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8)
외전 2화
마른침을 삼킨 왕장고가 우리의 눈치를 보며 선두 마차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무양표국이라고?’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디서 들어 본 건지 기억을 더듬던 나는 발을 멈추고 물었다.
“······혹시 천주에 있는 무양표국인가요?”
“엇, 맞습니다. 아십니까?”
왕장고의 얼굴에 외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 담겼다.
이런.
“······.”
돌아오는 답이 없자 왕장고가 어색하게 웃었고, 남궁류청이 의아하게 날 바라보았다.
‘아니, 세상에 표국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왜······?’
어느새 도착한 선두 마차 건너편에서 한 청년이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20대초반 정도로 보이는 반듯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왕장고가 황급히 다가가 청년을 부축했다.
청년의 허벅지를 꽉 조인 붕대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이번 표행의 표두인 학진평입니다. 무양표국의 국주인 학, 대 자 풍 자 쓰시는 분이 제 아버님되시죠. 바로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다리를 다쳐 인사드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두 분의 도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연이란 것은 참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 * *
학진평은 우리에게 성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 해 달라고 부탁했다.
급하게 일행을 수습한 후 성에 도착할 때까지 다행히 추가 습격은 없었다.
무양표국 사람들은 패잔병 같은 몰골로 객잔을 잡았고, 학진평은 나와 남궁류청에게 저보다 더 좋은 객실을 마련해 주었다.
어느 순간 살짝 정신이 들었다.
“일어났어?”
머리맡에서 남궁류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언제 잠든 거지?”
“모르겠네. 내가 오니 이미 자고 있어서.”
“······.”
내가 대답이 없자 남궁류청이 말했다.
“더 잘 거야? 저녁 먹어야지.”
“음. 아이, 난······.”
나는 웅얼거리며 꾸물꾸물 품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규칙적으로 쓸어 넘기는 부드러움 움직임이 느껴졌다. 바깥에서는 손만 잡아도 고장이 난 장난감처럼 변해 버리는 남궁류청이 이때만큼은 자연스럽게 닿았다.
그대로 안락한 잠에 빠져들기 직전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뭘······?”
“산적들. 아니, 마교도들이라고 해야 하나?”
“아······.”
“대충 느끼기엔 산적과 마교도가 섞여있는 듯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응. 반, 반······.”
“마교 잔당 놈들이 근방 산채를 점령한 걸지도.”
“······.”
“살아 도망친 놈 중에 우리를 알아본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철궁을 쏘던 사내는 확실히 알아본 듯 보였고.”
자꾸만 거는 말에 귀찮아 나는 그만 말하라는 듯이 탁탁 남궁류청의 몸을 내리쳤다. 하지만 단단한 몸에 오히려 내 손바닥만 더 아팟다. 나는 성이 나 반대로 돌아누었다.
남궁류청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깨어나기 시작해서인지 눈을 감고 있어도 잡생각이 머리에 맴돌며 잠이 들지 못했다.
노력해 보던 나는 결국 포기하고 벌떡 일어났다.
“일어났네.”
남궁류청이 나를 따라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가 자꾸 말을 거니까 잘 수가 없잖아!”
“별로 걸지도 않았는데.”
나는 잔뜩 부아가 난 낯으로 남궁류청이 걸어가는 것을 노려보았다.
“나는 한번 머리 굴리기 시작하면 다시 못 자는 거 알잖아!”
탁자로 향한 남궁류청이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찻물을 따른 후 내게 내밀었다.
씻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남궁류청의 머리칼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찾잔을 받아 들었다.
양가에 혼인하였다고 서신으로 지르고, 함께 객실을 쓰고 같은 침상도 쓰고 함께 자고 일어났지만 거기까지였다.
양가 부모에게 허락을 맡고 제대로 된 혼인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 남궁류청의 철칙이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혔고, 그 뒤에는 그래, 뭐 얼마나 가겠어? 하는 마음으로 알겠다고했다. 하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남궁류청은 정말 진심이었는지 처음에는 객실도 따로 쓰려 했다.
······장난하나?
그렇게 둘 순 없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단둘이 여행을 해!
나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논리적인 이유를 들며 객실을 따로 쓰자는 말을 반박했다.
첫째, 혼인했다고 했으면서 각방을 쓰고 다니는 것이 양가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잘도 믿어 주겠다, 라는 말을 하였고.
둘째, 돈이 없다, 였다.
