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 * *
‘신녀라니?’
기가 막혔다.
욕설을 내뱉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야율이 먼저였다.
야율은 이미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끌어다 쓴 듯 기혈도 상당히 뒤틀려 있었다.
내상 탓에 입가에 흐른 핏자국이 빗줄기에도 씻겨 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좌사가 나와 야율 사이를 가로막았다.
좌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3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낯. 실제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아버지나 남궁완 아저씨와 비슷한 연배인데 마교의 서열 3위라 할 수 있는 좌사가 된 것은 마교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었다.
마공은 배우는 방법만 사악하고 잔인하다하여 마공이 아니었다.
무공을 익히는 주체조차 해하기에 마공이었다.
무엇보다 마공을 익힌 사람은 오래 살지 못했다. 특히 강해질수록 더 그랬다.
마공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여 죽든가 혹은 머리에 마기가 침투하여 미치광이가 되어 죽든가.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강해야 하는데 강해질수록 일찍 미쳐 버리니 고수들의 연령이 젊을 수밖에.
천마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있는 미친 사교 무리와,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볼 수 있는 무림맹이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이유였다.
좌사가 말했다.
“잠시 배교자를 처단하고 있었으니 신녀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래? 나 불러내려고 살려 둬 놓곤.”
좌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교의 좌사가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 봤겠는가? 눈치 보고 살 일없는 강자일수록 자존심이 매우 높았다.
나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제는 뭐, 신녀라며?”
“아주······ 겁이 없군.”
역시 존대는 바로 날아갔다.
“내가 겁이 있었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
좌사가 사납게 웃었다.
“그도 그렇지. 하지만 그런 모습도 오늘까진 것 같군.”
오늘까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간 마교는 나를 데려가려고 했지 죽이려 들지 않았다.
죽이려 들었다면 천라지망 안에 갇혀 있을 때 벌써 죽였을 터. 그들이 나를 죽이지 않고 산채로 데려가려 했기에 도망을 다닐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까지라니?
‘이젠 죽이겠다는 의미인가, 혹은 그저 말실수일 뿐인가?’
“뭐, 잘됐어. 그간 궁금한 게 하나 있었거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좌사는 마치 재롱을 부리는 애완동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궁금한 것이라니?”
“천마 말이야, 무슨 일 있지?”
“그분에겐 그분의 생각이 있을 뿐.”
동요는 전혀 없었다. 마치 정해진 답안을 그대로 읊는 느낌이었다.
천마는 지금 이 난리가 났음에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마교의 천라지망에서 탈출 했을 때도, 무림맹이 마교랑 충돌했을 때도, 7마군이 태고 진인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을 때도.
“그 분의 뜻이 나를 데려가는 것이 맞긴 한가?”
좌사와 야율을 둘러싸고 지켜보는 인원들은 좌사의 수하로 보였다.
그들은 좌사와 야율의 싸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외부에서 오는 이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역시나 야율을 미끼로 나를 기다리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좌사 앞에 나타난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들의 경계는 이곳, 나와 야율이 아닌 외부를 향해 있었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밖을 경계하고 있지? 무림맹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을까 봐?”
“역시 그 눈······.”
말을 흐린 좌사가 탐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마교의 고위급들은 이미 내 눈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천라지망 안에서 도망을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 두 번째는 이 눈이었다.
나의 눈 때문에 다른 이들이 숨어서 기습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포위도 조금만 접근하면 곧장 들켜 버렸다.
“눈이 아니라 내가 똑똑한 거야.”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너와 저 녀석 둘의 능력으로는 내 앞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도망친다면 적어도 한 명은 찢어 죽일 수 있다고 장담하지. 얌전히 따라오너라.”
천마지보의 의념을 받아들이고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들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천마지보는 다음 대 천마를 위한 안배였다. 제갈 세가주들이 기억을 대대로 물려받으며 생긴 문제는 사람이 버티지 못하고 소실되는 양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뭐가 소실되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소실되었으니까.
천마는 아마도 그 소실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천마지보라는 형식으로 보전한다면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천마지보라는 형태로 만들어 놓았고, 내가 손만 닿아도 흡수하게 되어 있었으니, 천마 본인도 이걸 늘 곁에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림맹에 뺏겼고, 나를 통해 무림맹에서 천마지보를 되찾아 오려 한 것이다.
그럼 이제 문제.
내가 흡수한 천마지보를 다시 천마가 되찾을 방법은 무엇인가?
웃기게도 천마지보로 얻은 의념들 안에 그 부분에 관한 내용만 쏙 빠져 있었다.
