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상처 때문인지, 받아들인 기억 때문인지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이번 생은 아비와 관계가 좋은 것 같더구나.”
“······.”
“그 또한 내가 시간을 돌려 얻은 결과지 않은가?”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이마를 타고 들어온 핏물에 시야가 점점 붉어졌다.
처음 공격은 맛보기였다는 듯이 천마의 검이 점점 빨라졌다.
눈으로 보고 막을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찰나간 흘러나오는 의지, 자연지기의 흐름을 통한 감각에 의존했다.
점차 쌓여가는 검격에 단단하던 제단이 부서지고 화로가 나뒹굴었다.
공동 안에 뿌연 연기가 안내처럼 차올랐다. 검격의 흔적이 연기에도 남았다가 퍼져 나가는 기파에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호흡에 수십 합을 나눴다.
나와 천마가 나누는 검격은 다른자들이 나누는 검격과 달랐다.
보통은 서로의 검에 담긴 진기, 검기라든가 유형화한 검강을 통해 발현한 것들이 충돌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천마와 나의 검은 서로 검날이 닿는 순간 진기를 흡수하려 들었다.
더 강한 힘으로 밀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더 강한 힘으로 당기는 자가 이기는 싸움.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터였고, 태고 진인 저오나 돼야 어떤 싸움인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었다.
온몸에 상처가 한둘씩 늘어갔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처가 없이, 천마와 내가 나눈 합이 100번이 넘어갈 때 저절로 입이 중얼거렸다.
“천마, 너도 참 발전이 없구나.”
내 입을 통해 나온 말이었지만, 내 의지로 말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이되, 내가 아닌 느낌.
‘생각보다 기분 나쁜데.’
제갈가의 기억은 아직 나와 제대로 하나가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갑자기 저런 말을 꺼낸 이유는 지금 제갈가의 기억을 통해 천마의 검을 막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갈가는 오랫동안 천마의 검법에 대한 파훼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걸 지금 내가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건 무척 기이한 일이었다.
본래 검법이란 것은 파훼하고 막는 것을 반복하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마의 검법은 제갈가의 기억에서 변화가 전혀 없었다.
몇백 년 전의 모습 그대로.
그래서 제갈가에서 오랫동안 고안해 낸 파훼법이 그대로 통했다.
‘······그랬던 거였어.’
역천의 술법.
그 중에도 시간을 돌리는 것은 이 천마대총 안에서 천마만이 가능한 능력이었다.
수십 번 회귀까지 한 천마는 기억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후대에게 모두 넘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마는 천마지보를 만들어 그의 무학, 의념, 힘을 남겼다.
그리고 후대에게는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실패의 기억들과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목표와 계획, 의지만을 넘겼다.
“천마, 부모님은 기억하나?”
“오래전에 잊어버렸네.”
어째서 이런 목표를 세웠는지 그는 이미 잊어버렸다. 그 자신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무공도 몇백 년 동안 그대로 였다. 제 최초의 무공에 대한 기억에 저혀 손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무공을 새롭게 창안하지도, 변형하지도, 다른 무공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기도 했고, 생각도 없었으며,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천하를 일통하고, 천마의 자리에 오르고 시간까지 되돌릴 수 있게 된 후 그는 자신의 모든 패배는 모두 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더 이상 무공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이미 강했고, 천마였다.
그를 능가하는 자가 나와 패배할 것 같다면, 시간을 돌렸다.
그가 패배한 것은 무공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천기가 그의 앞길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천마는 그저 과거에 얽매인 망령이었다.
제갈가에서 연구한 파훼법, 금안의 능력, 장검보다 비수의 운신에 더 적합한 간격, 검을 피하다 되돌려 주는 방식에 특화한 백리 세가 검법.
여러 가지가 얽혀서 천마의 검이 결국 내 목숨을 거둬 가지 못하게 막았다.
천마가 위에서 아래로 정직하게 검을 휘둘렀다. 피하기보다 막기 쉬운 검의 궤적에 당연히 막았고.
콰앙-!
천마가 검에 담은 진기만큼 뒤로 물러났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리기 위한 수였다.
“제갈가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였구나.”
“그냥 말해. 못죽이겠다고.”
