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시야에 다른 자들이 보였다.
비가 쏟아지는 중이었지만 여기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 저자들이 서하령과 내 대화를 떠벌리면 서하령이 귀찮아질텐데.
‘입을 막는 편이 좋을까?’
나는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는 것 없는 허공에 깨달았다.
아, 방금 검 넘겨줬지.
그때였다.
“가지 마.”
서하령이 빈 곳을 헤매던 내 손을 꽉 쥐었다.
“아, 그래! 여기 백검단도 와 있어. 백리 세가주께서 널 찾고 계셔! 얼마나 걱정하시는데. 정말이야. 나한테 혹시 네게 연락 온 게 없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시고······ 오면 가장 먼저 알려 달라고도 하셨어! 여기 내가 가지 신호탄이······ .”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내가 돌아가면 할아버지가 곤란하실거야.”
“왜 곤란해? 곤란할 게 뭐 있어! 괜찮아. 만약 네가 정말 천마의 혈족이래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넌 잘못한 게 없잖아!”
“천마가 죽인 사람은 그 수를 셀 수가 없어. 심지어 마교와 큰 충돌이 없던 백리 세가에도 마교 놈들에게 죽은 이들이 있지.”
“······ .”
무림맹 본단을 마교가 습격했을 때 죽은 이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그 습격에 문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금지옥엽 외동딸이 죽은 곳도 있었다. 문파의 제자 한 명만 죽게 되더라도 그 문파 전체가 혈채를 받아내기 위해 나섰다.
또한, 제자는 스승의 은원을 물려받고 자식은 부모의 은원을 물려받는다. 여기서는 개인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개인으로 계산하고 싶다면 문파에서 파문시켜야 했다.
만약 파문시키지 않는다면 그 문파 또한 그자의 은원을 같이 책임지겠다는 뜻이었다.
강호의 불문율이었다.
“그들에게, 백리연은 마교와 관련없는 사람입니다. 친모가 천마의 딸일 뿐이니 내벼려 두세요- 라고 하면 아, 그건 그렇지. 맞는 말일세. 이러고 물러갈까? 심지어 마교의 성보까지 물려받은 나를?”
그래. 할아버지는 나를 보호해 주실 생각이 있으실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 백리 세가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커졌다.
나는 괜찮았다. 백리 세가의 보호를 받을 테니까.
하지만 나를 지키겠다고 백리 세가 사람들이 다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백도 무림이 가만히 있는다해도 마교에서 백리 세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백리 세가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면 나를 되찾을 때까지 끝없는 전쟁을 벌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를 만들어 냈다.
“그동안의 우정이 있으니 그냥 보내 주렴.”
나를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툭, 붙잡혔던 손이 풀리며 내려갔다.
그때였다.
삐이이익!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날카로운 호각 소리. 무림맹 사람들이 쓰는 것이었다. 빗소리에 묻혀 서하령은 듣지 못한 듯 싶었다.
삐익!
그리고 채 두 번 울리기도 전에 갑자기 뚝 끊기듯 소리가 멈췄다.
이상했다. 함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르고 가까웠다. 바로 코앞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유인이라면 좀 더 안쪽에서 하는게······.
쾅-!
그 순간, 지반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 나무들이 거세게 흔들리며 고여 있던 빗물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 소리는 서하령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가타부타 할 것 없이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잠깐만, 연아!”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되돌아 보지 않았다.
쏟아붓던 빗줄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미처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지 않은 흔적들을 따라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현장을 발견했다.
빗물이 고여 있었을 웅덩이가 새빨간 빛을 띠었다.
좀 전까지 숨 쉬고 있었을 자들에게서는 이미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숨이 붙어 있다 해도 곧 스러질 자들뿐이었다.
나는 뛰어다니며 시신들을 살폈다.
“하아······.”
야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 공자!”
서하령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뒤따라온 듯했다.
안재홍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엎드려 있었다.
서하령이 황급히 몸을 숙여 맥을 짚었다.
“······죽었어.”
파각.
무언가 밟은 느낌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신호탄이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터트려 보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하령도 품에서 신호탄을 꺼냈다. 하지만 내 발에 밟혀 있는 신호탄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습기가 가득 찬 곳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쿵-.
둔중한 파공음이 멀리서 들렸다.
