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네년이!”
눈이 뒤집힌 좌사가 내게 덤벼들었다.
좌사의 검을 피하고자 몸을 뺐다.
그 순간 쏴아아- 빗줄기 일부분만 갑자기 확 강해졌다가 평범하게 줄어들었다.
내가 신호탄이 제대로 빛을 낼때까지 붙잡고 있던 빗방울들이 한거번에 쏟아진 까닭이었다.
분노한 좌사의 공격이 지금까지는 애들 장난이었다는 듯 쏟아졌다. 여기가 밀림이라서 매우, 매우 다행이었다.
좌사의 대검은 이런 밀림에서 휘두르기에 아주 불편했다.
대검은 넓은 이파리, 엉망으로 자란 사람 팔뚝만 한 덩굴, 커다란 나무 등에 공격이 자꾸 막혔다. 물론 좌사의 공격은 그딴 것들에 가로막힐 수준이 아니었다.
스각!
‘아니, 저걸 어떻게 한 번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좌사의 대검이 성인 남성 다섯명은 손을 잡아야 끌어안을 만한 나무를 단번에 베어 냈다.
쿵, 쿠쿠 쿵!
지지대를 잃은 나무가 기울어지며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게 부딪치다 사선으로 멈춰 섰다.
“나무꾼이 꿈이신가?”
“닥치거라!”
“아주 산천초목을 다 베어 내겠네! 아, 아니면 농부가 꿈? 이 자리에 화전 하게?”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됐다.
마교? 무림맹? 누가 먼저 도착할까?
마교가 온다면 이간질을 해서 시간을 번다. 무림맹이 온다면 전멸한 후기지수 부대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좌사를 공격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무림맹이 먼저 올 것이다. 서하령에게 빌린 것은 무림맹의 신호탄이었으니까.
‘하령이는 잘 빠져나갔으려나.’
퍼붓던 비도 어느새 거의 그치고, 이제는 부슬비 수준이었다.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숨어서 지켜만 보던 좌사의 수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사와 함께 우리를 노리는 기색이었다.
수하들의 공격은 야율이 맡았다. 좌사의 수하답게 저들도 매우 강했다. 이미 좌사와의 싸움에 힘을 다 쓴 야율이 불리했다.
그때였다. 드디어 지원군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사람 형체가 보였다. 좌사도 기척을 느꼈는지 어떻게든 빨리 결판을 내고자 내게 검을 휘둘렀다.
쿠르릉.
다시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굉음과 함께 좌사가 황급히 검의 방향을 틀었다.
벼락 대신 떨어진 것은 남궁완 아저씨였다.
좌사가 이를 아득 물며 말했다.
“천마의 혈육을 보호하고 있다니 네 누이가 구천에서 원망하겠구나.”
“뭐라는 거야?
자기소개 하시나?”
좌사와 검을 나누는 남궁완 아저씨는 나를 돌아보진 않았다.
“아니면 개새끼라 그런가? 개소리를 지껄이고.”
품위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정잡배같은 말투였다.
내게, 그리고 남궁완 아저씨에게 연달아 농락당한 좌사가 폭발할거라 예상했지만 좌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으면 차분해지는 성정인 모양이었다.
“아주 가련하구나. 겁에 질린 개새끼가 짖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얼굴조차 마주하지 못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무림맹의 구조 신호탄을 복 왔더니 네 놈이 있었을 뿐이다. 여기 누가 있다는 거지?”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딱딱히 굳어 있었다.
그때 남궁완 아저씨가 말했다.
“뭐 해? 당장 안 꺼져?”
“네? 아, 네!”
* * *
좌사가 우리를 쫓으려 했으나 남궁완 아저씨에게 가로막혔다.
대신 좌사의 수하들은 좌사를 뒤로 하고 우리를 쫓았다.
그러나 남궁완 아저씨를 따라온 아저씨의 수하들로 인해 곧 저지당했다.
위험한 상황은 모면했으나, 신호탄을 보고 달려온 것은 남궁완 아저씨만이 아니었다.
내 존재를 알아챈 이들이 우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이틀 동안 잠도 잘 수 없었다. 몸 한 번 제대로 누이지 못하고 쉴 새없이 쫓기며 천마지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천마대총과 가까워질수록 점차 짙은 안개가 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안개가 아니었다.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안개 속을 걷다 보면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었다. 어딘가 멀리서 싸우는 소리도 드문드문 들리곤 했다.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안개에 들어온 후, 나를 쫓는 대다수의 기척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딱 하나, 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기척이 있었다. 이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 어떻게 쫓아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답이 없어.’
나는 발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미간을 꾹꾹 누르다 다시 눈을 뜨고 야율을 보았다.
“안 되겠어.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피로로 기절하든지 정신이 나가든지 하겟어.”