어느새 공동 안이 연기로 가득찼다. 그로 인해 천마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 순간, 연기가 흩어지며 검은색 장력이 내게 덮치듯 날아왔다. 흡사 호랑이가 나를 깔아뭉개기 위해 달려든 형상 같았다.
정확히 무슨 수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장력에 손끝이라도 스치는 순간 그대로 진기를 뺏길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급하게 끌어다 막은 진기에 장력이 잠시 가로막힌 찰나 몸을 뺐다.
콰아앙!
장력이 강타한 바닥이 움푹 파였다. 천마는 내가 몸을 빼려던 자리로 또다시 장력을 날렸다.
‘검으로 못 이기겠으니, 이제 장력 싸움인 건가?’
불리했다.
천마는 멀쩡한 단전을 지니고 몇 갑자가 넘는 내공을 품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 모은 내공인지 알 수 없었다.
‘흡성마공으로 내공을 저정도로 쌓으면 주화입마에 빠져야 하지 않냐고.’
하지만 천마는 마의 끝에 앉아 있는 사람답게 내공의 통제 또한 조잡한 흡성마공으로 성취를 얻은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단전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연지기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마 또한 자연지기를 쓸 수 있었다.
진기 싸움으로 부딪치면 내가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몇 차례 장력이 오가고 결국.
퍼엉! 공기가 압축되어 퍼져 나가는 듯한 소음과 함께 천마가 내 왼 손바닥을 움켜쥐듯 잡았다.
“······!”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듯이 천마의 흡성대법이 느껴졌다.
나 또한 흡성대법을 똑같이 사용했다.
비수를 쥐고 있던 오른손이 천마를 향했지만, 내가 천마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지 천마를 찌를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수십 합을 나누고 결국 의미 없이 오른손마저 마주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이제 완전히 서로의 흡성대법을 겨루는 형세가 되었다.
백도 정파인들이 보게 되면 마귀들의 싸움이라고 질겁할 대결이었다.
내력이 내 쪽으로 향했다가 천마 쪽으로 당겨졌다가 오락가락 더 강하게 당기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천마의 표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업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상황을 계획한 것 마냥. 결국에 이리 될 수밖에 없었다는 듯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천마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마치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듯한 목소리였다. 전음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래 버텼구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였으니, 편안히 가거라.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구나.」
“······.”
나는 입을 열지 않고 버텼다.
붉어진 시야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돌아오고, 천마지보의 거의 반이 넘는 힘이 천마에게 넘어갔을 때, 갑자기 빨아들여 가던 힘이 덜컥 멈췄다.
천마가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천마의 음성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이 곳에 들어온 후 두 번째 감정 변화였다.
이번에는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
나는 화사하게 웃었다.
“네가 만든 독이잖아.”
공동을 가득 채운 희뿌연 연기. 내공독이 듬뿍 담긴 연기였다.
제갈화무의 접선에는 여러 장치가 있었고, 평소 제갈화무는 그 안에 여러 독을 넣어서 다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재현해 낸 내공독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접선을 무기로 서서 중독시킬까 했다. 하지만 상대는 천마였다. 뭔가를 뿌린 순간 눈치챌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내공독을 연기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오자마자 접선에서 내공독이 나올 수 있게 만들고 화로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천장에 빛이 들어오는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연기의 흐름을 틀어막았다.
이제야 천마가 몸의 이상을 느낀 모양이었다.
천마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감히······!」
천마의 의념이 천둥처럼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가볍디 가벼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장난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네가 만든 독에 네가 당해 보니 어때?”
과연 천마는 이를 해독해 낼 수 있을까?
내공독은 꽤 까다로운 독이었다. 흡수하고 나서 무조건 전신 운기를 해야 중독이 되었다.
고모가 영약에 내공독을 탔던 이유였고, 아버지가 애매하게 중독된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천마는 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중독되었다.
아버지는 검을 뽑을 때마다 내공독이 발작을 일으킬지 일으키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 적 앞에서 검을 뽑았는데 내공독이 발작한다면 그날이 그대로 아버지의 운명일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검을 뽑아야 할 상황이라면 피하지 않고 뽑아 들었다. 순전히 하늘의 뜻에 맡긴채.
나는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한 낯으로 변해 말했다.
“너도 한번 운에 맡겨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