야율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몸을 휙 돌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띄엄띄엄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저 많은 인원을 도망칠 틈도 없이 짧은 사이에 몰살한 것으로 알 수 있듯 조금씩 보이는 흔적만으로도 상대의 수준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상했다. 전투 장소가 내가 있던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멀어지고 싶은 것처럼. 위험하다고 오지 말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발을 멈췄다.
* * *
“하, 지긋지긋한 비. 이거 언제 그치는 거야?”
“이제 슬슬 줄어들고 있으니 곧 그칠 것 같습니다.”
투덜거리던 안재홍이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마지막까지 불만을 표하던 청년이 있었다.
“기둥서방 그런 거냐? 꼼짝을 않고 여자한테 절절매다니. 그렇게 예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야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면 안재홍의 인생은 15분 일찍 끝났을 터다.
다행히 척후가 돌아와 안재홍이 관심을 돌렸다. 야율은 후기지수들이 척후의 보고를 받는 새 안재홍의 시야를 살짝 벗어났다.
‘지금 빠져나갈까?’
아직은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만약 자신이 사라진다면 바로 백리연 측으로 사람을 보내 따져 물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떠나보낸 이유도 대충은 알았다. 서하령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겠지.
거리가 벌어지기만을 바라며 묵묵히 후기지수들을 뒤따를 때였다.
야율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 뭐야?”
뒷사람이 멈춰 선 야율과 부딪칠 뻔해 성질을 냈다. 그것이 그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안 공자님! 포위됐습니다!”
“습격이다!”
“또?”
“아니, X X !”
여기저기서 욕설과 함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이미 한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자들은 습격에도 자신만만했다. 후기지수들은 팔짱을 낀 채 마치 고고한 고수라도 된 것처럼 주변을 살폈다.
야율은 자신들을 포위한 자들을 보았다.
이상했다. 그도 이 상황이 유인하는 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빨랐다.
그를 몇 번이나 살렸던 감이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감은 늘 그렇듯 정확했다.
야율이 재빠르게 자리를 박찬 순간. 야율 근처의 사람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누구······!”
그 자리에 처음 보는 사내가 서 있었다. 엄청난 기도를 풍겼다.
시신 가운데 선 사내를 보고 후기지수 중 한 청년이 눈동자에 절망을 드리우고 중얼거렸다.
“처, 천마 좌사······.”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반항다운 반항조차 없이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유일하게 남은 건 야율뿐.
그가 손꼽히는 실력을 갖췄다고 한들 좌사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당장 몸을 빼는 게 옳았다.
좌사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나와 싸우겠다는 건가?”
야율은 언제든지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를 둔 채 조금씩 움직였다.
빗줄기 사이로 감췄지만 아주 흐릿하게 느껴지는 기척들.
분명 숨어있는 기척들이 있었지만, 평소 좌사가 데리고 다니는 수하들의 수로 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거의 좌사 혼자라고 볼 수 있을 병력이었다.
야율은 본능적으로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콰앙 – !
싸움은 별다른 신호없이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강서성 후기지수들과 낭인들을 살육하는데 손을 보탰던 흑의인들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밀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좌사가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어서 말일세. 처음 교주님이 데려왔을 때 생각했지. 더 크기 전에 죽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러나 야율은 살아남았고 그런 야율을 좌사가 거둬들였다. 야율은 거둬들인 것이 아니라 노예로 써먹었다고 생각할 테지만.
“왜 배신했을까. 모두 자네가 신녀님과의 관계 때문에 배신했다지만 내 자네를 본 세월이 있으니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았지.”
야율의 얼굴엔 아무 표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무기질적인 낯은 맹수처럼 약점을 노리며 덤벼들 뿐이었다.
“못 이길 걸 알면서도 이렇게 덤벼드는 걸 보면··· 내가 잘못생각한 것 같기도 하단말이지.”
“······.”
야율은 모든 대화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좌사는 야율의 표정 없는 낯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무슨 말을 해도 똑같이 저런 무심한 표정이니 속내를 전혀 알 수 가 없었다. 딱히 훈련도 한 적 없건만 타고난 듯이 저렇게 굴었다.
더는 자극해봤자 얻을 게 없어 보였다.
그때 좌사를 마주친 후, 놀란 표정조차 짖지 않던 야율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반가운 걸 맞이하는 듯한 미소······.
좌사가 몸을 돌려 본능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퍼억-!
날붙이와 손이 부딪치며 북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튕겨 나간 비수가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
“야율! 괜찮아?”
좌사가 공손히 인사했다.
“천마성교의 신녀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