텐데.
‘굳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갑자기 도망치다니.’
무슨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그때 야율이 가볍게 답했다.
“보고 싶어서.”
“······뭐라고?”
“원래는 멀리서만 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한 번 보니까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그래서 조금씩 다가가다 보니······ 실수했지.”
말을 마치고 미소 짓는 야율의 모습은 화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느새 깨물고 있던 입술을 떼고 물었다.
“나를 보고 싶었다고? 왜?”
“방에서 둘이 뭐 했어?”
“······.”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네가 대답하지 않으면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 그런 의미가 읽혔다.
야율은 눈을 치켜뜬 나를 보며 왜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얄밉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내가 되물었다.
“방에서 뭘 했냐고?”
“응.”
“남궁류청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때렸다. 됐어?”
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해해. 때리고 싶게 생겼지.”
“그리고 지금 너도 때리고 싶어지는데.”
“하하. 그럴래?”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야율을 노려보던 것을 그만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야율, 실없는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진지하게 얘기해.”
“진지한 얘기, 좋지.”
야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걸로 할까? 음, 그래. 네 고모에 관해서 궁금하려나? 네 고모는 아직 못 찾았어. 혹시 그 쪽은 소식 없나?”
나는 손을 내저었다. 고모는 아직 흔적도 찾지 못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꾹 누르고 말했다.
“벽가장의 일, 네가 한 거야?”
“아, 벽가장. 그것도 있었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야율이 산뜻하게 대답했다.
“맞아. 내가 직접 했어.”
“네가 직접 했다고?”
“응. 무한에 오기 전에. 걱정 마, 연아. 그들은 죽어도 싼 인간들이야.”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대체 언제 그럴 만한 시간이 있었을까? 전서구로 소식이 전달된 시간을 따져 보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복수했다는 말이야?”
“음,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아니야.”
“이번에는 아니라고?
그럼 왜······?”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할 일이라고?”
“응. 쓰레기는 치워야지 않겠어? 내가 해야 할 일이니 이번에 한 거야.”
야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냥 궁금한 거야? 아니면 화가 난 거야? 벽가장이 지금까지 네 가문에 한 짓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좋아해야지.”
나는 야율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일부러 시선을 돌리고, 괜찮을 거라 애써 위안하며 모른 척했지만 느끼고 있었다. 야율은 사람의 목숨에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야율.”
나도 모르게 야율의 양팔을 부여잡았다.
야율의 시선이 그를 붙잡은 내 손으로 향했다. 그의 눈빛은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기꺼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자. 여기서 멈추자. 응?”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천산염제가 널 살리자고 죽은 건 기억해?”
“글쎄······. 그 말에는 어폐가 있는데.”
커다랗고 딱딱한 손이 내 손등을 천천히 덮었다.
“천산염제는 날 살린 게 아냐. 무공의 진전을 이어갈 자를 살린 거지. 내가 극양지체가 아니었다면 그가 내게 한 톨의 관심이라도 뒀을까?”
천산염제의 성품을 생각한다면······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첫인상은 최악이었으니까.
야율은 그저 사실을 말하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오히려 남궁 세가에서 바로 나를 죽였겠지.”
“절대 그럴 일 없어.”
“맞아. 네가 막아 줬겠지.”
손가락 새를 파고드는 열기가 느껴졌다. 야율의 시선이 나를 비켜가 허공을 향했다.
“적당한 아이를 찾아내 무공의 진전을 넘겨주면 그의 소원도 이뤄지는 거야. 그 정도는 나도 해 줄 수 있지.”
야율을 붙잡았던 손은 어느새 깍지를 끼고 있었다. 분명 맞닿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전해오는데 왠지 모르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연아. 너는 내가 뭘 원하는 지 알아?”
내내 미소를 띤 낯이던 야율의 얼굴에서 표정이 싹 사라졌다.
내가 알던 야율의 표정이었다.
아니, 내 목을 칠 때의 야율은 웃고 있지 않았던가?
무엇이 본래 야율의 표정인지 나도 이젠 알 수가 없었다.
야율이 깍지 낀 손을 들어 올려 제 뺨에 비볐다.
“내가 널 아끼니까.”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 말이 나를 왜 보고 싶었냐는 질문에 대한 야율의 대답인 걸 알 수 있었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침상에 누워 신음하는 청년을 보며 물었다.
“후우, 뭐야. 백리연? 너, 돌아간 거, 아니었어?”
장철이 제 얼굴을 덮은 수건을 치우며 말하려다가 신음을 내고 굳었다.
장철 옆에 있던 청년이 다급히 소리쳤다.
“야, 움직이지 마!”
장철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이제는 그친 것 같지만 머리에 잔뜩 엉켜있는 피딱지와 옷자락에 묻어있는 핏자국. 그리고 색이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는 팔이 보였다.
나는 장철을 부여잡은 청년에게 실례한다고 말하고 장철에게 바짝 다가갔다.
시퍼렇게 변한 팔에 손을 올리자마자 비명이 터졌다.
“악!”
“소, 소저. 함부로 만지면······.”
“아악! 아!”
“엄살 부리지 마. 살펴보는 거니까.”
“네가 보면 알아?! 내버려 둬! 건들지 말고! 악!”
자세히 살펴본 결과.
“······크게 부러진 건 아니야. 금 가고 어긋난 정도네.”
어느새 얼굴을 덮은 수건을 집어 던진 장철이 식은땀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어릴 적 몸이 안 좋아서 의서를 많이 익혔으니까.”
방 안의 청년이 감탄하며 말했다.
“아, 역시 백리소저. 대단하시네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래서야 본선은 글렀다. 게다가.
‘하필 오른팔이라니······.’
검을 드는 쪽 손이었다. 후유증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장철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기에 내가 방에 있는 것은 불편할 터.
방 안의 장철의 친우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 곧장 방을 나왔다.
그리고 함께 방을 나온 진진을 돌아보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