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 * *
깊은 어둠 속에 온몸이 가라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피곤하고 지쳤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들고 싶었는데, 자꾸만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마치 내 꼬리를 잡고 못 가게 버티는 느낌이랄까?
몇 번 성질을 내자 그제야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딘가 차갑고 간지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꾸준히 계속해서 손등을 간질이는 느낌에 결국 자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여긴 어디고,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몽롱한 머릿속에서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갑자기 격류처럼 기억의 폭포가 몰아닥쳤다.
문득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은 마치 회귀하고 처음 내가 눈을 떴을 때랑 똑같은······.
섬뜩한 느낌에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서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눈이 너무 부셨다. 누군가 내 눈앞에 태양을 가져다 댄 느낌이었다.
“아으······.”
절로 터져 나온 신음은 내 목소리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탁했다. 그나마도 귀가 먹먹해 내 몸속에 울리듯이 들리는 게 다였다. 마치 오랫동안 눈과 귀가 막혀 있다 나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끙끙거리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손등을 간질이는 느낌에 눈을 떻다. 그래도 조금 시야가 돌아와 있었다.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방 천장의 대들보가 익숙했다. 그리고 침상에 달린 쪽빛 비단발의 자수문양. 그 또한 익숙했다.
심장이 철렁했다.
‘아니지? 아니겠지.’
빛을 가리듯 역광으로 앉은 사람 모양 그림자가 보였다. 이 모습마저도 너무 비슷했다.
나는 겁에 질려 그림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류청?”
고개를 드는 수려한 청년의 뺨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툭, 하고 내 손등으로 떨어졌다. 나를 깨우던 감각의 정체였다.
두려움에 두방망이질하던 심장이 가라앉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열었다 닫길 반복했다.
그동안에도 계속 손등에 떨어지는 눈물이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 줬다.
그때처럼 주마등이니, 마지막이니 하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잡혀 있지 않은 반대쪽 손을 뻗어 남궁류청의 뺨에 손을 올렸다.
“류청, 울지 마.”
내 말이 되레 자극했는지 남궁류청의 눈에서 눈물이 더 펑펑 흘러내렸다.
나는 살짝 미간을 좁히고 다시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이젠 완전히 얼굴을 일그러트린 남궁류청은 내 손에 아주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리고 나도······.
“흐······ 흐윽······.”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천마대총이 있는 협곡에 먼저 도착한 것은 마교도들이었다.
안개가 걷혀 가는 협곡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굉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교도들은 거침없이 그 아래로 뛰어내렸다.
안개가 걷혔더라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협곡이었다. 고수가 아닌 이상에야 뛰어내리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마교도들은 절벽에 매달려서 천천히 협곡을 내려갔다.
그렇게 마교도들이 개떼처럼 절벽에 매달려 있을 대, 협곡 반대편에 무림맹의 병력들이 도착했다.
그 뒤로부터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무림맹은 준비해 온 화살을 반대편 협곡으로 쏘기 시작했다.
화살은 이런 빽빽한 밀림에서는 짐이나 다름없는 무기였기에 마교도들은 진즉 활을 버린 지 오래였다.
또한 이미 대다수가 절벽에 매달려 있었기에 그들은 속수 무책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다가 발을 헛디디거나, 화살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하지만 짐 운반이 힘든 밀림 특성상 사람보다 화살이 먼저 떨어졌고, 마교도들은 아직도 반 이상이 살아남아 있었다.
무림맹은 마무리를 위해 협곡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실책이었다.
협곡 아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먼저 내려온 마교도를 참살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팔마군에 필적하는 실력을 지녔는데, 검기에 베이지도 않고 어떻게 상처를 낸다하더라도 죽지 않고 움직였다.
그들은 마교도, 무림맹인 할 것 없이 구분하지 않고 모두 죽였다.
그 괴인들은 내가 천마대총 안에서 보았던 석상들이었다. 그들은 더는 천기가 자신을 가로막지 못할 대, 강호인들을 몰살하려고 천마가 만들어 놓은 강호인 몰살용 병력들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덜컥 그 괴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이미 협곡에 먼저 진입해 있던 마교도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팔마군 중 반은 이미 죽거나 죽음에 가까운 부상을 입었고, 남은 자들은 도망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피와 시체였다. 부상자들과 죽어 가는 이들의 신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이대로라면 무림맹이 그토록 원하던 마교도의 몰살이 눈앞에 있는 상황.
그때, 무림맹은 마교도들이 아니라 천마대총을 먼저 노렸다.
설명을 듣던 나는 감탄했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 상황에서 그러고 싶을까? 뭐, 기대도 안했지만.”
남궁류청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무림맹의 병력 중에 가장 먼저 천마대총에 뛰어든 이가, 백리 세가주와 백검단이었어.”
“······당연히 천마대총이 중요하지. 마교도들이 천마대총에 들어 오게 둘 수는 없잖아?”
