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 * *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헛소리로 취급하고 싶지만, 남궁류청은 누군가를 모함하고자 거짓말을 꾸며 낼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나는 야율을 보았다. 무표정한 낯에서는 아무런 속내도 읽어낼 수 없었다.
나는 야율에게 몇 번이고 위지백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때 돌아왔던 반응을 똑똑히 기억했다.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취급. 복수 따위는 생각지 않는 태도였다.
만약 그가 내게 해명하고 싶었다면, 진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면 몇 번이고 알려 줄 기회가 있었다. 고의로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멍하니 답했다.
“전혀 몰랐어. 그런데 야율의 친부가 위지백이 아닌 게 이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지?”
위지백이 쓰레기 짓을 한 건 맞았고, 오히려 야율의 친부가 그런 쓰레기가 아니란 점에서 좋은 일이지 않나?
검을 쥔 남궁류청의 손등에 핏줄이 바짝 섰다.
“네 어머니는 천마가 목적이라는 이야기에 깜빡 속아 넘어가 야율과 손을 잡았어.”
“······.”
“그리고 천마가 너를 통해, 백리의란의 폭로를 이용해 천마지보를 빼내려고 한다는 계획을 알아냈지. 네 어머니는 백리의란을 바로 처리하려고 했어.”
“······.”
“하지만 저놈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막았다더군. 그런데 봐, 지금 어떻게 됐지?”
멍하니 남궁류청의 말을 듣고 있던 내가 중얼거렸다.
“실수할 수도 있지.”
“연아.”
“백리의란이 눈치채고 먼저 도망갔을 수도 있잖아.”
“이미 네 어머니께서 다 조사하셨어.”
“그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
어린 나를 버리고 이제는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 말을 믿으라고?
미간을 찡그린 나는 정말 알 수 없어서 물었다.
“그리고 내가 천마의 혈육인 걸 밝힌다고 야율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
남궁류청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모르겠어? 지금 네 옆에 누구밖에 없는지 보이잖아!”
“······.”
내 침묵에 남궁류청이 애원하듯 말했다.
“연아, 제발.”
“나는 지금 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남궁류청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다가온 야율이 남궁류청을 향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도망이라니.”
내 손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야율이었다.
“연이는 도망치지 않아.”
“하.”
순간 기가 막혀 탄성이 터졌다. 야율의 한 말에 담긴 의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맞았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 끝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런데 그게 누구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그 손 놓지 못해!”
남궁류청의 눈에 불이 튀었다.
남궁류청이 야율의 손목을 잘라버리겠다는듯 검을 휘둘렀다. 느리게 흐르는 검의 궤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 궤적에 내 팔을 밀어 넣었다.
“······!”
“······!”
권법으로 검을 막으려던 야율의 손가 남궁류청의 검이 황급히 멈췄다. 흩어진 기파 자락에 바람이 불었다.
남궁류청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나는 대답없이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머리를 짚었다.
야율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머리 아파?”
남궁류청이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친 새끼.”
나는 두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않고 기파 자락에 흐트러진 옷자락을 툭툭 털고,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정돈했다.
갑자기 차림새를 정돈하는 내 행동에 기이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짧은 현실 도피를 끝내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야율, 남궁류청의 말이 사실이야?”
야율이 검붉은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널 버린 친모야. 그런 인간의 말을 믿는 거야?”
“사실이야, 아니야?”
눈을 깜빡이던 야율이 죄책감 하나 없는 낯으로 답했다.
“사실이야.”
“······하.”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애써 도피하고 있던 현실이, 딛고 있던 바닥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바닥이 아니었다. 거짓과 위선으로 만든 살을음을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딛고 있던 것일뿐.
내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우월감에, 사람을 바꿨다는 감정에 도취해서. 야율이 안타까워서. 동정심에, 외로움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먹먹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왜?”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고 했잖아.”
“······.”
숨이 막혔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이미 끝난 얘기 아니었어?”
따져 묻는 게 의미 없는 걸 알았다. 저 아이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몰랐다. 분명 의미없는 짓인걸 알면서도 묻고 있었다.
“제대로 설명해 봐. 대체 왜 그랬냐고!”
야율이 답했다.
“네가 곁에 있어도 된다고 했잖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 옆에 있어도 된다고 했지.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지······.”
