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7)
외전 1화
1. 후일담
우리는 가문에 서신을 보내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유유자적하게 산수를 구경하고 식도락을 즐길 뿐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딱히 목적지 없이 유유히 말을 이끌고 있었다.
“류청, 생각해 둔 데 있어?”
남궁류청에게서 답이 들려왔다.
“바다 어때?”
“바다?”
“응. 가 본 적 있어”
“안 가 봤어.”
백리 세가는 내륙에 있었고, 바다와는 상당한 거리였다. 바다를 목표로 향하지 않는 한 굳이 갈 일이 없었다. 그동안 얽혔던 사건도 모두 내륙에서 일어났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덧붙였다.
“이번에는.”
남궁류청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저번 생에는 가봤다는 거야”
“응. 딱 한 번 바다에 가 본적 있었어.”
남궁류청의 표정이 순간 살짝 굳었으나, 나는 옛 기억을 떠올리느라 눈치 채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에······.”
“됐어.”
“어?”
“말해 줄 필요 없어.”
“아, 그래. 넌 별로 재미없을 이야기일지도.”
나는 얼굴을 긁적이며 웃었다.
그러자 남궁류청이 눈에 띄게 굳은 낯으로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야. 말하고 싶으면 해도 돼. 나는 그저······ 그러니까······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는······.”
나는 쩔쩔매는 남궁류청을 보다가 푸스스 웃었다.
“알겠어. 알겠어.”
남궁류청이 그제야 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남궁류청에게 다가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리고 안장 위에서 몸을 살짝 일으키고 손을 뻗어 뺨에 얹었다. 미지근한 온기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고삐를 꽉 쥔 남궁류청의 손등 위로 힘줄이 솟은 것이 보였다.
그가 당황한 눈으로 말했다.
“여긴 길 위······.”
“뭐, 어때? 아무도 없는데.”
“말 위에서 위험하······”
나는 고개를 기울여······
쪽,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입꼬리를 올렸다.
“뭘 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
남궁류청이 살짝 성난 눈빛으로 나를 흘기더니 말고삐를 쥐고 먼저 앞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몸을 숙인 채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뭐, 사실 나야 좋았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비참한 과거 이야기를 누가 말하고 싶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백리 세가에서 도망쳤을 때, 그때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당시 도망칠 곳으로 바다 근처를 선택한 이유는 별것 없었다.
백리 세가가 있는 호남성은 중원의 중심에 가까웠고, 나는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 숨고 싶었다.
하지만 무공도 하찮은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서북쪽의 신강은 마교의 본교가 있었으니 당연히 고려 대상조차 못 되었고, 서남쪽은 무더위에 자주 역병이 도는데다 아직 개간이 덜 되어 밀림이나 다름없었다. 북동쪽은 이민족 침입으로 매해 전쟁 중이었다.
나는 살고 싶은 것이지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남동쪽, 민남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향했다.
‘음, 생각해보면 나를 찾는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했겠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아녀자가 어디에 숨겠어?’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남궁류청 뒤를 따라가며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게? 바다로 가는거야?”
“가 봤다며.”
“또 가도 상관없어.”
너랑 가는 건 처음이니까, 라고 달래 주려고 할 때였다.
남궁류청이 갑자기 고삐를 잡아 당기며 멈춰 섰다. 나 또한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남궁류청과 똑같이 행동했다.
깊은 산중은 바람이 부는 소리,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와 새 울음 소리들만 들릴 뿐 고요했다.
나는 살짝 검 손잡이를 잡으며 자세를 취했고, 남궁류청은 말에서 소리없이 뛰어내려 몸을 바짝 땅에 숙였다.
잠시 후, 남궁류청은 다시 말에 올라타고 말의 배를 걷어찼다.
두 필의 말이 길을 따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남궁류청은 전투의 흔적과 일꾼으로 보이는 시신 몇 구를 발견했다.
허공의 떠다니는 피 냄새가 아직 짙었다. 사고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다.
시신을 살핀 나와 남궁류청은 시선을 마주했다.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같은 생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굳은 낯으로 말에 다시 올라탄 우리는 어지러운 박자국들과 바퀴자국을 따라 말을 달렸다.
흔적을 따라갈수록 시신의 수는 점차 늘었다. 부서져 나뒹군 짐마차들이 나타나고, 시야에 어림잡아 50여 명은 될 듯한 인원들이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새파란 날붙이들이 부딪치고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들려왔다. 상단이 산적에게 습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상단측은 매우 열세로 이미 피해가 커 보였다.
