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 * *
드드드득- 쿵, 덜컹- 쿠쿠쿠쿵!
반 시진 넘게 두들겨도 흔적조차 남지않던 석문이었다. 전혀 열릴 기색이 없던 석문이 거대한 소음과 함께 열렸다.
피를 뒤집어쓴 지친 기색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석문을 바라보는 눈에 경계와 탐욕이 서렸다.
희뿌연 연기같은 것이 열린 문틈으로 쏟아지듯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손을 내저으며 기침을 했다.
안개같이 가득 들어찼던 연기가 빠져나간 후,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부서져 본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단상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빛이 들어오는 허공을 응시하던 여인이 그들을 향했다. 우두커니 선 채 내려다보는 시선이 오연했다. 그저 시선이 향했을 뿐인데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분위기 때문일까, 다들 여인의 정체를 뒤늦게 파악했다.
“······백리 소저?”
백리연. 천마의 손녀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발을 떼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그리고 눈치도 참을성도 없던 누군가 소리쳤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오?”
넓은 공동, 부서진 제단을 살펴 보는 눈동자가 매우 바빴다.
“백리연, 그 계집이 왜 여기 있단 말이오? 여기가 아니었단 말이오? 신공은? 보물은!”
본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었다. 사람들이 둑이 터진 듯 와글와글 외치기 시작했다.
떠드는 것으로는 부족한 누군가가 공동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것을 가장 앞자리에 있던 태고 진인이 막았다.
그때, 백리연이 말했다.
“태고 진인, 류청은 요?”
“못 보았네.”
고개를 기울인 그녀가 이어 물었다.
“좌사도?”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군. 좌사는 남궁 세가주 손에 죽은 지 오래일세.”
“음······.”
침음성을 낸 백리연이 시선을 살짝 숙였다.
반사적으로 그 시선을 뒤따른 이들은 그제야 사람들은 백리연의 오른손에 누군가 붙잡혀 있는 걸 눈치챘다. 그만큼 백리연의 존재감이 엄청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리연이 말했다.
“천마는 죽었습니다.”
“뭣?!”
“자네가 죽였다는 것인가?”
“아니요.”
인상을 굳힌 태고 진인을 향해 백리연이 말했다.
“천운이 그를 따르지 않았죠.”
바짝 마른 미라가 백리연의 오른손을 부여잡듯 얽혀 있다가 완전히 바닥을 쓰러졌다.
마르다 못해 부서지듯 스러지는 온전치 못한 육신은 사람의 죽음에 익숙한 강호인들에게도 역겨운 모습이었다.
“그리 공표하고 더는 건들지 마세요.”
“흡!”
“헉!”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순간 자신이 죽는 환상을 보았다.
목이 졸리는 것만 같은 살기에 겁에 질린 이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자신이 갓 성년이 된 어린 여인에게 겁을 집어먹고 물러났단 사실에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겁을 먹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러 날뛰었다.
“자네 지금 말투가 그게 무언가? 그 역겨운 시체가 천마라고 말하는 것인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맞소! 그 말을 어찌 믿나? 혼자 신공을 차지하려는 수작 아니오?! 저딴 계집 말에 ······!”
뻥-!
소리치던 자가 갑자기 무언가에 맞아 날아갔다. 그대로 반대편 벽에 부딪친 자가 주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사람들이 숨을 멈춘 채 눈을 굴렸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상황상 백리연이 한 것 같았지만, 백리연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백리연이 태연히 말했다.
“시끄러워서.”
그리고 그녀가 단상을 한 칸 내려온 순간 다들 흠칫 놀라며 두로 물러났다.
그리고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은 사람을 향해 백리연이 물었다.
“태고 진인, 들어오실 건가요?”
“······.”
긴 침묵이 공동과 석문 너머 복도를 감쌌다.
태고 진인이 입을 열었다.
“다들 물러가지.”
“태고 진인!”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태고 진인이 버럭 소리쳤다.
“다들 물러나시오!”
그때,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거센 힘이 뒤로 날려 보냈다.
짤막한 비명이 울리고 바닥을 구르는 사람들 앞으로석문이 쿵 소리와 함께 닫혔다.
* * *
석문이 닫히자마자, 방금 무슨 소란이 있었냐는 듯이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나는 애써 억눌렀던 피를 왈칵 토해 냈다.