말을 흐리던 나는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하지만 너만 있어야 한다고 한 적도 없었어!”
야율은 내 분노에 되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네가 천마의 혈육인 건 고모 때문이 아니잖아.”
나는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보다 통제 할 수 있는 상황이 좋다고 여겼어. 만약 거기서 먼저 처리했으면 네 친모도 무사하진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내 어머니를 살리고자 고모를 살려 뒀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지금?”
“모두 이득이었잖아.”
나는 픽 웃음 지었다.
“내 마음은?”
“······.”
“내 마음은 어떤 이득을 얻은 거야?”
“······”
너를 안쓰럽게 여기고, 애써 변명해 주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고 이해해 주려하던 내 마음은?
그때 갑자기 야율이 내 손목을 잡고 손을 살피려 들었다.
시키는 대로 손을 펼치자 언제 파고들었는지 손바닥과 손톱이 온통 피투성이었다. 언제 이렇게 다쳤는지. 그런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손바닥보다 다른 곳이 더 아파서.
“내 옆에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니, 사실은 너만 남았으면 했구나?”
야율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떼어 놓으려는 자들을 치웠을 뿐이야.”
“그걸 내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는 상관없고.”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어.”
“아. 그렇구나.”
도돌이표 속에서 깨달았다.
“그랬던 거였어.”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 안개가 개듯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우스워 어쩔 수가 없었다.
“하, 하하하하!”
“연아?”
야율이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나는 야율이 잡고 있던 손을 들어서 야율의 뱜에 올렸다.
“야율, 너는 세상이 온통 쓰레기뿐이라고 했지.”
악인곡에 떨어졌던 야율은 마교에 투신했다. 그 후, 마교의 주구로 무림맹을 조롱하면서 백도 정파를 살육하다 어느 순간 알아냈을 것이다.
천마가 제 어머니인 벽기현과 위지백의 일을 꾸몄다는 것을.
자신의 증오가 누군가의 음모로 만들어진 가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을까? 딛고 있는 세상이 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을 테다.
“너를 이렇게 만든 세상 모든 게 증오스러웠겠지.”
“······.”
“그중 천마를 가장 증오했을 거야.”
“······.”
“그래서 천마의 혈육이었던 내 목을 벤 거야.”
나는 웃었다.
“맞지?”
“······.”
차라리 내 아버지와 원한이 있어서 죽였더라면, 아니, 그냥 지나가다 거슬려서 나를 죽였다면, 괜찮았을 텐데.
피투성이로 바닥을 구르면서도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알지 못했던, 천마의 혈육이란 이유로 나무토막 베듯 목을 베어 죽이고. 이번에도 그 이유로 나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다른 모든 자는 그렇게 해도 야율만은 그래서는 안 됐던 것이었다.
“너는 내 목을 친 게 미안하지 않을 거야.”
전혀. 한 톨의 죄책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미소 지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을 뿐이니까.”
내 목소리는 왠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고요하게 들렸다.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아버지와 화해했고, 너를 만났고, 무공도 펼칠 수 있게 됐고.”
“······.”
“모두 이득이니까.”
야율에게 물었었다. 나를 사랑하냐고.
하지만 야율은 영문을 모른다는 듯 굴었다. 왜 그랬는지 이제는 이해가 갔다.
“있지, 야율. 내 어머니는 나를 버린 게 아니야.”
“······.”
“내가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없어야 한다고 여긴 거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야율의 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또한 나를 위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영원히 묻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야율은 그런 감정을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죄책감을 모르는 것처럼.
불쌍한 야율.
불쌍한 저번 생의 백리연.
내 능력이 부족해서, 내가 모자라서, 두 사람을 구원할 수 없어서 미안했다.
“연아.”
나는 야율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비릿한 피 냄새, 숨이 막히던 공포. 갑자기 휙 돌던 시야.
쿵, 귀가 아닌 머리에 울려 퍼지는 듯하던 둔탁한 소리. 빙글빙글 돌던 시야 끝에 장검을 타고 주륵 흘러내리던 내 핏물.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워내던 야율의 입꼬리.
핏자국이 묻은 내 엄지가 야율의 입꼬리를 쓸어 올렸다. 핏빛을 닮은 새빨간 입술 덕에 미소를 짓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야율, 안녕.”
나는 그렇게 내 죽음과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