우리는 곧바로 이 살육 현장을 만든 산적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를 찾을 수 있었다.
산적 대장 또한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다. 주변에 뭐라고 소리치며 등에 멘 활을 들었다. 거대한 철궁에 물 흐르듯 화살을 누이고 시위를 당겼다.
쾅-!
무슨 대포알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방향을 꺾었다.
어느새 검을 뽑은 남궁류청이 자신에게 날아온 화살을 쳐 낸 것이다. 튕겨 나간 화살이 그대로 왼편의 숲으로 날아가 나무 윗동에 사람 머리통만한 구멍을 냈다.
커다란 소음과 소음의 결과에 전투를 벌이던 사람들이 검을 멈출 지경이었다.
철궁을 쏜 사내만이 침착하게 움직였다. 이미 겨누고 있던 활의 방향을 살짝 돌려 나를 겨누고.
쐐에엑!
대다수는 활이 날아가는 것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말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했을 때는 날아온 화살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철화살’
활촉부터 깃까지 모두 철로 된 화살이었다.
눈을 부릅뜬 사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너는······!”
그리고 그사이 사내의 코앞까지 도달한 남궁류청이 사내를 향해 상앗빛 검을 휘둘렀다.
* * *
“놈들이 도망친다!”
산적들이 죽은 동료의 시체는 물론 쓰러진 동료를 버려두고 산속으로 도망쳤다. 철궁을 쏜 사내 또한 남궁류청의 검에 부상을 입긴 했지만, 빠져나갔다.
나와 남궁류청은 그들을 쫓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산적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다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미 상단원의 반 이상은 사망한 듯 보였고, 살아남은 나머지 반도 대부분 중상으로 보였다.
여기저기서 신음이 난무했다.
부상이 가벼운 사람들조차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난 탓인지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일어날 수 있는 이들은 일어나라! 중상을 입은 자들을 짐마차로 옮겨라! 자리가 없다면 짐을 버려도 좋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난다. 움직여!”
그는 주변을 다독이고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격전을 치른 듯 찢어진 옷자락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남궁류청을 보고 살짝 놀란 듯 보이던 사내는 나를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나와 남궁류청은 오늘 산길에 들어서며 역용술을 푼 상태였다.
긴 여정 내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역용술을 유지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설마 알아봤나?’
강호인이라면 알아봤을지도······.
그때 사내가 서둘러 양손을 모아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협들. 두 분이 없었다면 모두 산적 놈들의 검에 저승길로 갈 뻔했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남궁류청은 굳이 그럴 것 없다든가, 누구나 도왔을 것이라는 인사치레도 없이 그냥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은 하나의 화폭처럼 근사하게 보였다.
‘하여간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저런 모습이 거만한 게 아니라 멋있게 보인다니. 남궁류청은 제 외모를 물려준 어머니와 아버지께 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저는 무양표국의 표사 왕장고라고 합니다.”
표사는 표국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을 말하며, 표국은 물품과 사람을 보호하거나, 운송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표행 중 습격을 받은 것이고.
나는 남궁류청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고 왕장고를 향해 말했다.
“표사셨군요. 저는 백연, 이이는 남청이라고 합니다.”
남궁류청과 내 이름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만 딴 가명이었다.
나는 왕장고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백 대협과 남 대협이시군요. 다시 한번 두 분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음, 다행히 알아본 게 아니라 남궁류청의 외모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그럴 만하지. 저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으면 이 또한 무척 수상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나도 늘감탄하게 되거늘.
왕장고가 괴로운 낯으로 쓰러진 동료를 보며 말했다.
“본래 이곳의 산채는 평소에는 적당한 통행세만 내면 별문제없이 지나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야 저들은 산적이 아니니까요.”
왕장고가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가 실수했다는 듯이 서둘러 낯빛을 관리했다.
나는 바닥에 박힌 활을 발끝으로 툭 걷어차 받아 들었다. 일반적인 화살과 달리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개 들 수도 없을 것이다.
“산적이 이런 활을 쓰는 무공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창이나, 검, 박도같은 것으로도 산적질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익히기도 어렵고, 흔한 무기도 하닌 철궁 무공?
“뭐 짐작 가는 거 없으신가요?”
“······.”
나는 대답을 기다리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없으시다면, 저흰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말고삐를 당기며 남궁류청을 돌아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류청이 내 뒤를 따라 두세 발 정도 움직였을 때.
“잠시, 잠시만요, 대협!”
왕장고가 달려와 황급히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그, 말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잠시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왕장고를 바라보았다가 안내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