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이기적인 자식.’
어떻게 나한테 이래?
최소한 내 앞에서는 이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저를 어떻게 살렸는데!
하지만 미워할 수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제갈화무가 넘겨준 기억들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건 그냥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에 가까웠다. 천마지보를 어디다 가져다 버릴 수도 없었고, 내가 심산유곡에 꼭꼭 숨어 버린다 한들 마교도들이 개떼처럼 몰려와 백리 세가를 멸문시켜 버릴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태고 진인의 손에 죽고 싶지도, 자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지금껏 방치해 놓았던 천마지보를 원하는 천마의 모습.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언제부터 이런 계획이었을까?’
뇌리에 흐르는 기억들 속에는 언제 이 계획을 세웠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내게 기억을 넘겨주면서도 그 부분은 뺀 모양이었다.
다만······.
촤르륵.
내 움직임에 따라 접선이 매끄럽게 펼쳐졌다.
제갈 세가의 신병이기.
제갈 세가의 가보인 주제에 제갈화무는 내게 이 접선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다 가르쳐 줬더랬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다시 접선을 탁, 소리나게 접고 품안의 결이를 보았다.
「너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인지도 알지? 」
“먉!”
대답하는 듯한 울음소리에 생각을 이었다.
「내가 알아내면 네가 어떻게든 아버지께 해독법을 전달해. 알겠어? 」
흔들리는 두 눈동자가 나는 짐승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 듯 보였다.
“먉! 먉!”
그러고는 억울하다는 듯 울어 젖히기 시작했다.
짐승이 사람에게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하지만 뭐, 제갈화무 놈도 제멋대로 굴었는데. 이 정도는 시켜도 되지 않겠는가?
쿵, 또다시 커다란 소음과 함께 이번에는 천마대총이 잠깐 흔들리기까지 했다.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좀 전까지 당장이라도 돌아가야 할 것처럼 걱정이 휘몰아쳤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우수수 떨어진 돌 조각들이 내 머리에 닿기도 전에 가루로 변해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발을 뗐다.
품 안에서 뛰어내린 결이가 마치 동료처럼 옆자리에서 함께 걸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직선으로 내려갔다.
미로 같은 길고 긴 복도를 한참 걸어간 끝에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천마대총의 입구였던 석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문을 여는 방법은 같은 방식이되 열쇠가 되는 진기 흐름은 달랐다.
금안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냥 순서가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필요한 순간 그 기억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나는 석면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야 이제는 굳이 손을 올리지 않고도 진기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버릇이란 게 무서운 것이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열지 못할 이 석문이 바로 열쇠 구멍이자 진법 그 자체였다.
쿵- 드드드드득, 쿠쿠쿵 – 쾅!
진기의 흐름을 하나 맞출 때마다 육중한 장치가 돌아가는 것만 같은 소음이 울렸다.
계속해서 이어지던 소리는 내가 마지막 조각까지 완성하고 손을 떼자 ‘덜컹-‘ 소리와 함께 멈췄다.
곧이어 둔중한 소음과 함께 석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 * *
나를 맞이한 것은 지하에 이런 곳이 있을 수 있나 싶은 넓은 공동이었다.
기둥조차 없는 넓은 공간 가장자리에는 균일한 간격을 두고 사람만한 화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어두워야 할 공동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은 이유였다.
그리고 공동 정중앙에는 계단식 높은 단상과 제사를 지낼 때 쓸것만 같은 제단이 있었다.
제단에는 한 줄기의 빛이 정중앙에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자못 신령스러운 느낌이었다.
그 앞에 한 사람이 있었다.
천마.
마지막으로 본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세월도 비껴간 듯이 겉모습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뿐이었다.
알아챈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이 느껴지던, 그의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얽고 있던 수많은 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불길하게 짙은 어둠만 느껴졌다.
목적을 잃은 채 목표와 고집, 의념만 남은 악의였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확히 석문을 넘어 공동 안으로 몸이 들어간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석문이 다시 닫혔다.
등 뒤로 석문이 닫히며 분 돌풍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기다렸느니라.”
좌사조차 천마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듯한 태도일 때부터 이 안에 있으리라 대강 예상하였다.
천마는 천마지보를 노렸고, 나는 천마대총에서 천마를 물리칠 힘을 노렸다. 당연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상했던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에 만족하며 입을 열었다.
“많이 영락하셨네요.”
초대 제갈 세가주 기억 속의 천마는 이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그야말로 ‘마’ 그 자체.
황제조차 그 힘을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감히 천하를 일통했다고 떠들며 천마신교라고 지껄이던 교도들을 잡아 죽이지 못한 것이 천마의 힘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강했다. 감히 누가 그를 천하 제일인이 아니라고 할까?