천마의 신공절학, 기이한 능력, 의념들을 담아 놓고 그 부분만 없었다.
나는 좌사를 향해 말했다.
“당신 지금 몰래 빠져 나왔지?”
좌사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확신을 굳힌 상태였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무림맹은 교내에도 세작을 심어 놨다. 내가 움직인다면 무림맹이 주시할 터.”
“아니, 무림맹 때문이 아니야. 당신은 다른 교도들이 알면 좋지 않을 일을 저지르려고 획책했기 때문이지.”
“신녀.”
“당신, 천마지보를 노리고 있지?”
“······.”
“당신은 나를 천마에게 데려갈 생각이 아니야. 본인이 차지할 생각이지.”
“······.”
“이 힘을 빼앗아 갈 방법을 알아낸 것 아닌가?”
방법?
모른다. 하지만 날 죽이면 천마지보의 의념이 그대로 사라진다는데, 내게서 의념을 넘겨받는 혹은 뺏는 방법도 있을 법하지 않나?
천마지보. 그 누구보다 탐나는 것은 마교의 교도일 것이다.
천마에 대한 충성심도 버릴 정도로.
심지어 천마에게 문제가 생긴 상황.
이 틈을 타서 천마지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좌사가 다른 마교도들은 알아채지 못하게 몰래 온 것이라고 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그냥 내 가설이고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모든 상황에서 내 가설은 맞아 들었다.
나는 비웃듯 말했다.
“배교자.”
좌사의 낯에서 표정이 싹 사라졌다. 흔들릴 만도 한데 분노나 당황은 읽히지 않았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좌사의 검이 순식간에 나를 찔러 들었다. 면이 널찍한 대검이었다.
하지만 나도 피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숙여 휘두르는 검을 피했다.
뒤따르던 머리카락이 서걱 잘려나가 한 올 한 올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죽이려는 의도는 읽히지 않았다.
‘얼마나 피할 수 있을까?’
좌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었다. 태고 진인과 비슷하다면 비슷할까.
그리고 천마지보를 흡수한 직후 만큼은 아니라도, 천마대총에 가까워지면서 내가 쓸 수 있는 천마지보의 공능은 훨씬 더 강해졌다.
만약에 이를 쓴다면 좌사를 이길 수 있을까?
스걱.
나는 체면도 집어치우고 축축한 바닥을 구르며 검을 피했다.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틈을 두고 검이 지나쳤다 호신강기가 그대로 찢기는 것이 느껴졌다.
대검은 숨 쉴 틈 없이 따라왔다. 바닥을 구르며 일어난 나는 발끝으로 젖은 낙엽을 뿌리듯 걷어찼다. 낙엽들이 좌사의 시야를 가렸다.
“야율!”
그와 동시에 공격하라는 듯이 야율을 부르며 낙엽 뒤쪽으로 비수를 던졌다.
빗살처럼 날아간 비수가 빗방울을 가르는 것까지 보였다.
“이딴 잡기!”
대체 어떤 무공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사의 몸을 두른 호신강기에 낙엽들이 순식간에 증발하듯 재가 되어 사라졌다.
좌사의 손에 내가 던졌던 비수가 잡혀 있었다.
“신녀의 능력은 꽤 들었지. 이딴 잡기가 내게 통할 것 같으냐? 이 귀찮은 것부터없애야······.”
비수를 한 손에 쥐고 우그러트릴것처럼 굴었으나 비수는 꼼짝도 안 했다.
‘당연하지! 그건 백련정강으로 만든 것이니까!’
물론 철비수를 맨손으로 우그러트리는 것도 보통 고수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였다.
치지지직.
여기서 듣기 어려운 소리에 좌사가 야율을 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야율의 손에서 천산염제의 무공인 구화적염결의 불길이 일렁였는데, 손안에는 신호탄이 쥐어져 있었다.
서하령에게 얻어온 것으로, 내가 비수와 함께 야율에게 던진 것이다. 처음부터 비수는 연막에 불과했다.
신호탄을 본 좌사가 비웃었다.
“그것, 제대로 터질 수나 있겠나?”
폭약을 개조한 신호탄은 습기에 엄청나게 약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똑똑하다 자랑하더니 멍청하기 그지 없······.”
피슝 -!
높은 소음과 함께 신호탄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고는 펑 -커다란 소리를 내며 터졌다.
방울방울 멈춰 있는 빗방울 사이로 선명한 빛이 터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구름이 가득 낀 우중충한 하늘을 신호탄이 짧게나마 밝혔다.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멀리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씩 웃었다.
“이를 어째, 잘 터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