후드득 단상 위로 피가 떨어졌다. 고요해진 공동에는 쌕쌕거리는 자신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흡수한 천마의 힘, 그 안에 아직 남은 의념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온몸을 찢어발기며 나올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과 기혈들이 천마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찢기고 뒤틀리고 있었다.
천마의 의념이 나를 죽일 듯이 굴다가 달래듯 속삭였다. 이대로 죽기는 억울하지 않느냐고. 지금 너라면 가능하다고. 시간을 돌리자고.
천마가 여기서 천마지보가 제 손에 굴러오길 기다리고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마는 더는 예전의 그 전능한 천하 제일인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시간을 돌리며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다. 혼의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그래서 천마지보를 되찾으려 한 것이다. 그것에 남아 있는 힘을 쓰기 위해서.
천마의 힘에 천마지보까지 흡수한 나는 천마의 말대로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천마가 아닌 내가 회귀의 중심축이 될 것이었다.
천마는 기억하지 못하는 회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 할거니까, 닥쳐 봐. 좀.’
천마의 의념이 다시 맹렬하게 요동쳤다.
나는 또다시 울컥 피를 토하며 천마의 의념을 저기 구석에 박았다.
비틀 걸어가던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천마 개새끼. 진짜 해독 못할 줄은 몰랐네.’
그래서 내가 이길 수 있던 거지만.
결국,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천마대총까지 온 이유 중 하나는 이뤄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지.
‘이제 할아버지와 사이도 좋아지셨고. 내가 없으니 더는 무리할 일도 없을 테니까.’
정말 마지막에 마교의 천라지망 안에서 내공독이 발작했을 때는 심장이 철렁했었다.
천라지망의 기억을 시작으로 그간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언을 남길 걸 그랬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들으면 유치하고 삐뚤어졌다고 할 만한 일이었지만, 나는 내가 세상에 있었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은 나조차 내 마음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 상황이 되니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유로 죽어서 시신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나만 혼자 세상에 남겨두었던 아버지가 무척······ 미웠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마음을 아버지도 겪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복수라고나 할까.
‘멍청하기는······.’
정말로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똑똑한 척 혼자 다 하더니 이런데서는 머저리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일 텐데 그냥 제대로 인사할걸.’
그깟 원망스러운 마음이 뭐라고.
아버지께, 할아버지께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한 줄 글이라도 남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남궁완 아저씨에게도, 서하령에게도 충분히 인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못했다.
그리고 류청.
남궁류청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와 함께 미래를 논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나 빼고는 한 번도 져 본적 없다고.
좌사에게도 질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 냈으리라.
만약에 죽거나 크게 다쳤더라면 여기까지 온 태고 진인이 남궁류청을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았다. 후회도 없었다.
반대로 후회뿐인 사람도 있었다.
야율.
‘미안해.’
그렇게 매몰차게 굴지 말걸. 그를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 줬다면 좋았을걸.
그래도 이번 생에 나를 위했던 것만큼은 진심이었을 텐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그를 위해,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남겨 줄걸.
정말로 다부질없었다.
나는 무너지듯 완전히 쓰러졌다. 그나마 형태가 남아 있던 제단 위였다.
머리 위로 눈부신 빛이 직선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냥 바닥에 누울걸. 제물이 된 것 같아서 기분 나빠······.’
의식이 맥없이 멀어져 갔다.
그리고 아득한 시야 끝에 흰색 물체가 어른어른 다가왔다. 희미한 의식으로 알 수 있었다.
‘결이.’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손을 뻗었다.
힘없이 뻗어 나가던 손은 결국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먹먹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 손을 부서트릴 듯 꽉 잡는 느낌이 들었다. 식어가는 손에 타오를 듯이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누구지? 이게 대체 누구 손이지? 어떻게 들어 온 거야?
나는 꿈틀거리며 눈꺼풀을 들어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뜨지 못했다.
“그런 게 아니었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떠난 게 아니었던가?
“그저 나는······.”
내 몸에 몰아치던 탁한 마기들이 부여잡은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흡성대법이었다.
‘안 돼.’
하지만 의지와 다르게 의식은 아득하게 흐려져만 갔다.
아득하게 흐려지는 의식 너머로 목소리가 멀어졌다.
“네 앞에 있을 때만큼은 내가 버러지가 아닌 것 같았어.”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끊어졌다.
“연아! 안 된다, 안 돼, 안 돼!”
“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