이렇게 여행이 길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피차 돈을 많이 챙겨오지 않았다.
게다가 본래 백리세가나 남궁세가와 거래하는 전장에 가서 나와 남궁류청의 신분을 대고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린 지금 도주 중이지 않은가? 가문의 돈을 빼 쓰는 순간 바로 위치가 발각되었다. 쓸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넘어간다 치더라도 두 번째,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고결한 이상도 소용없는 것이다.
아,참고로 나는 이미 비자금을 이곳저곳에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걸리지 않고도 몇 년은 여행하고도 남을 비용을 융통할 수 있었지만······ 남궁류청은 이 사실을 몰랐다.
서로 간에 숨기는 것 없이 지내기로 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일 이실직고하면 그도 이해하리라.
하여간 나와 남궁류청은 객실을 하나만 쓰게 되었고, 나는 과연 그가 어디까지 고집을 부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휴.
됐다. 성질내서 뭐 하나?
시간은 많으니 말이다.
나는 남궁류청이 건네준 찻물을 단숨에 넘겼다.
두 잔 더 받아 마신 후에야 손을 내저었다.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내리뜨고 있다가 남궁류청을 보았다. 그리고 뚫어 버릴 것처럼 낮게 가라앉은 눈과 마주쳤다.
농밀한 열정이 담긴 시선은 내 물기 남은 입술을 향해 있었다.
그가 참기 힘들다는 듯 나직이 물었다.
“입 맞춰도 돼?”
“일일이 묻지 않아도 돼.”
이리 말해도 다음에 또 물어볼 것을 알았다.
허락한다는 듯이 눈을 감는 순간, 턱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조금 전에 넘겼던 은은한 차향이 달콤하게 섞여 들었다.
딱딱하게 굳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모르던 남궁류청이 아니었다.
아득한 감각 속에 어느새 몸이 뒤로 기운 나는 한 손으로 남궁류청의 목덜미를 감싸며 다른 한 손으로 침상을 짚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남궁류청이 몸을 확 뒤로 뺐다. 몽롱해지던 감각에 누가 찬물을 확 뿌린 느낌이었다. 어리둥절 하면서도 이게 무슨 악질적인 장난인가 싶었다.
“갑자기 이게······?”
타박하며 침상을 짚는 순간 어떠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째 침상이 아까와 달리 낮고 너무 푹신한데?
거기에 남궁류청의 귓바퀴부터 목덜미까지 달아오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깨달았다.
“음.”
아까 내가 짚었던 것은 침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왠지 침상이 너무 단단하더라.
“······.”
나는 남궁류청이 이대로 숨을 멈춰 죽기 전에 말했다.
“내 신발이 어디 갔지?”
침상 아래로 몸을 숙이자 남궁류청이 재깍 가져다주었다.
신발을 신고 일어난 뒤에 머리를 정돈하고 묶을 때쯤에는 남궁류청도 원래의 안색으로 돌아왔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남궁류청이 언제 붉어진 얼굴을 했냐는 듯이 말했다.
“아까 무양표국 사람이 왔다 갔어.”
“왜? 아, 맞혀 볼게. 은혜에 보답하고 싶으니 같이 저녁 먹자던?”
남궁류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갑자기 내려가서 저녁 먹기가 싫어지는데.”
“그럼 여기서 먹든지.”
“그럴까?”
나는 내 머리칼을 마저 쓸어넘겨 주는 남궁류청의 손길을 느끼며 작게 하품하고는 탁자에 놓여 있던 땅콩 볶음이 들어있는 간식 그릇을 당겼다.
남궁류청이 손을 내리며 말했다.
“돕지 않을 생각이야?”
“······.”
“마교가 정말로 천마의 보물을 노리는 거라면 여기서 포기할 리 없어.”
“끈질긴 놈들이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무양표국의 사업 확장에 굳이 우리가 도움을 줄 필요가 있을까?”
“사업 확장?”
“응. 본래 무양표국은 그리 큰 표국이 아니야. 천마의 보물은 무양표국이 소화할 만한 수준의 표물이 아니고.”
표행의 이송대상이 되는 물건을 표물이라고 하였는데 이번 무양표국의 표물이 바로 천마의 보물이었다.
남궁류청이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그 말은 이번 사단이 무양표국이 제가 소화할 수 없는 일감을 받아 벌어진 일이라는 건가?”
“내 생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