할아버지가 백검단을 이끌고 뛰어 들어가고, 이어서 태고 진인을 비롯한 백도 무림 대표란 자들이 천마대총으로 들어갔다고.
‘먼저 들어간 것은 할아버지였는데, 제단에는 태고 진인이 가장 먼저 도착한 건가?’
천마대총 안은 미로나 다름없었으니, 그럴 법했다. 내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할아버지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어서.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 긴 이야기 중에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며칠간 눈뜰 때마다 내 곁에는 남궁류청만 있었다.
‘남궁세가로는 안 돌아가도 되나?’
하여튼 내가 깨어난 사실을 알자마자 당연히 달려왔으리라 생각한 아버지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대협은······.”
남궁류청이 말을 흐렸다.
나는 눈을 치켜떴다.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나? 설마······ 설마?
남궁류청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간 좀 바쁘셨어.”
“농담해? 아버지가 바빠서 지금 내 곁을 못 지켰다는 거야?”
“맞아. 네가 깨어났단 사실을 전하긴 했는데······”
“거짓말.”
남궁류청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버지 어디 계셔.”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해? 누워있어. 기다리면 올 거야.”
그때 다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외견을 보고 한 번 놀라고, 금안으로 본 모습에 두 번 놀랐다.
“아버지! 내공이······!”
달려온 아버지가 나를 꽉 끌어 안았다.
옆에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채 마주 안았다.
꽉 끌어안은 손끝에 닿는 머리칼이 하얬다.
“머리는 왜 그렇게 되신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내공은 대체 왜 그렇게 되신 거예요?!”
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내공이······ 내공이 본래 내공의 3할도 되지않게 줄어 있었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가만히 쓸어 내렸다.
‘설마 이래서 그동안 내 앞에 안 나타나신 건가?!’
확실히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남궁류청이 어느새 세워놓은 안석에 등을 기대게 했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연아.”
“네.”
“네가 죽을 뻔한 것은 아느냐?”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고 싶었지만, 아버지께 붙잡혀서 움직일 수 없었다.
당연히 기억은 생생했다. 천마의 힘을 흡수한 뒤에 버티지 못하던 몸.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오히려 기운이 너무 없었다. 천마의 힘도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는 아버지의 몸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애써 주제를 돌리고 싶은 걸 참으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네 진기가 거의 다 소모되어서 정말 죽기 직전이었다.”
“네? 제가요?”
“그래.”
진기를 단전에 쌓은 것이 내공이고,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진기가 선천진기라고 했다.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선천진기를 다 소모하면 사람은 죽었다.
그렇다면 죽기 전 사람에게 진기를 불어넣어서 회복시켜 주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게 진기를 불어넣는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내가 힘이, 진기가 넘쳐 나서 죽으려던 게 아니고?’
진기가 부족해서 죽어가고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게 모든 진기를 넘겨 주었다.”
“아버지!”
“너는 간신히 숨이 붙었고, 나도 죽을 뻔했으나, 다행히 류청이 도와주어서 목숨은 건졌지.”
잠시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던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니 내공독이 더는 존재하지 않더구나.”
“······.”
내 침묵에 아버지는 담담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내공도 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쌓이고 있느니라. 그때 얻은 깨달음 덕에 경지도 올랐다. 내공이야 다시 쌓으면 되느니라. 그래서 잠시 폐관 수련을 하느라 네 곁을 못 지켰다. 네가 너무 놀랄 것 같기도 했고, 의원이 말하길 네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하여서 말이다.”
그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멍하니 입을 열었다.
“예전에······.”
“예전에?”
“천마에게 아버지의 해독 방법을 물었어요.”
아버지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객잔에서 천마를 만났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그때, 천마가 해독법이 없다고 했다지 않았느냐?”
“사실 거짓말이었어요.”
“거짓말?”
“네. 천마는 제가 죽으면 아버지가 알아서 해독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아버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마는 거짓믈을 한 것이 아니었다.
-네가 죽으면 된다.-
-너만 없다면 백리의강은 내가 어떻게 방해하든 끝내 독을 해독하여 내 앞길을 막아섰지.-
-그 외에는 한 번도 해독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네가 죽으면 백리의강은 자유로워질테니.-
천마의 저 말은 아버지가 매번 내 목숨을 살리겠다고 진기를 소모하는 식으로 해독했다는 말이 아니다.
진기를, 선천진기까지 모조리 죽기 직전까지 소모하는 것.
그건 자살이었다.
그리고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삶에 더는 미련이 없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었을 때 아버지는 차마 목숨을 내던질 수 없어 진기를 모조리 소모하지 못하여서 해독하지 못하였고, 내가 죽고 난 이후로는 더는 삶에 미련이 없기에 쉽게 선천진기까지 소모한 것이다.
자살을 마음먹어야만 해독할 수 있는 독이라니. 얼마나 악독한 독인가?
나는 아버지의 삶의 미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