그리고 특히, 야율이 쉬어야 했다.
체력만을 따지면 야율이 나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창백한 안색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쫓아오는 놈들을 막아야겠어.”
“······그래.”
“너는 여기서 쉬고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난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나는 야율의 소맷자락을 확 걷었다. 팔뚝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
좌사와의 전투. 겉으로 보기에는 중상이 없어서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야율은 암경에 당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크지 않지만, 내부에 중상을 입히는 공격이었다. 좌사에게 당한 부분이 이제는 새카맣게 변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러고 괜찮다고?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하지 마. 제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도 방해야.”
“······.”
다소 말이 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부득불 따라오려 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이던 야율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알겠어.”
“······.”
측은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괜찮다고 따라오라과 내뱉을 뻔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야율을 뒤로하고 쫓아오는 놈들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경공으로 나는 듯이 달렸다. 축축한 땅이 파이며 깊은 발자국이 남았다.
순식간에 나를 뒤쫓던 이들이 시야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흐릿한 사람 모양의 진기들. 내게는 익숙했다.
나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상대도 눈치챈 듯 경공을 펼치며 나를 향해 올곧게 다가왔다.
화아아악!
순식간에 상대를 마주했다.
우뚝 멈춰 서자 펄럭이던 옷자락과 머리칼이 나를 따라 천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만났네.”
짙은 쪽빛 무복에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
단단한 체구와 곧은 자세.
맑은 눈빛에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고개 숙인 적 없어 보이는 기백이 엿보였다.
그때 남궁류청의 품속에서 새카만 족제빗과 동물이 어깨로 올라왔다가 몸을 타고 내려갔다.
나의 시선이 그 동물에게 향한 걸 눈치챘는지 남궁류청이 알아서 설명했다.
“사천 당가에서 빌려줬어. 어떤상황에서도 천리추향을 추적할 수 있지.”
천리추향은 독특한 향으로 물건이든 사람이든 한 번만 묻히면 잔향이 오래도록 남아 목효를 추적할 수 있게 도왔다.
“천리추향이라니 그런 걸 언제 묻힌······ 서하령!”
“맞아.”
내가 서하령에게 당하다니!
모두가 떨어져 나간 이 안개 속에서 대체 어떻게 나를 일직선으로 쫒고 있나 했더니만 그런 수작을 부렸을 줄이야.
게다가 남궁류청과 싸웠다더니만, 바로 천리추향을 묻혀 놓고 쪼르르 달려가서 알릴 줄이야!
“처음부터 싸웠다는 것도 거짓이었어?!”
“그건 아니야. 싸운 건 맞아. 의견 다툼이 있었지. 그래도 서로 널 찾아내면 알려 주기로는 약속했었지.”
“······아주 신실한 우정이네.”
나도 모르게 이죽거렸다.
남궁류청은 진지하게 말했다.
“너를 걱정하니까.”
“······”
“돌아가자.”
“안 가.”
“백리연.”
“서하령과 만났다며, 내 얘기 다 들은 거 아냐? 못 들었으면 가서 물어봐.”
나는 보란 듯이 조소하며 말했다.
“어디로 돌아가? 무림맹으로? 하, 내가 돌아가면 당장 태고 진인이 내 목부터 노릴걸.”
“아니야. 설득했어.”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무림맹은 네게 검을 들이대지 않기로 약조했어.”
“······.”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가를 문질렀다.
‘······바보 같기는.’
무림맹을, 태고 진인을 설득한 것은 남궁류청이리라. 아마 꽤 고생했으리라.
하지만······ 남궁류청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그가 나를 데려가기만 하면 바로 죽일 것이다.
천마지보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 태고 진인에게서 느껴졌던 생각과 감정. 거기에 타협은 없었다.
하지만 남궁류청이 태고 진인을 설득하는 데 기울였을 노력을 생각하여 네가 속은 거라고 폄하하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아.”
“뭐?”
“그래. 내게 검은 들이대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의심하고, 조롱하고, 비웃고, 무시하겠지. 나는 그런 눈초리를 받고 싶지 않아.”
백리의란과 위지백에게서 처음 폭로가 터져 나오고 나를 바라보던 시선들.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앗더라면, 할아버지가 내 앞을 막아주지 않으셨더라면, 불이 나고 습격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경악과 의심으로 점철된 시선은 경멸과 조롱으로 바뀌었을 테다.
“류청, 나는 이미 내공 폐인이 되었을 때 그런 눈초리를 지긋지긋하게 겪었어. 너도 나를 그렇게 봤었잖아?”
“······.”
처음 남궁류청을 소개받았던 남궁 세가의 연회 자리.
하찮은 것을 보는 듯하던 시선.
“나는 더는 내 잘못도 아닌 일에 그런 시선을 받아 가며 살 생각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