하지만 제갈 세가주의 기억을 받은 내게 지금의 천마는 과거의 천마에 비하면 마치 어린아이로 변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방자한 말에도 천마는 전혀 타격이 없는 듯 감흥 없는 낯으로 말했다.
“왜 이리 늦는가 하였더니, 네게서 제갈가의 혼이 느껴지는구나.”
보자마자 알아내다니. 조금 놀랐다.
“그가 네게 힘을 넘겨주었느냐?”
나는 보란 듯이 제갈화무의 접선을 펼쳐 보여 줬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화로에 던져 넣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이 날름거리며 접선을 집어삼키고 뿌연 연기로 흩어졌다.
천마가 침응성을 흘리고 마치 묵념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처음으로 보인 감정적인 변화였다.
천마가 씁쓸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친우의 죽음은 늘 익숙해지지 않지.”
그 가증스러운 태도에 기가 막혔다.
“친우 같은 소리. 누가 죽였는데?”
“진즉에 떠나야 할 길이었지. 그 끝이 평안했길 바랄 뿐.”
“······.”
처음 보았을 때는 대체 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두렵기만 한 엄청난 힘으로 느껴졌는데, 사정을 알게 된 지금은 그저 정신 나간 광인처럼 보일 뿐이었다.
“의문이 많은 눈빛이로구나. 궁금한 것이 있느냐? 물어보거라.”
천마는 제가 마치 자애로운 할아버지라도 된 것 같은 태도였다.
나는 천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마 뒤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따라 화로의 연기가 춤추듯 빠져나갔다.
나는 입을 열었다.
“궁금한 점이 세 가지 있어.”
“물어보거라.”
천마는 태연히 답했고, 나는 내 눈가를 톡톡 치며 말했다.
“이 금안, 왜 만신의에게 있었지?”
천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을 열었다.
“그렇군. 의문을 가질 만한 일이지. 답은 간단하다. 내게는 더는 그 능력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지. 또한 만신의가 살려야 할 사람이 있었다.”
천마는 이 금안이 없더라도 흡성마공, 아니 흡성대법으로 자연지기를 제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은 이면에 숨은 의미도 알 수 있었다.
만신의가 금안의 능력을 통해서 죽어야 할 사람을 살릴수록 천기가 흐트러지고, 천마는 움직이기 편해졌으리라.
나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야율에겐 왜 그랬어?”
왜 그딴 거짓으로 그의 인생을 기만했나?
“누군가의 발목을 잡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느냐?”
천마가 가르치듯이 말했다.
“자식이지.”
“······.”
“벽기현은 내버려 두었다면 귀찮은 대적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아라. 결국, 자식 탓에 아무것도 되지 못하지 않았느냐”
내가 아버지의 발목을 잡았듯이, 야율로 제 어머니의 발목을 잡게 이용해 먹었다는 뜻이었다.
“또한 네 아······.”
나는 말하고 있는 천마를 향해 뛰어들었다.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움직임. 비수를 휘두르면서도 나도 놀랐다.
기습이나 다름없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천마가 뒤로 훌쩍 물러나며 간단하게 피했다.
콰아앙!
비수에 담긴 기파가 제단을 강타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보통 바위도 부수고 남았다. 하지만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제단은 약간의 흠집만 나고 멀쩡했다.
곧장 내게 새카만 마기를 두른 검이 날아왔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 모를 천마의 검을 내 비수가 가로 막았다.
충돌로 일어난 기파에 화로의 불이 잠시나마 꺼지며 순간 어둠이 확 밀려왔다가 다시 밝아졌다.
천마가 계속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질문이 세 가지라고 하지 않았나?”
“아, 사실 처음부터 두 가지였어.”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마치 하다 못한말을 계속 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네 아비에게 네 존재를 알리는 서신을 보낸 것도 나다.”
아주 잠시 눈을 멈칫한 결과는 허공에 뿌려지는 핏자국으로 돌아왔다.
이마 부근이 뜨끈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머리가 날아갔을 공격이었다.
천마의 검을 막으며 중얼거렸다.
“······내 아버지께 서신을 보낸 건 이모였어.”
“확신 할 수 있느냐?”
아버지는 갑자기 온 서신으로 내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나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 서신은 나를 돌보던 이모, 그러니까 유모였던 자가 죽으며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조차도 천마의 계획이었다고.
천마가 말을 계속 했다.
“너는 내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니라. 내가 네 어미를 네 아비와 만나게 하여 너를 태어나도록 만들었다
“······.”
“나로 인해 태어나고, 나로 인해 길거리를 떠도는 개처럼 살아갈 삶에서 이런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는데, 고마움을 모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